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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기>
가을문화탐방 행사를 다녀와서
박종갑 (국어국문학과)
올해 구월 스무사흗 날 오전 일곱 시, 마흔 명 가까이 되는 영남대학교 명예교수회 회원들과 사모님들이 어린이세상(옛 어린이회관) 회관 앞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출발하면서, 영남대학교 명예교수회 2025년 가을문화탐방 행사가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봉화군과 안동호 주변 지역의 자연과 문화유산을 탐방한다는 매력적인 목표가 설정되었다. 봉화정자문화생활관, 국립백두대간생태수목원, 안동의 국학진흥원, 안동호의 선성 수상길 등을 탐방한다고 한다.
관광버스를 타고 여행을 시작하면서 느끼는 설레임과 기대감은 언제나 그 자체로 즐겁다. 특히 은퇴한 후의 노년에 접어든 사람들이 느끼는 그러한 즐거움은 몇 배 더 진하다. 나는 이런 여행을 하면, ‘오늘의 이 진한 즐거움’이, 두 발로 걸어 다닐 수 있을 날이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는 진실의 지각과 함께 한다는 생각에, 애잔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번 행사 때는 출발부터 좀 조용하고 차분하여 그런 생각이 더했다. 그것은 문과대 소속의 명예교수인 K 교수님의 결석 때문이다. 이전 행사까지는 출발부터 줄기차게 관광버스 안의 분위기를 출렁거리게 했다. 노래도 하고 설명도 하고 농담도 하고 수수께끼도 내고 하여 마음이 가라앉을 여유가 없었다. 중간에 버스에서 내려 쉬는 시간이 생기면 춤까지 가르치고 추었다. 아! 그런데 이번에는 그 분이 부재하니 앙꼬 없는 찐빵이 되는 듯했다.
그런데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했던가. 운영위원회 위원장과 간사인 박인수 교수님과 오창혁 교수님이 안 웃기는 척하면서 웃기는 고차원적인 개그 테크닉으로, 그리고 몸과 마음을 다하는 철저한 서비스로 우리를 단체 여행의 즐거움과 동질감 속으로 빠지게 해 주었다. 특히 오 교수님이 믹스커피를 탄 종이컵 여러 개를 종이박스 뚜껑에 담아 들고 버스 통로를 지나가면서 “커피 드실 분!!!”이라고 할 때는 뭔가 그런 직업과 좀 어울려 보인다는(ㅋㅋ 이렇게 말해도 되나?) 생각이 들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듯이, 두 분 교수님, 그리고 틈틈이 찍고 다듬어 올리는 강용호 미디어 위원장님의 살신성인적 봉사 덕분에 즐거움과 행복함을 넘치도록 누렸을 뿐만 아니라, 저장하여 두고두고 되새김까지 즐기고 있으니, 참 즐겁고 행복한 여행을 했음이 확실하다. 우리는 참 인복이 많은 사람들이다.
[1] 봉화정자문화생활관
경북 봉화군 봉성면 부랭이 길 88에 위치한 봉화정자문화생활관은 예상 외의 대단한 규모와 섬세함으로 우릴 놀라게 했다. 지금까지 인구가 줄어 군 단위의 소멸이 걱정된다는 소식만 들어 온 경북 북부 지역의 한 군에 이렇게 엄청난 문화 유적 작품과 공간이 조성되어 있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어 감을 절감하였다.
봉화정자문화생활관에서는 우리나라 전국에 흩어져 있는 유명한 누정(樓亭, 누각과 정자) 중 아래와 같은 다섯 개를 골라 복제하여 만들어 세운 누정 5경이 가장 돋보였다.
①광풍각(전남 담양 소재), ②세연정(전남 완도 보길도 소재), ③부용정(서울 창덕궁 소재), ④거연정(경남 함양 소재), ⑤한벽루(충북 제천 소재).
복제 목재는 내구성이 뛰어난 금강송을 사용했고, 실제 건축기법과 동일한 방식으로 만들었다고 하니, 그 치밀함과 섬세함이 놀라웠다.
