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철재의 한 번 읽고 잊어버리는 영어
유치원 때부터 영어에 대한 강박관념을 갖고 평생 사는 사람들이 있다.
현실은 하나를 외우면 둘을 잊어버리는 답보의 연속이다.
그럴 바에는 재미있게 생각하고 맘 편히 잊어버리는 스트레스 프리(Stress-Free) 영어 이야기를 한 번 해보자.
NG 대신 이 말 쓰세요
입력 2023.06.14 11:19
탤런트, 시나리오도 콩글리시
나는 이제 텔레비전을 거의 보지 않는다. 미국에 살 때도 10년 넘게 텔레비전 없이 살았고, 한국에 이사 와서는 어머니가 보시는 케이블 방송이 있긴 하지만 어머니 말동무 해드리려 가끔 옆에 앉아 볼 뿐 따로 보는 프로가 없다. 당연히 드라마도 본방을 시청하는 것이 아예 없다. 매주 기다렸다 본방 시청한 마지막 드라마가 2006년 《내 이름은 김삼순》이었던 것 같으니 벌써 20년 가까이 드라마 시청률에 악영향을 끼치며 살고 있다.
내가 드라마를 접하는 주된 경로는 유튜브이다. 거기 뜨는 짧은 영상들을 계속 보다보면 조각 케이크 사먹다 케이크 한 판 다 먹듯 드라마 전체의 줄거리가 맞춰지고 그걸로 됐다 생각하고 다음 드라마로 넘어간다. 얼마 전 방영한 《신성한 이혼》 《닥터 차정숙》은 그나마도 조각 비디오 보며 스토리를 맞춰갈 시간 여유가 없었던 관계로 ‘1회부터 한방에 몰아보기’ 비디오 한 편으로 단 번에 스토리를 꿴 후 마지막 회만 그것도 본방이 아니라 넷플릭스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하는 수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때때로 짧은 영상들을 보다 재미있어 드라마 전체를 정 주행 하는 경우도 있다. 《별에서 온 그대》 《호텔 델루나》 《응답하라 1988》 등은 종영한지 몇 년 지난 걸 유튜브에서 조각으로 보다 뒤늦게 뛰어들어 울고 불며 눈이 빠져라 ‘Binge Watching(텔레비전 프로그램 등을 몰아서 보는 행위)’을 했다.
유튜브도 내가 드라마 조각 비디오를 좋아한다는 걸 아는지 유튜브 한 번 열면 이런저런 드라마 비디오들이 잔뜩 올라온다. 그 중에서 내가 빼놓지 않고 보는 것이 하나 있다. 어느 드라마냐에 상관없이 ‘무슨무슨 NG 모음’이라고 하는 것들이다. 날 선 눈초리로 서로 째려보며 독한 대사를 내뱉던 스타 배우들이 혀가 꼬이고 같은 부분에서 또 꼬이고 또 꼬이고 주변에서 웃음을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왜 그리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NG는 일본서 온 재글리시(Jaglish)
NG라는 말은 ‘No Good’의 약자라고 하는데 물론 영어에 없는 표현이다. 어떤 이는 우리 영화계에서 만든 콩글리시라고 하고 어떤 이는 일본에서 만든 재글리시(Jaglish)를 우리도 사용하는 것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촬영현장에서 ‘엔지’라고도 하지 않고 ‘에누지’라고 했다니 일본에서 넘어온 말인 것 같다. 좌우간 영어권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사전에 보면 ‘NG’에 대해 세 가지 뜻이 나온다. ▲나노그램(Nanogram, 10억 분의 1 그램)의 약자 ▲‘National Guard’의 약자 ▲‘No Good’의 약자가 나오기는 한다. 하지만 ‘NG’라는 말을 실생활에서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럼 내가 즐겨보는 ‘NG 모음’은 영어로 뭐라고 할까?
미국 드라마의 NG 모음을 찾아보고 싶으면 ‘Blooper’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검색하면 된다. 메리엄-웹스터 사전에서 ‘Blooper’를 찾아보면 ▲(야구에서) 내야(Infield)를 겨우 벗어난 플라이 성 안타 ▲타자에게 높게 들어오는 공 등 야구와 관련 있는 설명들이 나오고 세 번째에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운 실수(Embarrassing public blunder)‘라는 설명이 나온다. 캠브리지 사전에는 아예 대놓고 ‘배우가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만들 때 하는 재미난 실수’라고 나온다.
