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 관전기 저5화: 문재인 (변호사, 정치인/ 3-2)
제2편: Moon왕국건설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
인간의 삶에는 크게 두 종류의 영역이 존재한다. 태어남 자체가 이미 정치적 산물임 (본인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던 상관없이)을 감안할 때, 사회구성원으로써의 영역.
또 하나,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 오롯이 각각에게 주어진 한 영혼으로써의 고독한 영역이 있다. 그러므로 누구든, 개개인의 고유한 사적영역에 대하여는 상호존중이 마땅하다. (단, 공공의 안녕질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우라면 다를 수 있다.)
성경구절 하나,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에게 알리지 마라’는 어디까지나 개개인의 선행에 대하여 명시한 것으로 나는 해석한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선한 의지로 이웃에게 행한 -어떤 형태의 선행이든 굳이 떠벌려 우월감을 드러내지 말라는 것이고, 부득이하게 이웃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입장을 배려하라는 측면일 거다.
하지만 위의 성경구절은 어디까지나 개인(사생활영역)으로써의 경우다. 더구나 정부(중앙정부, 지방정부, 각종단체, 조직)가 개입된 그 어떠한 사안도 절대, 투명성이 전제되는 게 당연하다! 그래야만이 공동체 운용기구(정부 혹은 조직)의 존재가 설득력을 얻을 수 있고, 명분을 갖게 된다.
그러한 관점에서, 지금까지 인간의 역사(정치)는 정 반대로 흘러왔다. 국민이 있기에 굳이 정부라는 기구가 존재한다는 근본적 사유는 깡그리 무시된 채, 소수 권력자들이 다수 인민을 속이고 농락하는 게 정치의 본질인양 호도해왔다. 그리하여 오늘날 정치행위는 거짓, 기만, 위선 따위를 얼마만큼 능숙 능란하게 행하는가가, ‘능력’으로 평가받기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
지난 번 제 1편에서, ‘문재인은 왜 노무현을 찾아갔는가?’ 질문했는데. 아무도 대답해 주는 이가 없었다. 나 같은 (별 볼일? 없는) 존재가 쓴 장문을 시간 죽이며 읽어주는 게 쉽지 않을 터.(ㅋㅋ...그러거나 말거나)
다 알다시피 제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미국의 세계지배가 본격적으로 수면위로 떠올려졌지만, 그 이전부터 미국의 세계지배야욕은 은밀하고도 세련된 방법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기존의 과학문명을 앞세운 지배에서, 현지인 스파이를 곳곳에 심어두고 백 년 후의 미래까지도 조종할 수 있게 하는.
★예) 1. 조선시대 말엽의 미국선교사에 의한 - 종교를 빙자한 조선인 세포양산.
★예) 2. 헐리우드 영화배급을 통한 제국주의 세계관(거짓) 주입
이실직고하자면, 나는 노사모도 아니고, 노무현재단 회원도 아니지만, 한동안 노무현 환상에서 푹 빠졌던 적이 있었다. 도저히 ‘대통령’은커녕, 인간群으로라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명박이 대통령되고 나서야 비로소 노무현에 대한 아주 강렬한 애착으로 하루에도 몇 번 씩, 노무현 홈피를 들여다보며 위안을 삼았다. 노무현정권 당시엔 오히려 여러 가지 석연치 않은 일들 때문에 불만이 많았던 입장이었는데!
● ‘자살’한 노무현, 상품으로 환생되어 유통(유포) 되다.
인간 개개인의 삶에 있어, 굳이 종교가 필요한가에는 논란이 많겠다. 사실, 세계 4대 성인(석가, 예수, 마흐멧, 공자)들 각자가 추구했던 세계는 별 차이가 없었다. 언어가 다르고, 지리·지형적 특성에 의한 생활문화가 다른데서 오는 표현방법의 차이일 뿐.
또한 지금까지 누구도 신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했음에도, 도대체 그 놈의 신(神)은 인간세계를 떠나가기는커녕, 새끼에 새끼를 쳐대며 창궐해오고 있다, 더구나 오늘날 기술문명에 힘입은 신(神)의 대량생산, 대량유통체계는, 광고폭탄을 타고 정신뿐만 아니라 -인간의 뼈와 살점까지 속속들이 녹여댄다.
