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석과 지팡이를 하사하는 글 賜几杖書
만력 43년(1615, 광해군7) 2월 7일 萬曆四十三年二月初七日
수성결의분충효절정운 공신(輸誠結義奮忠效節定運功臣)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좌의정 겸 영경연사 감춘추관사 세자부 서령부원군(議政府左議政兼領經筵事 監春秋館事 世子傅 瑞寧府院君)에게 안석과 지팡이를 하사하고 다음과 같이 교서를 내리노라.
철인을 보필로 삼아 이미 대신의 임무를 맡겼는데, 원로가 돌아가기를 고하니 예의상 궤장을 후히 하사하는 것이 마땅하오. 이에 노쇠한 몸을 도울 도구를 내려 이로써 덕을 숭상하는 규범을 다하노라. 아, 이 예의는 황제(黃帝) 때에 시작되어 주(周)나라 때에 갖추어졌도다. 한(漢)나라는 탁무(卓茂)를 기리어 높은 나이를 드러내었고, 진(晉)나라는 위서(魏舒)를 총애하여 오랜 소망을 빛낼 수 있었소. 순백으로 그의 고결함을 비긴 것은 모개(毛玠)의 맑은 표상이요, 옥으로 온화함을 비유한 것은 원봉(袁逢)의 온화한 도량이었소. 더욱이 이 숭상할 만한 달존(達尊)을 어찌 옛날의 미덕으로 똑같이 논할 수 있으리오.
생각건대 경은 유학의 정종(正宗)으로 산림에 은둔해 지내왔소. 삼공(三公)에 마땅한 상(象)으로 권형(權衡)에서 태평의 기운을 열었고, 여덟 기둥으로 하늘을 떠받치어 무성한 공훈이 종정(鍾鼎)에 드러났소. 서릿발 같고 타는 해 같은 기상은 사람들이 그 곧은 소리에 승복하였고 봉황 같고 기린 같은 기상은 세상 사람들이 다투어 먼저 보려고 하였으니, 어찌 다만 조정에서만 모범이었겠소? 또한 사류의 본보기가 되기에 마땅하오.
신야(莘野)에서 이윤(伊尹)을 구하듯 과인이 누차 경을 부른 것은 깊이 도를 구하려는 것이었는데, 경은 부열(傅說)이 부암(傅岩)에서 일어난 것처럼 다시 일어났으니 거의 제천(濟川)의 바람에 부응한 것이오. 나라의 주인은 새롭게 바뀌었으나 황각(黃閣)의 전형은 옛 모습 그대로였소. 잇달아 올린 상소와 차자는 모두 임금을 경계시키는 글이었고, 크고 광대한 계획과 논의는 다 경륜의 계책이었소. 서로 그윽이 느끼는 감정은 실로 고기가 물을 만난 것보다 깊고, 번창하게 발전할 기약은 때맞춰 용이 구름을 얻은 것과 같았는데 뜻하지 않게 발길을 돌리다니 현인에 대한 나의 호의를 생각지 못한 것이오.
위수(渭水)에서 낚시를 하던 강태공은 일찍이 치사를 청하지 않았고, 속백으로 맞아온 신공(申公)은 늙은 나이가 무슨 방해가 되었소? 늙어감에 매양 보고 싶어 탄식이 나오니 현인을 그리워하고 너무 믿었던 것이 병이 되었소. 삼동의 먼 길을 멈추게 하지 못하니 8월의 옛 법규를 비로소 거행하노라. 오피궤(烏皮几)는 깨끗하고 매끄럽지만 단지 지체의 편안함을 구하는 것일 뿐이요, 비둘기 조각의 영롱함이 어찌 눈썹보다 더 높은 지팡이의 완상만을 취한 것이겠소. 인과 덕에 의거하여야 진실로 위태함과 어려움을 부지할 수 있는 것이오. 이필(李泌)의 양화궤(養和机)도 이에 비하면 총애가 아니요 공광(孔光)의 영수장(靈壽杖)도 이에 비하면 부끄럽소.