‘Blooper’와 조금 다른 의미이긴 한데 요즘 우리나라 방송가에서도 자주 사용하는 비하인드라는 말이 있다. 비하인드는 영어의 ‘Behind(뒤에)’라는 말에서 온 것이다. 화면에 들어나지 않는 촬영 뒷이야기를 일컫는 말이다. 영어에서는 그냥 ‘Behind’라고 하지 않고 ‘Behind the Scenes’라고 한다.
내가 미국에서 즐겨봤던 드라마 중에 《This Is Us》라는 것이 있다. 유튜브에 《This Is Us》의 재미있는 비하인드 비디오가 있는데 그 제목이 ‘Hilarious Behind the Scenes Moments’이다. 번역하면 ‘웃긴 비하인드(Behind the Scenes) 순간들’이다. 배우들 스태프들이 장난도 치고 서로 농담도 하고 ‘Blooper’도 담은 비디오이다.
‘Behind the Scene’은 우리말로 직역하면 ‘막후’라는 뜻이다. 영어사전에 찾아보니 1850년부터 ‘대중의 눈을 피해, 비밀리에’ 등의 뜻으로 쓰였다. 연극에서 배우들이 무대에서 연기를 하다가도 막 뒤의 공간으로 들어오면 관객의 눈에 띄지 않고 캐릭터에서 벗어나 본인 자신으로 돌아오는 데서 기인한 표현인 듯하다. ‘Behind the Scene Negotiation’이라고 하면 ‘막후협상’이라는 뜻이 된다.
방송용어 제대로 알기
방송용어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텔레비전에서 활동하는 배우를 탈렌트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영어에서 텔레비전이든 연극 무대이든, 영화이든 연기를 하는 사람은 모두 ‘Actor’라고 부른다. 텔레비전에 주로 나온다고 따로 ‘Talent’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미국 연예계에서 ‘Talent’라는 말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신인 유망주를 ‘Talent’라고 부른다. 이들을 자신의 소속사로 데려오는 것을 ‘Talent Scout’이라고 한다. 운동선수들을 스카우트 한다는 표현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신인 유망 선수를 스카우트 하는 것도 ‘Talent Scout’이라고 한다.
한 20년 전 내가 한국의 로펌에서 일을 할 때 영화수출 관계 법률 상담을 꽤 많이 했다. 미국에서 한국을 방문한 영화 관계자와 한국의 영화제작자들이 모인 곳에서 함께 회의를 하기도 했다. 이때 한국의 영화관계자들이 사용하는 용어를 미국의 관계자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시나리오라는 말이다.
시나리오라는 말은 18세기부터 ‘연극의 개요(An outline of a play)’라는 뜻으로 사용하던 말이다. 미국의 영화관계자들은 아직도 이 말을 곧잘 영화의 줄거리(Synopsis)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우리 쪽 관계자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영화 대본이다. 회의를 할 때도 잘 듣고 있다 우리 쪽에서 누가 ‘Scenario’라는 말을 하고 미국 관계자가 고개를 약간 갸우뚱 하기 시작하면 내가 얼른 나서 부연 설명을 했다.
영화 대본은 ‘Script’ 혹은 ‘Screenplay’라고 한다. ‘Script’와 ‘Screenplay’ 사이에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Script’에는 등장인물들이 소개와 그들의 대화가 지문과 함께 마치 희곡처럼 대화체로 들어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가 실제 영화촬영에 사용할 촬영 지시문까지 자세히 들어있는 것을 ‘Screenplay’라고 부른다고 한다. ‘Script’의 다음 단계 혹은 대본의 최종단계가 ‘Screenplay’라고 보면 될 것이다. 이건 나도 잘 몰라 영화 제작자에게 물어봤더니 그렇게 대답해 주었다.
‘Script’의 전단계로 ‘Treatment’라는 것이 있다. 영화의 대략의 줄거리와 등장인물의 성격 등을 간략히 적어놓은 문서를 뜻한다. 이를 놓고 여러 사람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의견을 모아 ‘Script’를 쓴다.