그렇지만 인간세계에서 그토록 창궐하는 神은, 그 스스로가 神으로 태어났다고 주장하거나, 애초부터 신의 위치를 갖고자한 적이 없었다. 즉, 누구든 무엇이든 (인간, 사물) 당사자 스스로에 의해 神이 된 적은 없었다는 거다!
영화나 연극으로 비유하자면, 대본이 워낙 탄탄했다. 무엇보다도, 한국인의 정서(심리)를 적확하게 꿰뚫어 명중시켰다. 공연 중간 중간엔 약간의 트릭까지 써 보이는 여유도 부리면서, ‘노무현 자살 시나리오’는 대 성공을 이루어 냈다.
제작자 : 쌀국, 왜국, 별국
제작비 : 국민 혈세
감독 : 문재인(책임감수)
무대 : 대한민국 전역, 국외의, 대사관 영사관 소재 국
홍보 : 국내외의 모든 나팔수(언론)
주연 : (현재의) 달교 사단
조연 : 이명박 외, 정치평론가 및 학자나브랭이들
엑스트라 : 자발적 500만, 기타 등등
배경출연 : 유가족, 온 국민
관람인원 : 추정 불가(온 국민, 전 세계)
노무현 조카사위라 했던가? 문재인과 노무현 법률사무소소속 변호사? (기록을 해둘걸…)가 맨 처음으로 권양숙 여사에게 ‘자살’소식을 전화로 알렸다고 했다. 그 때 권양숙여사 첫 반응 “그럴(자살) 리가 없어! 어젯밤 잠도 잘 주무셨고, 평소와 별 다르지 않았는 … ?!”
피를 나눈 가족들은 그저, 망연자실 탓일까? 아무렇지 않게, 무슨 발표문을 읽어내려 가듯 태연자약, ‘뛰어내렸다’고할 만큼 –그 어떤 감정기복도 찾아볼 수 없는.
넷상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타살의혹’에 즉각적으로, 통제하며 앞장서 노무현 죽음을 ‘완성’한 문재인이었건만! 노무현 ‘시신 염습에 문재인은 참관하지 않았다’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기자(아나운서?)의 덧붙임. (뭐, 시신은 아주 평온한 모습이었다나?)
노무현 사후… 육체는 땅에 묻혔으나, 죽은 노무현이 되살아나 세상 구석구석을 나돌아 다녔다. 자칭 ‘측근들’을 통한 회고담 및 일화들이 동영상으로, 책으로, 기사로 생산 · 유통되고 퍼 날라졌는데, 살아생전에나 집권 당시는 무관심했거나 비판적이던 이들까지도 속속 -노무현이라는 한 인간의 신화에 빨려 들어갔다.
자 이제, 노무현 ‘자살효과’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만을 간략하게 관찰해 보겠다. 통칭, 일반대중을 예로 들자면, 그야말로 ‘카타르시스 러시(울분 폭발)현상’의 노도(怒濤)라 해야 할까?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독학 고시 패스하여, 충분히 보장된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정의를 위해 정치권에 뛰어들었다가, 개미 눈꼽만큼도 안 되는 뇌물(모든 언론이 받아 적었던)을 받았다는 이유로, 온갖 시달림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극의 풍운아!
하여, 자신이 겪었던 삶의 애환과 노무현 비극을 일체화 시키며 감정이입에 빠져들어 갔는데! 한동안은 ‘타살의혹’ 따위를 잠재우고 묻어버리는 역할을 해주었다. 그 정도에서 머물러 주었더라면! 그랬다면 그나마 천만다행(?)일 것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저들이 의도한)현실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상황이 확대·전개되었다. 무슨 얘기냐 하면, ‘민중’이 모두가 순수하거나 청렴결백하진 않다는 전제에서, ‘불편한 진실’을 커버할 수 있는 포장지로써 노무현이라는 상품은, ‘마법’과도 같이 사람들의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지고지순 청렴결백’의 대명사로 생산·유통되어지는 노무현 = 눈물!
