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견제하는 호국사찰 지리산 실상사|
실상사가 있는 남원 산내면은 덕유산에서 흘러온 지기와 지리산의 지기가 만나는 곳이다. 삼정봉에서 천왕봉에 이르기까지 주로 1천미터급의 봉우리들이 산내면과 실상사를 외호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주변봉우리의 형세를 살펴 매화꽃이 떨어져 향기를 낸다는 `매화낙지형' 형세로 평가하기도 하고, "주변의 용맥과 수맥이 연꽃과 같다"하여 `연화부수형'의 길지로도 평가한다.
사람들은 이 절을 ‘지리산 실상사’ 라 부르는데 실은 산 속에 있지 않고 풍성한 들판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경전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좌선(坐禪)을 통해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체득한다는 우리나라 최초의 선종(禪宗)가람으로 한국 선풍(禪風)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고려시대에는 도선국사에 의해 수많은 비보사찰(裨補寺刹)이 지어지고 태조 왕건은 훈요10조 제2훈에서 “사원의 기지는 도선이 산수의 순역(順逆)을 보아 추점(推占)한 것이니 함부로 다른 곳에 창건치 말라”고 하여 도선의 풍수론이 국가통치 이데올로기로 자리매김 한다. 도선의 비보풍수를 가장 잘 드러낸 것이 사찰의 건립이며, 풍수적으로 땅 기운이 쇠락한 곳에 절을 세워 재난을 방지하고, 국가와 백성의 안락을 기원했던 것이다.
도선국사는 신라 말의 당면한 사회적 혼란과 분열, 백성들의 기근과 자연재해의 원인을 국토가 병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국토 전체를 조화와 균형의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는, 병든 사람에게 침과 뜸을 놓듯이, 지방의 요소요소에 사탑을 설치하여 균형발전을 이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이 도선국사의 비보사탑설(裨補寺塔說)이다.
실상사는 신라 흥덕왕 3년(828)에 홍척 스님이 당나라에 유학한 뒤 돌아와 세운 호국 비보사찰이다. 당시는 왜구가 전라도와 남해안 일대에 심심찮게 출몰해 노략질을 일삼던 때다. 홍척스님이 도선국사에게 절터를 잡아 달라고 부탁했더니 그때 도선이 지금의 실상사 약사전 자리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간다고 하여 이 자리에 절을 세웠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버린 것을 조선 숙종 20년(1694)에 중건하였으며 고종 19년(1882) 방화로 다시 소실된 것을 고종 21년 월송대사가 세 번째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실상사에는 유독 일본과 얽힌 설화가 많은데 재미있는 2개의 유물이 있다. 보광전 안에 있는 실상사 동종(銅鐘)과 약사전의 철제여래좌상이 그것이다.
실상사 동종(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137호)은 숙종 때 침허대사가 실상사를 중건하면서 주조한 것인데 이 범종에는 일본지도가 새겨져 있다. 실상사에는 오래 전부터 ‘일본이 흥하면 실상사가 망하고, 일본이 망하면 실상사가 흥한다’ 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단다. 그래서 실상사 스님들은 아침, 저녁 예불 때는 물론 사람을 불러 모으거나, 때를 알릴 때 등 수시로 이 종을 쳐서, 일본의 경거망동에 대해 경고하고 일본의 지기(地氣)를 교란했다고 한다.
그래서 숙적(宿敵) 일본의 번창을 경계하고 실상사의 중흥을 기원하는 의미로 일본지도가 새겨진 종을 두들겨 댔던 것이다. 이 같은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일제 강점기에는 주지 스님이 일본 경찰에 붙들려가 심한 문초를 당하기도 하였으며 종을 치는 것이 금지되기도 했단다.
실상사 스님들은 지금도 이 속설에 따라 일본지도가 새겨진 동종을 마구 두드려대어, 범종에 그려진 일본지도 중 홋카이도, 규슈지방만 제 모양으로 남아 있을 뿐 나머지 열도는 희미해져 가고 있다. 특히 일본의 수도인 동경 부분은 형태를 알아보기 어렵게 닳아 버렸다.
또 실상사에 있는 철제여래좌상(보물 제41호)도 풍수지리설에 근거하여 세워진 유물이다. 실상사의 철제여래좌상은 절이 창건되던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높이가 무려 260cm에 이르며, 무쇠 4000근을 녹여 만들었다 한다. 결연한 모습으로 결가부좌를 하고 바르게 앉아 동남쪽 천왕봉 정상을 주시하고 있는데, 이 철제여래좌상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불상이다.
보광전 안의 동종이 일본의 지기를 교란하여 일본의 번창을 막으려 했던 것처럼, 백두대간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가는 것을 막기 위해 세워진 불상이다. 원래는 좌대(座臺)도 없이 흙바닥에 앉아 지기(地氣)를 누르고 있었다. 지리산 천왕봉 정상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는데, 천왕봉 너머에는 일본의 영산(靈山) 후지산이 일직선상에 놓여있다. 이 때문에 가람 배치도 일본이 있는 동쪽을 향하고 있으며 백두대간의 정기가 지리산 천왕봉을 거쳐 일본 후지산으로 건너가는 것을 온 힘으로 막고 있다. 눈을 부릅뜨고 차디찬 맨땅 위에 앉아 지기가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눌러 밟고 있는 것이다. 이 철제여래좌상은 수인(手印)으로 보아 아미타불일 가능성이 많은데 흔히 약사불이라 부르며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는 땀을 흘린다고 전해온다.
이 같은 구전들을 살펴볼 때 실상사는 풍수지리를 활용한 일본에 대한 호국 비보사찰임이 분명하며 오랜 역사동안 수시로 노략질을 일삼아 왔던 왜구에 대한 우리 선조들의 경계심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에 위치하며 국보 제10호인 백장암 3층 석탑, 보물 제33호인 수철화상능가보월탑 등 단일 사찰로는 보물급 이상 문화재가 가장 많은 절이다.
일본의 기를 누르는 동종
동종 아래 일본 지도(매일 예불 때마다 이곳을 때린다.)
철제여래좌상
실상사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