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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쾌하게 흐르는 능선과 푸른 하늘에 두둥실 구름, 국망봉은 최고였다. (12구간)
1. 일자: 2016. 8. 27 (토)
2. 봉우리: 백운산(903m), 국망봉(1167m)
3. 행로/시간
[광덕고개(08:45, 645m, 백운산 3.2km) -> 백운산(10:15) -> (삼각봉) -> (식사 10:40~11:00) -> 도마치봉(11:31, 925m) -> 도마봉(11:56~12:01, 883m) -> (도마치 고개) -> 헬기장(13:21) -> 신로령(13:57, 국망봉 2.5km) -> 신로봉/삼각봉(14:05, 1000m) -> 헬기장(15:11) -> 국망봉(15:29~40) -> (초반 험로) -> 무인 대피소(16:04) -> 임도(16:55) -> 국망봉 자연휴양림(17:15)]
4. 참석자: 바람님, 산거북님, 청한님, 옥혜님, 아카님
< 한북정맥 12구간 산행을 준비하여 >
3주만에10구간 준비에 들어간다. 들/날머리 결정이 쉽지 않다. 지난 구간을 구노채고개에서 탈출한데다, 당초 날머리로 생각했던 오뚜기고개까지는 군사용 도로만 있어 택시를 이용해도 긴 접속로를 걸어야 한다. 남진/북진, 구노채고개/노채고개/ 오뚜기고개/한나무골 등 정보를 검색할수록 경우의 수만 늘어난다. 일단 결정을 주 후반으로 연기한다.
지난 주까지만 해도 들머리는 당연히 노채고개라 여겼는데 금주 들어서도 폭염의 기세는 꺾일 줄 모른다. 뭔 놈의 더위가 참…. 아무래도 코스 자체를 바꿔야겠다. 광덕고개에서 국망봉까지가 적당할 듯하다. 해발 650미터 어름에서 출발해 완만한 능선을 타고 백운봉과 도마치봉, 신로봉을 지나 국망봉에서 포천 이동 방향으로 하산하면 무리가 없어 보인다. 거리는 접속 포함 15km 내외 6시간을 예상한다. 산행 전날 모처럼 비가 온 덕에 한시름 놓는다.
이번 구간의 하이라이트는 백대명산에 빛나는 백운산이다. 옛 산행기록을 살핀다. “변화 적은 길을 오르며 다리를 산에 적응시켜 나갈 즈음, 백운산까지 2.32km가 남았다는 사실과 이곳이 한북정맥 상의 길임을 알리는 이정표 보인다.‘한북정맥’이라, 멀리 북한땅 ‘식개산에서 분기되어 대성산, 복계산을 거쳐 광덕산을 거쳐 이곳 백운산으로 이어지고, 이후 국망봉, 청계산, 운악산, 도봉산을 지나 파주 장명산에서 끝나는 도도한 산줄기’다. 놀랍게도 당시에도 한북정맥을 의식하며 산행을 했다. 잠재의식 속에 남아 있던 정맥을 향한 그때의 꿈이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들었나 보다.
< 희망사항 >
지난 9구간은 폭염 속에서의 산행이 얼마나 무섭고 힘든가를 체득하게 해 주었다. 비단 일행 중 일부가 중간에 그리고 나머지도 약속된 코스를 완주하지 못하고 탈출한 결과론적 해석이 아니라, 폭염경보 상태에서의 험로 장거리 한낮 산행은 목숨까지 담보로 하는 위험한 행위였음이 일반적 해석이었음을 다녀와서 깨닫게 되었다. 그 결과로 일정을 조정하고 구간도 거리에 욕심을 내지 않게 되었다. 산에서는 무엇보다 안전과 현장에서의 상황 대처 능력이 중요하므로 이번 산행도 낯선 길을 걸으며 맞닥뜨리는 여러 상황을 서로 상의하며 현명하게 그리고 즐겁게 다녀왔으면 좋겠다.
