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歲暮〕
서리 맞은 왕골처럼 부질없이 머리만 세어 空敎華髮似霜菅 공교화발사상관
세모에 아직도 고향의 동산에 돌아가지 못하네 歲暮鄕園尙未還 세모향원상미환
천고의 암서 누가 그 자취 이을까 千古巖棲誰繼躅 천고암서수계탁
십 년 진세의 속박에 웃는 얼굴 드물었네 十年塵網少開顔 십년진망소개언
사립문은 금리 선생의 양수 동쪽과 서쪽이요 柴荊錦里東西瀼 시형금리동서양
무성한 계수나무는 회남의 대산과 소산이네 叢桂淮南大小山 총계회남대소산
고개 돌려 바라보니 우주의 봄풀 푸르러 回首雩洲春草綠 회수우주춘모록
새벽에 물과 구름 사이로 돌아가는 꿈꾸었네 曉天歸夢水雲間 효천귀몽수운간
[주1] 암서(巖棲) : 바위에 깃들여 살면서 학문에 정진함을 이른다. 주자의 〈회암(晦菴)〉시에 “오랫동안 자신하지 못하니 바위에 깃들여 작은 효험 바라노라.〔自信久未能 巖棲冀微效〕”란 구절이 있는데, 이후 산속에 기거하며 학문에만 정진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도산에 있는 퇴계의 암서헌(巖棲軒)과 화양동에 있는 우암 송시열의 암서재(巖棲齋)가 널리 알려져 있다.
[주2] 금리(錦里) …… 서쪽이요 : 금리 선생은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당(唐)나라의 시인 두보(杜甫)를 이른다. 두보의 시에 “금리 선생이 오각건을 쓰고 동산에서 토란과 밤을 수확하니 온전히 가난하지는 않구나.〔錦里先生烏角巾 園收芋栗未全貧〕”라는 시구가 있다. 양수(瀼水)는 사천성(四川省) 봉절현(奉節縣)에 있는 내 이름으로, 두보가 이곳의 산천을 몹시 좋아하여 떠나지 못하고 양수의 동쪽과 서쪽으로 세 번이나 집을 옮겼다. 《杜少陵詩集 卷15》 여기서는 도곡이, 두보가 양수를 떠나지 못하던 것에 비유해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읊은 듯하다.
[주3] 무성한 …… 소산(小山)이네 : 벼슬에서 물러나 은거하는 것을 말한다. 한(漢)나라 때 지어진 초사(楚辭)인 〈초은사(招隱士)〉에 “그윽한 산속에 떨기로 총생하는 계수나무〔桂樹叢生兮山之幽〕”라는 구절을 원용하여 이렇게 말한 것이다. 한나라 때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식객들을 대산(大山)과 소산(小山) 두 부류로 나누었는데, 이 가운데 소산에 속하는 문사가 〈초은사〉를 지었다. 〈초은사〉는 원래 은자에게 세상으로 나오라고 부른 노래였으나, 뒤에는 은거를 염원하는 노래로 쓰였는바, 여기에서도 은거를 염원하는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주4] 우주(雩洲)의 봄풀 푸르러 : 우주는 본래 무우(舞雩)의 물가란 뜻인데, 전용되어 자연을 즐기며 한가로이 시 읊고 노니는 곳을 이른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뜻하는 바를 물었을 때 증점(曾點)이 “늦은 봄에 봄옷이 이루어지면 어른 대여섯 명과 동자 예닐곱 명과 함께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 쐬고 시 읊으며 돌아오겠습니다.〔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고 하니, 공자가 칭찬하였다. 《論語 先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