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가. 예수 그리스도는 새 언약(속사람)의 나라의 표준이 되기 위하여 오신 분이다.
나. 그 생명의 그 빛이신 하나님은 조건 지어져 변질되는 세상 물질과는 관계가 없다.
다. 보석(그리스도)을 캐내는 것이 십일조를 드리고 받게 되는 아들이다.
2. 본론
가. 예수 그리스도는 새 언약(속사람)의 나라의 표준이 되기 위하여 오신 분이다.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호쉐크)을 밤(라엘라)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에레브)이 되며 아침(보케르)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라키아으)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빠달)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창 1:5~7)”
모두 히다(비사)와 마샬(비유)과의 관계로 되어있는 내용이다. 1인칭 현재 단수가 기본이며, 시상에 있어서 과거 시상과 미래 시상이 없고, 현재 상만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자의 내면에 한 욤(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이 임하면서 드러나는 내용이다. 그 생명의 그 빛(근본)으로 겉 사람의 속성과 속사람의 속성을 정확하게 분별해(빠달)내는 생명이다.
생명의 말씀(진리, 그리스도)이 기준이다. 자신이 행한 일은 반드시 자신이 받는다. 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율법의 마음 밭을 개간하다)를 통해서 자세히 드러나고 있다.
예수께서 새 언약(새 포도주)의 나라를 회복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지, 구약의 율법(묵은 포도주)에 근거한 종교 행위를 하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다. 구약은 말씀의 씨가 뿌려지기 위해 그 마음 밭(길, 돌, 가시덤불)을 옥토 밭으로 개간하기 위함이고, 그 마음 밭을 깨끗이 비워내기 위함이다. 그래서 구약은 창세기 1장을 제외한 나머지는 과거 상과 미래상만 지니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십일조는 내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이 발현되는 것이다. ‘아가페(사랑)’인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 되는 것이 진정한 아들로서 십일조와 헌물의 핵심이다. 돈이 아니다.
나. 생명의 빛이신 하나님은 조건 지어져 변질되는 세상 물질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빛이신 하나님께서 변질되는 이 세상(코스모스, 마음 세상)에 무슨 관심을 갖겠는가! 예수께서 ‘세상(코스모스, 마음 세상)에 머리 둘 곳이 없다.’ 했으며, 또 ‘내가 세상(코스모스)을 이겼노라.’ 하셨는데, 세상(코스모스)의 물질을 쌓아서 어디에 쓰시겠는가!
십일조와 헌물은 내 안(마음 밭)에 맘모나(수많은 과정)에 의해 숨겨져 있는 보석, 그리스도를 캐내서 드러내는 것은 진정한 아들이다. 그러므로 십일조와 헌물은 마음 밭에 숨겨진 보석을 캐내어 자신 안에 임하신 하나님(나)와 한 몸, 한 생명을 이루는 것이다.
이 보석은 그리스도 예수다. 내면에 오시는 그리스도 예수는 대상이 아니라 내 안에서 참 나(예수 차원), 예수 차원의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내면에 그리스도 예수의 보석이 묻혀 있어서 이 보석을 발견하면 즉시 마음 밭을 해체하여 그 보석으로 하나 되어야 한다.
다. 보석(그리스도)을 캐내는 것이 십일조를 드리고 받게 되는 아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석을 캐내는 것이 십일조를 드리고 받는 아들의 회복이다. 내가 왕인 제사장으로서 드리고 내가 예수 차원의 하나님(관사 없음)의 이치에서 받는 것이다. 십일조와 헌물은 내가 왕인 제사장이 되어 드리고 내가 하늘의 왕으로서 받는 것이다. 단독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모르고 술에 취해 종교적으로 행하게 되면 십일조와 헌물을 도적질하는 것이 된다. 참 나를 잃어버린 행위다.
술에 취해 자신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그림자인 물질만 드리는 것이 도적질이고 살인이며 간음행위다.
그 생명의 그 빛(근본)!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