엊그제 처서(處暑)가 지났다. 한여름이 지나 더위도 가시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는 처서, 이 절기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 풀이 더 자라지 않는다 한다. 이례적이라 할 수 밖에 없는 한 달여의 긴 폭염도 이제는 계절의 흐름 앞에서 고개를 죽여 주었으면 좋겠다.
일엽지추(一葉之秋), 색이 바랜 잎 하나로 계절 번화를 읽는다는 사전적 의미 외에, 조금 이르지만 다가올 결실의 계절에 대한 희망이 느껴져 이 절기를 좋아한다. 다가오는 계절에는 내가 아는 많은 이들에게 좋은 일들이 더 많이 생기기를 기대해 본다.
< 광덕고개 가는 길 >
시외버스 승차표 구입을 위해 새벽에 길을 나선다. 해가 많이 짧아졌다. 3주 전 이 시간에는 날이 훤했는데 말이다. 과천 도서관 뒤로 은은한 노란 기운이 느껴진다. 아침 해가 솟고 있다. 인공으로는 재현해 내기 어려운 은은한 색감이 참 곱다. 오늘은 주황이 아닌 노란 색이라 더 이채롭다. 창문을 조금 열자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이 얼마 만에 느끼는 자연의 바람인가? 어제는 모처럼 열대야 없는 밤을 보냈다. 오늘 산행에도 시원한 바람이 함께 하기를 바래본다.
전철이 잠실에서 한강을 넘어가고 있다. 올림픽대교 넘어 오늘의 찬란한 태양이 빛나고 있다. 주위는 온통 보랏빛이다. 색다르고도 멋진 감동에 얼른 카메라를 꺼내 한 컷 담는다. 지저분한 전철 창 얼룩을 커버하고도 남는다. 재료가 워낙 좋으면 손맛은 조금 덜 해도 음식은 맛난 법이다.
동서울에서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하고 사창리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일찍 집을 나섰지만 오늘도 좌석은 떨어진다. 승객 중에 유독 젊은 여성들이 많다. 어인 일인지 모르겠다. (돌아오는 길 확인해 보니 토요일을 맞아 애인 면회 가는 여성들이라 한다. 젊은 날은 참 좋은 시절이다.)
< 강변역 가는 전철에서 본 일출 >
< 광덕고개에서 백운산 >
08:45, 강원도 땅을 알리는 커다란 곰 상징물이 서 있는 광덕고개에 선다. 멀미가 날 정도로 구비를 돌아 오른 고개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옥혜님의 합류로 여섯이 들머리에 선다. 꽉 찬 느낌이다. 카라멜 고개라고도 불리는 650 고지에서 시작하는 산행, 왠지 시작이 거저 먹는 기분이다. 날이 참 좋다. 근래 들어 가장 맑은 날이다. 바람도 살랑살랑 그야말로 산행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날씨다. 지난 더위 속 다녀온 산행의 힘겨움과 빗대어 복 받는 날씨에 대한 칭찬에 모두를 한 마디씩 거든다. 앞으로 다가올 풍요의 계절에 대한 기대가 커진다.
밝은 빛이 숲에 들어와 짙은 음영을 만들어 낸다. 초록 잎이 우거진 숲의 음영은 깊었다. 밝음과 어둠이 섞여서 푸른 그늘이 바람에 흔들렸고, 나무들 사이로 맑은 시야가 열렸다 닫혔다 한다. 빛과 그림자가 서로 스며서 그림자가 오히려 빛을 드러냈고, 어둑한 시야 안에서 먼 나무와 풀들의 모습이 가깝고 선명했다. 황토 빛 등로에도 음영이 내려앉는다. 계절의 변화가 명징하다. 가을이 오고 있다.
