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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롬 4:1-8)
1.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주 제 /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말한다.
Ⅰ. 성서주일의 유례
‘성서주일’의 유례를 알고자 하여 ‘한국성서공회’ 홈페이지를 열람해 보았다.
18세기 말엽 영국의 웨일즈 지방에 ‘메리 존스’(Mary Jones)라는 소녀가 살고 있었다. 이 소녀는 매주 교회에서 성경 배우는 것을 최고의 즐거움으로 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일학교 선생님으로 부터 “성경을 미리 읽고 온다면 더욱 유익할 것”이란 말씀을 듣고는 “나에게도 성경책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얼마 후, 성경공부를 하던 중 자신은 마태복음 1장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 말씀이 마태복음 2장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더더욱 성경책을 가지고 싶었다. 이웃 마을에 살고 있던 ‘이반스 부인’이 ‘메리 존스’의 이야기를 듣고는 일주일에 한 번씩 자기 집에 와서 성경책을 읽어도 좋다고 허락했다. ‘메리 존스’는 3Km를 걸어가서 성경을 읽었고 그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그러나 돌아올 때에는 언제나 허전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메리 존스’는 성경책을 사야겠다고 결심하고 그때부터 닭을 키우고 나무를 해서 파는 등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런데 돈이 좀 모아지면 집안에 돈일 필요한 일이 생겨 번번이 모았던 돈을 내놓아야 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모은 결과 6년 만에 성경책을 살만한 돈이 마련되었다. ‘찰스 목사님’에게 가면 성경책을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메리 존스’는 돈을 들고 30Km나 되는 길을 단숨에 달려갔다. 그런데 ‘찰스 목사님’은 성경책을 팔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미 출판된 성경책은 모두 팔렸고, 앞으로 언제 출판하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메리 존스’는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 그러자 ‘찰스 목사님’은 하는 수 없이 자신이 보던 성경책을 주었다. ‘메리 존스’는 집으로 돌아와 그 성경책을 ‘메리 존스의 성경책’이라 부르며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메리 존스’에게 성경책을 주었던 ‘찰스 목사님’은 1802년 런던에서 열린 ‘영국기독교서회’ 회의에 참석해서 ‘메리 존스의 이야기’를 하였고, 그리고 그로부터 2년 뒤인 1804년 3월 7일에 성경보급이야 말로 하나님이 주신 사명임을 깨달은 300여명의 목사님들이 모여 ‘영국성서공회’를 설립했다. 이렇게 설립된 영국성서공회는 뜻있는 사람들의 후원을 받아서 성경책을 출판하고 저렴한 가격에 공급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1904년 ‘영국성서공회’는 성경발간 100주년을 맞이하여 12월 5일을 ‘성서주일’로 공포했다. 그리고 우리 한국교회는 대림절 둘째주일인 12월 둘째주일을 성서주일로 지키고 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그렇다면, 성경이 무엇이기에 우리는 성서주일을 지키고 있는 것일까? 성경이 무엇이기에 하나님은 한 소녀에게 성경에 대한 열정을 심어주셨는가? 성경이 무엇이기에 하나님은 여러 목사님들에게 동일한 감동을 주어 성서공회를 설립하여 성경을 널리 보급하게 하셨을까? 디모데후서 3:15을 보라.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딤후 3:15)
“…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제공한다. 성경은 우리를 믿음의 세계로 인도한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준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 소녀에게 성경에 대한 열정을 심어주셨고, 여러 목사님들에게 성경보급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인 것을 깨닫게 한 것이다.
Ⅱ.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가? (롬 4:1-8)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믿음’이라고 해서 모두가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될 수 없단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은 어떤 믿음이 구원에 이르는 지혜라고 말하는 것일까? 오늘의 본문 로마서 4:1-8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어떤 믿음인지를 말한다.
1.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 구원의 지혜이다. (롬 4:1-3)
첫째,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 ‘구원의 지혜’라고 말한다. 로마서 4:3을 보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롬 4: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지 않는가?” 바울이 여기서 ‘성경’은 ‘구약성경’이다. 바울 당시의 유대인들과, 그들의 영향을 받은 크리스찬들, 그리고 이방종교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까지 한결 같이 율법을 준수함으로써 하나님의 복을 받고,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을 했다. 오늘날도 율법주의자들이 있다. 주일성수해야 복과 구원을 받으며, 십일조를 해야 복을 받고 구원을 받으며, 봉사활동을 해야 복을 받고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율법의 목적은 복과 구원이 아니라는 점이다. 율법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시기를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이스라엘에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에, 이스라엘이 홍해에서 두려워 떨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이 법을 지키면 구원해 주겠다”라고 율법을 제시하셨는가? 만약 그랬다면, 율법은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한 다음에, 홍해에서 구원한 다음에 그들에게 율법을 제시하셨다. 즉, 율법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에 대한 응답’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율법주의자들은 자신들의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자기들의 조상 아브라함도 그렇게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아브라함’이 모든 사람들에게 모범이 될 만큼 올바르게 살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아브라함은 문명이 발달된 ‘갈대아 우르’에서 살고 있었으나 문명이 낙후된 ‘가나안’으로 옮기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명령하셨을 받았을 때에도 침묵 중에 순종했다. 조카 ‘롯’과 해어질 때에는 기름진 땅을 조카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척박한 헤브론 산지에서 살았다. 이런 아브라함의 행실은 분명히 모든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는 행실이었다. 율법주의자들은 이런 행실 때문에 아브라함이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인생은 이와 같은 선한 행실들 뿐이었는가? 지난 주에 ‘라디오스타’ (2013. 12. 4)라는 토크쇼를 보았는데, 배우 ‘최민수씨’가 이런 말을 했다. “좋은 사람도 나쁜 일을 한다. 나쁜 사람도 좋은 일을 한다.” 그렇다 아브라함에게는 선행도 있었지만, 악행도 있었다. 아브라함이 선한 일만 행한 것이 아니라, 악한 일도 행했다는 말이다.
