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당(溪堂) 유주목(柳疇睦)의 서문
居士有鏡在躬하니 其體本淸明하나 塵垢侵蝕漸昏하나니 如日月之翳雲이라 常患不炤物하고 又無所取淸하야 日以淸水濯之‧淨紙拭之하면 鏡體之明이 復其本然하야 炤物取淸依舊하니 是未塵時鏡也라. 於是에 知塵蝕其外요 未喪其明也로다.
거사가 몸에 거울을 지니고 있는데, 그 몸체가 본래 맑고 밝지만 먼지와 때가 침식하면 점점 흐릿해지나니, 마치 해와 달에 구름이 가리우는 것과 같다. 언제나 사물을 밝게 비추지 못하고 또한 맑음을 얻어낼 방법도 없어서 근심하며, 날마다 맑은 물로 씻어내고 깨끗한 종이로 닦아내면 거울 몸체의 밝음이 그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여 예전대로 사물을 비추고 맑음을 얻어내니, 이것은 먼지가 끼이기 전의 거울이라, 이때에 먼지가 침식한 것은 그 외형이요 그 밝음을 상하게 하지는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歎曰; 人之於心이 亦猶此鏡이라, 苟使吾人有能於氣稟所拘‧人欲所蔽之中으로 知吾德之本明하고 而將前哲嘉言善行으로 隨處警心以明之하야 不使不善之心으로 萌作於胸裏면 雖不能以大有充拓以盡明其明德其心이라도 則故是一段明善人이리니 況大充拓者는 光明爲如何哉아?
탄식하여 말한다. 사람에게 있어서 마음도 또한 이 거울과 같다. 진실로 능히 기질에 의해 구애받고 인욕으로 가려진 가운데에 있는 우리 같은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의 덕이 본래 밝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하고 전현들의 아름다운 말과 선한 행동으로써 모든 곳에서 마음을 경계하여 그것을 밝힘으로써 불선(不善)한 마음으로 하여금 가슴 속에 움트지 못하도록 한다면, 비록 능히 대유충탁(大有充拓)으로써 그 마음의 밝은 덕을 다 밝히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잠깐 이것이 일단의 선을 밝힌 사람인 것이니, 하물며 크게 충탁(充拓)한 사람이야 그 광명이 어떠하겠는가?
上年에 余見人案冊有明心寶鑑者하고 窃意其篇目類가 非閒雜書閱過所輯錄이라 無非古聖賢勸懲人至論而分類成書者也라. 愛好而借歸하야 俾善寫者傳謄하야 爲家莊[藏]計러니 恨未識編輯人名氏라. 比達南秋君世文이 奉是書來請弁커늘 始知爲露堂文憲公手輯也라 不覺上之手而心開眼明이로다.
젊은 시절에 내가 어떤 사람의 책상 위에서 명심보감이라는 책이 있는 것은 보고, 가만히 생각하기를 그 편목이나 분류가 한가로이 잡서를 열람하고 지나가며 모아놓은 기록이 아니라고 여겼다. 옛 성현의 사람을 권징(勸懲)하는 지론이 아닌 것이 없고, 잘 분류하여 책을 완성한 것이었다. 좋아서 빌려와서는 글씨 잘 쓰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대로 베끼도록 해서 집안에 수장할 계획을 세웠는데, 편집한 사람의 성명을 모르는 게 한이었다. 근자에 달성 남쪽에 사는 추세문 군이 이 책을 받들고 와서 서문을 청하거늘, 비로소 노당 문헌공이 손수 편집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가며 마음이 열리고 눈이 밝아졌다.
噫라! 露翁이 挺麗俗之陋하야 建文廟之宗者, 其有以也라. 當此之時하야 不有躬行心得之妙면 其孰能排時君所尊之竺敎하고 脫通國所尙之武事하며 而一洗詞華之謬하고 倡明心性之學하야 以立百代之言乎아? 由此焉하야 圃爺起而我朝五百年名賢眞儒가 後先輩出性理之說하야 大明中天者, 其不之權輿於此乎아?
아! 노당옹께서 고려시대 풍속의 비루한 가운데서 몸을 일으켜 문묘를 일으킨 종장(宗匠)이 된 것이 그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이때를 당하여서 실천궁행하여 마음으로 터득한 묘리를 지니지 않았다면 그 누가 능히 당시 임금이 존중하는 불교를 배척하고 온 나라가 숭상하는 무사(武事)를 벗어나서, 문사(文詞)의 화려한 오류를 일소하고 심성의 학문을 창명하여 그로써 백대의 정언(正言)을 세웠겠는가? 이로부터 말미암아 포은선생이 일어나서 우리 조선 오백년 명현 진유가 성리의 학설을 선후로 배출하여 하늘 아래 크게 빛낸 것이 그 여기에서 기준이 된 것이 아니겠는가?
鏡空心虛하야 不治則昏이요 治之則明이라 苟能志於斯면 大學明明德之原說이 在矣요 今古儒賢之發明이 備矣라 是書也, 亦足爲輿衛於集註若衍義矣로다. 世文乎! 其鑑于是書而明乎己心夫아? 然則露翁之心이 其庶幾復明於百世하고 而露翁之後, 亦將自此而昌大矣리니 余斯拱而竢之矣리라.
거울은 텅빈 것이고 마음은 본체가 없는 것이라서 다스리지 않으면 어두워지고 다스리면 밝아진다. 진실로 여기에 뜻을 두게 된다면 대학의 명명덕의 원래 학설이 여기에 있고 고금 유현들의 밝혀놓은 것이 갖추어져 있으니, 이 책이 또한 족히 연의처럼 집주에 있어 울타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세문아! 이 책을 거울 삼아 너의 마음을 밝혔느냐? 그렇다면 노당옹의 마음이 백대 후에도 거의 다시 밝아질 것이고 노당옹의 후손들도 또한 장차 이로부터 창대해지리니, 나는 이것을 두 손 마주잡고 기다리리라.
上之五年 戊辰 重陽前一日에 通訓大夫 前行公忠道都事 豐山 柳疇睦은 謹序하노라.
성상[고종]의 즉위 오년 무진(서기 1868)년 중양절 하루 전에 통훈대부 전 행 충청도 도사 풍산 유주목은 삼가 서문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