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소개
호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유명 재즈 드러머, 사이먼 바커. 사이먼은 우연히 한국이라는 어느 낯선 나라, 무형문화재 82호(Intangible Asset No.82)의 연주를 듣게 되고, 끝을 가늠할 수 없는에너지를 바탕으로 복잡한 기교를 구사하는 이 위대한 즉흥 연주에 사이먼은 충격과 부러움을 넘어서 시샘의 감정에까지 휩싸이게 된다. 사이먼은 이 비밀에 싸인 ‘마스터’가 70세 노령의 ‘김석출’이라는 것을 알아내지만, 그의 연주가 공인된 문화재임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의 정보를 얻지 못해 절망한다.
그로부터 7년, 사이먼은 그 사이 한국을 17번이나 방문했고, ‘마스터 킴’은 이미 80세로 접어들고 있었다. 점점 더 강력한 운명적 끌림에 사로잡힌 사이먼은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며 한국 방문길에 나서고, 이 여행에서 자신을 통째로 흔들어 놓는 매력적이고 이국적인 마스터들을 만나게 되는데.. 과연 이들이 마스터 킴과 사이먼의 운명적 만남을 성사시킬 다리가 될 수 있을지. 사이먼은 결국 이 여행에 끝에서 운명의 상대, ‘마스터 킴’을 만나게 될까?
영화제 소개글. 호주 출신의 드러머인 사이먼 바커는 어느 날 한국인 무속인 김석출의 연주를 듣고 세상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종류의 즉흥 연주에 반하게 되고 그에게 연주를 배울 결심을 하게 된다. 7년간 온갖 장애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이제는 80줄에 접어든 한국의 무형문화재 무속인에게 사사 받기 위해 사이먼 바커는 17번째로 한국을 찾는다. 여정의 와중에 사이먼은 독특하고 매력적인 여러 사람들과 만나며 음악적 변화를 겪게 된다. 음악이라는 전 우주적인 언어가 음악가와 관객을 함께 변화시켜가는 힘을 느낄 수 있는 영화....
김석출 선생은....
3년 동안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골방에 족쇄 차고 앉아 하루 종일 두런대는 사람. 느닷없이 하늘 향해 앙천대소하는가 하면 히죽히죽 웃으며 세상 걱정 다하고 아는 소리마저 빼놓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이 김석출(70) 씨만 보면 먼저 알아보고 겁부터 먹는다. 김씨가 꺾어든 동(東)으로 뻗은 복숭아 나뭇가지 회초리로 수십 차례 발바닥을 맞으면 얼굴이 파랗게 질려 버린다. 1989년 8월 부산 해운대 구우동에서의 일이다. 그 뒤 박모(24) 처녀는 이삼일간 깊은 잠에 빠지더니 온몸이 쑤시고 아프다며 물을 찾았다. 이 사실을 뒤늦게 전해들은 학자와 의사들은 현장을 못 보았다며 너무 아쉬워했다. 그러나 김씨에겐 처음 일이 아니며 찾는 곳 있으면 또 가야 한다.
세상이 알아주는 굿쟁이 김석출(金石出, 1922년 2월 28일생). 그의 부인 김유선(金有善ㆍ60) 씨와 함께 중요무형문화재 82호(동해안별신굿)로 지정, 국가가 그들의 기능을 보호해 주고 있다. 언제부턴가 경상도 지방에선 ‘동해안 굿’ 하면 김석출이고 35박 동해안 굿거리 장단에 호적(새납), 지화(紙花) 제조의 1인자로 알고 있다. 별신굿, 오귀굿의 필수 부착물인 지화 만드는 법과 김씨만의 호적 산조는 ‘법적 계승의 길’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변의 말이다.
5세 때부터 어정(굿)판 곶감 대추 주워 먹으며 식은밥 말아 먹고 지나온 세월 65년. 그의 가문이 세습 무가인 줄은 대개 알지만 ‘이럴 수도 있는가’ 싶은 집안 내력이 있다. ‘무당새끼’라 남의 발길에 차이고 외딴 오두막에 살며 글 한 줄 못 배웠지만 김씨는 누구를 원망해 본 적 없고 오직 그 짓이 생업일 뿐이었다.
“4대독자였던 할아버지 김천득(金千得)가 마음 한 번 잘못 먹어 무당집안이 됐는기라. 예나 지금이나 가문 인물치레라 카는게 중요한데 이제와 어쩌겠능교. 남 잘되라 복 빌어 주는 것도 복받을 일이지······.”
경북 영일군 흥해면 환호동에 뿌리내렸던 김씨 일가(김해 김씨 삼현공파). 일찍부터 한지 장사에 눈떠 이 지역에서 소문난 알부자였다. 할아버지는 조랑말에 엽전 한 전대씩을 메고 다니며 마음껏 돈 쓰던 한량이었는데 어느 날 흥해장에 나가 풍어제(별신굿) 구경을 하다 열 살 아래의 무녀에게 홀랑 반해 버렸다.
