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양 강산(1940년 1월, 진양성 찬가) 김계원 작사, 김계원 작곡(당시 봉래초등학교 6학년 담임) 김삼남 기록참조 1. 비봉산 허리에 아지랑이 끼이고 의곡사 골짜기에 뻐꾹새가 울면은 이 언덕 저 언덕에 옹기종기 모여서(삼삼오오 짝지어,작반해) 나물캐는 처녀들의 노래 소리 고와라 에헤야 좋구나 얼씨구 좋구나 에헤야 좋구나 우리 진양 강산이** 2. 촉석루야 묻노니 웃고 울던 지난일이 깨고 보면 무정한 한 바탕 꿈이라지 꽃 피는 봄 아침,달 밝은 가을밤에 너를 찾던 그리운 님 소식 알수있으랴 에헤야 좋구나 얼씨구 좋구나 에헤야 좋구나 우리진양 강산이 3. 의암은 외로이 흐르는 푸른 물에 논개의 옛 일을 속삭이고 있건만 철 모르는 목동의 피리 소리 구슬퍼 나그네의 설움을 구비구비 자아내네 에헤야 좋구나 얼씨구 좋구나 에헤야 좋구나 우리진양 강산이 4. 서장대 오르니 찾는 사람 적은데 저녁 하늘 호국사 종소리 은은해 비탈 아래 흐르는 맑고 맑은 저 물에 우리네의 봄 꿈을 둥실 띄워보낼까 에헤야 좋구나 얼씨구 좋구나 에헤야 좋구나 우리진양 강산이 5. 우람하게 망진봉 우뚝 솟아 있는데 돋아 오는 아침 해 찬란하게 비추네 춘풍 추우 기나긴 지나간 그 옛날에 우리 조상 이 성을 굳게 지켜왔다네 에헤야 좋구나 얼씨구 좋구나 에헤야 좋구나 우리진양 강산이 6. 진양 적벽 뒤벼리에 배를 띄워놓고서, 노세 노세 젊어 노세 때는 다시 안오네(시호시호부재래) 적벽부 읊조려 흥을 겨워하노니, 소동파는 그 누구 부러울 것 있으랴 에헤야 좋구나 얼씨구 좋구나 에헤야 좋구나 우리진양 강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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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정비하는 차원에서 누락된 것 추가하고 모두 올려보려고 합니다.
백수니까...
진양강산(진양성 찬가)-
(김계원 작사,작곡 /
주상섭 작사,이재호 작곡 가능성 높음,
김계원(봉래학교)님이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개천예술제의 초창기 음악회에서 발표.
그날 이후로 온통 난리.
아주 유명한 곡이었다라고함.
당시 세분은 절친이셨고
모두 교사(주상섭 ,이재호-진주중고등)이셨음,
이 노래로 인해 세분 모두
진주땅에서 타지로 떠나셧다고함)
/
백수는 저도 마찬가지인데요
대문밖 나가면 앉을곳만 눈에 보이고,,
힘들어서 가능한 집에서 어정 어정 입니다
예전 악보는 올리지 마시고
바구미님께서 만드신
새로운 악보만 올려주세요~
예전거는 에전 진주 노래방에 다있으니까요~
요즘도 의곡사 부근
비봉산에 뻐꾸기가 참 구슬피 웁니다,,,
그런데 그 뻐꾸기가 그렇게 나쁜 새라는걸
알고부턴 별로입니다.
옛날에는 진주여고와
진주고 학생들이 뒷산인 비봉산에
쉬는 시간이나.점심 시간이면
참꽃(진달래)따먹으러 많이들 오르내렷다는데...
딸기,매실,오디 등등 으로 개간한 밭들이 생기고 ,
도토리 나무들이 숲을 이루면서
진달래꽃은 비봉산에선 귀한 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많았다던 참꽃이 봉래초등학교 뒷산 부근에만
조금 남아 피는걸 보았습니다.
뒤벼리쪽도 별로 없는데 새벼리쪽이랑 망경산엔 많이 있습니다
진주노래는 현재 새로운 악보가 없으니 올릴 필요가 없겠군요?
"진양 강산1940년1월(진양성 찬가)"
김계원 작사.작곡(당시 봉래초등학교 6학년 담임)
김상남 기록참조,바구미 미디연주
1.
비봉산 허리에 아지랑이 끼이고
의곡사 골짜기에 뻐꾹새가 울면은
이 언덕 저 언덕에 옹기종기 모여서(삼삼오오 짝지어,작반해)
나물캐는 처녀들의 노래 소리 고와라
후렴
**에헤야 좋구나 얼씨구 좋구나
에헤야 좋구나 우리 진양 강산이**
2.
촉석루야 묻노니 웃고 울던 지난일이
깨고 보면 무정한 한 바탕 꿈이라지
꽃 피는 봄 아침,달 밝은 가을밤에
너를 찾던 그리운 님 소식 알수있으랴
3.
3.
의암은 외로이 흐르는 푸른 물에
논개의 옛 일을 속삭이고 있건만
철 모르는 목동의 피리 소리 구슬퍼
나그네의 설움을 구비구비 자아내네
4.
