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3년 9월에 저희 조부모님을 포함한 조상어르신들을 모실 가족 납골당을 만드는 과정에서 느낀 내용을 적어놓은 글입니다. 역시 청년한의사회 방에서 퍼다 옮겨 놓았습니다. 장례문화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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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골이 진토(塵土)되어!
엊그제 집안에서 산(山)일을 했다. 돌아가신 어른들의 묘소관리를 늘 시골에 계신 분들에게만 떠맡기게 되다보니 갈등도 생기고 말들이 곱지 않게 전달되던 터이다. 재작년부터 가족납골당 어쩌구 하던 일이 지금 이루어지는 것이다. 느닷없이 날짜가 잡힌 것이 바로 엊그제다. 시골(김제에 선산이 있고 지금도 집안 어르신들이 거기에 사신다) 방문을 영 꺼려하던 아버지(사촌 형제간의 해묵은 오해가 아직도 앙금이 남으셨단다)께서 할 수 없이 내려오시고, 난 근무도 포기한 채 아버님을 모시고 꼭두새벽에 집을 나섰다.
"아버지, 그래도 밥은 먹고 가야죠?" "아, 그럼. 산일 하려면 뱃속이 든든해야지" 아버지를 모시고 송천동 가까운 콩나물해장국집에서 이른 아침을 먹는다. 날은 꾸물꾸물 비가 오려고 폼을 잡는 것 같다. "뭐 이런 날을 잡았대요?" "글쎄 말이다. 추석 전에 일 마무리한다더니 그 날짜 지킬라고 하는가보다"
도시 외곽도로를 타고 김제를 향한다. 이슬비가 조금 내리더니 다시 멈춘다. 8시도 안되어 산일은 시작되었다. 며칠 전 주말에 10여기 산소를 정리했고, 오늘은 우리 조부모님을 포함해서 11기의 산소를 납골당으로 모시는 작업이다. 며칠 계속 내린 비로 산소 주변을 다니는데 진흙이 미끄러져 다들 고생이 많다. 우리가 도착하니 큰할머님(작년에 돌아가셔서 아직 시신이 온전한 편이다)을 이관작업 중이다. 물이 많이 고여 있다. 자리를 잡아 준 지관(地官)을 탓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에고, 남의 묫자리도 함부로 잡아줄게 아니구나.
집에서 준비해 간 제물을 조부모님 상석에 올려놓고 절을 드린다. '아, 이제 이곳에서 절하는 것도 마지막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왠지 서운하다. 할아버지보다 5년쯤 나중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이곳에 잠드신 지 벌써 20여 년이 되었다. 그간 해마다 한 두 번쯤 꼭 들러 절도하고 풀도 베고 하며 정이 든 곳이었는데.
산일의 주력부대는 역시 포크레인이다. 둥그런 봉분을 제거하는데 단 두 번의 포크작업으로 끝낸다. 다음엔 관이나 시신을 다치지 않도록 살살 파 내려간다. 어릴 적 나를 많이 귀여워해 주시던 당숙의 묘소를 파 내려가던 중이었다. 관이 있을거라 했는데 웬걸, 도자기에 유골만이 수습되어 있었는가보다. 도자기는 깨져 분해되었는지 흔적도 없고 흰 유골들이 흩어져있다. 상자를 가져다가 내가 직접 조심스레 주워 담았다. 예전에는 화장을 해도 요즘처럼 완전소각, 분쇄하는 것이 아니라 살만 태우고 큰 뼈를 중심으로 모아서 매장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형태가 온전한 뼈가 나오는가보다.
이제, 우리 조부모님 차례다. 꾸물거리던 하늘은 드디어 비를 뿌려댄다. 할머니 돌아가시고 산소를 정하고 묘를 쓰는 날에도 이렇게 비가 내렸다. 그땐 참 눈물도 많이 흘렸었는데…. 할머님 자리를 파 내려가는데 옻칠을 했던 관의 표면이 깨끗하게 드러난다. 마치 새것 같다. 이럴 수가! 관의 옆구리를 삽으로 조심조심 흙을 떠낸다. 이제 뚜껑을 열 차례다. 조금 긴장된다. 뚜껑이 열리고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두개골을 허옇게 덮고 있는 머리카락이다. 다리 쪽으로 경사가 졌는데 물이 고여있다. 수맥이 흐르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침출수가 관으로 스며든 것이란다. 이만하면 자리는 좋은 편이란다.
