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과 엔트로피는 상호보완적이다. 구조론은 상부구조를 해명하고 엔트로피는 하부구조를 해명한다. 구조론은 연역이고 엔트로피는 귀납이다. 머리에서 꼬리를 바라보면 구조론이고 꼬리만 붙잡고 있으면 엔트로피다. 구조론은 사건의 전모를 보고 엔트로피는 결과 측 일부를 본다. 전체와 부분의 관계다. 구조론이 사건 전체를 다루고 엔트로피는 결과측 일부만 다룬다.
엔트로피는 자연계 전체에 적용되는 보편원리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지만 왜 보편적인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사건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사건은 보편되고 사물은 특수하다. 엔트로피는 사건에 적용된다. 자연계가 사건의 연결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우주는 사물의 집합이 아니다. 사건은 공간에 결박되나 사물은 시간에 올라탄다. 시공간의 사건이 공간의 사물보다 크다.
구조론 - 사건 : 시공간의 변화, 사건의 전모를 본다.
엔트로피 - 사물 : 공간의 변화, 사건의 일부를 본다.
주변을 둘러보자. 뭐든 시간이 지나면 망가지기 마련이다. 사람은 점차 늙어가고 환경은 점차 훼손된다. 친구와는 점차 멀어지고 부부는 반이 헤어진다. 이들에 공통되는 것은 시간이다. 엔트로피 증가는 시간의 성질이다. 사물은 공간에 붙잡혀 있고 시간은 사건을 타고 흘러간다. 우주 안의 모든 사건은 엔트로피 법칙을 따른다. 사물이 아닌 사건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구조론은 사건의 규칙을 해명한다. 뭐든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야할 때는 반드시 엔트로피 증가를 고려해야 한다. 요리를 해도 잔반이 남아 무질서해진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물건을 구입할 때는 분리수거의 무질서를 신경써야 한다. 특히 정치판에서는 역풍의 무질서를 고려해야 한다. 상대방의 맞대응에 대비해야 한다. 상대의 카드를 아는 내시균형이 해법을 제공한다.
자동차를 구매할 때는 중고차 가격을 고려해야 한다. 무채색 차를 사야 10원이라도 더 받는다. 컬러가 튀는 예쁜 차를 사면 친구들에게 곤란한 질문을 당할 수 있다. '차는 예쁜데 왜 흠집이 있니? 사고 났니?' 중고차를 샀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싶지 않다. 튀지 않는 무채색 차를 사면 그런 곤란한 질문을 피한다. 미래의 무질서를 예상하고 선제대응하는 것이 내시균형이다.
사건은 엔진이 있다는 점이 각별하다. 입자가 있다. 사건의 원인 측이 결과 측보다 차원이 높다는 사실을 과학자들은 모른다. 엔트로피는 사건의 결과 측만 논하므로 미궁에 빠져서 뇌 속에서 교통정리가 안 된다. 엔트로피는 에너지의 방향성에 대한 이론인데 애초에 방향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게 과학의 함정이다. 동서남북은 방향이 아니고 전체와 부분의 관계가 방향이다.
전체는 크고 부분은 작다. 에너지는 큰 곳으로 들어가서 작은 곳으로 나간다. 에너지는 작은 곳에서 큰 곳으로 역주행하지 못한다. 작은 그릇에 큰 그릇을 담을 수 없다. 빠른 차는 느린 차를 추월할 수 있으나 느린 차는 빠른 차를 추월할 수 없다. 코끼리가 주는 것을 개미가 받을 수는 있으나 개미에게 코끼리 밥을 주라고 하면 30년이나 걸리는데 그새 코끼리는 굶어죽었다.
사람도 엔트로피에 맞게 만들어져 있다. 말단부로 갈수록 손가락 발가락 숫자가 많아 복잡하다. 먹는 구멍은 하나인데 나오는 구멍은 땀샘까지 포함해서 여럿이다. 언제나 입력이 출력보다 단순하다. 자동차 입력부는 주유구 하나인데 출력부는 바퀴가 여럿이다. 말단부가 많을수록 비효율이다. 사람은 두 다리로 걷고 지네는 백 다리로 걷는다면 누가 효율적으로 이동하는가?
구조론은 사건의 원인 측을 해명한다. 원인 측 만으로는 증명되지 않는게 약점이다. 상대성이론과 비슷하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지 않았다. 원인론의 구조론과 결과론의 엔트로피를 합치면 완벽하다. 구조론은 엔트로피에 의해 이미 증명되어 있다. 공간은 방향이고 시간은 순서다. 엔트로피는 공간의 방향성만 알고 시간의 순서를 모르는 것이 한계다.
