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CD를 찾아 책 먼지를 털어낼 때 사용하는 빗자루를 이용하여 먼지를 쓸고 물수건으로 닦아냈다. 케스를 열어 CD를 닦는 천으로 말끔하게 처리한 후 5장의 CD를 넣고 스위치를 작동시켰다. 이 CD 중에 앤드류 넬슨 작사, 작곡 No metter what 흘러나왔다. 이 노래는 슈퍼스타 k2 출신 앤드류 넬슨이 부른 노래이다. 그리고 이 가수의 아버지 앨런 넬슨이 작곡, 작사를 하여 이태석 신부께서 강한 헌신의 봉사와 선교의 자리를 남긴 아프리카 수단 톤즈에 헌정한 노래다. 이 곡으로 얻어지는 수익금 전액도 톤즈에 있는 고 이태석 요한 신부님의 마을을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정해 두었다. 그리고 헌정 이후에도 미국에 있는 자선단체와 스마일 톤즈 프로젝트를 위해 협력을 아끼지 않고 있는 중이다. 가사를 한글로 적어 보면 다음과 같은 뜻을 지니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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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네가 없고 내일을 맞이할 용기가 없고 상처투성이인 삶이 너를 찾아오지
고통과 두려움이 밀려오는 것을 넌 숨기려 하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막막할 거야
이 삶이 견디기에 너무 힘들어 보일지라도 네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봐 널 아끼는 사람이 있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우린 네게 힘이 되어 줄 거야
그리고 더 밝은 날이 네게 올 때까지 우리는 멈추지 않을 거야
아무리 먼 곳에 있어도 괜찮아 걱정하지 마....
Sometimes you feel like
you can't face another day
Battered and broken by
what life has brought your way
You try to hide it
as your pain and fears collide
You wonder how or
even if you can survive
just when it seems as though
this life's too hard to bear
Search deep inside your heart
and know that someone cares
We will reach out to you
no matter what it takes
And we won't stop until
we bring a brighter day
No matter how far away
no matter how far
No matter how long it takes
no matter how long
Whatever the cost
no matter how high
Together with love
we'll dry your eyes
We will be there for you
No matter what
And when darkness clouds your eyes
As the storms of life they rage
Don't you give up the fight
'Cause love is on the way
When you feel so all alone
And it seems all hope is gone
Just keep holding on
We'll reach you with our hearts
No matter where you are
No matter where you are
No matter how far away
no matter how far
No matter how long it takes
no matter how long it takes
Whatever the cost
no matter how high
Together with love
we'll dry your eyes
We will be there for you
No matter what
No matter how far away
no matter how far
No matter how long it takes
no matter how long it takes
Whatever the cost
no matter how high
Together with love
we'll dry your eyes
we'll reach out our hands
we won't let you fall
Together as one
we'll answer the call
We will be there for you
We will be there for you
No matter what
달빛이 빈가지에 내려앉고 처마밑 둥지를 다른 동족에게 빼앗긴 새는 유리창 밖에 놓인 빈바구니 안에 앉아 졸고 있는 고요함에 퍼지는 음률은 지나간 기억을 소환하고 있었습니다. 울지 마 톤즈~~ 끝 자막이 스쳐 내려가고 불이 켜질 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하고 눈물자리를 수습하고 앉아 있었습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시청객은 자리를 제대로 일어서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나 자신이 부끄럽다는 죄의식과 꽄 집어 설명할 수 없는 그리움이 순간적으로 몰려왔기 때문이었습니다.
눈물을 수습하지 못하고 자리를 뜨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요한 신부님께서 전해 주시는 메시지가 너무나 뭉클하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신부가 아니더라도 의술로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는데 한국에도 가난한 사람들도 많은데 왜 아프리카까지 갔느냐는 자주 받는 질문에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나의 삶에 영향을 준 아름다운 향기가 있다. 가장 보 잘 것 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프리카에서 평생을 바친 슈바이처박사 어릴 때 집 근처에서 본 고아원에서의 신부님과 수녀님의 헌신, 마지막으로 7남매를 위해 희생하신 어머니의 고귀함 삶 이것이 내 마음을 움직인 것이 아닌가 한다. -
이 다큐멘터리 제작자는 내레이션과 자막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이 사람들에게(톤즈 사람들) 와서 꽃이 된 한 남자를 이 사람들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오늘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서재로 가 장비 세트를 들고 와 노트북과 연결한 후 usb를 꽂고 스크린을 내렸습니다. 또 눈물을 흘릴 것을 대비하여 식탁 위에 있던 크리넥스를 옮겨 놓고 잔술 두 잔을 만들 수 있는 양의 먹다 남긴 술병도 옮겨 놓았습니다. 그리고 양평 모 수도원에서 요양하실 때 적어 놓았던 요한 신부님의 약력 메모를 책갈피에서 꺼내 들고 왔습니다.
