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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言語)의 예술(藝術) ~~ 문학(文學)은 시선과 귀청의 떨림으로 다가온 것들이 심신에 모여 자태를 이를 때 비로소 마음 그림으로 환생한다. 환생의 조건이 어디 시선과 귀청뿐이겠는가? 이미 지나쳐 쌓인 경험의 추억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것들이 감성을 희롱하다 차 오르면 비로소 글로서 환생하는 것이다. 세월의 무게는 나이를 늘려 놓고 늘어난 나잇값은 육신을 허물어 놓는다. 당연한 일이지만, 가만히 있으면 가속이 붙어 한 순간 나의 모든 것을 폐허로 만들어 놓는 것을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이런 것을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 의미가 살아 있고 작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목표가 만들어지고 실천이 이어진다면 적어도 폐허만큼은 면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자꾸 쌓여만 갔다. 혼자 하는 짓보다 함께하며 나름 얻는 기쁨이 많았던 내자신의 삶이었기에 이번에도 다시 함께라는 전제 아래 문학산책을 선택하였다. 산책하듯~ 또는 소풍 오가듯~ 아니면 외진 모퉁이 조용한 집 창가에 기대어 짙은 커피 향과 더불어 투명한 햇살 속에서 오수를 즐기는 것 같은 여유로움으로 언어의 마술사 정원을 산책하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작년 12월엔 청춘을 기억하려 금병산 기슭을 다녀왔다면 새해의 시작인 정월에는 虛無와 樂天이 교차하는 수락산 기슭을 산책하기로 하였다.
인원 점검 후 예정된 인원에서 결원자를 가려낸 후 다시 부족한 인원을 체크하자 지상에 있다는 전화 전갈이 왔다. 지상으로 올라 모두 함께한 인원은 20명! 산책을 시작하였다. 시인이 살던 옛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 선 것이다. 그래도 흔적이라도 마음에 새겨야 하기에 다가가 확인하고 걸어서 공원을 찾았다. 어느해 인가? 이탈리아 중부 도시를 찾은 적이 있었다. 르네상스시대 주름잡던 어느시인의 자택을 방문하며 생전 때 모습 그대로 현존하는 문학관 형식의 내부를 보면서 부러워 하며 충격을 받었는데...이에 반해 우리들의 실정은 참 열악하다. 오늘 우리들이 찾는 시인은 스스로 선택한 물리적 가난속에서 詩觀은 樂天的으로 산 사람이다. 서울사람들은 옛적에 삶의 시간공간을 두 가지로 나누고 살았다. 누군가 어디가셔요? 또는 어디다녀오셔요? 무르면 의례 대답은 한결 같었다. 네! 문안에 다녀옵니다. 네 문밖에 갑니다 이런식이었다. 한양도성 안에서 살면 문안의 사람이되고 도성밖에 살면 문밖에 사람이었다. 한국전쟁을 격으면서 급격하게 늘어난 인구로 인하여 서울이란 도시는 미아리 고개를 넘어와 청량리 외곽까지도 발전하였지만 시인이 부인과 함께 살려고 들어 온 당시 수락산 기슭은 사람들의 인심, 자연환경을 제외하고는 주거환경은 열악한 곳이었다. 시인은 당시의 모습을 이렇게 한 편의 시로 다음과 같이 들려 주고 있다.
나 사는 곳 / 도봉구 상계 1동 / 서울의 최북방이고, / 변두리의 변두리
수락산과 도봉산, / 양편에 우뚝 솟고 / 공기맑고 청명하고, 산위 계곡은 깨끗하기 짝없다
통틀어 조촐하고, 다방 하나 술집 몇 개 / 이발소와 잡화점, / 이 동네 그저 태평성대
여긴 서울의 별천지 / 말하자면 시골 풍경 / 사람들은 다 순박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향토(鄕土) 아낀다.
