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수업 #원한 #용서 #저주 #복수
그대의 뜻대로 적이 고통받는다 하더라도
어떻게 그것이 그대를 행복하게 하겠는가.
그것이 그대에게 만족을 준다고 말한다면
이보다 더 나쁜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입보살행론 6:88>-
#원한
원한은 칼로 물베기?
"부부 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왜 이런 말이 나왔을까요?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싸워봐야.
결론이 나오지 않고,
이익이 되지 않으며,
원한만 쌓이는 방식으로 싸우기 때문입니다.
전 결혼한다고 찾아오는 젊은 예비부부에게 항상 조언합니다.
"많이 싸우세요. 대신 잘 싸우는 방법을 알려줄께요."
잘 싸우는 방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규칙이 있어야 합니다.
절대로 욕이나 반말을 하면 안 됩니다.
그럼 개싸움이 됩니다.
둘째, 심판이 있어야 합니다.
없다면 기준이라도 명확해야 합니다.
셋째, 사용하는 언어를 통일해야 합니다.
말을 알아듣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 가지를 갖추기 위해서는
부부 스터디를 하면 됩니다.
함께 텍스트를 공부하는 동안 서로 공감하는 규칙을 세울 수 있습니다.
공부한 그 텍스트가 심판이 됩니다.
더불어 공부하는 동안 서로의 생각을 수용하게 되고,
서로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됩니다.
논쟁과 논의를 통해
부부 스터디를 통해 싸우는 것은 매우 건강한 싸움입니다.
싸울수록 부정적 감정은 해소되고,
싸울수록 서로를 이해하게 되며,
싸울수록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분명한 쓸모가 있죠?
규칙 없는 개싸움은 반대입니다.
싸울수록 부정적 감정은 더욱 쌓이고,
서로를 이해하기 싫어지며,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서로를 깎아 먹는 관계라면 맺지 않아야 합니다.
결혼하기를 희망하는 젊은이들은
반드시 연인스터디와 부부스터디를 해보세요.
이거 할 마음이 없다면 결혼 안 하는게 좋습니다.
소.통.불.가.
이 상황이 기다릴테니까요.
말이 좀 샜습니다.
원한으로 되돌아오면
원한을 품고 있는 것은 칼로 물베기입니다.
소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어차피 이 세상은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대다수인 사바세계입니다.
품고 있는 원한대로 상대방에게 피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 원한은 그저 나를 괴롭힐 뿐입니다.
더불어 내가 원한을 품고 있는 그 부정적 에너지는
내 소중한 지인들에게 악영향을 끼칩니다.
'나 + 내 소중한 사람들의 기분 + 내 인간관계'
원한이 망치는 것들입니다.
소용이 없는 것은 아니네요?
다만 그 방향이 나를 향하기 때문에 나만 망치는 것이 바로 원한입니다.
#저주
저주를 걸면 어떻게 될까요?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주제입니다.
인형을 만들어서 이름을 쓴 다음에 닭피를 뿌리고 칼로 찌르고...
소용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물론 효과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주도 일종의 기도니까요.
다만 이 저주를 위해 포기해야 할 것들과 비교하면
그 효과는 너무 미약합니다.
생각해보세요.
저주는 나를 지옥에 가두는 행위입니다.
첫째, 저주를 걸기 위해서는 지독한 원한을 품어야 합니다.
이 지독함은 나에게 가장 큰 피해를 끼칩니다.
감수할만한가요?
둘째, 현재와 미래의 소중한 사람들의 삶에 악영향을 끼칩니다.
이것도 감수할만한가요?
셋째, 만약 그 저주가 성공한다면
이제는 분노가 아니라 해악으로 변화한 것이기 때문에 명명백백한 악업이 됩니다.
이 악업은 나를 지옥과 같은 삶으로, 죽음 이후에는 지옥으로 이끌 것입니다.
감수할만한가요?
넷째, 이 지독한 원한과 지옥으로 이끈 악업을 녹여내는 참회 없이는
이 지옥 같은 삶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보통 지옥에 가면 몇 년이 아니라 몇 겁씩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감수할만한가요?
만약 당신이 보리심을 일으킨 보살이라면
이런 마음만큼 보리심을 강력하게 배반하는 행위는 없습니다.
일체중생을 구하겠다고 마음 먹어놓고는
조금 마음에 안 든다고 보리심은 저리 던져버리고
마음에 지독한 저주를 품는다는 것.
정말 감수할만한가요?
#복수
그럼 저주 하지 말고 바로 복수해버리면 어떨까요?
복수는 곧 해악입니다.
사회적으로도 범죄에 해당됩니다.
더불어 저주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악업입니다.
왜냐하면 저주는 상대가 모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복수는 상대가 압니다.
그럼 이 원한은 연결성이 형성됩니다.
저주까지는 짝사랑에 가깝다면
이제 원한은 사랑이 연결되듯 원한과 저주 그리고 복수가 연결된 것입니다.
핑퐁게임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 분노의 업연은 훨씬 더 복잡한 실타래로 묶이게 되고,
그 유효기간은 이제 끝도 없이 증가합니다.
10번의 생, 10겁의 기간, 100 아승지겁 동안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로 묶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수의 악연입니다.
계약을 맺는 것이죠.
내 삶을 1,000,000,000,000,000....번 바쳐서 희생하겠다고.
감수할만한가요?
#용서
효율이 너무 떨어집니다.
붓다는 진정한 복수는 용서라고 하셨습니다.
그 업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나를 지옥의 감옥에서 구하는 것입니다.
그냥 행복의 길로 나아가기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심장이 뜯겨나가는 괴로움이 있더라도,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허무함이 있더라도,
영혼이 깎여나가는 듯한 고통이 있더라도...
진정으로 복수하고 싶다면
용서를 통해 그 악연과 이별해야 합니다.
용서와 참회는
나를 구합니다.
내 삶을 구합니다.
내 소중한 이들의 마음을 구합니다.
미래에 만날 모든 이들의 기분을 구하게 됩니다.
용서하고 참회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일체중생을 구하는 보살행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첫댓글 보살수업에 귀 기울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
네
스님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