이 외 많은 시설들이 있었다. 각종 전시실과 체험장 등은 선조들의 학문, 풍류, 자연과의 조화, 전통생활양식 등을 관람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솔향촌이라는 이름의 숙박시설도 있으니, 전국의 국민들이 선조들의 누정 문화가 살아 숨쉬는 이곳에서 자연과 누정의 멋을 즐길 수 있다.
봉화군은 누각과 정자를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많은 103개 동이나 보유하고 있어, 우리나라 누정문화의 중심지가 되어 왔다. 정부와 지자체는 전통 누정 문화를 보전하고 그 가치를 알리기 위해 2012년부터 총 390억 원의 예산을 들여 이 거대한 문화 프로젝트를 추진하였다고 하니, 그 안목과 추진력이 참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2] 국립 백두대간 생태수목원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 일대에 있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간직한 국립 백두대간 생태수목원은 보전 가치가 높은 식물자원과 전시원, 백두산 호랑이, 세계 최조의 야생 식물종자 영구저장시설인 시드볼트를 보유하고 있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수목원이다.
이곳은 워낙 광활한 면적이라 일종의 노면전차인 트램을 타고 이동하면서 관람하였다. 우리 일행은 두 칸짜리 트램에 나누어 타고, 칸마다 있는 여성 해설사들로부터 알찬 정보를 듣고 구수한 입담을 즐겼다. 오르막길에서는 트램을 탔고, 내리막길에서는 코끝을 스치는 산들바람을 맞으며 주변의 야생화나 식물들의 화려함과 평온함을 우리의 눈과 마음 속으로 들이며 자연의 포근함에 취하였다. 자작나무 군락지를 지나가는데, 유명한 백석(1912-1996)주1) 시인의 ‘백화(白樺)’라는 시가 나무판에 새겨져 걸려 있었다. 해설사가 누구 낭송해 볼 사람 없냐고 물으니, 국문과 교수라고 모두 나를 지목하여, 최대한 겡남(경남) 억양은 빼고 전문 낭송인 흉내를 내면서 낭송을 하여 박수를 받았다.
[2.1]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볼트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볼트는 2015년 환경부가 설립하고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 운영을 시작한 세계 유일의 지하 터널형 야생식물종자 영구저장시설이다. 기후변화, 자연재해, 핵무기 전쟁 등으로부터 주요 식물의 멸종을 막고, 유전자원을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해발 600미터의 백두대간 지역에 있는 지하 46미터 길이의 터널형 구조로서, 진도 6.9의 지진을 견디는 내진설계로 시공되었다고 한다. 내부는 영하 20도, 상태습도 40% 이하로 유지되고 있으며, 최대 200만 점의 종자를 보관할 수 있는데, 2021년 현재 약 4,751종, 95,395 점의 종자를 보관 중이라고 한다. 지구상에 시드볼트가 두 곳이 있는데, 노르웨이 스발바르 시드볼트는 주로 농작물 종자 보전을 위한 곳이고,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볼트 야생식물 종자를 보전하는 곳이다.
이곳은 일반인이 직접 들어가 볼 수는 없다. 관광객들을 위한 모형 공간이 있어, 개략적인 얼개를 짐작할 수 있게 해 두었다. 대부분의 교수들은 좀 피곤하여 그냥 쉬려고 하는데, 의과대 하 모 교수를 비롯한 몇 명의 교수들이 관람을 하려고 했다. 나는 겁이 났다. 교수들이니 우수한 종자라고 안에 가둬 영구보존하려고 하면 집에 계신 사모님들이 어떻게 되냐며 극구 말렸으나 기어이 가길래 나머지 교수들이 모두 걱정을 했다. 그런데 다들 구경을 잘하고 순순히 보내줘서 나왔는지 탈출하였는지 무사히 버스로 돌아왔고, 우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2.2] 백두산 호랑이 숲
국립 백두대간 생태수목원에는 야생 호랑이 여섯 마리를 반개방형으로 방사하는, 축구장 대여섯 개 정도 면적의 호랑이 숲이 있다. 달성공원 호랑이는 흙수저이고 이곳 호랑이는 다이아몬드수저였다. 넓은 산기슭 숲에 높은 철제 울타리를 치고 방사하는 식이었다. 먹이는 닭고기나 쇠고기 등을 준다고 하였다. 살아 있는 닭이나 멧돼지 등을 울타리 속으로 넣어주고 호랑이들이 사냥하여 먹도록 하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야생에서 상위 포식자가 먹이 사냥에 성공하는 확률은 대개 20% 정도여서, 운좋은 80%는 살고 그렇지 않은 20%는 잡혀 먹히는 것이 자연적 질서인데, 폐쇄된 영역에서는 100% 잡혀 먹힐 것이므로, 자연적 질서에 반하는 것이어서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해설사의 말을 재미있게 들었다.