- 변두리 전문 -
시인께서 쓰신 후기의 시는 가난과 오래도록 동거한 연륜이 묻어난다. 평화로운 가난과의 동거는 스스로 선택한 마음이 경지였다.그래서 그랬을까? 무소유의 경지는 시어마저 단순한 즉 가난한 형식으로 취하기 일쑤였다. 단순함속에서 시인의 따듯한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시, 우리 집 뜰 일부를 발췌해 보면 비로소 시인을 곁에 두고 시인의 손이라도 살며 시 잡고 마주보며 미소를 머금고 싶은 독자의 마음이 된다. 아~~ 이래서 천상병 시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 우리 집 뜰 - 일부발췌
서울과 의정부 시가 맞붙은 곳에 / 자리잡은 이 집은 가난한 집이다
그래도 뜰은 볼 만하다 / 감나무와 / 버드나무와 / 이름도 모를 잡나무가 있다 (중략)
언제나 푸르고 녹색인 뜰 / 맑고 곱고 아담한 뜰 / 나는 생각나면 / 이 뜰에서 쉰다
그 포근함이며 / 깨긋한 공기여
지금 당장, 시인이 살던 집 방문을 두드려 시인을 모시고 뜰 안쪽으로 더 들어가 막걸리 사발을 엉켜가며 선가(仙家) 부르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사라져 버린 시인의 살림집, 대신 도시의 폐허를 보며 시인이 사랑했던 뜰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누군가 이곳에 집을 잡아 두었다면 그리고 고스란히 시인의 생생함을 지금껏 보관해 두었다면 독자는 미관을 찌푸리고 상상의 꾀를
내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이러한 모습을 우린 엉뚱하게 충남 안면도 작은 산기슭에서 만나게 된다. 시인을 사랑했던 농부가 자비를 들여 손수 옮겨 놓은 것이다. 미리 알았더라면 그 농부는 이곳에 시인의 심지를 박아 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곧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시인의 부인은 자기의 목숨과 같은 남편과의 추억이 온전하게 살아 있는 건물이 곧 멸실된다는 사실에 경악하여 목순옥 여사가 비명을 지르듯 전하자 농부는 단숨에 올라와 이전의 절차를 밟는다.
두 사람의 삶의 추억이 한 올이라도 빠지지 않게 하려고 형틀로 사방을 옭죈 후 떠내는 방식으로 트레일러에 실어 안면도로 옮겨 간 것이다. 그리고 아래 사진과 같이 원형 그대로 복원해 놓은 것이다. 순수 농부였던 개인의 노력이었다. 평소 시를 사랑하고 특히 천상병 시인을 사랑했던 이의 노력이었다.
시인과 목순옥 처녀와 결혼은 순수 서정시와 같은 모양새였다. 육군소령으로 재직하던 목순옥의 오빠 목순복은 근무중 군수물을 처분하여 병사들 복지를 위하여 사용하던 강단 있는 장교였다. 당시 군에선 군수물을 팔아 상관에게 공공연하게 상납하던 시절이었지만 목소령은 달랐다. 그 이유로 대위로 강등 당했던 목순복과 시인은 막연한 우정을 나누며 살던 친구였다. 영양실조로 거리에서 쓰러진 천상병은 행려자로 취급되어 응급조치 후 응암동에 있던 서울 시립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이 때 문인들과 친구들은 유고 시집을 만든다. 반년이 넘도록 소식이 끊겨 죽은 사람으로 알았던 것이다. 이 소식이 전파를 타고 세상에 퍼져 나가자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응암동 서울시립 정신병원에 시인이 살아 있다는 .... 이 소식을 접한 오빠는 누이에게 다녀올 것을 전한다. 순옥은 과일 통조림 몇통을 준비하여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서 죽을 것이라고 예견했으나 순옥이 다녀간 후 시인은 기적적으로 삶의 의욕으로 병상을 박차고 일어서게 된다. 정신 황폐증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시인은 순옥의 이어지는 문병에 순수의 어린아이처럼 변한다. 순옥에게 의지하기 시작한 시인은 흡사 어머니에게 안긴 어린아이 된 것이다.
팥빵을 비롯하여 이것저것을 먹고 싶다고 조르고, 언제 또 문병 올 것인지 되 묻던 시인에게 모성을 느낀 순옥은 1972년 5월 14일 김 동리 선생님을 주례로 모시고 결혼식을 올린다. 그때 시인의 나이는 43살 신부의 나이는 36살 이었다. 이때부터 시인과 수락산은 인연을 맺게 되는 것이다. 사글세 방하나 얻어 신혼살림을 시작한 두 연인, 시인은 천원에서 오 천원 사이의 적선을 포기하였지만 신부의 어깨는 무거워졌다. 병풍 자수를 수놓아 쌀 한 말과 연탄을 사서 살았고 친구와 동업으로 정계천 8가에 고가구점을 운영하기도 하였지만 문을 닫게 된다. 몇년간 쌀을 살 수 없는 시기도 있어 고통스러웠지만 두 사람은 행복했다. 그 어려운 시기 출판인이면서 시인이었던 강태열이 수호천사로 나서게 된다. 3백만원을 빌려주면서 인사동에 찻 집을 추천한 것이다. 자신의 시 제목인 귀천을 옥호로 정하고 바로 목순옥 여사가 찻 집을 경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강태열의 배려도 눈길을 끈다. - 천형 걱정하지 말고 막걸리 값이나 하시면서 천천히 돈은 갚어도 되요 - 이후 시인은 행복의 정의를 다음과 같은 시로 증명한다.