배낭을 멘 행렬을 쫓아간다. 발에 힘이 붙는다. 모처럼만에 온 청한님과 아카님과 함께 하는 산행이라 더욱 즐겁다. 광덕고개에서 백운산까지는 3.2km 거리, 초반 힘이 넘치고 바람도 불어 속도가 날 것으로 예상했으나 함께 가는 길이라 서로의 컨디션에 맞추느라 가다서다를 반복한다. 개의치 않는다. 서두를 일이 무예 있겠는가? 한 시간쯤 걷자 ‘윤나리 유원지’갈림이 나타난다. 꽃과 나비가 그려진 화사한 입간판이28의 윤나리고문님의 이미지와 닮았다. 작은 우연에 함께 웃어본다,
10:16, 우보 산행에 예상보다 조금 더 걸려 백운산에 도착했다. 산림청 100대 명산에 빛나는 곳인데, 오면서도 그렇고 정상에서도 별 풍경이 없다. 일행들도 조금은 실망스런 느낌이다. 때마침 부근에 있던 산객에게 사진을 부탁한다. 늠름한 한북 6동지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긴다.
< 백운산에서 >
< 백운산에서 도마봉 >
서늘한 숲 길이 계속 이어진다. 바람도 여전하고 풀이 촘촘한 길에도 변화가 없다. 풍경 없는 숲을 묵묵히 걸어간다. 청한님이 다녀온 울릉도 이야기에 내 지난 추억을 보탠다. 울릉도 경치 좋은 풍광이 머리에 그려진다. 문뜩, ‘북알프스는 무슨, 울릉도나 다녀오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작은 언덕들을 넘나들다 벤치가 있는 쉼터에 닿는다. 떡 몬 김에 제사라고 벤치를 만난 김에 식사를 하고 가자 한다. 이 속도면 날머리 도착이 2시 반 정도면 될 거라 여기고 (이 생각은 엄청난 착각이었다. 실제는 5시 30분에 날머리에 도착했다.) 식당을 차린다. 난 빈 손으로 왔는데 일행이 가져온 빵, 김밥, 과일들로 풍성한 아침 식탁이 완성된다. 여름내 손이 가지 않던 김밥의 짭조름한 맛이 입맛을 돋운다. 늘 그렇듯 말로만 고마움을 표하고 허겁지겁 음식을 탐한다. 문득 다리님의 오징어 초무침의 부재가 아쉽다. 막걸리 한 잔 더도 댕긴다.
음식이 주는 포만감과 쉰 덕에 묵직해진 다리를 느끼며 도마치봉을 향해 오른다. 오늘 등로는 비고가 크지 않아 전체적으로 걷기에 무리는 없다. 다만 작은 오르내림의 반복은 이곳에서도 만만치 않게 다가온다. 편하다고 느껴져도 결국은 정맥 길 값을 한다고 보면 맞다. 아카님이 선두에 서서 걷는다. 몇 달 만에 처음인 산행일 터인데도 잘도 걷는다. 역시 대간 종주꾼의 저력은 시간이 흘러도 자연스레 나타난다.
11:31 도마치봉에 선다. 이전 산행에서는 이곳에서 길을 틀어 홍룡계곡으로 하산했었다. 이름이 특이해 돌아와 찾아보니, 한자는 道馬다. 궁예가 왕건과의 명성산 전투에서 패해 도망칠 때 이곳 산길이 험난하여 말에서 내려 끌고 갔다 하여 '도마치'라 부른다는 전설이 있다. 커다란 정상석이 옆에 헬기장이 있어 사방이 트여 비로서 제대로 된 풍광을 본다. 푸른 억새 사이로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인상 깊다. 앞으로 펼쳐진 풍광 좋은 능선에 대한 기대가 커진다.
< 도마봉에서 >
11:56 도마봉에 도착했다. 도마치봉에서 멀지 않은 거리다. 도마치, 도마에 고개 하나 더 붙었지만 사실 같은 이름 아닌가. 하지만 도마봉에서의 풍광은 이제까지와는 격이 다르다. 사위가 확 트여 아아(峨峨)한 느낌이 든다. 멀리 화악산 정상과 군부대의 모습이 선명하고 북쪽으로는 산맥들이 굽이치고 있다. 맑은 날이 선물하는 풍경에 취해 한참 동안 주위를 둘러본다. 지나온 도마치봉의 암릉도 보인다. 청한님은 바닥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누워서 보면 뭔가 다른 게 보이나 보다. 아주 커다란 배낭을 멘 산꾼이 비박을 했는지/하려는지 주변을 돌아보고 있다. 30kg 이나 되는 커다란 배낭을 부럽고도 불쌍한 느낌으로 바라본다. 남들이 어찌 보던 좋아하는 짓을 하며 살아가는 삶은 행복한 것일지어다.