서장대 오르니 찾는 사람 적은데
저녁 하늘 호국사 종소리 은은해
비탈 아래 흐르는 맑고 맑은 저 물에
우리네의 봄 꿈을 둥실 띄워보낼까
5.
우람하게 망진봉 우뚝 솟아 있는데
돋아 오는 아침 해 찬란하게 비추네
춘풍 추우 기나긴 지나간 그 옛날에
우리 조상 이 성을 굳게 지켜왔다네
6.
6.
진양 적벽 뒤벼리에 배를 띄워놓고서,
노세 노세 젊어 노세 때는 다시 안오네(시호시호부재래)
적벽부 읊조려 흥을 겨워하노니,
소동파는 그 누구 부러울 것 있으랴
에헤야 좋구나 얼씨구 좋구나
에헤야 좋구나 우리진양 강산이
ㅡ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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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악보만 남아 전해오던 옛 노래,
검색으로 기록들을 찾고, 불러본
진양성 찬가(진양 강산)입니다
ㅡ이재호님, 김계원님과 주상섭님 세분이
진주중고등학교,봉래초등학교 교사이셧고.
세분 모두 친분도 두터웠었고
음악교사.국어 교사로 활동,
(주상섭님 동생분의 부인 고영아님 증언)
ㅡ진주출신 이신 김계원님께서
남해로 발령, 그곳에서 남해금산
지명으로 개사한 노래도 불려졌음,
주상섭님은 부산으로 발령,
부산시내 학교 교가들도 작사,
이재호님은 작곡가로 활동**
진양 강산&진양성 찬가(진주)77_바구미 미디연주(원, Dm, 멜로디)
https://youtu.be/BzdJ4Mmoz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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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
진양 강산&진양성 찬가(진주)77_바구미 미디연주(두키반+, Gm)
https://youtu.be/EmKycu0iNr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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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
가사를 또 바꾸어야 할것 같습니다,,
보내온 가사를 보니까 여러군ㄷ가 조금씩 다른것 같아요,,
갈수록 햇갈리고 힘들어집니다.
아마도~
부르는이. 보관하던 이
따라배우면서 조금씩 가사를 바꾸어 부른것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 새로 온 가사는 5절의 3째 줄이 빠지고 없습니다.
전에 5절까지 잇을 때 같은 가사 중에서 채워넣긴 했는데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온 악보와 가사에 맞게 모두 바꿔놓았습니다.
노래도 다시 부르시라고 반주도 바꿔 놓았습니다.
멜로디가 맨 처음 악보와 비슷 한 것 같습니다.
엊그제 다시온 댓글에
6절의
빠진가사 들어있습니다
소동파는 그누구 부러우냐?
6절 가사는 다 왔는데
원본에 5절 가사 한 줄(3째줄 예상)이 없습니다.
지난번에 빠뜨린 것은 댓글 작성과정서 빠진 것이고 이번 5절은 그분 소장 책자에 누락입니다.
그분것은 6절만 참고하시면 댈것같아요ㆍ
김계원씨 본인이 작사작곡 하고
자신의 회고록같은 책에 쓰여졌던
가사들을 참고하시면 ᆢ
이번에 메일로 보내온 6절 가사와 악보는
그 당시 진주 보통여자고등학교 교사사시던
배상갑씨의 외삼촌?되시는 그 분을 추모하는 책을
그분 돌아가신후 만들었는데ㆍ
그 추모책에 쓰여진 가사라고 햇습니다ㆍ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1.09.19 06:39
파일에 1940년 1월3일은
1940년 10월 03일인듯 합니다.
그해 개천예술제 음악부문 예능에서 발표하면서
그날로 진주시내 전체로 퍼지고 .일대 군면까지도
울려퍼졌다는 기록도 보였는데.기록들 삭제된건지 찾지못함.
고영아(주상섭님 동생의 아내)씨 증언에 의하면
이 노래 실제 만들당시 그 전부터
작곡가 이재호. 주상섭. 김계원 세분은
아주절친으로 늘 함께 하셨다라고
(이재호.주상섭ㅡ진주중고 교사
김계원ㅡ봉래초등 교사.세분의 거주지 ㅡ봉래동)
기록참조의 ㅡ
김삼남❌️ 은~ 김상남⭕️ 입니다,
제가 오타를 썻던것같습니다.
고영아님은 봉래초등학교 바로 옆에
친정집이 있고 .지금도 조카들이 삽니다.
현 고영아님 사는 시댁인 집과의 거리는
몇백미터 남짓 (엎어지면 코닿는 거리)
고영아님 살고있는 집은
주변의 집들보다도 꽤 넓은편.
그집 뒤편 몇집 건너.얼마 멀지 않은곳에
남인수님의 사촌형이 살았었고.
요양차 지낼때는 그집의 아들(강동화.남음추)
손을잡고 고영아님 집의 동편 담장을 끼고있는
골목길을 따라 오가는 모습을 자주 보았었다라고.
(지금도 그집 있던곳에선.남강과 촉석루가
환히 잘보입니다.높은 집들이 생기긴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