나는 세계에서 / 제일 / 행복한 사나이다.
아내와 찻집을 경영해서 / 생활이 걱정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 배움의 부족도 없고 / 시인이니 / 명예욕도 충분하고
이쁜 아내니 / 여자 생각도 없고 / 아이가 없으니 /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있으니 / 얼마나 편안한가 /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 이 우주에서 /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백이시니 /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 행복 - 전문.
천상병 시인처럼 수많은 일화를 남긴 시인도 드물다 그가 가는 곳마다 늘 일화가 따라 다녔다. 이러한 일화들의 발생에는 무엇인가 꾸밀줄 모르는 시인의 성격과 정서도 한 몫 한다. 이 이야기는 추후로 남겨 놓고 우선 천상병 시인의 시의 세계로 입문해야 겠다.
귀천(歸天)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라고 말하리라......
- 歸天 - 전문
새의 연작에는 대결의 구도가 긴장감을 촉발시키는 위태로움이 있었지만 귀천에 와서는 이슬이나 노을빛이 순시간에 사라지는 것처럼 긴장감은 사라져 버렸다. 그것은 자신에게 근거도 없이 다가 온 고문으로 인하여 피폐해 진 피해의식의 소산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인은 이 모든 것을 초연하게 놓아버린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용서하고 끌어 안으려는 시도가 강렬하게 느껴진다. 하늘로 돌아가리라 말하는 시인의 마음속엔 신앙적 위로를 받아들인 경험을 엿보게 한다. 재속에서의 고난은 천국으로 가기위한 고행으로 다가선 것이다. 하느님께 돌아갈 곳이 있어 현세에서 있었던 지독한 절망적 환경조차도 용서하고 그들과 화해하며 천국으로 올라 가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하는 것은 정신적 안정을 찾았다는 사실이다.
귀천의 시인 천상병(1930 - 1993)을 기리는 공원이 시인이 살았던 수락산 인근에 있습니다. 공원의 정식명칭은 시인 천상병공원입니다. 이 공원에는 귀천, 새를 비롯한 詩碑, 육필원고를 새긴 의자, 귀천정 정자, 시인의 등신상과 20여편의 시 낭송이 나오는 시설비와 또한 시인이 평소에 사용하던 안경, 찻잔, 집필원고 같은 유품 41종 203점을 모아 타임캡슬에 묻어 두었습니다. 이 캡슬은 천상병 시인의 탄생 200주년을 기하여 2130년 1월 29일 개봉될 것입니다.
이 공원에 도착한 일행은 새의 이름으로 발표된 시비에 서서 다음의 시를 마음에 새겨 넣어 두었습니다.
새
외롭게 살다가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터
새날이라 새가 울고 꽃이 필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 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그득찬 계절
슬픔과 기븜의 주일,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봅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마리 새.
또 다른 새의 연작 시
새
저 새는 날지 않고 울지 않고
내내 움직일줄 모른다
상처가 매우 깊은 모양이다.
아시지의 성 프란시스코는
새들에게
은총 설교를 했다지만
저 새는 그저 아프기만 한 모양이다.
수백년 전에 그날 그 벌판의 일몰(日沒)과 백야(白夜)는
오늘 이 땅 위에
눈을 내리게 하는데
눈이 내리는데........
1965년 3월 여상(女像)에 발표된 시로서 1967년 자신에게 닥쳐 올 일을 미리 예견하는 듯하여 눈시울이 붉어 진다.
시인의 상처를 위로하듯 그의 상처가 깊어지도록 외면했던 과거의 잘못을 회개하듯 시인의 손을 잡아 드리고 가슴을 안아 드렸다.시인이 당했던 일은 시인으로서의 정신적 순교였다.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무거운 마음으로 지나온 역사를 회개하며 시인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고(고문은 인간의 정체성을 파괴하고 자존감을 무참하게 파괴하고 녹여 버린다.) 위로한 후 무거운 발걸음으로 시인의 산길로 다가섰다. 공원에서 산길까지의 공간적 여백이 있다 그 여백을 걸으며 사유의 모진 그늘을 만들어 보았다. 고문 후의 삶을 살기 위하여 그토록 처절하게 자신을 닮은 새를 앞세고 새의 연작 시를 통하여 고문의 행위자를 고발했던 시기가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천상병 산길은 주제이고 부제는 아름다운 소풍이다.