얼마 전 나는 잘 아는 기자의 부탁으로 그가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을 인터뷰 하는 것을 통역해 준 적이 있다. 스톤이 최근에 핵에너지(Nuclear Energy)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는데 원래는 이에 관한 영화를 만들 계획이었다고 한다. ‘Treatment’를 몇 차례 작성해보았지만 계속 이야기가 자신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 수퍼히어로 영화같이 되는 바람에 ‘이건 아니다’싶어 포기하고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경우 ‘Script’ 단계까지 가지도 못하고 ‘Treatment’ 갖고 씨름하다 방향을 바꾼 것이다.
독백, 방백, 과음을 영어로 하면?
이번에는 콩글리시는 아니지만 유식해 보일 수 있는 단어를 몇 개 언급하려고 한다. 연극의 독백(獨白)을 영어로 ‘Soliloquy’라고 한다. ‘Sol’은 혼자라는 뜻이다. ‘모태솔로’ 할 때의 ‘솔’과 같은 말이다. ‘Loquy’는 ‘말’ 혹은 ‘말하다’이다. 즉 혼자 말하는 ‘독백’이다.
헌데 ‘Soliloquy’ 말고 ‘Monologue’라는 말이 있다. 이것도 뜻을 풀이 하면 ‘홀로 말하다’이다.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Soliloquy’는 아무도 없는데 혼잣말을 하는 것이다. 반면 ‘Monologue’는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길게 혼자서 말을 하는 것이다. 즉 배우가 그냥 혼잣말을 하느냐 아니면 상대방 들으라고 하느냐의 차이이다.
요즘의 텔레비전 광고는 보험 광고든 다이어트 약 광고든 모델들이 카메라를 쳐다보고 “이랬어? 저랬어?”하며 반말을 하는 것이 유행이다. 모델이 혼자 허공에 대고 반말을 해대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 들으라고 반말 짓거리를 해대는 것이니 ‘Soliloquy’라기 보다는 ‘Monologue’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좀 더 확실한 예를 들어보겠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 《Sideways》라고 캘리포니아의 와인 컨트리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있다. 주인공 마일스는 와인 컨트리의 한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마야와 데이트를 한다. 서로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자연히 와인 이야기를 한다. 마일스가 마야에게 왜 와인을 좋아하느냐고 묻자 마야가 대답을 하는데 마일스가 그 이야기를 듣고 있음에도 카메라는 마야의 얼굴만을 클로스업 하고 마야는 혼자서 1분 넘게 와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한 편의 시처럼 말한다.
와인을 밥만큼 사랑하는 나는 이 장면을 아주 좋아해서 가끔 다시 찾아 볼 때가 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처음 시작 했을 때 미국에서 하루 종일 집 안에 갇혀 와인 마시며 거의 매일 찾아보았다. 이때 검색어를 ‘Sideways Maya’s monologue’라고 치면 금방 찾을 수 있다. 마일스라는 상대를 앞에 두고 혼자서 계속 말을 하니 ‘Soliloquy’가 아니라 ‘Monologue’이다. 만일 마일스와 마야가 한 마디씩 주고받는다면 이런 건 ‘Dialogue’라고 한다.
위에서 ‘Binge Watching’이란 말을 썼는데 ‘Binge’는 원래 ‘과음(하다), 과식(하다)’의 뜻이다. 다른 말로 ‘Gluttony’라고도 한다. ‘Gluttony’는 단테의 《신곡》에도 등장하는 지옥으로 직행하는 7가지 죄(The Seven Deadly Sins) 중 하나이다. 와인에 대한 모놀로그를 일부러 찾아 들을 정도로 와인을 좋아하는 나도 지옥 가지 않으려면 자제를 좀 해야겠다.
끝으로 연극에서 ‘Soliloquy’나 ‘Monologue’ 말고 자신의 생각을 소리 내어 읊는 방백이라는 것이 있다. 극 중 그 누구도 들을 수 없는 배우의 속마음이다. 이건 영어로 ‘Aside’라고 한다.
출처 : 톱클래스(http://topclass.chosun.com)http://topclas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