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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필 2024년 09월호(통권 355호)
제26회 한국수필 해외심포지엄 · 코카서스
민족문학과 수도원 문화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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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민족문화, 그 세계성 고찰(考察)
김호운
소설가·수필가·사)한국문인협회 이사장
1. 들어가는 말
2024년 (사)한국수필가협회의 코카서스(Caucasus) 지역 문학 탐방 기행과 병행하는 심포지엄에서 이 지역 민족문화를 통해 문학이 어떤 형태로 존재해야 하며, 이것이 한국문학과 어떤 연관성을 가져야 하는지 살펴보는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사실 이 심포지엄 발제문을 준비하기 전까지 저는 ‘코카서스 3국’이라 불리는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지역 문학에 관해 깊이 있게 살펴본 적이 없습니다. 이전에 이 지역 여행을 준비하면서 겉모습으로만 잠깐 들여다본 상식 이외의 깊은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이 발제문을 준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동시에 이번 기회에 이 지역 문화와 문학을 공부하는 동기가 되어 매우 뜻깊고 즐거운 일이기도 했습니다. 다만 국내에 소개된 자료가 빈약하여 자료를 찾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점도 밝혀둡니다. 앞으로 관심 있는 분들이 더 자세히 깊이 연구하여 좋은 자료를 남겨주시길 희망합니다.
2. 코카서스 지역의 지리적 문화적 특징
일반적으로 이 지역을 코카서스(Caucasus)라 부르나 현지에서는 캅카스 또는 카프카스(러시아어: Кавка́з, 문화어: 깝까즈)로 불립니다.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있는 이 지역을 특징하는 명칭부터 정의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대부분 영어식 발음인 코카서스로 불렀습니다만 최근 발간되는 책이나 자료들에서 ‘코카서스 산맥’을 ‘캅카스 산맥’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립국어원의 외래어표기법에 현지 발음으로 기재하기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살펴 ‘캅카스’로 부르는 게 옳으나 이 발제문에서는 그동안 익숙한 코카서스로 통일하기로 합니다.
코카서스는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동서로 뻗은 코카서스 산맥을 두고 북쪽은 러시아, 남쪽은 코카서스 3국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코카서스 산맥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러시아 영토인 체첸·다게스탄·카바르디노발카르·북오세티야 등 여러 공화국이 있습니다. 남쪽에는 조지아·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등 코카서스 3국이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그 서남쪽에 튀르키예, 남쪽에 이란과 국경을 접합니다. 이렇게 여러 나라가 서로 국경을 마주하고 있으며, 고대부터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 유럽을 잇는 교역의 중심지여서 끊임없이 외세 침략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마치 다리를 놓은 듯한 지정학적 특수성으로 마찰이 끊어지지 않으며 역사를 이어왔습니다.
이 지역이 유럽과 아시아의 육상경계를 이루기 때문에 유럽으로도 서아시아로도 분류되는 등 경계도 모호합니다. 이 지역 독립국인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을 유럽으로 보는 지도와 통계도 있으며, 반대로 서아시아로 분류하는 나라들도 있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유라시아로 분류하며, 현재 우크라이나 주재 한국대사관이 이 지역 대사를 겸임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럽과 같은 기독교 문화권인 아르메니아와 조지아는 EU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과 밀접한 외교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슬람 문화권인 아제르바이잔은 서아시아 국가들과 가깝습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문화와 종교로 분류하여 조지아와 아르메니아는 유럽으로, 튀르키예와 밀접한 튀르크계이며 이슬람(시아파) 국가인 아제르바이잔은 아시아로 보기도 합니다. 현실적으로는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세 나라 모두 유럽연합의 동부 파트너십 대상 국가입니다. 세 나라 모두 유럽 세력에 속하는 소련과 러시아에 1991년까지 지배받아 유럽 문화에 많이 동화되어 있습니다. 특히 조지아의 경우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루지아였던 국명을 조지아로 바꾸기까지 했으며, 현재 유럽연합 가입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 또는 문화권의 특색으로 이 지역 문화를 딱히 하나로 분류하기는 어려우며 다양한 문화가 유입 혼합되어 새로운 문화 형태로 바뀌었습니다. 주변국과의 연대 또는 우호적 이념을 수용하여 중간자적 모습이 보이는 것도 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보입니다.
