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편 첫 이야기는 "뉴욕의 패션 피플, 트레이닝복을 입다" 인데요,
멋보다 편안함을, 옷보다 몸매를 추구하는 뉴욕 여성들의 패션에 관한 이야깁니다.
미국에선 과거 70년을 승승장구하던 청바지 매출이 줄고, 트레이닝복의 매출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피트니스센터에서 거리로 나온 액티브웨어, 우리나라에서도 레깅스를 외출복으로 입고 다니는 젊은 여성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패션’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옷을 떠올린다. 그러나 패션의 어원은 라틴어 ‘팍티오(fáctĭo)’로, 만드는 일 혹은 활동, 유행을 의미한다. 독특한 패션은 짧은 시간 안에도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온다. 그리고 패션 중에서도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관심을 받는 것은 스타일(style)이 되어, 한 시대를 풍미하기도 한다. 의류뿐 아니라 화장품, 건축, 인테리어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 잡은 다양한 패션들도 존재한다. 단순한 유행을 넘어 그 사회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대변하기도 하는 패션, 지금 지구촌 곳곳의 현장에서 스타일이 된 패션을 만나보자.
뉴욕 거리의 트레이닝복 패션. <자료원: www.pinterest.com>
뉴욕 맨해튼을 걷다 보면 타이트한 요가 팬츠에 밝은 색상의 운동화를 매치한 차림새의 여성들을 흔히 만날 수 있다. 출퇴근길의 지하철은 물론이요, 번화가에 위치한 유기농 슈퍼마켓, 카페와 식당에서 트레이닝복 차림의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녀를 등하교시키는 학부모들도 약속이나 한 듯 대부분 트레이닝복 차림새다. 자칫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럭셔리한 퍼 베스트에 요가 팬츠를 입거나, 정장바지나 하늘거리는 스커트 아래 운동화를 신은 뉴욕의 여성들은 패셔너블하기까지 하다.
이처럼 뉴요커들의 일상으로 녹아든 트레이닝복은 편리하고 효과적으로 운동하기 위한 목적을 넘어서 당당히 패션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룰루레몬의 레깅스 로고.<자료원: www.lululemon.com>
뉴욕에서 트레이닝복의 인기는 캐나다 요가복 브랜드 룰루레몬(lululemon)의 레깅스가 유행하기 시작한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벌에 10만 원이 넘는 고가에도 불구하고 피트니스 센터 또는 요가 스튜디오를 찾는 대부분의 여성이 유니폼처럼 룰루레몬의 레깅스를 착용했고, 머지않아 이를 일상복으로도 입게 됐다. 룰루레몬의 인기 원인은 트레이닝복 특유의 편안함, 몸매를 돋보이게 하는 체형 보정 효과뿐만 아니라 요가로 자기관리를 하는 여성임을 과시할 수 있는 상징성에 있다. 그리스 문자 오메가(Ω)를 닮은 룰루레몬의 로고가 여성 소비자들에게 건강하고 패셔너블한 여성의 심벌처럼 인식된 것이다.
이 같은 소비자들의 취향 변화를 인지한 많은 패션 기업이 액티브웨어 라인을 신규 출시하며 룰루레몬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갭(Gap)의 경우, 2011년 액티브웨어 브랜드 애슬레타(Athleta) 첫 매장을 개점한 이후 2013년 65개로 매장 수를 확대했고 2014년 말까지 100개 매장 보유를 목표로 확장을 지속하고 있다. 이 외에도 포에버21(Forever21), H&M, 유니클로(Uniqlo) 등 SPA 브랜드들부터 토리버치(Tory Burch) 같은 디자이너 브랜드에 이르기까지 최근 3년간 패션업계의 액티브웨어 라인 출시가 활발히 이루어져왔다.
By Mtaylor848 @Wikimedia Commons (CC BY-SA)
글로벌 패션업계가 액티브웨어 라인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는 레깅스를 필두로 액티브웨어 시장의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예상하기 때문이다. 청바지처럼 액티브웨어도 일상의 더 넓은 영역에 적용되는 추세다. 스커트 혹은 재킷과 함께 레깅스를 입고 직장에 출근하거나 저녁식사 자리에 나가는 것이 더 이상 어색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세련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제 레깅스는 직장, 사교, 레저 등 모든 상황에서 활용 가능한 모던한 패션 아이템으로 인정받고 있다. 과거 청바지가 장소와 계절을 막론하고 모든 상황에서 입을 수 있는 의상으로 마케팅하는 데 성공했듯, 액티브웨어도 이와 유사한 길을 가고 있다. 액티브웨어가 패션 비즈니스에서 제2의 청바지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청바지의 아성을 무너뜨리다
트랙스미스 달리기 반바지(좌) 베타브랜드 요가 바지(우). <자료원: www.freshnessmag.com>
1940년대 이후 미국인의 패션을 책임져온 청바지는 시대의 유행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을 선보이며 의류 산업의 가장 중요한 아이템 중 하나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영광도 액티브웨어의 인기 앞에서는 맥을 못 추고 있다. 미국의 시장조사 전문기업 NPD 그룹에 따르면 2013년 미국의 연간 청바지 매출은 전년 대비 6% 감소했는데, 이는 청바지 시장에서는 보기 드문 큰 폭의 매출 하락이다. 대형 의류 기업 VFVF Corp의 청바지 브랜드 리(Lee)의 경우 2013년 매출이 15% 감소했고, 미국의 대표적인 청바지 기업 리바이스(Levi’s)는 수익성이 악화돼 2014년 800명을 감원했다. 이렇듯 미국 청바지업계는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방송사 NBC는 미국의 청바지 시장의 위축 현상을 보도하면서 편안함을 강조하는 애슬레저(Athleisure)패션의 유행으로 청바지가 본래의 위상을 잃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소비자들은 200달러에 달하는 프리미엄 진을 구입하는 대신 실내복 또는 외출복으로 모두 활용할 수 있고 세탁이 쉬운 90달러짜리 요가 레깅스를 일상복으로 선택하고 있다. 이러한 트렌드를 반영하듯 최근 미국 액티브웨어 매출은 큰 상승세를 보이며 위축된 청바지 시장과는 상반된 모습을 띠고 있다. NPD 그룹에 따르면 2013년 남성용, 여성용, 어린이용을 포함한 전체 미국 액티브웨어 매출은 전년 대비 13% 증가했으며, 2014년 6월 기준 시장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7% 성장한 336억 달러를 기록했다. 2013년 액티브웨어를 제외한 미국의 전체 의류 매출이 전년 대비 2% 성장하는 데 그친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세다.
