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전 체크리스트 5
지금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이사를 가려해도 챙겨야 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아이들 학교는 가까운 지, 놀이터가 있는 지, 주변이 시끄럽거나 교통이 불편하지는 않은 지…. 하물며 도시에서 농촌으로, 회사원에서 농부로, 이해(利害)중심에서 관계중심으로 삶의 뿌리를 송두리째 옮겨야 하는 귀농은 실행하기 전에 점검해야 할 것도, 조목조목 짚어봐야 할 것도 많다. 귀농을 꿈꾸는 이라면 스스로 한 번쯤은 묻고 넘어가야 할 항목을 다섯가지로 요약해 본다.
첫째로, 부부간 혹은 가족간에 온전히 합의하였는가?
귀농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나와 가족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찾아서’일 것이다. 시골에 가면 확실히 도시에서 살 때보다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 자연스레 가족간의 거리가 줄어든다. 하지만 전제되어야 할 것은 부부의 합의와 자녀의 동의여부다. 가족 모두가 마음을 모으면 더 할 나위가 없겠지만 가족중에 한 사람이라도 반대할 때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
남편과 아내, 어느 한 쪽의 의지로 귀농을 감행한 가정들중 어느 한 편이 우울증에 걸리거나 무기력이 이어지는 등 말 못할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예도 여러번 보았다. 아이들도 낮선 곳에서 적응하기 어려워하며 도시로 돌아가자고 조르는 경우도 많다. 나아가 시골살이의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억지로 내려온 배우자로부터 쌓인 불만의 목소리가 녹음기처럼 반복되는 것도 피할 수 없다. 이충남 씨가 부인에게 생각할 기간을 준 것처럼 진심으로 상대방을 배려하자.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가족의 자발적인 합의보다 더 중요한 명분은 없다.
가족중 누군가 심하게 반대할 때는 대개 새로운 생활에 대한 두려움이나 걱정 때문이다. ‘시골에 가면 친구들 만나기도 어렵고, 힘든 농사일에 문화생활은 꿈도 꾸기 어려울 거야. 얘들은 또 어떻게 키우지? 학원도 멀고...가면 안돼... 난 도시가 맞아!’ 아내나 남편이 이와 비슷한 속마음을 내보인다면 우선 그 마음 그대로를 인정하자. 대신 귀농강좌 수강이나 책, 도농교류 행사, 귀농 선배 방문 등을 통해 스스로 여러 상황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방법이라면 방법이다. 그러면 남을 것은 남고 걱정이나 두려움은 천천히 사라져 갈 것이다.
둘째로, 최소 2~3년간 버틸 생활비를 확보하였는가?
충청남도에 정착한 어느 귀농인의 수기처럼 실제 ‘귀농은 꿈이고 현실은 고난의 연속’에 가깝다. 극단의 사례지만 첫해 수입이 두 아이의 교육비에도 미치지 못해 탈농하는 경우도 있다. 첫해부터 수지를 맞추는 드문 예도 있기는 하지만 보통 삼년안에 적자를 면하면 정착에 성공한 것으로 본다. 따라서 짧게는 일년, 길게는 삼년치 생활비를 준비하는 것이 안전하다. 다행이 생활비는 도시에 비해 적게 들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농촌의 생활방식으로 전환해야 가능한 일이다. 크게 필요치 않으면 휴대폰도 줄이고 부식은 시장보다는 텃밭이나 들에서 해결한다. 당연히 외식도 자제하는 것이 좋다. 다만 너무 낙담하지 않아도 좋은 것은, 예정에 없는 또 다른 기회(동네 혼인잔치, 생신, 회갑이나 칠순 행사)가 생각보다 자주 집밖에서 식사할 일이 생긴다는 점이다.
농촌에 오면 바뀌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공과금 등 각종 납부금의 은행 결제일이다. 농사를 지을 경우 도시와는 달리 시골에서는 달마다 일정한 수입을 얻기가 어렵다. 자연히 매달 빠져나가는 고정 비용이 부담스럽다. 따라서 조정이 가능한 항목은 결제 시기를 월납보다는 봄 작기가 끝나는 6~7월이나 가을걷이 후에 농산물 판매대금이 들어오는 시기를 감안해서 정한다. 각종 보험료나 회비도 가능하면 월납보다는 분납(반기납 포함)이나 연납이 농가에게는 훨씬 유리하다.
❒참고!
우리 부부는 도시에서부터 이어져 온 상조회비 납부도 친구들의 양해하에 연말로 바꿨다. 귀농 후 처음 3년간은 조정없이 월별 납부금을 내느라 애를 먹은 기억이 생생하다.
셋째로, 지역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파악되었는가?
