10. 밀행제일(密行第一) 라후라
장애(障碍)라는 이름
라후라 존자는 석가모니불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로서 남의 눈에 띄지 않은 가운데도 은밀하게 스스로 행할 바를 실천하여 부처님으로부터 밀행제일이라는 칭호를 받는다.
그는 부처님으로부터 배운 바 그대로 사소한 일 하나하나까지도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충실히 실행한 결과 그렇게 불리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인욕행(忍辱行)과 계율 준수를 남이 보지 않는 데서도 철저히 해 나갔던 모양이다.
라후라의 산스크리트 명은 라훌라(Rahulla)이다. 이 말은 월식(月蝕), 복장(覆障), 장목(障目)이라는 뜻으로 흔히 장애로 의역되고 있다. 그런데 사실 '라훌라'라는 이름은 아수라의 일종으로 그 아수라의 무리 중에서 가장 힘이 센 자를 일컫는다.
바로 라후(Rahu) 아수라는 신[수라]과 악마[아수라] 사이에 싸움이 벌어져 불사의 감로수인 아무리타를 얻는 과정에서 몰래 신의 무리에 끼여들어 아무리타를 목까지 삼키는 슨간 그만 비슈누의 칼에 맞고 만 자였다.
해와 달이 비슈누 신에게 라후 아수라가 신의 무리 속에 있다고 일러바쳐 일격을 당한 것이다.
다행히도 그 아수라는 목까지 아무리타를 마셨기 때문에 얼굴만 살아서는 자기에게 행한 원수를 갚기 위해서 해와 달을 삼키지만 너무 뜨거워서 금방 토해냈고, 그 결과 일식과 월식이 생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신화에 근거하여 '라훌라'라는 말은 월식으로 불리게 되었던 것이며 결국에는 장애라는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석가모니불의 아들이 장애(障碍)로 불리게 되었을까? 우리들의 귀에 가장 많이 알려진 얘기는 고타마 싯다르타가 생로병사의 고통을 목격하고 출가를 결심하여 돌아오던 길에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라훌라[장애]가 생겼구나"라고 통탄했다는 일화다.
이와 관련하여 현대 한국선의 커다란 별, 성철 스님도 속가와의 인연으로 낳은 친딸에게 불필(不必)이라 이름했다는 얘기가 인구에 회자된 적이 있다.
혹자는 이러한 행위에 대해서 가혹한 처사라고 불만을 토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큰 길로 들어서려면 세속의 끈끈한 정을 끊어 내야만 한다. 그것을 절연(絶緣)이라 한다. 그 결과 크나큰 자비가 보편성을 확보하면서 모든 존재를 똑같이 사랑하는 박애로 열매 맺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라후라의 출생은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한 뒤 얼마 후의 일이라고 보는 견해가 설득력 있게 거론되고 있다. '불본행집경'과 몇몇의 경전에서는 라후라가 태자의 출가 전에 입태하여 보리수 아래에서 성도 한 날 밤에 출생하였다는 설을 펴고 있다.
이 얘기를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태자가 출가한지 6년 후에 정각을 성취했으므로 어머니 배속에 6년 동안 있었다는 얘기인데, 이는 너무나 심한 과장이다. 만약 이 얘기를 사실 그대로 믿는다면 라후라의 어머니 야수다라 비는 다른 남자와 불륜을 맺고 그를 낳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불전에서는 설화의 형식을 빌어 그녀가 정절한 여인임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 행간에 숨어 있는 본래 의미를 끄집어 내보자. 태자의 출가 후 야수다라 비는 정상적으로 라후라를 분만했다. 그렇지만 싯다르타가 깨닫기까지의 6년 고행기에는 가족들도 인도의 풍속대로 고행에 가까운 생활을 하였으므로 라후라의 출생을 공식적으로 알리지 않았을 뿐이며, 성도의 소식과 함께 그의 출생이 공표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공교롭게도 출생일 날 월식이 있었나 보다. 그래서 그를 '라후라'라고 불렀을 것이다.
출가와 묵묵한 실천행
라후라의 유년 시절에 대한 별다른 기록은 없다. 다만 그의 출가에 대한 인연만 전할 따름이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신 후 고향 카필라 성으로 돌아왔지만, 야수다라 비는 부처님께 미소조차 보내지 않는다.
사실 그녀의 입장에서 볼 때 남편이 대각을 성취하여 붓다가 되었다고 하지만, 자신은 버림받은 여자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나 보다. 이러한 그녀의 응어리진 마음은 라후라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데서 잘 나타난다
. 라후라는 왕위를 계승할 예정이었다.
"저 분이 너의 아버지다. 가서 나는 왕이 되려 하니 물려줄 재산을 달라고 하라."