늘 이곳으로 다가올 때 마다 느끼는 것이 하나 있다. 천상병 산길이 시작되는 곳에 커다란 화장실이 있어 제대로 시인을 떠올리며 마음의 준비를 하기에 참 불편하다는 것이다. 순수의 정서를 갉아먹는 기분을 떨칠 수 가 없다. 참 어정쩡한 환경이다.
시인을 중앙에 모시고 호흡을 정리해 두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시인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 행위는 또 하나의 회개이며 고백 성사이다. 이탈리아 움부리지방 아시시에서 태어나신 성프란치스코는 회개자이시다. 깊은 성찰끝에 비감한 회개를 통하여 새로운 인식과 철저한 방식으로 하느님을 섬겼던 사람이다. 새들을 모아 놓고 은총을 설교하였는데..... 그날 백야와 눈이 내려 축복의 의미를 더했고 지금도 눈이 내리는데... 지금도 눈이... 현대인들은 지금도 은총의 눈이 내리고 있는데 은총을 감지 못하고 변함없이 회개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우리들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지금의 방식으로 전기고문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할 몫은 우리들이다. 시인이 서 있는 지점은 바로 불가의 일주문이고 천주교의 성전 성수대인 것이다. 함께하신 도반들은 어떤 생각으로 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도반들을 이끈 저는 일주문과 성전입구에 있는 성수로 세속적인 것들을 씻는 마음으로 넘어 섰다.
첫 낭송자는 헤레나 자매님이셨다. 어느 성현께서는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 네가 서 있는 곳이 바로 천국이고 지옥이다. - 어떤 분별력으로 살고 있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으로 갈린다는 뜻이다. 행복이란 것~~ 마음이 병들지 않는 것이 아니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시다.
행복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할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베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
이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다음은 스콜라스티카 자매님~~ 새는 바로 시인의 자아다. 낡은 목청이란 시어에서 눈치를 챌수 있다.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고 나쁜일도 있었다는 즉 자신이 겪었던 고약하고 견디기 어려웠던 절망적 과거의 일을 담대하게 힘든 운명의 시기와 화해 하는 모습은 우리들에게 자유가 무엇인지 일깨우는 것 같다.
새
외롭게 살다가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터
새날이라 새가 울고 꽃이 필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 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그득찬 계절
슬픔과 기븜의 주일,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봅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마리 새.
다음은 안나 자매님.. 육신의 고통으로 긴 세월을 인내하고 계시고 지금은 많이 호전되어 가고 있으시다 한다. 우연의 일치일까? 바람에게도 길이 있다는 시 낭송을 선택받게 되셨다. 나는 속으로 전율을 느꼈다. - 함께하고 계시는구나! - 치유의 길이 분명 있으실 것이다 라고 기도를 드리며 촬영을 해 두었다. 기억들 하시고 기도에 동참해 주시기를 소원해 봅니다. 아멘.
바람에게도 길이 있다.
강하게 때론 약하게
함부로 부는 바람인 줄 알아도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바람은 용케 찾아간다
바람길은 사통팔달(四通八達)이다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가는데
바람은 바람길을 간다.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엘리자베스 자매님! (계속)
갈대
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나란히 소리없이 서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안타까움을 달래며
서로 애터지게 바라보았다.
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눈물에 젖어 있었다.
봄 바람
봄철이 되어
봄바람이 쏴 분다.
세상이 온통 날라갈 것만 같다.
어쩌면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쉽게스리 풀려 나올 것 같다
쉽게 말해서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봄바람이 한가하게 불었으면 한다.
나의 가난은...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 잔의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태니깐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웠을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씽씽 바람 불어라........
새벽
새벽에 깨는 나
어슴프레는 오늘의 희망!
기다리다가 다섯 시에 산으로 간다.
여기는 상계1동
산에 가면 계곡이 있고
나는 물속에 잠긴다.
물은 아침엔 차다
그래도 마다 않고
온몸을 적신다.
새벽은 차고 으스스 하지만
동쪽에서의 훤한 하늘빛
오늘은 시작된다.