즉, ‘파생(派生)눈물’현상은, 털끝만한 이권·이익 앞에선 서로를 물고 뜯고 원수가 되어도 상관없지만. 돈도 힘도 들지 않는 ‘눈물바람’ 하나로 ‘착한 척, 인정 많은 척’에 빠져드는 일은 손해는커녕, 뜻밖의 이익을 챙길 수도 있다.
특히나 자기 자신 외의 존재에 대하여 손톱만큼의 배려나 존중도 찾아볼 수 없이 살아왔거나, 그와 비슷한 인생수록, ‘노무현 파생(派生)눈물’에 빠져들기를 ‘소원’했다! 왜?
근사하게 세팅된 노무현으로 덕지덕지 치장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정말 자기야말로 청령결백 · 지고지순한 성품의 소유자라 확신할 수 있게 되니까! 자기 안의 ‘불편한 진실’을 누군가 눈치 채면 어쩌나 근심할 필요도 없어졌다. 책을 가까이 하지 않았어도, 쏟아져 나오는 노무현 관련 책들을 여보란 듯 집안 곳곳에 전시하고, 이 사람 저 사람 아낌없이 선물도 했다. (아마도, 책 보급 담당이 있는 듯 했다.)
“아, 노무현 대통령 좋아하세요?! 나는, 노무현 대통령만 생각하면 눈물 … 이, 나 … 요!”
노랑 수건, 노랑 수첩, 노랑 지갑, 노랑 장갑, 노랑 우산, 노랑 볼펜, 노랑 양말, 노랑가방, 노랑 노트, 노랑노랑노랑노랑노랑…! 제품 곳곳엔 반드시 노무현 사진, 노무현 / 민주주의가 새겨져 있다. (아, 그러고 보니, 세월호 리본도 노랑색? 섬뜩하다!!!)
서로 마주보며 눈물 찍어내다 보면, 자기들이야말로 ‘깨어 있는 시민’이 되고, ‘깨어있지 못한’ 누군가를 깨어나게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의기투합 된다. 노무현만이 ‘진리’이고 ‘정의’이니까. (뭐, 언제 어느 때 말 했다는 건지?)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고. 봉하마을 노무현을 짓누르고 있는 돌덩이에 새겨져 있다.
아, 그런데!
노무현에 대하여 아주 강력한 거부감을 갖고 있던,
이른바 지식계층(또는 학생운동권 및 모든 사회운동권)의 경우, 일반대중들과는 각도의 차이가 상당해서, 노무현 현상에 쉽게 빨려 들어가진 못했다. 콘크리트 화 된 고정관념(우월감)이, ‘자살’했다는 이유 하나로 희석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정치권이거나, 그곳에 발 담그려는 자들 경우엔 표계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만.
퇴임 후에도 여전히 노무현 개인에게 칼끝을 겨눴던 심상정, 노회찬 등. (참고로, 정의당 일원들은 이명박근혜에겐 대단히 우호적이었다) 더구나 ‘노무현 씨’로 유명한 박원순 서울시장까지도 봉하마을 찾아가야 할 정도로.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잠시잠깐 신(神)의 자리에 머물러 있게 된 노무현. 죽은 노무현이 살아서 ‘정치’를 했다.
▼문제(1). 그 엄청난 ‘노무현신격화공작’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을 제외한 지식인계층 ( 또는, 학생운동권 및 각종 사회운동권)은 왜, 노무현 현상에 빨려 들어가지 못했던가?
우선 널리 알려진 바로, 박원순 (現/서울시장)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다. 그러니까 참여정부시절 ‘오 마이’와의 인터뷰에서 박원순은, 정부를 비판하면서 ‘노무현 씨’라고 지칭했다. (내 경우를 예로 들자면, 과거 이통 박통 전통 등과 함께, 이명박근혜와 문재인을 굳이 ‘대통령’이라 칭하지 않는다.) 만일 그 이전에나 그 이후, 대한민국 전 ·현직 대통령에 대하여 박원순이, 대통령이 아닌 ‘씨’로 지칭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러게 왜, 그들은 노무현에 대하여 그토록 강한 거부감을 갖게 되었을까?