이 무녀가 바로 김씨의 할머니 이옥분(李玉粉)으로 가문 내력을 바꿔 놓게 된 장본인이다. 양반 집안에 ‘무당X’ 데려왔다고 장살(杖殺) 계획까지 세웠지만 대가 끊길까 봐 살려 줘 오늘의 석출 씨가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천득 할아버지는 옥분 할머니한테 무업 학습을 받아 무당이 된 것이다. 김 씨는 “할아버지 발 한 번 잘못 딛은 것이, 장가 한 번 잘못 간 것이······. 내 자식들도 이어가니 그럭저럭 4대째”라고 덧없는 세월을 가늠해 본다.
한번 뿌리를 내린 무업은 가업으로 철저히 승계된다. 김씨 할아버지가 3형제를 두어 4대독자 집안에 경사 났으나 세 며느리까지 세습무 딸들을 데려와, 왕솔에 옹이박히듯 빼낼 수도 없게 되어 버렸다.
일가 친척들과 함께 굿을 진행하고 있는 세습무 김석출.
김씨 가문의 무업은 큰아버지 김범수(金範守) 씨와 백모 김운화(金雲花, 세습무) 씨 집안부터 풀어 가야 한다. 할머니 입 장단(구음)에 걸어 배운 잉어걸이(엇박), 독꺾이 장단(돌출 장단), 국덕 장단 등은 오직 김씨네 어정판에만 등장하는 희귀 가락들이다.
범수ㆍ운화 큰집의 사촌, 당질 중 무업 승계한 사람만도 해초(海草, 사촌 형)ㆍ김후화(金後花, 사촌 형수, 세습무) 부부와 자녀들인 해중월(海中月, 당질녀, 창)ㆍ조희(朝熙, 당질녀, 창) 씨 그리고 용출(龍出ㆍ76, 사촌 형)ㆍ신석남(申石男, 67, 사촌 형수, 세습무, 강릉단오제굿 인간문화재) 부부의 맹익(孟益, 당질, 무업)ㆍ명대(明大, 당질, 무업) 씨가 있다. 이들 모두는 큰아버지 후손들.
부인 김유선이 굿청에서 드릉갱이 춤을 추고 있다. 부인은 비갑이 출신이다.
석출 씨 부친(성수)은 둘째로, 친모 이선옥(李仙玉) 씨와 계모 한봉심(韓奉心) 씨도 경상도 지방을 울리던 세습 무가 딸들이었다. 형 호출(好出, 작고) 씨는 물론 형수 김채봉(金菜鳳) 씨도 세습무였으며 조카며느리 신길자(申吉子), 조카(업용, 용택ㆍ김영숙 부부)들 모두 없어선 안 될 이 시대의 세습 무인들이다.
알 수 없는 일은 비갑이(전통 예술과 상관없는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도 김씨 집안에만 오면 ‘도사 알아차리듯’ 금방 익혀 버린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화랭이(무당, 화랑)’가 되려면 ‘김가네’로 시집 가고 “석출이네 짚누리는 3년만 되면 춤춘다.”고 어려서부터 들으며 자라 왔다.
석출 씨의 첫 부인인 변난호(邊蘭湖) 씨의 친정 부모도 세습무. 현 부인 김유선(인간문화재) 씨는 ‘비갑이’였는데 만나자마자 ‘찰떡 궁합’으로 어정판에 손발이 잘 맞았다는 것이다. 딸 4형제가 아버지 따라 어정판에 함께 선다. 남들은 부부, 부자, 부녀, 장인과 사위, 숙질 형제, 시동생지간에 어찌 북치고 장구치며 한 굿판에 어우러지느냐고 입을 실룩거리고 히죽대지만 김씨는 “양악하는 사람들도 고부간에 나서 피아노 치고 노래하던데 그건 흉이 안 되느냐.”고 일축해 버린다.
딸 영희(映熙)ㆍ동연(東衍)ㆍ동언(東彦), 사위 김동열ㆍ김동진 씨도 이 일을 흔쾌히 받아들이며 어딜 가나 초혼(招魂)굿에 날린다. 큰 사위 제갈태오(諸葛泰悟ㆍ49, 영희 씨 남편)는 김씨 후계자로 조교. 석출씨 동생 재출(載出) 씨는 물론 제수 김채란(金菜蘭) 씨조차 세습무 집안에서 시집 왔다.
산자춤을 추고 있는 모습.
조카 정희(正熙), 정국(正國) 씨와 질녀 정숙(正淑) 씨도 군말 없이 무업을 승계해 간다. 다만 김씨 숙부(영수)와 숙모 이영파(李英波, 세습무) 씨만이 후손이 끊겨 가업을 잇지 못하고 있다. 김씨 무가에 얽힌 혈통 연구를 통해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도 있다고 석출 씨는 말한다. 종아리에 구렁이 기어 간 자국 같은 멍이 들도록 맞으며 배운 무업. 일제 때는 사람 모아 놓고 민족 의식 고취시킨다하여 왜경들이 굿판을 박살내 버리기도 했다.
“굿판에 올랐던 돈으로는 사업, 놀음 등 ‘딴짓’을 해도 안됩니더. 귀신 혼 뺀 돈인데 함부로 쓰다 그 업을 어찌 감당할라구요.”
남들이 겁내는 귀신을 달래고 혼내 주며 70평생을 산 ‘김석출의 인생 편력’은 행간에 묻어 둬야 할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첫댓글 음악과 그림은 땡큐 ^^ 근디 말은 꼬부랑거려 못알아 듣겠네요.ㅋㅋ
지송합니다....화질도 않좋고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