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인이 놓고 간 5천원, 못 돌려주면 청탁금지법 위반?
민원을 접수하러 온 사람이 예상치 못한 사례금을 주고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시청에서 근무하고 있는 공무원 A씨는 얼마 전 난감한 일을 겪었습니다. 민원실을 찾은 남성 B씨에게 업무와 관련된 안내를 해준 후 본의 아니게 돈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1층 민원실로 들어온 B씨는 민원 담당 공무원인 A씨를 찾았습니다. A씨는 B씨에게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물었지만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파악하지는 못했습니다. B씨를 돕고자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고 민원실에서 처리할 수 있는 업무들에 관해 설명했는데요.
대화가 끝난 후 B씨는 머뭇거리며 자신의 주머니에서 50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냈습니다. B씨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A씨에게 지폐를 내밀었는데요. A씨는 공무원이라는 신분상 자신이 이런 것을 받으면 안 된다고 말하며 황급히 돈을 돌려줬습니다.
B씨는 재차 고맙다고 말하며 5000원권 지폐 한 장을 민원실에 놔두고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상담을 하다가 떠난 B씨를 다시 찾기도 어려워 더욱 곤란한 상황인데요. A씨 앞에 놓인 단돈 5000원의 금품,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제공자 신원 파악 불가능하면 소속기관장에 금품 넘겨야
B씨가 두고 간 5000원은 다음날 서울시 감사위원회로 넘어갔습니다. 청탁금지법에 따르면 공공기관에 재직 중인 공직자는 금품 등을 수수할 수 없습니다. 금지되는 금품에는 금전·유가증권·부동산·물품·각종 이용권 등 개인에게 재산적 이익을 주는 소유물이 모두 포함되는데요.
만약 공직자가 이를 어기고 금품을 받으면 부정청탁으로 간주돼 처벌을 받습니다. 정황에 따라 수여자는 3년 이하의 징역형을 선고받게 되거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 또는 과태료 부과 처분을 받게 됩니다.
처벌을 피하려면 소속기관장에게 자신이 금지된 수수 금품을 받았다는 사실을 서면으로 신고해야 합니다. 아울러 자신이 수수 금지 물품을 받았을 때 이를 지체 없이 제공자에게 반환하거나 거부 의사를 밝혀야 하는데요.
이 사건처럼 제공자인 B씨에게 돈을 다시 돌려주기 어려운 상황인 경우, A씨가 속한 시청장에게 지폐를 인도할 수 있습니다. A씨는 B씨에게 거절 의사를 확실히 밝히며 지폐를 한 차례 돌려줬고, 이후 B씨가 시청을 떠나면서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돈을 되돌려줄 수 없는 상황에 놓인 만큼 처벌될 가능성은 낮습니다.
문제는 B씨의 신원을 파악하기 어려워 과태료 부과를 통보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청탁금지법은 양벌규정에 따라 금품제공자 역시 벌금 및 과태료 부과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요. 공직자가 신고한 제공자 인적사항을 바탕으로 관할 법원에 과태료 부과 사실을 알리는 것이 원칙입니다.
B씨가 민원 상담 때도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고, CCTV 등 기타 자료를 동원해도 160cm 정도의 중장년 이상 연령대 남성이라는 점 외에는 정보가 없어 신원을 특정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일각에서는 처벌 및 심의 기준 자체가 불공정하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일례로 청탁금지법에서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농수산물·농수산가공품 선물가액의 상한선은 10만원인데요. 농산물이건 지폐건 형태만 다를 뿐 금전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똑같은데도 같은 값어치의 농산물은 수수 시 처벌 대상이 아닌 반면, 지폐의 경우 A씨처럼 소액이고 수수하려는 의도가 없어도 엄격한 심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의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