양떼 구름이 두둥실 바람에 실려 떠 다닌다. 올 여름 들어 본 최고로 맑은 날이다. 바람은 여전히 서늘하게 불어준다. 감사한 마음으로 오랫동안 하늘을 올려다 본다.
< 도마봉에서 국망봉 >
도마봉을 지나자 길 사정이 완전히 달라진다. 고도는 낮아지고 고원 같이 평탄한 길이 길게 이어지는데 등로 주변으로 억새와 잡풀, 싸리나무 등이 뒤엉켜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금방 끝나겠지 하며 걷지만 결국 이 난잡한 길은 국망봉까지 3시간 이상 계속되었다.) 처음엔 평탄해진 길에 한시름 놓았다고 여겼고, 억새가 나부끼는 길이 낭만적으로까지 느껴졌으나 이내 짜증으로 변한다. 험로에 선두가 아카님에서 옥헤님으로 바뀐다. 커다란 덩치로 가시덩굴을 스틱으로 쳐 가며 길을 만들어간다. 그 덕에 조금은 편하게 걷는다.
산을 정비하는지 벌목을 한 후 방치하고 나니 잡풀이 햇살을 독차지해 무성하기가 이를 데 없다. 대신 시야는 확 트여 화악산 군부대가 점점 가깝게 다가온다. 반대편에서 오는 산꾼 둘이 궁시렁거린다. 그 중 한 명은 반팔 차림이다. 아마도 거친 억새에 몸이 견디지 못하고 길을 돌려 내려오고 있는 것 같다. 그 만큼 잡풀과 까시의 공격이 심상치 않다. 내 개인적으로는 이달 초 지리산 형제봉 비탐구간에서 키를 넘는 산죽밭에서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어 그런지, 이것쯤이야 하는 심정으로 별스럽기 않게 간다. 길의 난이도도 상대적인가 보다.
< 국망봉 가는 풍경과 오형제들 >
한 시간도 훨씬 넘게 잡풀과 싸우다 널찍한 헬기장에 도착한다. 잠시라도 풀이 사라진 땅이 반갑다. 일행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독수리 오형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본다. 지친 기색에도 반갑게 웃는 얼굴이 고맙다. 산행 시작 4시간이 가까워진다. 예정대로라면 국망봉이 멀지 않아야 하는데 아직 신로령에도 못 미쳤다. 한낮이 지나면서 바람도 사라지고 햇살은 점점 강해진다. 올 것이 온 느낌이다. 여기저기서 ‘명동님에게 또 속았어.’라는 말이 들린다. 나도 내게 속은 느낌이다. 비고에만 신경을 썼지 상세 길 사정에 대한 조사가 부족했다.
바람이 부는 벙커 옆에서 남은 간식을 먹으며 쉬어 간다. 앞장 서 걷는 옥혜님은 까시가 박힌 팔에 온통 신경이 다 가 있다. 그 큰 덩치가 조그만 까시에 못 견뎌 하는 모습에 음이 나면서도 안쓰럽게 미안했다. 과일에 힘을 얻어 신로령에 힘겹게 도착한다(13:57). 근처 바위 봉우리가 신로봉인 듯 하나 등로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정표는 국망봉이 2.21km 남았다 한다. 내가 알기론 2.5km인데 계통이 여럿인 이정표가 산재해 있어 거리 추정에 방해가 된다. 이제 한 시간이면 국망봉에 도착할 수 있겠지 하는 막연히 희망을 안고 길을 나아간다. 나뭇가지 사이로 먼 풍경이 눈에 들어와 그나마 지친 걸음에 활력소가 되어 준다.