구조론 - 방향 다음에 순서가 있다. 무엇을 먼저 할지 순서가 중요하다.
엔트로피 - 공간의 방향을 논할 뿐 시간의 순서를 논하지 않아 답답하다.
우리는 상하, 좌우, 전후의 방향을 알지만 정작 중심과 주변의 방향을 모른다. 안과 밖의 방향을 모른다. 시간의 순서가 있다. 먼저 안과 밖을 정해야 중심과 주변이 등장한다. 닫힌계의 안과 밖을 정하지 않으면 애초에 중심이고 주변이고 간에 불성립이다. 과학자들이 엔트로피가 입자라는 것을 모르는 이유다. 일반인 생각으로는 엔트로피가 쉽게 미궁에 빠져버리는 이유다.
질 - 닫힌계는 밖을 배제하여 안을 정한다.
입자 - 중심과 주변은 중심이 주변에 앞선다.
힘 - 오른쪽과 왼쪽은 이기는 쪽이 오른쪽이다.
운동 - 앞과 뒤는 앞이 시간적으로 먼저다.
량 - 이곳과 저곳은 순서가 없다.
상하, 좌우, 전후는 개체의 운동에 해당되는 3차원 방향인데 에너지는 유체다. 개인이 3차원이라면 집단은 4차원이다. 유체가 닫힌계에 가둬져서 압력이 발생하고 축과 대칭의 구조를 갖추면 4차원이다. 인류는 4차원 방향을 모른다. 사건의 시작점을 모른다. 닫힌계를 걸어잠그고 내부에 압력을 가해야 에너지가 정렬하는 것을 모르므로 엔트로피의 랜덤이 이해되지 않는다.
엔트로피는 에너지의 방향성에 대한 이론인데 방향을 정하지 않으니 혼미하다. 좌표가 없으면 지도를 줘도 길을 찾아가지 못한다. 방향은 그냥 있는게 아니고 정해야 한다. 움직여야 앞이 생긴다. 망부석은 앞뒤가 없다. 닫힌계가 질의 안과 밖인데 입자 개념이 없다. 에너지는 입자의 공유되는 중심에서 사유되는 주변으로 가는 사실을 모르고 무질서도라는 애매한 표현을 쓴다.
도대체 뭐가 무질서하다는 말인지 매번 설명해야 한다. 중심에서 주변으로 간다고 말하면 초딩도 이해한다. 이기는 힘에 대한 개념이 없다. 에너지가 효율적인 코스를 잡는 것을 모른다. 적은 공간을 차지하는 쪽이 이긴다. 그냥 두 사람보다 공유하는 두 사람이 이긴다. 태그 매치를 해도 두 사람이 무언가를 공유해야 이긴다. 엔트로피는 이런 세부적인 사항을 모르고 뭉갠다.
엔트로피 증가는 각운동량 보존의 시간성 때문이다. 김연아가 몸을 작게 만들면 각속도가 증가하여 회전속도가 빨라지는게 무질서도 증가다. 속도는 시간이 걸리므로 세상은 무질서해진다. 뭐든 무질서해지는 것은 시간 때문이다. 뱁새와 황새를 섞어놓으면 무질서해진다. 보폭이 다르기 때문이다. 행군을 하면 뒤로 처지는 병사가 있다. 시간 때문에 낙오병이 항상 생긴다.
각운동량 보존은 입자의 공유가 깨져서 힘이 증가하고, 힘의 각운동량이 깨져서, 운동의 각속도가 증가하며 궁극적으로 분자의 진동이 증가하는게 열로 나타난다. 엔트로피가 열역학으로 전개되는 이유다. 힘이 가다가 길이 막히면 각운동량 보존에 의해 각속도가 빨라지고, 큰 것 하나에서 작은 것 여러 개로 바뀐다. 크기가 작아진 만큼 숫자가 늘어나서 무질서해진 것이다.
사물의 공간 대칭 - 50 대 50으로 균형을 맞춘다.
사건의 시간 비대칭 - 각운동량 보존에 따라 진동수가 증가한다. 전체로는 대칭이지만 공간 기준으로는 비대칭이다.
각운동량 보존은 공간의 변화가 시간의 속도에 숨는다. 겉보기 변화가 은폐된다. 공간과 시간의 대칭이다. 사물의 공간대칭은 좌우가 같지만 사건의 시간대칭은 대가리와 꼬리가 같지 않다. 대가리 1에 꼬리 2다. 사물의 공간 좌우대칭은 50 대 50으로 균형을 맞추지만 사건의 시간 대칭은 머리가 한번 움직일 때 꼬리가 두번 움직여 균형을 맞추며 그러므로 시간이 걸린다.
