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아들에 대한 제문
경진년 11월 기축삭(己丑朔) 24일 임자에 죽은 아들 숭겸(崇謙)의 널이 양주(楊州)의 새로 잡은 언덕을 향해 발인할 예정이기에, 그보다 이틀 앞선 경술일에 늙은 아비가 눈물을 흘리며 다음과 같이 글을 지어 술과 음식을 올리고 영결하는 바이다.
아, 숭겸아, 너는 지금 어디로 가려느냐? 도성문을 나가 동으로 30리를 가면 있는 중령포(中泠浦), 망우령(忘憂嶺), 왕숙탄(王宿灘), 북두천(北斗川)은 모두 네가 일찍이 나귀를 타고 오가던 곳인데, 지금은 어찌하여 널에 누워 그 길을 가게 되었단 말이냐. 삼주(三洲) 집 주위의 3, 4리 거리에 있는 서골암(棲鶻巖), 난가대(爛柯臺), 금대산(金臺山), 판사정(判事亭)은 모두 네가 일찍이 시를 읊으며 경치를 조망하던 곳인데, 지금은 어찌하여 널에 누워 그곳에 머물게 되었단 말이냐.
6월 말에 네 어미가 서울에 들어갈 적에 너는 누이들과 함께 어미를 따라 갔는데, 20일이 채 못 되어 오 서방(吳書房)의 처가 갑자기 죽는 바람에 나는 너와 함께 가서 광주(廣州)의 언덕에 장사 지냈다. 그런데 지금 또 100일이 채 못 되어 네가 죽어서 늙은 아비 혼자 널을 붙들고 장사를 치르게 하다니, 아, 화변(禍變)의 혹독함과 인사(人事)의 일정치 않음이 어쩌면 이리도 심하단 말이냐. 네가 이미 자식이 없이 죽었으니, 내가 죽은 뒤의 일을 알 만하다.
오직 아비와 자식이 한곳에 묻혀 백대 뒤에까지 체백(體魄)이 서로 의지할 수 있게 했으면 하는 것이 나의 큰 바람인데, 선영은 자리가 다 되어 더 이상 관을 수용할 언덕이 없었다. 이에 선영은 놓아두고 멀리서 찾으려고 하였으나 힘이 또 미치지 못하였다. 지금 다행히 봉두산(鳳頭山) 기슭에 묏자리를 얻었는데, 한 언덕 위아래로 혈 두 자리를 쓸 수 있고 지관(地官)들도 모두 좋은 자리라고 하였다. 그래서 이제 너를 아래 혈에 묻고 위 혈은 내가 죽은 뒤에 쓰려고 한다. 이곳은 석실(石室)ㆍ설곡(雪谷)의 큰 무덤들 및 삼주(三洲) 집과의 거리가 대략 몇 리에 불과하니, 너는 행여 이 점을 위안 삼아 외롭다고 서글퍼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아, 숭겸아, 끝장이구나, 끝장이구나. 재주는 많은데 복록은 적고 계책은 원대한데 이룬 것은 얼마 되지 않아서 한을 품은 사람이 세상에 어찌 없겠는가마는 너처럼 슬픈 경우는 예로부터 드물었다. 준수한 자품, 영특한 기질, 통달한 식견, 원대한 뜻을 백 가지 중에 하나도 발현하지 못했는데, 이제 두꺼운 땅속에 묻혀 장차 세속의 범상한 이들과 똑같이 허무하게 사라지고 만단 말이냐? 옛날 재능 있는 사람과 뜻 있는 선비들이 세상에 쓰이지 못하고 죽어도 영원히 이름이 전해진 것은 저술이 후대에 전해졌기 때문이다. 너는 문장에 힘쓴 지가 그다지 오래되지는 않았으나 뛰어난 재능으로 빨리 성장하여 옛 문인들의 기상과 격조를 단기간에 익혔는데, 흩어지고 남은 것 중에 그래도 2, 3백 편의 작품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안목을 갖춘 이가 없어 대체로 작자의 나이와 지위를 기준으로 글의 경중을 판단하곤 한다. 너는 일개 포의(布衣)로 약관의 나이에 죽었으니, 네 시가 아무리 기록할 만하다 한들 또 누가 채록하겠으며 누가 전수하겠느냐. 그리고 만일 후대에 전해진다 하더라도 후세 사람들이 자안(子安 왕발(王勃)), 장길(長吉 이하(李賀)) 등과 같은 무리로 보고 만다면 네가 지녔던 인품과 뜻이 끝내 천년 뒤에 드러나지 못할 것이니, 어찌 슬프지 않겠느냐, 어찌 슬프지 않겠느냐.
