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5) - 2022 여름 <문명전환의 세계감각과 문학>
1. 창비 2022년 여름호의 주제는 <문명전환의 세계감각과 문학>이다. 2020년 코로나의 세계확산은 우리를 위협하는 위험이 결코 개별적인 방식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전면적이고 인류 전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인식하게 만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문명의 중요한 가치에 대한 감각도 바뀌고 있다. 문학은 어쩌면 탄광의 카나리아처럼 변화를 무엇보다도 먼저 인지하고 발언하는 영역일 것이다. 네 명의 저자는 현재의 문학에서 찾은 변화의 시작과 그것의 중요성 그리고 새롭게 전개해야 할 방향을 탐색한다.
2. 송종원의 <돌봄은 어떻게 문학이 되는가>에서 코로나가 ‘돌봄’의 중요성과 가치를 확인하는 동시에, 돌봄 제공자로서 여성의 지위에 대한 각성을 가져왔다고 본다. 여성시인들의 시를 통해 돌봄이 단지 육체적인 보살핌이 아닌 서로에 대한 관심과 고통에 대한 연대이라는 점을, 더 나아가 ‘정치하는 엄마’들의 활동을 통해 ‘돌봄을 수행하는 동안 인간의 주체성을 자율성, 독립성이 아니라 상호의존성, 취약성 중심으로 파악할 수 있는 시야’가 확보되고 실천되고 있음을 확인한다. 돌봄은 인간만의 관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과 자연 사이의 ‘돌봄’ 또한 문명전환의 중요한 태도이다. 『존재의 지도』를 저술한 브라이언트의 ‘존재의 지도학’이란 개념을 들여와 ‘비인간 사물이 갖춘 독자적인 역능과 효험’을 수용한다는 것은 이제까지 우리가 가졌던 ‘자연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벗어나 ‘자연에게 우리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고 그 속에서 자연에 대한 우리의 책임이 무엇인가를 물어야 하는 것이다.
3. 유희석의 <기후위기가 문학에 던지는 질문>에서는 근대성과 근대문학이 초래했던 치명적인 실수를 비판하는 아미타브 고시의 『대혼란의 시대』를 인용하면서 글을 전개한다. 고시는 “근대성이 다른 형태의 지식 형태를 모조리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라고 말하며 근대문학이 인간 중심의 서사를 전개하면서 자연이 불러일으키는 경이와 신비, 공포나 ‘비인간’과의 공생적 지평을 소거시켰다고 비판했다. 저자는 고시의 비판을 일정 부분 수용하면서도 그의 전면적인 근대 문학의 비판에는 거리를 둔다. 대표적인 기후소설을 사례로 들며 문학이 수행했던 의미있는 작업을 옹호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자기 각성과 생태친화의 담론으로 끌어올리는 데는, 반생명적 삶에 대한 저항의 감수성과 ‘비물질적 실재’의 감각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근대문학의 탁월한 성취도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4. 문명에 대한 전환적 감각은 인간을 넘어 비인간에 대한 문학적 서사로 확산된다. 전기화의 <(비) 인간의 자리로부터>에서는 최근 문학이 다루고 있는 ‘식물, 사이보그, 외계인’에 대한 이야기와 ‘유령과 죽음’을 소재로 한 소설 작품을 통해 변화의 단초를 추적한다. 이러한 ‘비인간에 대한 문학적 재현’은 결국 인간이라는 종에 대한 거리두기를 통해 우리를 좀 더 냉철하게 바라보아야 한다는 전제가 담겨있다. 인간을 넘어 사유하기는 인간의 책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 자신을 재인식하는 데 머물지 않고 인류세의 현단계에서 인간이 져야 할 책임을 적극 짊어지는 데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인간 행위자를 더욱 두껍게 읽어내는 시각과 그것을 재현하는 방식 또한 절실해질 수밖에 없다. 이는 다시금 인간중심주의로 회귀하는 반동을 정당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책임을 환기하고 그 위에서 존중을 갖춰 비인간과 더욱 섬세하게 얽히기 위해 요청되는 것이다.”
5.인터넷과 스마트폰의 확산은 우리의 삶의 형태를 완전하게 변모시키고 있다. 특히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 인터넷 공간은 단순한 가상세계가 아니라 현실의 나에게 동일한 무게와 중요성을 갖는 영역이다. 최근 발표된 청소년 소설은 가상과 현실의 나 사이에서 발생하는 분열과 연결에의 강박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많다. 개인은 이제 더는 나뉘어질 수 없는 의미로서의 개인이 아닌, 무수히 나뉘어지고 데이터화되는 가분체적 존재‘로 살아간다. 하지만 그러한 혼돈의 세계 속에서도 중요한 것은 어떤 곳에서도 자신의 주체를 확인하는 노력과 의지인지 모른다. <다시 너와 연결될 수 있다면>에서 강수환은 다음과 같이 결론내린다. “만약 이 시점, 존재의 분열이 발생하는 근거가 우리의 가상(꿈)에 있는 것이라면, 기존의 질서를 뒤엎는 주체화의 가능성이 새롭게 점화되는 자리 역시 그곳에 있을 것이다. 안에서 안으로 이르는 길은, 다시말해 가상(꿈)의 토대 위에서 종전과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계획하기 위한 도정은, 감염의 논리와 경로를 흐트러뜨리고 꿈의 질서를 주도하려는 주체의 의지없이는 불가능하다. 돌고돌아서 결국, 문제는 다시 주체다.”
6. 특집의 저자들은 ‘돌봄, 기후, 비인간, 사이버세계’를 통해 세계와 문명에 대한 변화하고 있는 인식의 특징을 추적한다. 그 속에서 발견한 것들은 은폐되어 있던 존재의 확인이기도 하고, 당연시하던 것들의 중요한 의미를 발굴하는 것이기도 하며, 새로운 것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의 재발견이기도 하다. 기술적 변화는 정신적 혼란을 가져오고, 지구적 위기는 현재적 존재의 불안을 자극한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무엇을 해야하는가? 해답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은 초월적인 허상의 세계로 탈출하거나, 현실의 허구적 가치에 열광한다. 이해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오히려 강경해진다. 그런 점에서 우선적으로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충돌과 파멸을 막는 최소한의 선택이다. 문학은 우리에게 현실을 이해하는 관점을 제공하고 인간으로서의 ‘주체’를 확인시켜 준다. 다만 정치하는 엄마들이 총회 때 시작한다는 묵념(“뼈빠지게 착취당한 우리 엄마들을 위해 모두 같이 묵념하겠습니다.”)에는 저자의 “묵념에는 삶과 죽음의 구분을 무화시킴으로써 ‘살아있음’의 지평을 한번 더 열어내는 힘, 나아가 ‘진정한 살아있음’이 무엇인지를 질문하게 만드는 힘이 내재하고 있다.”라는 의미부여에도 불구하고 주체의 과잉과 특정 집단의 ‘희생’에 대한 과도한 해석을 느끼게 한다.
첫댓글 - 변화하는 인식, 존재의 확인, 의미의 발굴, 인식의 재발견....... 세계감각의 문학? 작품은 없고 동어반복의 현란함만이 있는 것 같은 느낌으로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