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문예바다 신인상 수상 작가들 |
바닷가 그 집 외 1편
오광석
태흥리 집에 가면 늘 바다 냄새가 났다
돌문어 삶은 냄새 우럭 비늘 냄새 전복 껍질 마른 냄새
물질하고 돌아온 고모의 냄새
코끝으로 밀려오는 냄새가 싫어
차 안에 웅크리고 앉은 나를
형은 당겨 내리며 말했다
우리는 바다에서 태어나는 거야
방문 너머 비릿한 냄새 사이
동생들을 끌고 불타는 가시리를 떠나
바닷가로 내려온 고모
타들어 가는 가슴에 끼얹은 파도소리
수십 년의 시간을 넘어 밀려오는
불면과 통증의 파도소리
형과 내가 나란히 누워 보내는 밤
바다를 보고 싶었어
파도 속에서 일어나는 꿈들을 보고 싶었어
형은 말했지
우리의 꿈들은 바다 깊은 자리에 가라앉아 있는 거라고
바다로 돌아간 사람들이 안고 간 거라고
태풍이 몰아치는 날
바다를 보고 싶었어
거대한 파도를 타고 온 꿈들이
땅을 밟고 올라오는 꿈을 꾸었지
두런두런 시간 속에 묻힌 이야기들로
밤새 뒤척이다가 새벽녘 잠들던
다시 돌아간 그 집
바다로 돌아간 고모의 냄새가 났다
땅속 아이
바람이 살을 자르는 소리 오싹한 날이었어 머리가 갈라진 아이가 빌레* 위에 앉아 있었어 철문으로 막힌 굴을 보며 울고 있었어 갈라진 머리가 아파 부여잡고 우는데 갈라진 공간에서 솟아난 흉측한 얼굴 아이를 돌에 메다친 악귀의 얼굴 갈라진 머릿속에 갇혀 일그러져 있었어
마계로 떠나지 못한 악귀를 가둔 머리가 반으로 갈라진 채 아이는 울며 헤매었어 산 위에서 칼날 같은 바람이 내려와 악귀의 얼굴을 자르면 아이는 밝은 세상을 보며 별처럼 반짝이는 눈을 끔뻑거렸어 바람이 떠나면 악귀의 얼굴이 불쑥 솟아나 갈라진 머리를 부여잡고 울었어
어디선가 아이를 찾는 소리가 들렸어 땅속 깊은 자리에서 잃어버린 아이를 찾는 소리가 들렸어 아이는 땅속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어 다른 굴을 찾아 헤매다 빌레 위에 앉아 울었어
*용암으로 형성된 평평한 암반을 뜻하는 제주어
― Note
제주 곳곳을 다니다가 보면 가끔은 피비린내 비슷한 냄새를 느낄 때가 있다. 분명 코로 맡은 냄새가 아닌데 느낀다. 다랑쉬굴을 갈 때도, 터진목을 갈 때도, 빌레못굴을 찾아갈 때도 그랬다. 어떨 때는 나이 든 어르신들을 만나 뵐 때도 나는 제주를 속 깊이 아는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냄새. 제주에 대한 이야기로 꽉 채운 시집을 내고 싶었는데 용기가 나지 않아 망설여진다. 시집에서 피비린내가 날까 싶어 자꾸만 원고를 들추게 된다.
오광석 | 2014년 『문예바다』 신인상 시 당선. 시집 『이계견문록』 『이상한 나라의 샐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