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10
ㅡ 잊혀진 우리 고대국가 부여 1ㅡ
( '부여사' 속으로 들어가면서)
고조선은 2000년 가까이 지속된 우리민족 왕조역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조선 역사에 대해 너무 모릅니다. '단군왕검'은 황제나 왕처럼 직책을 말하는 호칭인데 사람이름으로 알 정도입니다. 하긴 '삼국유사'에 쓰여진 '단군신화'에서 단군왕검이 한 사람으로서 1908살을 살았던 것으로 나옵니다.
우리는 우리민족이 잃어버린 영토 만주벌판을 말할 때 고구려 기상만 생각하며 만주벌판을 말타고 자유롭게 달리던 우리 선조들을 상상합니다.
고구려가 탄생하기 전 2000년 전에 있었던 고조선이란 왕조는 생각 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고조선 못지않게 중요한 나라가 있었는데도 아예 그 존재조차도 잘 알지 못 합니다.
고조선보다 더 잊혀진 우리민족 고대국가입니다.
바로 <부여>입니다.
'부여'는 우리 학창시절 배웠던 역사 책에도 한사군, 동예, 옥제급 정도의 부족국가로나 나옵니다.
학창시절 역사시간에 배웠던 내 기억 속에 있는 '부여'는 국사 시험에도 자주 나왔던 '영고'라는 행사 이름 하나입니다.
'삼국지위서동이전' 부여조(魏書 東夷傳 夫餘條)의 기록을 보면, “은력(殷曆) 정월에 하늘에 제사하고 나라 사람들이 크게 모여서 연일 마시고 먹고 노래하고 춤추니, 이름 하여 '영고'(迎鼓)라 한다. 이때에는 형벌과 옥사를 판결하고 죄수들을 풀어준다"(以殷正月祭天 國中大會 連日飮食歌舞 名曰迎鼓 於是時 斷刑獄解囚徒) 고 하였다.
현재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부여'를 아예 중국사 한 축으로 취급합니다.
사실 우리가 아는 '부여'는 거의 중국사서에 기록된 것이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단편적으로 기록된 것 뿐입니다.
이런 식이면 부여를 중국사로 취급하는 중국 '동북공정'을 이겨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실 '부여'는 유방이 '한'나라를 건국할 때부터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나관중 삼국지연의' 삼국시대 이후까지 지속되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초한지' 속 유방, 항우나 '삼국지' 속 조조, 유비, 손권 등은 우리 절친 친구이름처럼 잘 기억하고 있으나 '부여'에 대해서 아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왕이름 한 명도 제대로 기억 못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에도 '부여'는 몇 단락 되지도 않습니다.
또한 초한지나 삼국지를 보면 어제 일 같이 철저한 전쟁사 기록이고 실제 역사기록입니다. 그런데 동시대였던 부여나 고구려, 신라 건국신화는 말 그대로 신화 즉 "알에서 사람이 나왔다"며 우리나라 정사인 '삼국사기'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중국 동북공정을 보는 세계인들은 중국과 우리나라 어떤 기록을 더 신뢰하겠습니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근대 역사학 단초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단재 신채호선생'(이하 신채호)이 우리 '부여사'를 주목하였다는 것입니다
신채호는 '독사신론'(1908년 신채호가 민족주의 사관에 입각해 서술한 최초의 한국 고대사 역사서)에서 기존의 <기자-마한-신라>로 이어지는 정통론을 부정하고,
<대단군조선-부여-고구려, 백제>로 이어지는 '부여주족론'(扶餘主族論)을 제기하였습니다.
신채호는 민족사 가운데 가장 주동력을 지닌 종족이 ‘주족(主族)’으로 간주하며, 부여족을 주족으로, 주변의 지나족 · 말갈족 · 흉노족 · 오환족 · 일본족 등은 객족(客族)으로 보았습니다.
신채호는 확신에 차 강하게 주장 했습니다.
" 우리민족 4천년 민족사는 '부여족' 성쇠소장(盛衰消長)의 역사이다."
부여의 터전은 지금
중국 쑹화강유역이 중심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동부여가 나오고, 그 동부여에서 고구려 지배층이 된 주몽집단(계루부 왕실)이 나왔습니다.