< 국망봉 가는 길에서 본 먼 풍경 >
포천 이동 일대의 평야가 내려다 보인다. 논과 비닐하우스 농가들이 공존하는 풍경이 근사하다. 지나온 도마봉 일대의 암봉이 제법 우람하다. 긴 오름을 치고 오른다. 삼각봉이라는 표식이 있다. 고도가 1000미터를 넘어선다. 바람님도 힘들어 하시고, 무릎이 좋지 않은 산거북님과 청한님의 상태도 힘겨워 보인다. 이 험한 길을 쉽다고 꼬드겨서 온 게 죄스럽다.
그늘진 숲, 길가에 종 모양의 보랏빛 꽃이 탐스럽게 피어 있다. 금강초롱이다. 지난 주 설악산에 이어 또다시 야생화의 지존과 마주한다. 때로는 군락을 이루어 피고 있어 지친 걸음에 활력을 준다. 그 옆에는 작은 둥근이질풀이 반듯하게 피어 있다. 오각형의 대칭이 멋지다. 산에선 힘들어도 죽으라는 법은 없다. 꽃과 나무와 이름 모름 풀들이 벗이 되어 주니 말이다. 만물은 서로 공존하는 법이다.
< 금강초롱과 둥근이질풀 >
15:11, 널찍한 헬기장에 도착했다. 주변에 나무와 풀이 없어 그런지 개방감이 좋다. 후미에 처진 산거북님과 아카님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잠시 쉬어간다. 내려다 보는 풍경이 환상적이다. 날이 맑아 도로와 다리, 건물들이 일일이 구분될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하다. 이런 날 사진이 어찌 나오는 줄 알기에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굴곡진 산 줄기의 ‘푸른 근육’을 한참 동안 바라본다. 그야말로 건강한 산야다.
< 국망봉에서 본 하늘 >
날머리 부근 저수지와 휴양림 건물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이제 국망봉이 멀지 않았다. 화악산이 저 만큼 멀어졌다. 이동면 일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드디어 오매불망 기대하던 국망봉에 도착했다(15:29). 신로령에서 1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변변히 쉬지도 않고 걸었는데 지친 발걸음이 시간을 많이 잡아 먹었다 보다.
오늘의 최고봉에 오른 소감은 푸른 하늘만큼이나 크다. 국망봉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지금까지의 풍경은 예고편이었음을 첫 눈에 알게 만들어준다. 모든 게 비교불가다. 특히 장쾌하게 흐르는 먼 산의 풍경과 두둥실 구름이 떠 가는 하늘은 압권이다. 흰 구름이 흩어져 온 하늘을 덮고 있는데도 날은 참 맑다. 캠퍼스 위에 흰 구름과 창공을 그려 놓은 멋진 풍경화가 연상된다. 살아 오면서 올려다 본 하늘 중 몇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인상적이다. 흰 색과 푸른 색 두 가지 만으로도 이리 멋진 작품을 만들어 놓다니 자연의 경이로움에 고개가 숙여진다. 구름 밑 하늘 가에는 산들이 하늘과 맞닿아 있다. 산 색이 하늘에 동화돼 있다. 희뿌옇게 산 봉우리가 구름을 따라 흘러가는 느낌이다. 오래 두고 기억 될 진경이다.
< 국망봉에서 바라본 산야 >
아카님이 정상석 옆에 누워 하늘을 본다. 힘겨운 모습과 함께 희망을 본다. 멀리 철원 평야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복 받은 날에 마음맞는 분들과 길을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하다. 바람님 아카님 산거북님 옥혜님 청한님 순서로 명품 산야를 배경 삼아 독사진을 찍었다. 하나 같이 얼굴에는 웃음이 묻어 있다.
개인적인 의견, 아니 모두의 의견일진데 오늘 산행의 으뜸지는 국망봉이다. 백대명산 백운산보다 더 나은 명품 산이다. 10여분 쉬며 풍경도 보고, 행장도 정비하고, 내려가 먹을 이동갈비 예약 논의도 하고는 긴 하산 길에 들어선다.