각운동량 보존과 엔트로피 증가는 같다. 각운동량 보존을 이해한 사람이 엔트로피 증가를 이해 못했다면 각운동량 보존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각운동량이 공간 -> 시간 전환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건의 방향은 선공간 후시간이다. 공간은 파동의 크기 곧 골과 마루의 간격을 정하고 시간은 파동의 주파수를 정한다. 공간이 자동차 기어 단수라면 시간은 RPM이다.
먼저 기어를 변환한 후에 페달을 밟아 자동차의 속도를 올리는게 운전의 정석이다. 기어비가 맞지 않은 상태에서 엑셀레이터 페달을 밟으면 엔진이 꺼진다. 공간은 당장 시간으로 바꿀 수 있지만 시간은 당장 공간으로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을 공간으로 바꾸려면 많은 시간이 걸린다. 정약용의 거중기로 무거운 돌을 들 수 있지만 거기에 시간이 걸리므로 일이 안 된다.
공간 시간 변환 - 지렛대의 원리, 순간적으로 성립한다. 단번에 해결한다.
시간 공간 변환 - 도르래와 유압장치는 시간이 걸리므로 당장은 안 된다.
지렛대는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강력한 토크로 단번에 물체를 들어버리는 것은 공간>시간이고 한참 뜸을 들인 후에 겨우 되는 것은 시간>공간이다. 그러므로 문제 해결은 선공간 후시간이며 먼저 공간의 방향을 잘 정해서 첫 단추를 꿴 다음 시간을 들여서 하나씩 해결해야 한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이 있는 이유다. 정확히는 선방향 후속도가 문제해결의 정답이다.
구조론은 이를 질, 입자, 힘, 운동, 량으로 설명한다. 열은 양이다. 엔트로피는 다섯 구조를 하나로 뭉뚱그려서 말하므로 애를 먹는다. 질은 과일을 보관하고, 입자는 과일을 도마에 올리고, 힘은 과일을 쪼개고, 운동은 과일을 먹고, 량은 배설한다. 엔트로피는 열의 성질이 아니라 사건의 성질이며 일의 성질이다. 열은 사건이 다녀간 흔적이다. 열이 아니라 사건에 방향이 있다.
핵심은 파동의 골과 마루 그리고 주파수다. 방정식은 공간대칭을 추적하고 함수는 시간대칭을 추적한다. 왼쪽을 보고 오른쪽을 아는 것은 같음을 아는 것이다. 머리를 보고 꼬리를 아는 것은 다름을 아는 것이다. 사람이 대칭의 같음은 아닌데 비대칭의 다름은 모른다. 모든 일은 같음에서 출발하여 다름에서 끝난다. 같아서 결혼하고 달라서 이혼하니 선이혼 후결혼은 없다.
에너지 총량은 같은데 꼬리는 머리보다 두 배 더 움직여야 균형을 맞춘다. 대칭은 대칭인데 알고보면 비대칭이다. 머리가 더 효율적이다. 꼬리가 더 많이 손상된다. 같은 일을 해도 꼬리담당은 감가상각이 많이 일어난다. 왕이 한번 움직이면 신하는 두 번 움직여야 한다. 신하는 여럿이므로 왕과 대칭이지만 신하 한 명으로 보면 비대칭이다. 열배 빠르게 움직이면 균형이 맞다.
사건은 언제나 말단부가 많이 움직인다. 우리는 장차 일이 복잡해진다는 사실을 안다. 뭐든 반드시 나빠진다. 좋아지는 것은 외부과 연결되는 혁신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결정할 수 없다. 내부혁신은 없다. 내부는 무조건 나빠진다. 민주당은 외부의 미친 윤석열을 두들겨 좋아졌지만 윤석열이 없어지자 곧 문조털래유 내전을 일으켜 나빠졌다. 이는 예정된 엔트로피 증가다.
나는 원래 이렇게 될줄 알고 있었다. 유시민도 이렇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르는 척 연극할 뿐 사실 다들 알고 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은 엔트로피를 모른다는 사실을 들켰다. 미래를 예측하는게 엔트로피의 힘이다. 간단하다. 미래는 나빠진다. 좋아지는 것은 외부에서 온다. 증시가 좋아졌다면 반도체 주문은 외국에서 온 것이다. 내부에서는 무조건 나빠진다.
엔트로피는 간단히 공간>시간 변환으로 정리할 수 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은 공간의 사물인데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공간+시간의 사건이므로 겉보기로는 무질서하게 보인다. 세상은 공간>시간이지 시간>공간이 아니다. 태산이 깨져서 모래가 되는 일은 있어도 티끌이 모여서 태산이 되는 일은 없다. 퇴적암은 외부에서 중력이 눌러줘서 된 것이지 자발적 변화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