3. 민족문화의 정의
오랜 세월을 거쳐오는 동안 한 민족이 함께 생활하면서 축적하여 온 경험과 지식의 총체를 민족문화라고 합니다. 따라서 민족문화는 민족 내부의 어느 특정 계층이나 어느 시기의 문화에 한정하는 게 아니라 전체로서의 그 민족이 공유하며 오랜 시간에 걸쳐 발전해 온 생활 양식입니다.1)
1) [네이버 지식백과] 민족문화(民族文化), (Basic 고교생을 위한 사회 용어사전, 2006. 이상수)
이러한 민족문화는 역사 흐름에 따라 바뀝니다. 우리가 상투를 틀고 한복을 입고 생활하던 시대에서 자유롭게 옷을 입고 머리모양을 하며 사는 것도 민족문화 발전 형태입니다. 이렇게 보면 민족문화라고 정의할 때 민족 고유문화여야 한다고 규정지을 수 없습니다. 유입되는 외래문화와 자생적 발전 문화 등이 융복합하면서 형성되는 문화 형태까지 포함해야 하는 게 옳습니다. 민족의 전통문화를 현실에 맞게 개선하고 발전시키며 외래문화까지도 흡수·동화하여 민족문화를 이루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게 오늘날 민족문화의 정서입니다.
4. 코카서스 지역 문학과 러시아 문학과의 상관관계
현재 우리나라에 소개된 코카서스 지역 문학은 몇 편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대부분 절판되어 쉬 접하기 어렵고, 몇몇 작품만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독자층을 넓혀가기 위해서는 우선 이 지역 문화를 알리는 교류 활동이 더 활발해져야 합니다. 이를 반증이나 하듯 현재 한국인이 조지아에 들어갈 때는 360일 체류할 수 있는 무비자 입국이지만, 조지아인이 한국에 올 때는 비자를 받아야 합니다. 이런 불균형에서 두 나라의 문학 교류가 아직 기초 단계에 있음을 반증합니다.
코카서스 지역의 문학은 역사와 문화 발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러시아 문학에 큰 영향을 받았으며, 동시에 가까운 서아시아의 이슬람 문화와 투르키예에서 유입된 유럽 문화와 이슬람 문화 등 다양한 형태의 문화가 혼용되어 존재합니다. 문학 역시 이러한 정치 문화의 변천과 무관하지 않게 탄생하고 발전해 왔습니다.
코카서스 지역 문학과 러시아 문학 사이의 상관관계는 우선 27세에 결투로 요절한 러시아 작가 미하일 레르몬토프의 장편소설 『우리 시대의 영웅』(오정미 옮김, 민음사, 2009)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겠습니다. 이 작품은 2021년에 14쇄를 펴낼 정도로 우리 국내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이 작품의 배경이 코카서스 지역이기에 『우리 시대의 영웅』을 읽은 독자들이 많다면 이와 연계하여 코카서스 지역 문학작품과 독서로 연결될 법도 한데, 아직 그러한 현상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는 앞서 언급하였듯이 두 나라 사이의 문화교류가 활발하지 않은 데서도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을 듯합니다.