우리 집안주2)에는 호랑이와 관계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 나는 백두산 호랑이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조사를 해 본 적이 있다.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안에서 호환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의 고조할머니(1849-1908)는 호랑이가 내려와 우리 집 개를 물고 가는데, 끝까지 따라가 다시 뺏어 왔다고 한다. 나의 어머니가 우리에게 수십 번도 더 이야기 한, 우리 집안의 전설 같은 이야기다. 나의 고조모는 진양 강씨(晉陽 姜氏)인데(천하장사출신이요 연예인인 강호동씨가 경남 진양군 사람임), 기골이 남자처럼 장대하여 무척 힘이 세었다고 한다. 하루는 농사일을 끝내고 식구들끼리 저녁을 먹고 있는데, 호랑이가 산에서 내려와 마당에 묶여 있던 개를 물고 간다. 식구들 모두 벌벌 떨면서 식은땀만 흘리는데, 우리의 용맹무쌍한 고조할머니, 맨발로 내려가 호랑이를 쫓으면서 천둥 같은 고함을 치신다: “네 이놈, 그 나 또라(그곳에 놓아 둬라)!” 발로 땅을 치고 몽둥이를 휘두르며 뒤쫓아 가면서 물려 가는 개 꼬리를 잡아당긴다. 그렇잖아도 덩치 큰 개를 물고 가니 힘든데, 강호동이 같은 할머니가 뒤에서 당기니, 호랑이는 또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개 한 마리 가지고 너무 한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지친 호랑이, “에이 더럽고 치사해 그냥 두고 간다.”라는 식으로, 개를 놓고 그냥 산으로 올라가더란다
우리 형제들은 이런 얘기를 듣고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아무리 힘이 세다고 해도 여자 혼자서 호랑이와 대적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고조모의 그러한 활약상을 며느리인 증조모가 직접 눈으로 확인했고, 그 증조모와 우리 어머니는 십 수 년을 한 집에서 살았는데, 증조모가 자신의 시어머니 얘기를 자신의 손자며느리한테 입에 침이 마르도록 들려준 것이니,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면 당시의 우리나라에 호랑이와 표범 같은 최상위 포식자들이 어느 정도 살고 있었을까? 지금부터 백여 년 전만 하더라도 상당한 수의 큰짐승들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제시대인 1915년부터 1944년까지 30년 동안, 조선총독부가 경찰과 헌병대를 동원하여 호랑이나 표범 같은 짐승들을 잡아 죽이는 이른바 ‘해수구제작전(害獸驅除作戰)’을 감행하였고, 특히 1910년대엔 ‘정호군(征虎軍)’이라 하여 수십 명의 일본인 전문 포수들이 집단으로 돌아다니며 호랑이와 범을 사냥하였다. 이 기간 동안 포획된 호랑이가 80마리이고 표범이 624마리라고 하니(매일신문 인터넷, 2000년 9월 19일자), 그보다 훨씬 전인 나의 고조모 시대엔 얼마나 많은 호랑이와 표범이 우리의 산야를 누비고 다녔을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일본열도에는 원래 이러한 짐승들이 없었고, 표범의 가죽은 무늬나 색깔이 매우 아름다워 일본 여자들에게 대단한 인기였다고 한다. 우리의 백두대간을 포효하며 휘젓고 다니던 큰짐승들이 이 시기에 거의 절멸된 것으로 보인다. 