가뭄을 피해 애굽으로 피신했을 때에는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 ‘바로’에게 바쳤다. 이런 남편이라면 모든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게 된다. 아브라함이 그런 사람이었다. 부유하게 되었을 때에는 ‘하갈’을 첩으로 들여 ‘이스마엘’이란 아들을 낳아 가정의 분란을 일으켰다. ‘아브라함’도 마냥 선한 일만 했던 것은 아니다. 악한 일도 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롬 4:2).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사람들 앞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겠지만, 그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아니라고 한다. 어두운 밤 홀로 있을 때에 행한 일, 다급할 때에 본능적으로 행한 일, 하나님은 모두 알고 계시니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결코 내세울 것이 없다고 한다.
로마서 4:3에서 바울이 제시하는 성경 구절은 창세기 15:1-6이다. 이 본문에 보면,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대화가 나온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나와 내 후손에게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아무래도 저는 아이를 낳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나의 종 ‘엘리에셀’을 후사로 삼을까 합니다.”(창 15:2) 그러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늘을 보라! 저 별들을 셀 수 있겠느냐?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5). 아브라함이 출산을 포기한 것은 자기와 부인의 건강이 아이를 낳지 못할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아이를 낳을 것이고, 그 아이를 통해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셀 수 없이 번성할 것이라고 약속한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약속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아브라함이 이 약속을 믿었다는 것이다. 창세기 15:6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인정을 받게 된 것은 어떤 행실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엇에 대한 믿음인가? ‘약속에 대한 믿음’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 곧 구원의 지혜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말씀이 있다. “…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 바로 이 약속을 믿는 믿음이 우리를 구원한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지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으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오직 예수님의 약속을 믿어 구원을 받으려 해야 한다. “십자가의 약속을 믿는 것이 구원의 지혜이다.”
2.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 것이 구원의 지혜이다. (롬 4:4-8)
둘째,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 믿음이 곧 구원의 지혜이다. 로마서 4:4-5을 보라.
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로마서 4:5에서는 ‘일’과 ‘경건’이 동의어로 나온다. 일을 했다는 것은 경건하다는 말이고,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경건하지 않다는 말이다. 그런데 일을 한 사람들 즉 자신이 경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물을 받고도 그 선물을 은혜로 생각하지 않고, 당연히 받아야 하는 삯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은혜의 선물에 대한 감격도 없고, 감사도 없다. 오히려 이런 사람들은 선물에 대하여 오히려 불만을 가진다. 더 많이 받아야 하는데, 적게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즉 자신은 경건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적은 은혜에도 크게 감격하고 감사한다. 누가 복된 사람인가? 바울은 이장에서 성경에 귀를 기울이라고 한다. 로마서 4:6-8을 보라.
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바울은 시편 32:1-2에 기록된 다윗의 노래를 인용한다. 다윗은 일생 죄 없이 산 사람이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죄를 범하였으나 그 죄를 용서 받은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왜 일까? 로마서 3:10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즉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까지도 속이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은혜를 받아도 감격도 없고, 감사도 없다. 복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용서받았음을 아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0:1-16에는 ‘포도원 품꾼의 비유’가 나온다. 어떤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구하기 위해 이른 아침에 인력시장으로 나갔다. 그 곳에서 일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만나 ‘1 데나리온’을 약속하고 포도원으로 데려와 일을 시켰다. 그리고 새참을 먹을 때쯤 다시 인력시장으로 나가보니 아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어 포도원으로 데려와 일을 시켰다. 이들에게는 ‘적당한 품삯’을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점심 때에도 그리했고, 오후 새참시간에도 그리했으며, 심지어 일이 끝날 무렵에도 인력시장에서 일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일을 시켰다.
드디어 모든 일이 끝나고 품삯을 지불하는 시간이 되었다. 주인은 가장 나중에 와서 일을 한 사람에게 1 데나리온을 주었고, 점심때에 온 사람에게도 1 데나리온을 주었다. 그리고 이른 아침부터 일을 한 사람에게도 1 데나리온을 주었다. 그러자 이른 아침부터 일을 했던 사람들이 주인을 원망한다. 왜 일을 더 많이 한 우리에게도 1 데나리온을 주십니까? 하고 원망한 것이다.
늦게 와서 일한 사람에게 1 데나리온을 주었다면 일찍 와서 일한 자신들에게는 그보다는 더 많이 주어야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자기를 경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자기를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와 같이 은혜 앞에서도 원망을 한다. 예수님은 이 비유 끝에 이런 말씀을 하신다.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 20:16).
자신이 경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일을 맡겨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지 못하고 오히려 원망을 한다. 그러니 복이 없는 사람, 그러니 나중 되는 사람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경건치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부족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일을 맡겨주시고, 넉넉하게 은혜를 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바로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요, 지혜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성경의 주장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믿음대로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Ⅲ.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롬 10:17)
우리는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 구원에 이르는 지혜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 믿음이 구원에 이르는 지혜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지혜가 담겨있는 책이 바로 성경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린 소녀에게 성경에 대한 열정을 주셨고, 많은 목사님들에게 성경보급이야 말로 가장 시급한 사명인 것을 알게 하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구원의 지혜, 즉 믿음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로마서 10:17을 보라.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구원의 지혜는 성경을 듣는 자리에서 얻는 선물이다. 성경을 읽고, 성경을 듣는 자리를 사모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란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