19세기경에는 러시아의 젊은 작가들이 코카서스산맥을 넘어 남코카서스 지역으로 여행하는 걸 매우 선호했다고 합니다. 레르몬토프와 푸쉬킨의 경우에 자발적으로 이 지역을 유형(流刑)지로 선택했으며, 그밖에 톨스토이를 비롯하여 파스테르나크와 솔제니친도 이 지역에 체류한 적 있습니다. 이는 당시 유럽 문화 예술인들이 이탈리아 로마 기행을 선호했듯이 같은 유럽권에 속한 러시아와 소련의 젊은 작가들은 이 코카서스 지역을 새로운 이상(理想)이 꽃피는 곳으로 여겼습니다. 이는 당시 정치 문화의 중심이었던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정체된 사회환경에 염증을 느꼈고, 새로운 희망의 땅으로 이곳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가지 역사와 문화적인 이유도 작용했습니다. 거듭 언급하지만, 코카서스 지역은 세계 문화와 철학이 혼재되어 독특한 형태의 문화를 꽃피웠기 때문입니다. 이 다양성이 새로운 문학 새로운 사유를 체험하는 데 적지라고 여긴 것입니다. 장편소설 『우리 시대의 영웅』에서 주인공이 코카서스로 떠나는 장면에서 이러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가 카프카스2)로 온 것은 그 광신적인 낭만주의의 결과물이다. 부친의 시골 영지에서 떠나오기 전날 밤에는, 이웃에 사는 예쁜 아가씨에게 우울한 모습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가 카프카스로 가는 것은 단지 군복무를 하기 위함이 아니라, 죽음을 구하기 위함이라고….3)
ㅡ 미하일 레르몬토프의 장편소설 『우리 시대의 영웅』 중에서
2) 민음사판 『우리 시대의 영웅』에는 국립국어원 외래어표기법에 따라 코카서스를 모두 카프카스(Kavkaz)로 표기하고 있다. 이는 이 작품이 러시아어로 된 러시아 문학이기에 당연하다. 하지만 조지아를 비롯한 일부 코카서스 지역 국가들은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유럽 등 서방 국가들과 문화교류를 하기 위해 국명도 그루지아(러시아어)에서 조지아(영어)로 바꾸었다. 따라서 이 발제문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코카서스’로 표기한다. - 필자 주
3) 장편소설 『우리 시대의 영웅』, 미하일 레르몬토프, 오정미 옮김, 민음사, 2021. p.112
이처럼 당시 러시아 젊은 작가들은 이 코카서스 지역을 이상향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는 건 18세기 후반에 이 지역이 러시아의 영향권에 들어가고 난 이후부터입니다. ‘문학 속에 코카서스 이미지를 잘 융화시킨 작가는 푸쉬킨과 레르몬토프이다’(허승철, 『코카서스 3국 문학 산책』, 문예림, 2018. p.11)라고 한 것처럼, 특히 푸쉬킨과 레르몬토프는 코카서스 문화를 자신의 작품에 유입 융화하는 데 앞장섰던 작가들입니다. 이후 톨스토이, 파스테르나크, 솔제니친 등 많은 러시아 작가 시인들이 이 지역을 배경으로 작품을 창작했으며, 작가가 직접 이 지역에 와서 머물기도 했습니다.
카프카스를 발아래 내려다보며
산꼭대기 벼랑 끝 눈 위에 홀로 서 있노라.
머언 산마루에서 날아오른 독수리
내 높이에서 움직임 없이 떠 있는데
나 여기서 격류의 발원지와
무서운 눈사태의 맨 처음 꿈틀거림을 보노라 4)
ㅡ 푸쉬킨, 시 「카프카스」 중에서
4) 허승철 『코카서스 3국 문학 산책』 문예림, 2018. p.24 / 1829년에 발표한 푸쉬킨 시 「카프카스」 제1연. 번역 허승철
위에 인용한 작품은 1829년에 발표한 푸쉬킨의 시 「카프카스」 제1연입니다. 푸쉬킨은 1820년에 발표한 「자유를 위한 송시」가 러시아 차르 정부로부터 미움을 받아 남부 지역으로 유배를 당했습니다. 1829년에는 러시아·터키 전쟁에 참전하는 군대를 따라 조지아와 아르메니아 지역을 방문하였으며, 이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여러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문학 업적을 기리기 위해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에 푸쉬킨 거리가 있고,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참고로 2013년에는 서울 소공동에 있는 롯데호텔 앞에 동아시아 최초로 푸쉬킨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이는 롯데 그룹 창업자 신격호 회장이 그의 시를 좋아했으며 어려운 시기에 그의 시가 큰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고 합
니다.