수락산변(水落山邊)
풀이 무성하여, 전체가 들판이다.
무슨 행렬인가 푸른나무 밑으로
하늘의 구름과 질서있게 호응한다
일요 일의 인열(人列)은 만리장성이다.
수락산정으로 가는 등산행객,
막무가내로 가고 또 간다
기후는 안성맞춤이고
땅에는 인구(人口)
하늘에는 송이구름
미소
임가 흐뭇스레 진 엷은 웃음을
삶과 죽을 가에 살짝 걸린
실오라기 외나무 다리,
새는 그 다리 위를 날아간다
우정과 결심, 그리고 용기
그런 양 나래 저으며....
플잎 슬멋 건드리는 바람이기보다
그 부리에 와 닿아주는 바람,
이 가슴팍에서 빛나는 햇발
오늘도 가고 내일도 갈
풀밭 길에서
입가 언덕에 맑은 웃음 몇 번인가를......
햇빛 반짝이는 언덕으로 오라
나의 친구여,
언덕에 서서 언덕으로 가기에는
수많은 바다를 건너야 한다지만,
햇빛 반짝이는 언덕으로 오라
나의 친구여.....
푸른 것만이 아니다
저기 저렇게 맑고 푸른 하늘을
자꾸 보고 또 보고 보는데
푸른 것만이 아니다,
외로움에 가슴 조일 때
하염없이 잎이 떨어져 오고
들에 나가 팔을 벌리면
보일듯이 안 보일듯이 흐르는
한 떨기 구름
3월 4월 그리고 5월의 신록
어디서 와서 달은 뜨는가
별을 밤마다 나를 보던가.
저기 저헐게 말고 푸른 하늘을
자꾸 보고 또 보고 보는데
푸른 것만이 아니다.
계곡흐름
나는 수락산 아래서 사는데,
여름이되면
새벽 5시에 깨어서
산 계곡으로 올라 가
아침마다 만나는 얼굴들의
제법 다정한 이야기들,
큰 바위 중간 바위 작은 바위
그런 바위들이 즐비하고
나무도 우거지고
졸졸졸 졸졸졸
윗바위에서 떨어지는 물소리
더러는 무르팍까지
잠기는 물길도 있어서....
(내가 가는 곳은 그런곳)
목욕하고 있다 보면
계곡 흐름의 그윽한 정취여....
요놈 요놈 요놈아!
집을 나서니
여섯 살짜리 꼬마가 놀고 있다.
요놈 요놈 요놈아 라고 했더니
대답이
아무것도 안사주면서 뭘 한다
그래서 내가
자 가자
사탕 사줄께 하고 해서
가게로 가서
사탕을 한봉지
사 줬더니 좋아 한다.
내 미래의 주인을
나는 이렇게 좋아한다.
구름집
십오 번 십팔 번 버스 종점
여기 변두리, 나 사는 동내(洞內)
단골 술집이 있는데
아직도 간판이 없는 집이다
나 혼자 구름집이라 부르는데
막걸리 한잔을 들이키면
꼭 구름 위에 있는 것 같아서다.
아주머니, 아주 상냥하고 다닐만한 집
한잔만 하는 내게도
너무도 친절하고 고맙고
딴 손님들도 만족하는 이 술집
끊을 사이 거의 없는 손님투성이다.
수락산 밑이라 공기 맑고
변두리라 인심 순박하고
도봉산이 보이는 좋은 경치,
이 집 잘되기를 나는 빌 뿐이다.
자연의 은혜 ( 서울의 소년소녀들에게)
애들아 들어라
이 할아버지의 말을 들어라
지금은 12월 겨울이지만
이윽고 내일
봄이 온다
자연은
커다란 문을 열고
자연의 은혜를
활짝 열어줄 것이다.
산이나 들에
꽃이 만발하고
싱싱한 나무가
너희들을 맞이할 것이다.
자연의 은혜는
너무도 넓고 기쁘다
시골에 가서
그 자연의 은혜를
맛보아라.
나무
사람들은 모두 그 나무가 썩은 나무라고 그랬다.
그러나 나는 그 나무가 썩은 나무는 아니라고 그랬다.
그 밤, 나는 꿈을 꾸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 꿈속에서 무럭무럭 푸른 하늘에 닿을듯이
가지를 펴며 자라 가는 그 나무를 보았다.
나는 또 다시 사람들을 모아
그 나무가 썩은 나무는 아니라고 그랬다.
그 나무는 썩은 나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