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음漢陰1)에 대한 만사
깊은 산에 떨어진 신세로 말로 어루만지려 淪落窮山舌欲捫 윤락궁산설욕문
소리를 삼켜 남모르게 한원군을 곡하노라 呑聲暗哭漢原君 탄성암곡한원군
슬퍼하는 글 감히 분명 말하지 못하는 것은 哀詞不敢分明語 애사불감분명어
경박한 풍속은 남이 엿보고 말 짓기 좋아함이라. 薄俗窺人喜造言 박속규인희조언
*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 : 조선시대 이조판서, 우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561년(명종 16)에 태어나 1613년(광해군 5)에 사망했다. 1583년(선조 16)에 사가독서를 했고, 임진왜란이 나자 명에 가서 파병을 성취시킨 뒤 명장 이여송의 접반관으로 줄곧 동행했다. 정유재란 때에도 명군과 울산까지 동행하며 그들을 위무했다. 이순신의 하옥 때는 그를 적극 변호했고, 전란 뒤 민심수습과 군대 정비에 노력하며 대마도 정벌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항복과 함께 영창대군의 처형과 폐모론을 적극 반대하다가 관직이 삭탈되고 얼마 뒤 세상을 떠났다.
* 오성대감이 한음 대감을 만난것은 1580년의 문과 별시에 급제했을 때라고 전한다.
1613년 박응서의 상변으로 삼사에서 영창대군을 처형할 것을 상소하고, 이이첨 등이 폐모론을 일으키자, 이항복과 함께 이에 적극 반대했다. 그뒤 광해군이 그의 주청에 따라 영창대군을 강화도로 보내자, 삼사가 모두 그의 처형을 주장했으나, 광해군은 관직을 삭탈함으로써 이를 수습했다. 그 뒤 龍津용진(함경도 문천군 지역) 으로 돌아가 병으로 죽자, 광해군이 슬퍼하면서 관직을 복원하도록 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