톨스토이는 1863년에 단편소설 「카자크인들」을 발표했습니다. 발표 초기에는 제목이 「젊은 남자」였는데, 뒤에 제목을 「카자크인들」로 바꾸었습니다. 이는 그가 코카서스 지역에서의 체험을 그만큼 종요하게 여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반 투르게네프가 이 작품이 톨스토이가 가장 아낀다고 했을 정도로 문학성이 훌륭한 수작입니다. 1851년, 톨스토이는 도박으로 진 빚을 피하려고 군에 입대했고, 이 군대가 코카서스 지역에 주둔했습니다. 이때 이곳에 머무는 동안 그는 『유년시절』 전반부를 집필했습니다. 이는 이곳에서 자신의 방탕한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사유의 세계를 희망한다는 집념을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단편소설 「카자크인들」은 이때의 체험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톨스토이의 문학성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민족 전통과 독립, 그리고 혁신 정신과 인종 간의 갈등 등 한 지역에 인류가 정착하면서 형성되는 다양한 문화를 이 작품 속에 잘 녹였습니다. 무엇보다 이곳에서의 군 생활을 마친 톨스토이는 사회, 종교, 교육, 문학 전반에 걸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 옵니다. 이후 『부활』 『안나카레니나』 『전쟁과 평화』와 같은 불후의 명작을 남기게 됩니다. 코카서스에서의 체험이 그의 새로운 인생관 역사관을 형성했던 것입니다.
장편소설 『닥터 지바고』의 작가 파스테르나크는 러시아 현대문학에 큰 영향을 끼친 작가입니다. 그는 러시아의 도식화된 사회질서를 벗어나 개인의 자유로운 의식 세계를 추구하고자 한 작가 중 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195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을 때 소련 당국의 통제로 그는 수상을 거부해야 했으며, 30년이 지나서야 1988년에 가족들에 의해 대신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파스테르나크는 조지아 시인들의 작품을 러시아어로 번역 출간하기도 했고, 조지아 상징주의 시 운동을 전개한 파올로 야쉬발(Paolo Jasvili)을 지지하였습니다. 파스테르나크는 1930년 모스크바에서 야쉬발을 만났으며, 이 무렵 첫 결혼에 실패하고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던 파스테르나크는 이듬해 1931년 조지아에 있는 야쉬발의 집으로 갑니다. 야쉬발은 파스테르나크를 조지아 시인협회에 초청하기도 했습니다. 파스테르나크를 도왔던 야쉬발은 스탈린의 대숙청 때 1937년 자살하며, 조지아 체류 당시 파스테르나크가 알게 된 시인 티치안 타비제도 같은 해 소련 당국에 의해 처형당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체험이 파스테르나크의 문학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파스테르나크는 1932년 당시의 체험을 담은 시 「파도」를 발표합니다.
… 우리는 조지아를 다녀왔다.
궁핍에 정다움을 곱하고 지옥에 천국을 곱하고
빙산의 받침돌로 온실을 삼으면
이 나라가 나올 것이다.5)
ㅡ 파스테르나크의 시 「파도」 중에서
5) 1932년 발표한 파스테르나크의 시 「파도」 제1연, 허승철 번역 / 허승철 『코카서스 3국 문학 산책』, 문예림, 2018, p.89
파스테르나크는 소련 작가동맹에서 연설하면서 “조지아 시들을 번역한 것은 내게 큰 행운이 있었으며, 이 번역 작업은 나의 창조적 작업 활동에 매우 좋은 영향을 끼쳤다”(허승철 『코카서스 3국 문학 산책』, 문예림, 2018, p.91)라고 말했습니다.
알렉산드르 이사예비치 솔제니친 역시 코카서스 지역 문화에서 그의 문학이 움틉니다. 그는 1918년 코카서스 북부 쿠만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우크라이나계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전에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합니다. 그는 이러한 환경에서 자라며 어릴 때 체험한 코카서스 지역을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1914년 8월』을 발표합니다.
솔제니친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무공을 세우지만 친구에게 스탈린 체제를 비판하고 소련의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한 죄로 KGB에 체포되어 고문받은 뒤 8년 동안 강제수용소에서 지냅니다. 이후 독일로 추방되었다가 미국에 정착했습니다. 그의 이런 저항 문학 정신은 코카서스에서 지낸 어릴 때의 체험에서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5. 코카서스 지역 민족 문학
지금까지 러시아 문학을 통해 간접적으로 코카서스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러시아 문학 작품을 살펴보았습니다. 러시아 문학의 영향을 받기 전부터 이 지역에서 자생한 문학 가운데 대표 작품이 쇼타 루스타벨리(Shota Rustaveli, 1172~1216년)의 대서사시 『호피를 두른 용사』입니다. 서시(序詩)와 54장, 마지막 연(聯) 등 모두 1,587개 서사시로 구성된 방대한 분량입니다.
