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상 변호사가 《월간천관》에 '이청준문학관 건립을 위하여'라는 주제로 故 이청준 작가의 인물과 문학세계를 심층적 소개 중이다.
2022년 8월호를 시작으로 9월호, 10월호, 11월호, 12월호, 2023년 1월호, 2월호, 3월, 4월호, 5월호, 6월호, 7월호, (8월호 쉼), 9월호, 10월호, 11월 12월호, 2024년 1월호, 2월호, 3월호, 4월호, 5월, (6월호 쉼), 7월호, 8월호 이번이 스물세 번째 연재기고이다. (편집자 주)
이청준과 ‘도시, 고향, 육자배기 공간’
-이청준 문학관을 위하여(23)-
1. 소설가 이청준(1939~2008)
그는 장흥군 회진 진목리 태생으로 당시 '대덕 동초교'를 졸업하고서 홀로 대처 유학길에 올랐다. 중고등 시절은 광주에서, 대학시절은 서울에서 계속하여 고학으로 마쳤으며, 중간에 2년 군영생활을 거쳤다. <퇴원, 1965)으로 문단등단을 하고, <병신과 머저리,1996)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나름 문단입지를 얻었다. 1968년에 혼인하였으며, 서울에서 전업 작가로 생활하다가 <서편제, 1976> 와 <눈길, 1977〉 등을 통하여 그 독자들로 하여금 남도와 남도사람의 풍속과 더불어 고향과 가족을 되돌아보게 하였다. <빗새 이야기, 1977>의 '빗새'의 귀환이라 할 수 있다.
2. 서울 도시 공간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자랑스런 도회인'이 못되고, '얼치기 도회인'에 불과하였다. 학창시절 내내 벽지 시골의 빈곤한 집안 출신이란 열패감에서 벗어나질 못했다고 했다. 그 부친과 큰 형이 일찍 타계하는 등으로 가정적으로 불우했기에 당시 정치적 체제의 억압성까지 감안한다면 도시생활 서울생활은 그에게 너무 버겁고 잔인하였다. 그런 도시생활에 관하여 <거룩한 밤, 1977> <잔인한 도시, 1978> <살아있는 늪, 1978> <흐르지 않는 강, 1979> 등이 있다. <살아있는 늪> 경우는 고향을 다녀오 는 버스길에서 일어난 일들을 소재로 삼았기에, 얼핏 고향 체험담에 해당할 수 있지만, 그 공간을 고향 장흥으로 보든 서울 도시로 보든 대한민국으로 보든 사회체제적 후진성과 비책임성의 문제를 풍자하였다고 볼 수 있다. 산은 높이 솟구치고 강은 멀리 흘러야 마땅하건만, 서울의 한강은 서울, 그 <잔인한 도시>와 더불어 '흘러도 흐르지 않은 타락한 강'으로 <흐르지 않는 강, 1979)이었을 뿐이다. 다른 한편으로 서울소시민 입장에서 <등산기, 1967> <건방진 신문팔이, 1974> <뺑소니사고, 1974> <구두 뒷굽, 1974) 등도 남기긴 했다지만, <가면의 꿈, 1972> <예언자, 1977〉 등 억눌리면서 이중적이고 이원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던 서울 도시 생활이었다.
3. 고향 장흥 공간, 남쪽
그 어린 시절의 정체성은 어떠한가? 우선 그 고향의 '큰 산', '천관산' 체험에 관하여 <잃어버린 절, 1989>을 통하여 짐작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6,25전란에 관하여 그 큰 외슥 집안이 우익으로 몰려 가족 몰사를 당한 '백정시대' 체험이 있었다. 그 어린 시절 이청준의 추억과 회한은 <바닷가사람들, 1966> <침몰선, 1968> <나무위에서 잠자기, 1968〉 〈해변아리랑, 1985> <키작은 자유인, 1989)> <인문주의자 무소작씨 종생기, 2000> <들꽃씨앗 하나, 2002〉 등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한편 <눈길, 1977>은 그 내용상 관점으로는 '출향 소설'이지만, 그 발표시점에 있어서는 '귀향 소설'이라 하겠다. 그 <눈길> 발표를 계기로 이청준은 진정 고향의 품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된 것 아닐까? 평생 타향 빗속을 떠돌던 '빗새'가 드디어 고향의 동백나무를 찾게 된 <빗새 이야기, 1977>도 있었다. 한편 남쪽은 <잔인한 도시>의 주인공이 찾아가는 고향길 방향, <이상한 나팔수, 1969>의 주인공 병사가 아내를 위하여 트럼펫을 불어대는 방향으로 나온다.
4. 탈향과 귀향
그간에 그 고향을 버리고, 부인하고, 영영 떠나버린 사람들도 많았다. 또한 고향은 함부로 또는 쉽게 돌아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연습과 인내가 필요했다. <귀향연습, 1972> <여름의 추상, 1982> <집터, 1991> 등이 있다. 한편 <선학동 나그네, 1979>에는 그 본래 고향을 떠난 '유골'이 남모르게 돌아와 그 인연의 땅 선학동에 묻혔다고 했다. 이청준이 쓴 고향에 관련한 소설에는 자기 정체성에 관한 근원적인 모색과정이 상징화되어 있다. 그 역시 고향땅으로 돌아와 '남도사람'으로 묻혔다.