할머님 유골을 조심스레 수습하였다. 다음엔 할아버지다. 빗발이 더 거세진다. 차에 가서 우산을 가져와 비를 맞고 계시는 아버님을 씌워 드린다. 당신의 부모님을 다시 보시면서 아버님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할아버지 묘의 정리를 마치고 5대조 할아버지 차례다. 봉분을 헐어내고 조심스레 파 내려간다. 얼마 깊지 않은 자리에서 흙의 색이 다른 부분이 나타난다. 산지기 업자가 하는 말에 의하면 그것이 "진토(塵土)"된 유골이란다. '아, 백골이 진토(塵土)되었다는 것이 이런거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붉은 색에 가까운 황토 속에서 약간은 회백색을 띄고 있는 그냥 흙이다. 우리가 그냥 땅을 파다보면 알 수도 없을 그런 차이다.
총 11기의 묘소를 정리하고 화장을 하기 위해 전주의 승화원(효자공원묘지 옆이다)에 도착했다. 일반적인 화장은 1구에 1기씩 들어가 태워지는데 우리처럼 이장하는 경우는 1구에 3기의 유골들을 넣고 태운다. 시간도 30분 정도로 짧다. 태워진 유골들은 분쇄기로 갈아서 유골함(보통 도자기를 쓴다. 이것도 가격이 천차만별이란다)에 채워지고 그 위에 이름을 적는데 우리는 이미 인쇄가 되어 있다. 모두 정리해서 납골당으로 향한다. 이번 납골당 공사비용이 총 4,700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가보니 잘 꾸며진 사당처럼 생겼다. 지금은 총 91기의 유골을 안치시킬 수 있도록 만들어 두었는데 빽빽하게 채우면 모두 900기 정도를 모실 수 있다고 한다. 앞으로 우리 부모님뿐만 아니라 우리들까지 또는 우리 아이들까지도 이곳에 들어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 조경공사와 주차장 시설을 보완해야 한단다. 그렇지만 약 500여 평 공간에 1,000기 정도의 유골을 안치시킨다는 것은 매우 경제적이다. 묘소관리나 벌초 등의 문제로 형제들과 다툼을 하지 않아도 좋다. 가족들과 도시락 싸 가지고 놀러와서 절 한번하고 쉬다 가도 좋은 공간이 생겼다. 바쁜 사람들은 굳이 안 와도 후손들 중 누군가는 들러 인사하고 갈 것 아닌가!
납골당, 추천할만한 장례문화다. 산소에 풀 베러 다녀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게 얼마나 귀찮고 힘드는지 말이다. 고속으로 회전하는 예초기 날이 돌멩이와 부딪칠 때의 섬뜩함, 웃자란 풀 섶을 헤치며 우리 할아버지(혹은 다른 어르신) 산소가 어디쯤인지 찾으면서 느껴지는 죄송스런 마음, 데리고 간 아이들이 혹 뱀이나 독충에게 물리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등등. 이런 불편함이 한번에 해결되는 것이 바로 가족 납골당이다. 정부에서 지원금(많지는 않지만)도 준단다. 아무튼 여러분들께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바이다. 알고 보니 우리 집안 조카되는 분이 이 사업을 하고 있다. 대학에서 장례지도과(이런 전공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를 공부해서 이참에 창업을 했다고 한다. 최창조 교수에게 풍수도 배웠다던데.....
아무튼 좋은 공부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죽어 겨우 한 줌 흙으로 돌아간다는 평범한 진리도 깨닫고. 인생이란게 그리 거창한 것도 아닌데 왜 그리 복잡하고 각박하게 사는지? 내경(內經)에서 말하는 "염담허무(恬憺虛無)"가 생각이 난다. 이번 추석에 조상들 산소에 들르시면 곰곰이 생각을 한 번 해 보십쇼. 삶과 죽음에 대해서 말입니다. 추석 잘 들 쇠시고요.(백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