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는 단위다. 단위는 변화의 단위, 사건의 단위, 의사결정의 단위다. 태초에 의사결정이 있었다. 사건이 사물을 낳는다. 낳음의 질서가 있다. 그런데 모른다. 인류가 사물은 아는데 사건을 모른다. 낳음을 모른다. 영어에 사건을 가리키는 단어가 없다. event가 있지만 이는 행사를 뜻한다.
공간의 사물과 대비되는 시간의 사건 개념이 없다. 사건은 불이 번져가듯 자생력이 있다. 영화가 흥행하듯 바이럴 타고 날아간다. 사건은 낳음에 의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음 단계로 이어진다. 기승전결로 뻗어가며 점점 커진다. 이를 나타내는 생각이 서구정신에 없다. 철학이 죽은 이유다.
1. 사물은 전체와 부분이 있다.
2. 사건은 원인과 결과가 있다.
3. 수학은 집합과 원소가 있다.
사물의 단위는 전체와 부분이 있다. 사건의 단위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수학의 단위는 집합과 원소가 있다. 사실 이 셋은 같은 것이다. 사물은 사건의 결과 측에 주목한 것이다. 사물은 사건의 일부다. 사물은 사건의 하부구조다. 수학의 집합이 사건이라면 원소는 사물이다. 철학의 첫 단추다.
사물은 전체와 부분이 있다. 부분단위가 원자라면 전체단위는? 전체를 가리키는 단위 개념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없다. 인류는 여기서 막혔다.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 생명은 세포가 부분단위라면 몸뚱이는 전체단위다. 집은 벽돌이 부분단위라면 건물은 전체단위다. 원자에 대칭되는 것은?
에너지나 질량은 인간의 측정방법일 뿐 존재의 단위가 아니다. 존재 자체의 내재적 질서를 반영하지 않는다. 의사결정 메커니즘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 원자 단위는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 원자론은 당연히 단위가 있어야 한다는 논리적 당위일 뿐 인간이 발견한 자연의 질서가 아니다.
우리가 소립자나 기본 입자를 부분단위로 치지만 그것은 가정에 불과하다. 얼버무리는 말이다. 양자역학의 성과는 물질의 입자 단위를 부정한다. 입자는 파동의 간섭이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초끈이론이 필요한 이유다. 입자가 매듭이면 그 전에 매듭을 낳는 끈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1. 생물의 부분단위는 세포다. 집의 부분단위는 벽돌이다. 벽돌은 원자다.
2. 생물의 전체 단위는 개체다. 집의 전체단위는 건물이다. 건물은 모른다.
세상이 멸망하고 모든 지식을 잃어버린 인류에게 딱 한 문장만 전할 수 있다면 무엇을 전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리처드 파인만의 대답은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원자는 단위다. 단위가 중요한데 인류는 단위를 모른다. 원자의 자궁을 말해준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언어는 단어가 단위다. 단어 반대편에 문장이 있다. 문장이 단어의 자궁이다. 단어가 부분단위라면 문장은 전체단위다. 문장이 집합이면 단어는 원소다. 원자가 단어라면 문장에 해당하는 것은? 원소가 있는데 집합이 없다. 원자의 자궁이 없으면 원자의 존재는 부정된다. 그래서 구조론이다.
부분단위가 있는데 전체단위가 없다는 말은 경사에 내리막은 있는데 오르막은 없다는 말과 같다. 작은 원자가 있으면 큰 무엇도 당연히 있어야 한다. 작은 것이 사물이라면 큰 것은 사건이다. 사건이 원자의 자궁이다. 사건이 사물을 낳고, 파동이 입자를 낳고, 실이 매듭을 낳는게 구조론이다.
존재의 부분단위는 양자역학에 의해 깨졌고 전체단위는 인류 중에 생각해 본 사람이 없다. 사물단위에 막혀 있으니 사건단위, 수학단위로 나아가지 못한다. 인류 중에는 이 문제를 진지하게 사유한 사람이 없다. 플라톤 이후 인류는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했다. 잘못된 첫 단추에 막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