5. 남도의식, 남도공간 '남도사람'
<소설집 남도사람>이란 제목으로도 발표했다가 다시 연작집 제목을 <서편제, 1976>로 개명하였다. 소설가 이청준은 이른바 <택리지>라는 정치적 잡담 수준의 필사본은 물론이고, '남도사람'의 인간적 삶의 조건을 왜곡하는 지역차별적 판단에 대하여 일관성 있게 비판하였다. <굴레, 1966> <가학성 훈련, 1970> <목포행, 1971> <안질주의보, 1974> <춤 추는 사제, 1977〉 〈비화밀교, 1985〉 〈서편제 연작집> 등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청준의 소설과 에세이를 합쳐 보면, ‘목포, 진도, 완도, 해남, 강진, 장흥, 보성, 고흥, 여수’ 등에 걸쳐진 남해안 벨트 일대를 그 글감 소재로 전용했음을 알 수 있다. <서편제 연작>의 길만 하여도 ‘보성, 장흥, 강진, 해남’으로 두루 뻗어 있다. 이에 이청준에게는 이청준 특유의 '남도사람'과 '남도공간'이 있었다고 여겨진다. 그 '남도공간'은 지리적이면서 역사적인 실제적 공간인데다가 다시 이청준의 상상력과 인간적 품격이 보태진 가상적 문학공간, 즉 이청준 특유의 문학지도적 공간으로 설정해볼 수 있다. <안질주의보, 1974>는 서울의 예비군훈련장에서 일어난 해프닝으로 '남도사람'을 감별해내는, 자칭 '남도사람' 감별사에 관한 서글픈 이야기이다. '남도 사람'이 있음에도 '남도사람'을 자인하는 '남도사람을 찾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6. 자기정체성을 위한 '밀실'공간
도시생활이든 귀향생활이든 자기정체성을 위한 밀실공간 또는 도피공간이 필요하건만 정작 쉽게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퇴원, 1965> <가면의 꿈, 1972> <예언자, 1977> <빈방, 1979> <지하실, 2005> 등이 있 다. 한편 이청준은 <에세이집, 사라진 밀실을 찾아서, 1994>에서 '혼자만의 밀실 필요성'을 역설했다. 조용한 어느 봄날, 집안의 빈 헛간 구석, 햇볕 가득한 가을철 마당가의 짚더미 뒤켠이나, 겨울철 저녁녘의 따뜻한 쇠죽솔불 아궁이 앞, 혹은 도두락 도두락 눈빗발 소리가 문창지를 두드려대는 뒷골방 아랫목 이불 속. 유년 시절 이따금 혼자 찾아 즐기던 은밀한 장소들이다. 그런 것을 찾아 조용히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앉아 있노라면 괜히 안심되고 아늑한 기분이 되곤 하였다. 적적하고 적막하기 보다 그것이 외려 알뜰하고 달콤한 나의 작은 왕국처럼 느껴지곤 하였 다. (중략) 하지만 사람은 언제까지나 자기만의 깊은 밀실 속에 늘 혼자 숨어 살 수 없는 족속이다. 정상적인 성인의 세상살이를 위하여 누구나 언젠가는 밝고 넓은 세상으로 그 밀실을 나와야 한다. (중략)
그러나 내가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은 그 반대의 경우를 이야기 하고 싶어서다. 바깥 세상살이를 나왔다가 어찌어찌하다보니 이젠 그 밀실로 되돌아갈 통로를 빼앗겨버리고만 격이랄까? 나는 이즈음 그 자기 격리와 침잠, 그리고 즐거운 상상과 창조의 공간을 깡그리 잃고 사는 형편인 듯싶기 때문이다. 세상이 그렇게 변하고 만 것이다.(후략)
7. '육자배기 가락'과 공간
이청준이 특별하게 언급한 것으로 남도지방의 특유의 '육자배기' 공간이 있다. 그런 육자배기에 관한 개인적 체험을 밑바탕 삼아 <해변아리랑, 1985>이 이루어졌을 것. 이청준은 "언제나 유장한 육자배기의 노랫가락"이라 하여 그 육자배기의 본질을 '육자배기의 가락'에 두고 있다. 그런데 위 육자배기는 앞서 언급한 <소설 안질주의보, 1974>에도 등장했다. 남도출신이 아닌 어떤 사람이 남도출장을 다녀와서 "남쪽 바닷가 지역은 뭔가 눈에 띄게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남도 육자배기 같은 사람들 같다. 육자배기 같은 생김새들이다. 정말 생김새이고 표정이고, 거동이고 육자배기를 부르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이 에 그 말을 듣게 된 <나>는 모욕감을 느끼고 화가 났다. 그는 다시 덧붙인다. "아직도 내 말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군, 하기야 육자배기를 모르니까... 그래 그런지 자넨 내가 보아도 영 그 쪽 사람 같은 덴 한 가지도 없는 인간이거든" 이청준은 그 소설을 마치고 나서도 할 말이 남았던 것일까? 그 <작가 노트>에서 <해변의 육자배기>를 설명하고 있다. 작가 노트 <해변의 육자배기>는 <이청준 산문제, 광대의 가출, 1993>에 편제된 <어린 날의 추억독법> 부분에 <해변의 육자배기>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그 글 내용으로 보면, 작가노트 <해변의 육자배기>가 소설 <해변 아리랑, 1985>의 밑바탕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청준 선생님도 진작 떠나가시고 2024년경에 이른 요즈음에 우리들은 과연 '육자배기 가락'과 '육자배기 공간'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육자배기 가락을 모르는 육자배기 사람들일까?
박형상 변호사(前 서울중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