너무나 냉혹한 말이다. 그러나 어린 라후라는 어머니의 말대로 부처님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물려줄 재산을 요구했다.
부처님은 그녀의 마음을 간파하고 '차라리 그에게 보리도량의 거룩한 보물을 주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법의 상속자가 되게 하리라'고 생각하고는 사리불에 명해서 라후라의 출가 의식을 명령했다.
당시 그의 나이 6세 혹은 10세라한다. 이렇게 라후라는 사리불을 스승으로 삼아 최초로 사미가 되었다.
손자 라후라가 부처님 교단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정반왕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막내 아들 난다(Nanda)마저 출가한 마당에 손자가 집을 떠나는 상황에서 왕위는 물론이요, 대가 끊기게 되었으니 그 슬픔이 눈에 아린다.
그 후 정반왕은 부모의 허가 없이는 출가를 금하도록 부처님께 제안해서 그대로 따르게 되었다.
어린 시절 라후라의 출가 생활에 이런 일이 있었다. 하루는 자기 방에 와보니 객승이 먼저 와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게 아닌가. 당시로서는 비구계를 받지 못한 사미승 및 재가 불자는 비구와 한 방에서 머물수 없는 규칙 때문에 라후라는 방에 들어갈 엄두도 못내었다.
때마침 공교롭게도 소나기가 내려 그는 구린내 나는 뒷간에 들어가 잠을 청하였다. 그 날 부처님이 라후라가 걱정이 되어 그곳에 와서 라후라를 부르자, 그는 뒷간에서 뛰쳐나와 부처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린다. 그 후부터 사미는 이틀 밤을 비구와 같은 방에서 거처할 수 있게끔 되었다.
17세가 되던 어느 날, 라후라는 착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지만 장난기가 심하여 때때로 잦은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이고는 고소해 하는 것이었다. 결국 부처님으로부터 심한 꾸지람을 듣고 만다.
"사문으로서 행동을 조심하지 않고 거짓말로 사람을 괴롭히다니 죽을 때까지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미혹에 헤매이고 말지니 뜻을 가다듬으라."
그 후부터 라후라는 계율을 충실히 지키며 정진하다. 20세가 되던 어느날 부처님과 더불어 탁발 나갔을 때, "모든 삼라만상과 몸이며 마음과 생각이 모두 무상하다고 생각하여라. 그러면 모든 집착이 사라지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법문을 듣고 마음이 열린다. 그는 홀로 기원정사에 들어와 좌선하여 마침내 깨달음을 얻게 된다.
밀행(密行)의 진정한 의미
라후라의 두드러진 특징은, 계율 및 수행자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남이 보든 안 보든 은밀하게 실천하는데 으뜸이라는 밀행제일이라는 별명에서 찾을 수 있으며, 거기에 인욕행 또한 영롱하게 각인되어 있다. 사리불과 더불어 왕사성으로 탁발 나갔을 때의 일이다.
그들은 길가에서 악한과 부딪혔다. 악한은 사리불의 발우에 모래를 들어 붓고 그의 뒤를 따라가는 라후라의 머리를 후려쳐 머리에서 피가 주르륵 흘렀다. 그 자리에서 사리불은 라후라에게 부처님의 제자된 자로서의 본분, 즉 참고 자비심을 베풀며 인욕하라는 조언을 했다.그 말을 들은 라후라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 아픔을 견디며 오랫동안 괴로워하는 자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실제로 세상에는 악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참으로 좋지 않은 일이 많이 벌어 지는 곳입니다. 그러나 저는 화내지 않겠습니다. 다만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을 어떻게 교화하면 좋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저에게 대자비를 가르치십니다. 광폭한 자는 잔악한 짓을 즐겨 하지만 사문은 인욕을 지키고 높은 덕을 쌓겠습니다."
부처님은 이러한 라후라의 태도를 칭찬하면서, "자신이 붓다가 되어 제천(諸天)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오직 홀로 삼계를 거닐며 안온한 마음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은 이 인욕의 덕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한 나라를 계승할 태자의 신분인 데다가, 부처님의 외아들이라면 그만큼 주위로부터 우월감이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라후라는 수행자로서 조용히, 너무나도 은밀하게 자신의 길을 간다.
여기서 우리는 부처님 교단, 그 출가 수행 집단의 아름다운 살림살이를 엿볼 수 있을뿐더러 라후라의 고결하고 겸손한 인품을 읽을 수 있다. 밀행이 라후라에게서 유독 아름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라후라는 출가했을 망정 부모에 대한 애정이 지극했던 듯싶다. 그는 아들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병에 걸린 어머니에게 애정어린 간병을 했으며 아버지인 석가모니불께서 열반에 들자 슬프게 흐느낀다.
이상 10대 제자들을 살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