< 국망봉을 함께 한 288 >
< 국망봉에서 국망봉 자연휴양림 >
초반 10여분 내리막은 그야말로 내리꽂다 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가팔랐다. 가뜩이나 무릎이 안 좋은 분들이 걱정되었다. 길 사정을 살핀다는 명목 하에 속도를 내 내려가 본다. 북알프스 긴 산행을 앞두고 내 무릎 상태도 확인해 볼 겸 옥혜님과 함께 한껏 속도를 내 본다. 국망봉에서 0.9km 지점에 무인대피소가 있었다(16:04). 동절기 폭설시기를 대비한 대피소라 추정된다.
대피소에서 모여 잠시 쉰 후 다시 흩어져 내려온다. 계속 속도를 내 내려오니 이내 임도에 닿고 이후 정비된 길을 따라 하산했다. 도중에 계곡이 보여 씻고 갈까 하다 시간이 많이 늦어졌고 음식점 예약에 신경을 쏟다 보니 관성에 의해 그냥 걷게 되었고 어느덧 휴양림 입구에 도착해 버렸다.
뒤 이어 일행들도 무사히 하산을 마쳤다. 우리를 실어갈 차가 오고 있다. 비로서 여유가 좀 생긴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내 별명은 ‘구라 명동’이 될 것 같다. 이 힘겨운 길을 널널하게 6시간이면 된 다 했으니 말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했는데 오늘도 준비가 부족한가 보다. 뻥을 만회할 기회를 찾아야겠다.^^
< 에필로그 >
음식점에서 차를 불러 전국적으로 갈비가 유명하다는 이동갈비촌으로 이동해 뒤풀이를 했다. 달콤한 냄새를 풍기며 지글지글 익어가는 갈비를 앞엣 두고 막걸리 한사발 부딪히며 건배를 한다. 이 순간. 그 긴 산행의 피로감이 단숨에 씻혀진다. ‘송영선’이라는 할머니가 운영하는 이동갈비집에서 지난 번 일동에서 먹은 갈비와는 차원이 다른 맛을 경험했다. 험한 길을 함께 한 동지들과의 기분 좋은 대화가 이어진다. 노곤한 피곤함이 몰려온다. 행복하다.
아들에게서 전화가 온다. 유격훈련 마치고 완전군장하고 40km 거리를 10시간 넘게 걸어 복귀했고 지금 막 잠에서 깨어났다 한다. 헐, 이 더위에 40km를 걷다니 난 15km를 걷고도 (물론 산길이지만 말이다.) 이리 힘겨워하는데…. 대견하고 미안했다. 세상엔 고수들이 참 많다. 든든하다.
일요일 오후, 산행기를 쓰다 들어가 본 밴드에 ‘뻥, 나만 힘든거여’라고 청한님이 글을 올려 놓았다. 산거북님이 힘들었다 하며 오늘은 푹 쉬세요 하며 올린 글에 대한 댓글이다. 웃음이 난다. 청한님의 표정이 생각나서다. 모두 힘들었다. 누가 조금 더 힘들고 적음은 있을지 언정, 9시간 가까이를 걷기만 했으니 아니 힘들다면 그게 인간이겠는가? 그 힘든 맛에 산행을 하는 게 아니겠는가? 이리 힘든 일하고 자고 나 새벽부터 사진 올리고, 글 쓰고….. 정상이 아닌 거 나도 안다. 그래도 이짓이 좋다.
머리 속에는 벌써 ‘다음 구간 들머리를 어디로 할까?’하는 생각으로 꽉 차 있다. 행복한 일요일 오후가 이렇게 흘러간다.
< 한북정맥 12구간 궤적 >
첫댓글 듣고 보니 구라명동 이라는 별칭이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ㅎㅎ.
예상치 못한 수풀과 가시덩굴 복병을 만나서 애를 먹었네요.ㅠㅠ
그래도 시원한 날씨로 예정된 코스대로 산행을 마쳐서 다행입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
국망봉에서의 맑은 하늘,
뒤풀이 맛난 이동갈비
그리고
강변에서 사 주신 맥주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