〓첫 째 : 노무현은 대학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다. (우선 거부감, 비교우위에서 비롯된 시기심)
〓둘 째 : 노무현은 운동(어떠한 )권도 출신이 아니다. (上同)
〓세 째 : (이게 가장 핵심이다!) 출신성분도 그렇거니와, 무엇보다도 노무현이 쓰는 언어와 행동거지가 문제였다. 더군다나 대통령까지 되겠다는 (된)자의 그 어디에도, 고상한 품위와 세련됨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무슨 얘기냐 하면, 그동안 소위 ‘지식( 기득권 상류층)계층’이 쓰던 언어와 행동거지가 그 얼마나 같잖은 허위인가(!)를, 노무현을 통해 만 천하에 드러내어졌다는 거다.
얼마든지 단순명쾌하게, 한글만 알면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리 꼬고 저리 꼬면서, 한문이나 외래어까지 동원하여 장황하게 전개하는 게 ‘지식’인양, 폼 잡으며 권위 누려왔던 세월인데 말이다! (국민들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개돼지’로 인식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현재 달교본부에 의해 전파되고 있는 -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대한 ‘묻지마 거부감’은, 노무현에 대한 지식계층의 거부감이 승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대학은 나왔으되 출신성분의 미천함과 더불어,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와 포장되지 않은 행동거지가 그렇다.
▼문제(2) ‘자살’까지 했음에도, 일반 대중들과는 달리 노무현신격화에 빨려 들어가지 못했던 지식엘리트와 학생운동권 출신들. 그들은 또, 무슨 연유로 자진(?)해서 문재인(달교)사단으로 빨려들어 갔을까?
〓 내가 대충 기억하기로는, 참여정부 노무현에 대하여 가장 비판을 많이 했던 학자 중에 최창집이 있다.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념대립으로, 실업, 비정규직, 신용불량자와 빈곤층을 확대시키고 있다”
또는 “서구에서는 우선순위로 다루고 있는 사회경제문제를 외면한 노무현은, 이데올로기적, 감정적, 상징적 이슈에 치중하여 정치를 극한의 갈등으로 치닫게 한다.”
그리하던 최창집은 이명박근혜정부에선 침묵했고, 역사와 사회문제엔 눈꼽만큼도 관심 없는 안철수와 한동안 찰떡으로 지냈다. 그러니까 그의 노무현 비판은, 김대중정부에서 한 자리 해먹었던 경험으로, 노무현정부에서도 뭔가 한 자리 기대했으나! (그러니까, ‘나 좀 봐 ~ 줘’ 앙탈부렸다고 밖에!)
2016년도 초였던 것 같다. 정봉주 팟캐에 출연한 조기숙 (이대 교수/ 참여정부 청와대 근무/ 대표적 친문) 은 말했다.
“노무현은 사실, 지도자로써의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 오히려 박근혜 경우, 이명박에게 패하고도 웃으며 여유 있는 얼굴로 이명박을 대했다. 비록 우리와 다른 당이긴 하지만, 박근혜야말로 지도자로써의 포용력과 지혜로움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또는, “문재인 대표야말로, 지도자로써의 면모를 완벽하게 갖춘 인물이다. 다만, 표현력이 좀 부족하다보니, 문 대표의 진심이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서 안타깝다.”
조기숙 발언 훨씬 이전부터 달교도들은 ‘노무현 평가’와 그에 따른 대안(?)을, 무슨 교재의 학습이론처럼 읊어댔었다. 아마도 2012년 대선이 지난 후의 2013년쯤 부터였던 것 같다.
“노무현은 열성 지지자들까지도 불안하게 만들었다. 지지자들은 항상, 또 언제 무슨 공격을 당할까, 조마조마하며 노무현을 지켜봐야했다. 그러니 일반 국민들은 얼마나 불안했겠느냐! 앞으로는 ‘일반국민들’이 보기에도 편안하고 안정된 사람(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어야한다. 그래야 민주당이 오랜 기간 집권할 수 있다.”