쇼타 루스벨리는 조지아의 황금기인 타마르 여왕 시대(1160-1213)에 궁정 시인으로 활동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가 활동하던 시대의 기록은 물론 그의 성장 기록도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국민 시로 불리는 『호피를 두른 용사』에 자신을 루스타벨리라고 소개하고 있으나, 그가 어디에 사는 루스타벨리인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그에 대한 삶의 기록이 별로 없어 신비 속에 묻힌 작가로 불려 오다가 조지아 학술팀에 의해 그의 실체가 밝혀졌습니다.
15-18세기에 이르러 조지아 작가들은 루스타벨리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제공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11세기에 건설한 조지아 십자가 수도원에서 발견된 프레스코화와 문서에 보존된 이름인 쇼타 루스벨리가 바로 그 작가와 동일인임을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그 프레스코화는 조지아 성지 순례자였던 티모페이가 1757-1758에 그린 작품이며, 1960년 조지아 학술팀에 의해 재발견되었다. 예루살렘에 있는 문서에는 쇼타 루스벨리가 수도원 후원자이며, 고위급 재정 담당자였다고 기술되어 있다. 따라서 루스타벨리가 타마르 여왕 시대에 고령으로 은퇴해 수도원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도 전설로 남아 있다.6)
6) 쇼타 류스타벨리 지음, 조주관 옮김, 『호피를 두른 용사』,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6, p.686
이처럼 쇼타 류스벨리의 『호피를 두른 용사』는 작가의 실체를 모른 채 마치 전설 속에 전해오는 작품으로 기록되었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뒤 학자들에 의해 그의 실체가 밝혀졌습니다.
쇼타 루스벨리의 대서사시 『호피를 두른 용사』 「서시」 제1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분, 당신의 힘은 위대하십니다.
생기가 없던 곳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고,
인간에게 수많은 빛깔로 채워진 화원 같은 세상을 주시고
당신을 닮은 군주들을 각 나라로 보내셨습니다. 7)
7) 위 책 p.3
『호피를 두른 용사』 「서시」(1-31편까지)는 현재 조지아에서 초등학생까지도 필수적으로 암기하여 평생을 기억한다( 허승철 『코카서스 3국 문학 산책』, 문예림, 2018, p.98 역주 참조)라고 합니다. 그만큼 이 작품은 현재 조지아 민족시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위에 인용한 「서시」 제1편에서 보듯이 ‘생기가 없던 곳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고,’는 기독교 창조 이념을 표현한 것이며 ‘인간에게 수많은 빛깔로 채워진 화원 같은 세상을 주시고’는 여러 이민족, 우호적이었든 침략적이었든 코카서스를 거쳐 간 모든 이민족을 적대적으로 보지 않고, ‘화원(花園)’에 심어진 아름답고 다양한 꽃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당신을 닮은 군주들을 각 나라로 보내셨습니다.’라는 마지막 연(聯)에서는 이들을 하나의 하늘 아래 형제와 같은 의미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1,587편으로 구성된 대서사시 『호피를 두른 용사』는 사랑과 우정에 대한 모험을 주제로 한 2개의 이야기로 서사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인도의 용사 타리엘과 그의 애인 네스탄-다레잔을 주인공으로 펼쳐지고, 또 하나는 아라비아 최고 용사인 압탄딜과 그의 애인 티나틴과의 이야기입니다. 코카서스 민족 문학에 이민족인 인도와 아라비아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이러한 문학의 독창적인 형태 역시 ‘코카서스’라는 특별한 지역이 갖는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너른 세계에 비하면 좁디좁은 이 코카서스에 세계(우주)를 담고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조지아는 세계 속의 주인공이 되며, 그래서 이 작품이 조지아를 넘어 세계문학의 한 장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내용 또한 12세기에 씌어진 것으로 믿을 수 없을 만큼 문학 미학으로서의 가치 또한 뛰어납니다. 비평가들은 이 작품을 단테의 『신곡』에 견주기도 할 만큼 서사시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조지아에서 수여하는 최고 문학상이 ‘쇼타 루스벨리 국가상’이며,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에는 그의 이름을 기리는 ‘쇼타 루스벨리 문학 아카데미’ ‘쇼타 루스벨리 지하철 역’ ‘루스벨리 대로’ 등이 있습니다.