사진이 남아 있는 마지막 호랑이는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포획된 것이고, 1962년과 1963년 가야산과 지리산에서 한 마리씩 포획되어 당시의 창경원으로 보내진 표범이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마지막 큰짐승인데, 기록만 있을 뿐 사진이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1944년 늦가을 경북 영양군 일월산에서 당시 청송경찰서 안덕 주재소(지서/파출소)에서 근무하던 김차한(金次漢) 씨가 포수들과 함께 잡은 표범은 사진이 남아있다(김차한 씨의 부인인 김순현 씨가 수 십 년 동안 보관하고 있다가 2000년에 공개함, 표범을 잡아 주재소 마당에 갖다 놓고 기념 촬영을 한 것인데, 당시엔 겁이 나서 근방에도 못 갔고, 잡히지 않은 나머지 한 마리가 밤마다 마을 앞산에 와서 울부짖는 통에 동네 사람들이 겁이나 집 밖을 나가지 못 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 표범은 몸무게가 60-70kg정도 되고 몸길이는 꼬리 길이 1m를 포함하여 2.5-2.6m정도라고 한다. 누르스름한 바탕색에 검은색 고리무늬가 촘촘한 러시아산 아무르표범과는 달리, 백호라고 느껴질 정도로, 흰색 바탕에 굵직한 검은 점무늬가 붓으로 툭툭 찍은 듯 듬성듬성 박혀 있고, 날씬한 허리와 듬직한 다리를 가진, 10년생 정도의 수표범이었다.
나는 이런 기록을 보고, 고조할머니가 대적했던 큰짐승은 호랑이가 아니고 표범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호랑이라 하기도 하고 범이라 하기도 하는 등, 호랑이와 표범을 분명히 구분하지 않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집에 내려왔던 큰짐승이 호랑이였다면 개를 물고 재빨리 튀었을 것이고, 우리 고조할머니한테 뺏기지 않았을 것이다. 표범이, 초보 표범이 배가 고파 민가로 내려와, 겨우 개 한 마리 물고, 힘이 달려 질질 끌고 가는데, 겁 없는 할머니가 고함을 치면서 뒤에서 당기니, 눈물을 머금고 그냥 두고 간 것이다.주3)
백두산 호랑이!!! 그 이름만 들어도 힘과 기개가 느껴진다. 그리 오래 되지 않은 한때 이들의 선조들은 한반도의 백두대간을 휘젓고 다녔다. 그러나 이제 한반도에서는 절멸되고, ‘고양이-삵-시라소니-표범-호랑이’로 이어지는 고양이과 짐승들 중, 지금 남아 있는 것은 고양이와 삵뿐인 초라한 종의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국립 백두대간 생태수목원의 호랑이들은 상당히 넓은 자연환경에서 살고 있어 달성공원 호랑이하고는 게임도 되지 않지만, 폐쇄된 공간에 갇혀 있음은 동일하다. 호랑이 팔자 참 기구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이 욱일승천의 기세로 살아가길 빌었다.주4) 앞으로 이들의 후손들이 백두대간을 휘젓고 다니며 포효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날이 올까?주5)
[3] 한국국학진흥원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퇴계로에 위치한 한국국학진흥원은 훼손과 멸실 위기에 놓인 민간 소장 국학자료의 수집과 보존 및 연구보급 확산을 통해 전통기록유산의 전승에 기여하는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주로 편액, 고서, 고문서, 목판, 현판, 서화 기타 등등 많은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는 시간 관계상 주로 유교목판과 편액들을 중심으로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관람하였다. 마침 영남대학교 국사과 출신의 연구원이 여러 가지의 편의를 도모해 주어, 편하고 효율적으로 관람을 할 수 있었다.