그에 덧붙여“ 북유럽 복지 국가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다. 적어도 20~30년 이상 집권하면서 서서히 만들어졌다. 더구나 우리나라처럼, 적폐세력이 단단한 나라에선, 급하게 서둘러선 안 된다. 급히 먹는 밥이 체하기 십상이니, 서두르지 않고, 하나하나 바꿔가려면 오랜 기간이 필요하다” 등등.
자, 그 얼마나 정교하게 세공된 ‘작품’인지!
일단 노무현 = (파생)눈물. 눈물로써 일반대중들을 현혹시켜 놓은 다음,
그러나 ‘노무현은 부족한 면이 많았다’를 슬쩍 유포하면서!
그런 노무현보다 비교도 할 수 없이 업그레이드 된 문재인.
그리하여 괴벨스 킴(김어준)의 말처럼, ‘결점이 없는 게 유일한 결점’인 문재인(神)이 살포(撒布)된 것이다.
그러니까 지지세력 결집지원이나, 위기탈출구가 ‘필요할’ 때마다 ‘노무현 일화’를 확대 재생산시켜 공급했는데! 목적은, 노무현보다 비교도 할 수 없으리만치 업그레이드 된 인물이 문재인 이라는 걸 세뇌시키는 용도로써 노무현이었다.
또 하나, 죽은 노무현 활용에 있어서 새눌계(정치인 및 지지자)는, 그 어떤 우군보다도 소중하고 귀중한 ‘보물’이 되어 문재인 지원사격에 나서 주었다.
그러니까 과거에나 지금이나, 문재인의 존재감이 희미해질 때나 혹은 문재인이 좀 위기에 처했다 싶으면 반드시, 새눌계 정치인이나 새눌계 성향의 누군가가 나서서 ‘헛소리’와 괴상한 행동으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걸핏하면 노무현과 문재인을 연결시켜 공격했다. 그럴 때마다 (좋게 말하면 순수한 거고, 나쁘게 표현하면 어리숙한) 다수 국민들, 분연히 떨쳐 일어나 분통을 터트리는 게 일상이 되었다.
2012년 대선 시기, 문재인은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 ‘운명’이라는 책을 내고 본격적으로 정치권에 입문하면서 대권후보로까지 대두되던 모양새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뭔가 모르게 주춤거리며, 우물쭈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문재인 행보에 대하여 달교도들은,
“문재인은 권력 같은 거에 욕심이 없는 사람이다. 더러운 정치판에 끼어들 사람이 아닌데, 보아하니 한 사람도 없는데다, 노무현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나선 거다. 더구나 많은 국민들이 원하니, 어쩔 수 없어 나선 거다.”
과연 그들 주장대로, 사람이 없었던가?
정치경력과 그동안 쌓아온 나름의 정치철학적 이력으로 보나, 문재인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탄탄한 김두관이 있었다. 남해군수 2선, 참여정부 행자부 장관, 2012년도 대선당시 경남지사였다.
일개 대통령비서실장이니 민정수석 따위 경력과는 확연하게 다른 김두관에 대하여, 달교 창시자 김어준은 팟캐방송을 통해 ‘깜’이 아니라는 말로 낄낄거렸다. 더 어이없는 건, 그 당시 안철수에 대하여는 엄청 존중하면서 띄워댔다는 거! (김어준, 주진우, 김용민, 정봉주)
아마도 김어준 패거리들에게 주어진 임무인 것 같다. 문재인을 호위해줄 주변부를 잠시잠깐 띄워주다가, 혹여나 문재인에게 위협되는 인물이다 싶으면 거침없이 짓밟아 버리는. 그런 관 관점에서 김두관은 경력부터가 충분히 문재인에게 위협이 될 인물이었던 거다.