이사 횟수에 따라 귀농인들을 분류해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나타난다.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한 쪽은 두 번 이내의 이사로 완전히 정착한 경우, 나머지는 세 번 이상 이리 저리 옮겨 다닌 경우이다. 심지어 같은 땅에서 이태 이상 계속해서 농사를 짓지 못한 농가도 있다. 왜 그럴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후자는 이사하느라 막대한 에너지가 손실된다. 그렇지 않아도 바쁘고 힘든 게 시골살이다. 정말 큰 맘 먹지 않으면 삶의 자리를 옮기는 것이 쉽지 않다. 이삿짐의 부피도 도시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웬만큼 농사채가 있는 집이면 농사 용 살림이 집안 살림보다 더 많으니까 말이다.
내 집을 장만했다든지 모두가 수긍하다 이유로 삶터를 옮기는 건 축복받을 일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읍이나 면의 경계를 넘지 않는 한 리(里)단위의 이주는 알음알음 소문이 전해져 정착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지역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임대가 많은 귀농가의 특성상 한 두 번은 수긍을 하지만,(임대농으로 시작해서 집을 사거나 새 집을 지음) 잦은 이사는 지역 사람들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경계심을 부추긴다. 일단 부정적인 소문이 돌면 좀처럼 회복하기 어려운 곳이 시골이다. 그래서 첫단추를 잘 꿰는 것이 도시보다 시골이 더 중요하다.
넷째로, 농촌에 내려갈 특별한 이유를 찾아냈는가?
귀농 십 주년이 되는 해에 우리 지역에 내려왔다가 도시로 돌아간 이들과 남은 이들의 차이점을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소위 IMF형 귀농과 그렇지 않은 경우에 초점을 맞추고 재이농한 사람들을 떠올려보니 둘의 차이가 점점 또렷해졌다. 무엇이 두 그룹의 행보를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게 했을까? 농촌에 안착한 사람들의 공통점을 찾아보면 비결을 찾을 수 있다.
결론부터 밝히면 두 그룹의 갈림길은 농촌생활을 즐기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즉 IMF 관리 체제라는 어려운 시절에 잠시 부모형제가 있는 고향에 의탁했거나, 혹시라도 농촌에서 돈을 벌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을 갖고 온 이들은 몇 년 버티지 못하고 유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에 반해 귀농교육을 받거나 준비후에 내려온 이들은 초기에 비슷한 어려움을 겪지만 탈농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우리 지역에서는 십년이 넘도록 단 한 농가만 도시로 돌아갔을 뿐이다.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두드러지게 성공한 농가도 없고 반대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는 가정도 없다. 모두 고만고만한 편이다. 지금 농촌생활이 행복하냐고 물으면 90% 이상이 ‘그렇다’고 한다. 수년내로 도시로 갈 생각이 있는지 묻자 ‘전혀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경제적인 안정 여부를 떠나 농촌에 뿌리를 깊게 내린 이들에게는 무언가 떠날 수 없는 분명한 이유들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 이유가 농가마다 조금씩 다르면서도 본질적으로는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농사짓는 보람이든, 꽃을 가꾸는 기쁨이든 그이들은 도시에서는 맛보기 힘든 즐거움을 충분히 누리고 있다. 백가지도 넘어 이곳에 기록하기 어려운 이유같지 않은 이유들이 지금 그들이 농촌을 떠나지 않는 이유들이다.
끝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가?
모든 것이 낯선 농촌에서 어려움없이 정착할 수 있다면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농촌도 사람사는 곳이라 다툼과 갈등이 생기는 것은 도시와 마찬가지다. 개인을 중시하는 도시의 ‘자율과 독립’은 ‘협동과 통일’을 앞세우는 농촌의 가치와 수시로 부딪친다. 이따금씩 새벽에 문을 두드리는 분들도 계시고 바쁜 일이 있어도 동네 애경사에는 빠지기 어렵다. 때로는 양해도 없이 내 논의 물꼬를 막고 물길을 돌리는 논이웃도 허다하다.
자주 겪다보면 어느새 익숙해지지만 이런 일에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면 급기야 농촌이 싫어질 수도 있다. 나아가 생각지도 않은 일로 마을 주민과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심지어 귀농 동료와 뜻이 맞지 않아 심각한 어려움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가 있으면 해법도 있고 농촌의 해법은 도시와는 전혀 다르다. 당장 분하고 억울하더라도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인내로 풀어야 한다. 물리적 충돌은 절대 금기사항이다. 모든 것은 통과의례다. 한 번 지나가면 다시는 오지 않는다. 농촌생활의 어려움을 이겨낼 마음의 준비는 모든 관계의 싸움에서 지고 또 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