[4] 안동 예끼마을 선성 수상길
안동시 도산면 선성길 14 일대에 있는 예끼마을은 도포를 입은 선비처럼 멋스럽고 느긋함이 느껴지는 마을이었다. 알록달록한 벽화로 꾸민 골목길, 지역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 등을 만드는 등 마을 곳곳에 예술적인 손길을 더해, 예술적인 끼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예끼마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예끼 마을에서 관광적으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선성 수상길이라는 산책로이다. 안동호 호수 위에, 푸른 하늘과 더없이 잘 어울리는 멋진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여행하면서 얻는 짭짤한 즐거움의 하나는 맛있는 음식이다. 아침 대용으로 차 안에서 먹은 찰밥은 입 안에 들어가자마자 살살 녹았다. 얼마나 맛있었던지 씹을 사이도 없이 목구멍에 진공청소기가 있는 듯 그대로 빨려 들어갔다. 점심은 <봉화 한약우 프라자 식당>에서, 저녁은 예끼마을 민속식당에서 먹었다. 집행부에서 사전답사를 하면서 심혈을 기울여 찾아낸 식당들이었는데, 두 군데 모두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를 만큼 맛있었다. 다시 찾아오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으니, 경북 최고의 맛집이었다.
벌써 내년의 봄문화탐방 행사가 기다려진다. 문화탐방행사는 우리 명예교수회의 여러 사업 중 가장 인기 있는 행사이다. 명예교수들 중에는 명예교수회의 활동이 얼마나 유익하고 재미있는지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분이 많다. 무척 아쉽고 안타깝다. 특히 문화탐방행사는 한 번만 참여해보면 바로 중독증세가 나타난다. 그래서 늘 참여하는 분이 주로 참여한다. 이 분들은 중독자들이다. 끊기가 무척 힘들 것이다. 내년에는 새로운 참여자들이 많아져 관광버스가 두 대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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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평안북도 정주 출생. 해방 이후 북한에서 문학 활동을 하였음.
2) 우리 집안의 조상들이 누대로 산 지역(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은 우리나라에서 손꼽힐만한 두메산골이다. 독일인 외신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씨가, 1980년 광주사태가 한창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김사복씨라는 택시기사의 도움으로 광주에 잠입 취재하여 광주사태의 참상을 세계에 알리게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 ‘택시 운전사’(2017년 개봉)에서, 힌츠페터씨가 김사복씨의 택시를 타고 지도에도 없는 험한 산골짜기 샛길을 통해 광주로 몰래 들어가고 나오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을 촬영 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강원도 정선군 출신의 영화감독(장훈)이 어떻게 경남 산골의 이 첩첩산중 샛길을 찾아냈는지 참 신기하다.
3) 나는 요즘 기회만 있으면, 우리 집안의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댄다. 온갖 살을 붙여 흥미진진하게 꾸민다. 하도 많이 들으니 아이들이 이젠 싫증을 낸다.
4) 11월 6일에 이들 식구들 중 하나인 ‘한청’이 20세의 나이로 죽었다고 한다. 수목원은 7일부터 호랑이 숲 안에 추모공간을 마련해 관람객들이 메시지를 남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는 소식을 인터넷에서 접했다. 그 뒤 대전 오월드에서 지내던 백두산 호랑이 ‘미령’을 이곳으로 이주시켰다.
5) 우리나라는 산이 많으나 땅덩어리가 워낙 좁아, 문명과 구분되는 야생세계가 존재하기 어렵다. 지리산이나 설악산 등의 깊은 산골짜기도 수많은 등반객들로 붐비며,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이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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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ㅎㅎ 원고를 받으면서, 호랑이를 제대로 잡아 사진에 담으셨네 싶었는데..... 역시 이런 사연이 있어서 그 호랑이가 '모델 포즈'를 취해드린 건가보다 싶습니다. 교수님, 옥고 감사드립니다!! 제가 쪽집게 원고 청탁을 한 것인지, 아니면 국문학을 하신 분이라서 전공실력으로 문화탐방을 살리신것인지요? 전자라면 저도 이제 가마니 펴고 앉아서 '돈 벌 때'가 되었지 싶습니다. 교수님 글 흥미진진하게 잘 읽었습니다. 모든 교수님들의 태도를 그려보면서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