의류 매출 성장률 추이(단위: %) <자료원: NPD 그룹>
애슬레저 패션이 유행함에 따라 스포츠업계의 전략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아웃도어 의류 박람회에서는 ‘어번웨어(Urban wear)’용 공간이 따로 마련됐으며, 골프웨어의 매출 하락세로 고전해온 스포츠용품 전문 판매업체 ‘딕스 스포팅 굿스(Dick’s Sporting Goods)’는 여성용과 아동용 스포츠 의류 비중을 늘렸다. 액티브웨어 브랜드 ‘트랙스미스(Tracksmith)’는 캐주얼 반바지와 유사한 모양의 달리기 반바지를, ‘베타브랜드(Betabrand)’는 면바지 스타일의 요가 바지를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서핑 및 스노보드복 제조업체 퀵실버(Quiksilver)는 익스트림 스포츠에 주력하던 전략을 버리고 기능적이면서도 패셔너블한 옷을 생산하겠다고 발표했다.
명품업계도 액티브웨어 열풍에 동참
샤넬 패션쇼에서 선보인 액티브웨어. <자료원: www.thefashionspot.com>
애슬레저 패션의 유행은 명품 시장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2014년 샤넬(Chanel)의 가을 패션쇼에 핑크색 짧은 상의와 레깅스 차림에 밝은색 운동화를 신고 우아한 트위드 코트를 걸쳐 입은 모델이 런웨이에 등장해 패션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3.1 필립림(3.1 Phillip Lim)은 트레이닝복 상의를, 알렉산더 왕(Alexander Wang)은 후드티를 선보였고, 크리스찬디올(Christian Dior)은 운동화에서 영감을 얻은 고무 밑창의 하이힐을 내놓았다. 토리버치는 2015년 액티브웨어 라인을 신규 출시할 예정이다.
액티브웨어가 일상복으로 활용되면서 디자인이 중요해지자 스포츠 브랜드와 유명 디자이너의 콜라보레이션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나이키(NIKE)가 지방시(GIVENCHY)의 디자이너 리카도 티시(Riccardo Tisci)와 협업해 내놓은 한정판 에어포스원(Air Force1) 운동화는 순식간에 완판을 기록했고, 아디다스(adidas)는 마리 카트란주(Mary Katrantzou), 리타 오라(Rita Ora), 패럴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 등 많은 영국 디자이너와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온라인 럭셔리 의류 소매업체 ‘네타포르테(Net-A-Porte)’도 2014년 7월 스포츠 의류 및 액세서리 전용 카테고리인 ‘네타스포터(Net-A-Sporter)’를 공개하며 명품업계에서 이는 애슬레저 패션 트렌드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네타스포터는 요가, 테니스, 스피닝, 달리기 등 열한 가지 운동별 제품 카테고리를 만들고 일상복으로 입을 수 있는 애슬레저 제품 카테고리Apres도 별도로 두었다. 판매되는 제품은 나이키 운동화부터 1,570달러짜리 릭오웬(Rick Owens) 캐시미어 트레이닝 바지까지 다양하다. 네타포르테의 제품 확장에 대응하기 위해 라이벌인 ‘육스(Yoox)’도 액티브웨어 섹션을 신설하고 물량을 대폭 확장해 2014년 9월에 출시할 계획임을 밝혔다. 고가 액티브웨어의 온라인 판매는 앞으로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패션계의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는 애슬레저 트렌드는 2015년에도 그 영향력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투자은행 바클레이즈(Barclays)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액티브웨어 시장은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2020년에는 지금보다 50% 정도 성장한 1,000억 달러 규모 이상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 같은 현상은 비단 패션 트렌드의 변화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기 위해 펍의 해피아워(Happy Hours)를 찾던 뉴요커들은 이제 친구들과 함께 트렌디하고 패셔너블한 사람들이 모인다는 소울사이클(Soul Cycle)에서 스피닝(Spinning) 수업을 듣는다. 여성들은 자녀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곧바로 요가 수업을 들은 뒤 마켓에 가거나 친구를 만난다. 이러한 삶의 방식 변화는 운동과 사교활동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었고 운동복을 고르는 것이 곧 사회활동에 필요한 옷을 고르는 일이 되도록 했다. 뉴욕의 패션 피플들은 건강한 것이 항상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