주몽집단은 압록강일대에 진출하여 '졸본부여', 즉 '고구려'를 세웠습니다.
압록강 유역에서 이미 살았던 주민들 일부(비류·온조집단)가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
한강유역에서 '백제'를 세웠습니다.
고구려와 백제 모두 부여에서 분리하여 발전한 집단이 발달한 나라입니다.
가야가 있던 경상남도 지역에서도 청동 솥을 비롯해 북방유목민족이나 부여계통 유물들이 나옵니다. 이는 부여사람들 움직임이 한반도 남동부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입니다.
게다가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 시조 대조영도 발해는 “부여, 옥저, 변한, 조선의 땅과 바다 북쪽 여러나라 땅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하여 부여를 자신들 오래 된 조상나라로 보았습니다.
중국 송나라 때 역사책 ‘무경총요’에서도 발해가 “부여에서 떨어져 나온 집단으로 본래 예맥의 땅이었다.”고 하여 발해가 고구려와 백제처럼 부여에서 갈라져 발전 하였다고 봅니다.
이처럼 신채호 말은 역사적으로도 증명됩니다.
그리고 윗 글에서 보듯 중국사서에 '예맥족'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옵니다.
우리민족은 오천년 단군왕검으로 부터 내려온 '한민족'이라 부르는 '단일민족'이라는 믿음이 강합니다.
역사적으로 냉정하게 보았을 때 우리민족은 단일민족이 아닙니다.
'예맥족'이 그 근거이기도 합니다.
아마 '예맥족'에 대해 들어는 봤을지 모르지만 무슨 의미인지 거의 모를 것입니다. 저 또한 이번 글을 정리하고 정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예맥(濊貊)은 한반도 북부와 만주에 살던 고대집단으로, 오늘날 대다수 학자들이 한민족 조상들로 간주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예맥족에 관한 다양한 견해들도 제시되고는 있습니다.
예(濊)와 맥(貊)을 갈라 보는 견해에서는 '예족'은 요동과 요서에 걸쳐 있었고, '맥족'은 그 서쪽에 분포하다가 고조선 말기에 서로 합쳤다고 봅니다.
예맥을 단일종족으로 보는 견해로 예맥은 고조선의 한 구성부분이었던 종족으로 고조선 중심세력이었다고 봅니다.
대한민국 학계에서는 예맥이 예와 맥으로 구분되지만 서로 다른 계통이 아닌 하나의 계통이며, 다만 세부적으로 갈라진 갈래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입니다.
즉, 예와 맥은 사회정치적으로 구분되지만 종족상으로는 거의 같았다고 여깁니다. 단군신화에 전하는 설화처럼 하늘과 태양을 숭배하는 천신족(天神族)이 곰을 토템으로 하는 맥족(貊族)과 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는 예족(濊族)을 평정하고 복속시켜 고조선을 구성하는 종족집단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이후 대표적 예맥족인 부여에 그 세력이 계승되어 한반도 중남부에 거주했던 토착민과 더불어 '한민족' 형성의 근간을 이루었다는 견해가 다수입니다
이처럼 '부여'는 '고조선' 다음으로 우리민족 뿌리가 되는 고대국가 였습니다. 우리민족에게는 '고구려' 못지 않게 중요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부여에 대해 아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꽤 오래 전 티브드라마 '주몽'을 통해서 '부여'를 조금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티브드라마 일 뿐입니다.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혹은 중국사서들에 나오는 단편적 기술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발휘해서 고구려 시조 고주몽에 대해 쓴 소설 중 일부 내용일 뿐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하나 명심해야 할 점은 고조선이 멸망하고 그 자리에 부여가 탄생한 것이 아니고 또 부여가 멸망하고 그 자리에 고구려가 건국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위만조선'시대와 '북부여' 그리고 아주 초기 '고구려'가 동시대에 존속하면서 흥망성쇄를 거듭합니다.
어쨌든 <500년 이상을 지속한 잊혀진 고대국가 부여>에 대한 기록이나 유물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렇지만 이번 기회에 부여에 대해 인터넷에 나온 자료를 통해서나마 최대한 자세히 정리해 나갈 방침입니다.
기대해주십시오.^^
이어서 2편이 계속됩니다.
ㅡ 초롱박철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