1961년 : 9월 19일(음력) 부산에서 출생, 1981년 : 부산 경남고등학교 졸업, 1987년 :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1991년 : 살레지오 수도회 입회, 1992년 : 살레시오회 소속으로 광주가톨릭대 입학, 1993년 : 살레시오회 수도자로 수련 시작, 1997년 : 로마유학(교황청립 살레지오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 수학), 2000년 : 종신서원(하느님 앞에 자신의 삶 모두를 살레시오회 수도자로 봉헌할 것을 맹세함), 2000년 : 부제서품(로마에서 서품. 살레시오회 소속), 2001년 : 사제서품(서울에서 서품. 살레시오회 소속) 2001년 : 아프리카 남수단 선교 사제로 톤즈 도착, 2005년 : 제7회 인제인성대상 특별상 수상, 2008년 : 휴가 차 귀국 후 대장암 3기로 투병, 2009년 : 제12회 한미자랑스러운 의사상 수상, 2010년 : 선종(1월 14일)
살핀 후 눈을 감고 잠시 기도 후 점등 시켰습니다. 빛이 흔들리며 떠 오른 화면에 신부님의 일상이 신부님의 선교 알기장을 살펴보듯 떠오르며 톤즈에서 생활이 펼쳐졌습니다. 남수단에 살고 있는 현지인들은 신부님의 직업을 각각 다른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는 일을 해놓으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신부로, 음악가로, 건축가로, 의사 등의 신분으로 또는 청소년을 위한 지도자로 생활하셨기에 현지인들 조차 직업의 구분성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학교도 신축하고 미완으로 남은 교실도 남겼지만... 정보를 공유하며 부족끼리 싸울 일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라디오방송국도 TV 방속국까지 계획하였던 일들 다음세대를 책임질 청소년 교육은 꿈과 행복의 공유를 성취해 줄 것이라는 믿음에서 시작한 정소년들과의 공동체 등은 섬김의 리더십이라는 강한 전율을 느끼는 사목이었습니다. 그러한 사실들이 울지 마 톤즈라는 다큐멘터리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다시 보면서 나의 눈은 다시 수도꼭지가 댄듯합니다. 회개의 시간에 빠져들수록 몸들 바를 모를 부끄러움에 영향으로 지신에게 치를 떨어야 하였습니다. 생각한 대로 꼬박 밤을 지새우며 보는 내내 회개의 광풍에 꼼짝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신부님께서는 늘 의사라는 직책은 취미에 불과함으로 직분에 충실하되 스스로 매몰되지 않고 청소년 소녀들과 공동체에 심혈을 기울여 밝은 미래 초석을 만들 수 있는 역량을 달라고 기도를 하셨습니다. 또한 고국의 지인들에게 부탁하여 노트북 등을 헌정받아 컴퓨터 교실과 교육에 대하여 준비도 해두었지만 미완으로 남기시셨던 일들 때문에 자신의 말기암 치료 보다 톤즈에 대한 걱정을 놓지 못하셨던 분이 바로 신부님이셨습니다. 흩어져 숨어 지내던 나병환우들을 위하여 거처를 만들고 바쁜 격무 중에도 잊지 않고 찾아 가 약을 처방하고 치료해 주며 환자와 의사의 관계는 영혼과 영혼의 일치적 관계라 하시며 정성을 다하신 일도 돌아갈 수 없는 자신의 병에 대한 염려보다 톤즈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일에 염려를 달고 지내시기도 하셨습니다.
신부님께서 행하신 모든 톤즈에서 성무는 국경, 이념, 빈부를 초월한 사랑 그 자체였으며 현지인들의 마음을 경청하셨고 진심으로 대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것은 어느 것 하나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무욕 즉 무소유의 삶의 철학을 바탕으로 톤즈 청소년, 소녀 그리고 모든 현지인의 처한 고통과 아픔을 함께 공감하는 능력자이셨습니다. 공감은 연대의 공동체로 거듭나 절망에서 희망으로 증오에서 사랑으로 나가는 길을 만드신 것입니다. 진실한 섬김의 리더로서의 모습을 이 세상 사람들에게 남기신 것입니다.
미완의 일들을 뒤로하고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 선종하셨으나 선종과 함께 멈춰진 것이 아니라 숨을 고른 후 신부님은 다시 부활하셔서 영혼의 건재하심을 증명하여 주셨습니다. 신부님께서 소망하시던 일들은 하나 둘, 셋... 전부 실현되었고 비약적인 발전으로 거듭나고 있는 중입니다. 신부님의 목적은 세상을 평화롭고 정의로운 그리고 함께 행복하게 사는 일이었습니다. 어느 지도자도 할 수 없는 일을 단신으로 아프리카 톤즈에서 만드신 것입니다. 그래서 신부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나 자신이 부끄러운 삶을 살고 있고 살았다는 자괴감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더 좋은 세상이 꼭 필요하다는 것과 그러한 세상을 만들어 가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몸소 실천하며 보여주신 분이 바로 신부님이셨습니다. 당신이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겨울바람이 지붕을 스치며 날리는 하얀 가루 여명에 부딪쳐 금실이 되어 나부끼는 모습처럼 아름다우신 신부님이셨습니다.
엄동 깊은 밤 산막에 숨죽이며 살피던 스크린 속의 그림이야기들은 삶의 고귀한 경전으로 되새김으로 다가왔습니다. 산막의 고요함이 좋아 배경음악으로 삼으려 찾은 CD속에 녹음해 두었던 노래 No matter what이 소환한 이태석 요한 신부님께서는 다시 저를 부끄러운 사람임을 환기시켜 주셨습니다. 지금 저는 성찰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응답을 드리기 전 봄이 오는 길목에 서울을 떠나 담양으로 찾아뵙고 부산으로 자리를 옮겨 신부님의 길을 걸으며 회개의 끝 자리를 마련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신부님처럼 부활의 증거를 늦었지만 남기려는 결심을 세우며 산막에서 새날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이들의 스승이 되신 신부님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