6. 민족 문학의 세계성
21세기에 들어와 ’민족 문학‘이라는 말은 빛바랜 듯 다소 생경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세계가 하나의 지역이 된 이때 ’민족‘이란 말은 곧 ’분쟁‘이라는 말로도 비견될 만큼 매우 조심스러운 말이 되었습니다.
동화작가 권정생(1937~1969) 선생의 시 「애국자가 없는 세상」에서 이러한 의미가 잘 나타납니다. 그래서 그를 평화주의자, 반전주의자로, 또는 생태주의자, 심지어 기독교 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로라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의 작품 「애국자가 없는 세상」이 새삼 조명받을 정도로 지금, 이 시각에도 세계 인류는 ’민족주의‘ ’패권주의‘로 수많은 젊은이를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게 합니다.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애국 애족자가 없다면/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동족을 위해/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 테고/대포도 안 만들 테고/탱크도 안 만들 테고/핵무기도 안 만들 테고/국방의 의무란 것도/군대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 테고/그래서/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잃지 않아도 될 테고/젊은이들은/꽃을 사랑하고/연인을 사랑하고/자연을 사랑하고/무지개를 사랑하고/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더 많은 것을 아끼고/사랑하며 살 것이고/세상은 아름답고/따사로워질 것이다
ㅡ 권정생 시 「애국자가 없는 세상」 전문
쇼타 루스벨리의 대서사시 『호피를 두른 용사』가 지역과 민족, 국가를 넘어 세계를 아우르는 문학으로 평가받는 것은 ‘인간’을 중심의 서사로 다루었기 때문입니다.
민족문화의 우수성, 또는 민족문화의 세계화란 이름으로 자국의 문화(문학)를 지나치게 강조하게 된다면 다른 나라 문화 속에 동화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기 나라 문화의 우수성을 담되 문학 작품은 인간(인류)과 자연을 위한 것이 될 때 세계 인류를 독자로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한국문학이 세계성을 가지게 되며, 세계 속의 한국문학으로서 세계문학의 한 줄기가 될 수 있을 겁니다.
7. 마무리
이 발제문은 사전 지식 없이, 코카서스 문화와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 자료를 찾아가며 공부하면서 정리한 내용이라 학문적 이론과는 다소 거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는 창작자의 시선으로 학자들의 저술을 찾아 살피면서 느낀 내용을 정리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코카서스 지역 역사와 문화가 다양하며, 오랜 역사 속에 수없이 녹아들고 변화하면서 오늘에 이르렀기에 앞으로 이 부분을 좀더 깊이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이번 코카서스 지역 문학 기행을 계기로 이 지역 역사와 문화, 그리고 문학을 살펴본 것만으로도 우리 문인들에게는 소중한 자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앞으로 이를 계기로 코카서스 문학을 더 살펴보며 한국문학에 접목하고, 또 한국문학을 이 지역으로 확산하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 주길 기대합니다.
이런 소중한 기회를 마련해 주신 (사)한국수필가협회 권남희 회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이런 기회로 수필 문학, 나아가서 한국문학이 더 넓게 세계 속으로 확산되어 가기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김호운 penker@naver.com
소설가, 수필가. 1978년 『월간문학』 신인작품상 소설부문에 당선. 2021년 『리더스에세이』 여름호 수필 등단. 장편소설 『바이칼 단군의 태양을 품다』. 소설집 『사라예보의 장미』 등, 에세이집 『연꽃, 미소』, 칼럼집 『나비를 잡는 아이의 마음』 등 작품집 30여 권 출간. 현재 한국문인협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