북해의 먼 곳에 물러나 지내면서도 꿈에는 몇 번이고 하늘가를 돌았을 것이며, 동고(東皐)에 쉬고 있으면서도 임금 곁에서 보필하기를 바랄 것이오. 하물며 나라가 어려운 때를 당하여 반드시 충량(忠良)의 도움에 의지해야 하고, 한재가 거듭 닥쳐 백성이 흩어졌으며, 국옥이 잇달아 일어나 뭇 심정이 의혹해하고 있는 때임이겠소. 경연을 열기도 전에 초례(楚醴)를 이미 사양하였으니, 잠시 주연(胄筵)은 열었지만 상산사호는 어디에 있단 말이오. 바라건대 그대는 나의 전교를 어기지 마시오. 진실로 오직 경의 마음이 돌아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소. 흰머리 흰 눈썹은 아직도 서울에 오던 날을 생각나게 하고, 눈길 얼음길은 한강을 건너던 때를 길이 생각나게 하오.
아! 진퇴는 자신에게 달려 있으며, 행장(行藏)은 도를 말미암는 것이오. 은거하려던 맹자도 머물게 하고자 하는 데에 싫증내지 않았고, 지팡이 꽂고 김매던 일사(逸士)는 종적이 영영 가버리는 것을 혐의롭게 여겼소. 세밑 겨울철에 길을 빨리 가지 말고 봄날이 따뜻해지거든 가마를 돌리기 바라오. 선온(宣醞)을 전수(餞需)와 함께 내리고 승지와 내관을 함께 보내니, 겉치레로 하는 것이라 이르지 말고 마음속으로 주는 뜻을 체득하기 바라오. 그래서 이 교시를 내리니 자세히 알았으리라 생각하오.
賜几杖書 萬曆四十三年二月初七日
敎輸誠結義奮忠效節定運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左議政兼領經筵事,監春秋館事,世子傅。瑞寧府院君賜几杖書曰。哲人作輔。任旣委於股肱。元老告歸。禮宜敦於几杖。肆錫養衰之具。庸殫崇德之規。粤從黃帝之創成。抑有蒼姬之備設。漢褒卓茂。式顯高年。晉寵魏舒。克彰宿望。素能比潔。毛玠淸標。玉以喩溫。袁逢沖度。矧此達尊之可尙。寧將往美而同
論。惟卿洙泗正宗。邱園嘉遯。三台應象。啓泰運於權衡。八柱衝霄。著茂勳於鍾鼎。秋霜烈日。人服直聲。威鳳祥麟。世爭先覩。豈但模楷於朝著。亦當矜式於士林。莘野屨徵。方深求道。傅巖再起。庶副濟川。金甌之姓字維新。黃閣之典刑仍舊。連章累箚。無非訓誥之文。碩畫宏謨。儘是經綸之策。冥感實深於魚水。昌期幸會於龍雲。不圖赤舃之旋。罔念緇衣之好。投竿渭叟。曾未乞骸。束帛申公。何妨過耆。遲暮每歎於相見。幽貞竟崇於交孚。三冬之遠邁莫停。八月之舊章載擧。烏皮淨滑。祗求支體之安。鳩刻玲瓏。詎取過眉之玩。可以依仁據德。固能扶難持危。李泌養和。尤斯非寵。孔光靈壽。方此愧榮。北海安憑。夢幾回於天末。東皐流憩。望應惱於日邊。況當邦國之艱屯。必賴忠良之協贊。旱災疊至。萬姓流離。鞠獄相仍。羣情疑惑。未開經幄。楚醴已辭。暫設胄筵。商顔何許。願勿違於承敎。誠只切於回心。皓首厖眉。尙記來京之日。雪程氷路。長思渡漢之時。於戲。進退在身。行藏由道。鄒賢隱臥。言莫厭於欲留。逸士植耘。跡應嫌於長往。窮陰殺節。無疾行旌。春日載陽。庶回高駕。宣醞同餞需幷賚。代言與內宦俱行。莫云外貌之爲。冀體中心之貺。故玆敎示。想宜知悉。
출전 : 한국고전번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