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我 나)는 무상아(無常我) 또는 연기아(緣起我)
강병균 교수(포항공대)
▶선사(禪師): 송장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눈이 아니라 마음이 보는 것이다.
▶안과의사: 봉사는 마음이 있어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마음이 아니라 눈이 보는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 싸우지들 말거라. 눈과 마음이 온전해도 대상이 없으면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본다는 것은 대상과 눈과 마음의, 즉 대상과 심신의 연기(緣起)현상이다. 부처님이 이미 2,500년 전에 무아론(無我論)을 설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 의미와 중요성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참나, 진아를 찾는 것을 힌두교의 논리이다.
부처님이 설한 무아론은 인도적인 ‘아트만’이나 서양적인 ‘기계속의 유령’, ‘영혼’, ‘호문쿨루스(homunculus)’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선언이다. 이 선언이 위대한 것은 이미 2,500년 전에 일체의 물질적인·과학적인 실험도구가 없이 이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이며, 2,500년이 지난 이제서야 현대 과학이 그 타당함을 입증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진화론과 뇌과학이다.
그런데 비극은 대선사라고 하는 불교인들이 자기 스승(부처님)의 가르침인 무아론을 내다 버렸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오래전에! 더 비극은 내다 버렸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 불자들이 접하는 유명 스님들은 대부분 ‘참나’를 선양(煽揚)하고 가르치는 선사(禪師)들이지 학승들이 아니다. 진리를 버리고 껍데기에 매몰되어 있는 것이다. 모래로 밥을 지을 수 없는 법이다.
한국의 대부분의 선사들은 유아론에 빠져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불교가 유아론이 되어버렸다고 통탄하는 이유이다. 사람들은, ‘자아가 없다’는 말을 들으면, 공포에 휩싸인다. 그 공포를 이기려면 반야심경에서처럼 ‘지혜(반야바라밀)’에 의지해야 하건만, 오히려 아트만(진아眞我 참나)에 의지한다. 적멸이라는 말로 그럴듯하게 포장을 해서. 이들이 주인공이 보고 듣는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필시, 만약 이 주인공이 보고 듣고 생각하지 못한다면 무정물과 다를 바가 없어져 ‘죽으면 사라진다.’는 말과 동일할 것이기 때문이다.
유아론에 빠진 선사들은 보고 듣고 생각하는 주인공은 ‘무시무종(無始無終)으로 존재’하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존재’이며, 따라서 우리가 죽어도, 즉 우리 몸이 죽어도 이 주인공은 죽지 않으므로 걱정하지 말라는 주장이다. 그러니 몹시 죽기 싫어하는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는 환호작약할 일이다. 사실 모든 종교는 유론(有論 靈魂論 永生論)이다. 죽기 싫어하는, 즉 소멸을 싫어하고 소멸에 대한 공포심에 빠져있는, 인간의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들어 영생(永生) 상품을 파는 기업이다. 기독교의 영생상품은 영혼이고, 불교의 영생상품은 주인공·본래면목·지켜보는 놈·진아(眞我)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참나’이다.
한국불교의 선사들이 주장하는 참나, 진아, 주인공도 생명체와 의식이 존재하게 하는 원동자이다. 철저히 연기론을 부정하는 사상이다. 우주에서 우연을 배제하고 모든 것을 인과론과 연기론으로 설명하면서, 그 우연(인과와 연기에서 벗어난 것들)을 모조리 참나, 진아, 주인공에 농축시켜 때려 넣은 것이다.
참나는 진아(眞我)라는 한자어의 우리말이다. 이 말은 용수보살의 중관(中觀)에 위배된다. 진(眞)이 성립하려면 가(假)가 먼저 서야 하는데, 진과 가는 서로 의지해 존재하는 유위법의 세계일 뿐이다. 이처럼 서로 의지해서 발생하고 존재하는 세계를 연기(緣起)의 세계라고 하며, 이 연기의 세계는, 모든 물질세계의 근저(根柢)에 있는 소립자의 세계처럼, 잠시도 같은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끝없이 생멸·변화한다. (타들어갈 정도로 뜨거운 방바닥 위에서 폴짝폴짝 발을 뛰고 있는 사람들을 멀리서 창을 통해 보면, 마치 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소립자가 발이요 춤이 물질이다.) 그리고 어느덧 힘이 다해서, 모여 서로 의지하던 것들이 흩어지면 사물과 현상은 사라진다.
정말로 큰 문제는 대단히 유명한 학승들조차 선사들의 영향으로 유아론으로 기울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을 지적하면, 즉 유아론(有我論 atman論)을 비판하면, 떼로 나서서 비난한다. 전형적인 '스톡홀름 증후군(Stockholm syndrome)'이 아닐 수 없다! 자기를 납치한 아트만(atman 유아론자)과 사랑에 빠져, 구해주려는 안아트만(anatman 무아론자)을 비난하는 현상! 전도몽상(顚倒夢想)도 이런 전도몽상이 있을까? 부처님의 연기론에 의하면, ‘몸과 마음’의 ‘존재와 활동’은 연기(緣起)이다.
불성은 원래는 '부처가 될 가능성 또는 잠재력'에 지나지 않는데, (불법을 오해한 사람들이) 그걸 실체화한 게 참나이다. 불생불멸하고 상주불멸하는 (연기법을 벗어난) 초월적인 존재로 실체화했다. 힌두교 우주아(宇宙我 universal soul, universal self)인 브라흐마(Brahma 梵)와 다를 바가 없는 실체적 존재이다. 이 실체로서의 참나는 두 동강난, 하지만 따로따로 살아있는 편형동물 앞에서 산산조각 나 무너진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아(我 나)란 무상아(無常我) 또는 연기아(緣起我)이다. 즉, 단일체가 아니라 여러 요소로 이루어진 복합체로서의 ‘나’이다. 그리고 고정불변하는 ‘나’가 아니라, 안팎의 무수한 조건이 영향을 미쳐 끝없이 변하고 진화하는 ‘나’이다. 나란 발(足)도 없이 신비로운 영혼의 힘으로 미끄러지듯이 물위를 떠다니는 백조가 아니라, 수면아래서 부지런히 물갈퀴를 끊임없이 움직이는 미운 오리새끼이다. 그리고 물질파의 관점에서 보면 아(心身 몸과 마음)란 삼천대천세계를 채우고 흐르는 파동이다. 즉 파동아(波動我)이다. 다른 말로 하면 아(我 나)는 존재적인 측면에서는 연기아(緣起我)요, 작용측면에서는 파동아(波動我)이다.
이상(以上)은 잡아함경에 다음과 같은 말로 멋들어지게 그리고 간결하게 표현되어있다.
‘업(業)을 짓는 자도 그리고 업을 받는 자도 없지만 업(業)은 존재한다.’
출처 : 불교 닷컴 내용을 요약 정리한 자료임
첫댓글 감사합니다. 점점 깊이 있는 가르침이 되어 갑니다()
정법 수행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주로 글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