김두관에 대한 달교도들의 공격은, 대선부보 경선이후로도 계속 이어졌는데. 그들이 나와 같은 종(인간)이라는 게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근혜에게 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그 모양새로 봐서 김두관은 선출직은 앞으로 불가능하겠다, 판단했었는데, 의외로 지난 총선에서 공천 받아 당선까지 되는 걸 보고는, 내 판단이 틀렸구나 생각했다. (지난 지선에서 전해철 지지선언을 하는 걸 보니, 아마도 정치생명연장을 위해 달교사단으로 편입해 들어간 게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국개위원이 가능했을지도)
-------------------------
자, 제2편의 결론으로 들어가겠다.
조기숙은 왜 하필이면, ‘노무현은 지도자 감이 아니었는데, 박근혜는 지도자 감’이라고 평가했을까? 그것도 ‘이명박에게 패하고도 여유 있는 모습으로 이명박을 대했다’는 걸로 예를 들면서?
아는 사람은 알고 있을 거다. 2012년 대선, (한나라당이었나?)새누리당 대선 후보경선에서 이명박은 부정선거로 당선되었다. 뿌리 깊은(박정희라인) 조직을 갖고 있던 박근혜 쪽에서, 그 내용을 몰랐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럼에도 활짝 웃으며 이명박을 대할 수 있었던 건, 다음을 약속받았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 2012년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그 때도 ARS 부정경선이 존재했다. 첫 째 날 제주도에서, 기계고장으로 몇 시간째 개표가 지연되었었고. 업체선정도 기존의 경력자가 아닌, 문재인과 관련된 무경험 업체선정이 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리하여 김두관과 손학규가 부정경선을 문제 삼았다가, 여론의 뭇매만 맞고 끝이 났다. (2017년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선 훨씬 격조 높고 방법도 다양한, 부당, 불합리, 불공정 등까지 포함된 ‘부정경선’이 이루어졌다!)
▼ 2012년도 대선 본선/ 개표조작이 이루어졌다는 수많은 정황들이 있었지만, 문재인은 즉시 승복선언을 해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국가기관 댓글공작 등등의 일들이 터졌으나!
“제발, 재검표 한 번 해보자”면서, 목숨 내놓고 단식투쟁하는 지지자의 소원도 무참하게 짓밟은 문재인은 천하태평이었다. 왜 그랬을까? 달교도들 주장대로 ‘욕심’ 없고 순수해서?
천만에!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아서였다. (이미 순번 매겨진 박근혜)
1단계로, 노무현 신격화는 성공했으나, 달교 창시는 시작수준이었다. 종교(달교)를 완성한 다음이어야 뜻한 일을 순조롭(저항 없이)게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었다.
조기숙이 굳이 박근혜를 예로 든 내용을 보면, 목적이 무엇이던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 박근혜 대선부정에 관한 여러 증거들이 넘쳐나도 선관위 발표결과에 승복한 문재인은, 지도자로써 면모를 갖춘 것이다.
〓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시에, 부정이 저질러져도 무조건 승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도자(?’로써 자격미달이다.
어쨌든 오늘 날 많은 사람들, 그리고 달교창시자 김어준에 의하면 문재인은 ‘젠틀맨’이다. 신사적 언어와 행동으로, 인간사회 모범을 보인다고 주장한다. (문사모 카페 이름도 ‘젠틀맨’이다.) 그러니까, 문재인의 말장난이 최고의 ‘신사다운’면모인 거다.
젠틀맨 … ?
젠틀맨은 17세기 영국의 귀족사회에서, 특정계층을 지칭하는 대명사에서 비롯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영국하면, 신사의 나라’ 어쩌구 하는 게 바로 그 뜻일 거다.
그 신사의 나라, ‘젠틀맨’이라는 계층이 생겨난 17세기 영국은, 아프리카 흑인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써먹는 일이 대대적으로 성행하던 때였다는 걸 기억하시라!!!!!!
젠틀맨으로 불리는, 젠틀맨을 자처하는 문재인의 본질이 보이는 것 같지 않은가????????
----------제 2 편 끝--------
제 3편예고: 저들은 왜 문재인을 간택했고, 굳이 달교를 창시했을까?
(달교창시 안하고도 대통 만들 수 있는데 … 굳이,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