나는 오 서방의 처를 잃은 뒤로 정신력이 완전히 떨어지고 질병이 더욱 심해졌는데 지금 또 너를 잃고 보니 허전하고 망연한 것이 마치 바보 같고 미치광이 같아서 더 이상 정상적인 사람 같지가 않다. 그런데 지금 또 이 서방(李書房)의 처가 숨이 끊길 듯 병이 날로 심해져서 조석으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니, 마음이 목석이 아닌 이상 그 고통을 어떻게 감당할 수가 있겠느냐. 그 때문에 너를 보내는 마당에 말이 마음처럼 제대로 나오지 못하였으니, 너는 이 점을 서운하게 여기지 말고 부디 내가 올리는 술 한 잔을 흠향하기 바란다. 아, 슬프다. 아, 애통하다. 부디 흠향하거라.
祭亡兒文
維歲次庚辰十一月己丑朔二十四日壬子。亡兒崇謙之柩。將靷向楊州新卜之原。前二日庚戌。老父涕泣爲文。以侑酒食之奠而與之訣曰。嗚呼崇謙。汝今惡乎往矣。出國門而東三十里。中泠之浦。忘憂之嶺。王宿之灘。北斗之川。此皆汝所嘗騎驢而往來者也。今奈何以柩而就斯路也。環三洲之宅數四里。棲鶻之巖。爛柯之臺。金臺之山。判事之亭。此皆汝所嘗吟詩而眺望者也。今奈何以柩而停其間也。六月之末。汝母入京。汝與諸姊妹隨之。不兩旬而吳妻遽死。吾與汝同往。送葬于廣州之阡。今又未百日而汝死。獨使老父扶櫬而送葬。嗚呼。禍變之酷。人事之不可常。何若是之甚哉。汝旣無子而死。吾身後事。其可知矣。唯父子同葬一處。使百世之後。體魄相依。此爲大願。而先山地盡。無復容棺之丘。捨而遠求。力又不逮。今幸得地於鳳頭山之麓。一岡上下。可扦兩穴。術人皆稱其佳。今將以汝葬於下穴。而其上者。以爲吾身後計。此去石室雪谷諸大墓及三洲之宅。要不過數里許。汝尙以是爲慰而不自傷其孤孑也耶。嗚呼崇謙。已乎已乎。豐才薄祿。長算短造。抱此恨者。世豈無之。而如汝可哀。終古所罕。俊偉之資。英邁之氣。敏達之識。遠大之志。百不一見。埋之厚壤。其將與俗子庸夫 同歸於泯滅而已耶。抑古之才人志士。雖或不試而死。所賴而不朽者。以其著述傳於後耳。汝於詞章。用力不甚久。而奇健驟長。駸駸乎古作者氣格。散軼之餘。尙可得數三百篇。然世無具眼者。類以年位爲重輕。汝以一布衣。死於弱冠。其詩雖可錄。又孰採而孰傳之耶。且使得傳於後。後之人。不過與子安,長吉之徒。一例視之。則是汝之所存。終無以表見於千載之下矣。豈不悲哉。豈不悲哉。余自哭吳妻。精神都喪。疾病益深。而及夫哭汝。則忽忽茫茫。如癡如狂。無復有生人意思矣。今又李妻之病。日益㱡㱡。朝夕待盡。心非木石。何以堪此。玆當送汝。言不能盡意。汝母以是缺然。而尙歆余之一觴也。嗚呼哀哉。嗚呼痛哉。尙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