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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4장 1-8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1절.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 solemnly charge you in the presence of God and of Christ Jesus, who is to judge the living and the dead, and by His appearing and His kingdom:
하나님 앞과--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엄히 명하노니
Διαμαρτύρομαι ἐνώπιον τοῦ Θεοῦ καὶ Χριστοῦ Ἰησοῦ,
I solemnly declare before the God and Christ Jesus
‘엄히 명하노니’(Διαμαρτύρομαι)는 현재형으로서(I solemnly declare) 현재 엄히 명하고 있는 것을 가리키고, 원형(διαμαρτύρομαι)은 ‘철저히’(διά)라는 접두어와 ‘증언하다’(μαρτύρομαι)는 동사의 합성어로서, ‘엄숙하게 확언한다’(affirm solemnly)는 뜻입니다.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τοῦ μέλλοντος κρίνειν ζῶντας καὶ νεκρούς,
the (One) being about to judge living and dead
직역하면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려고 하시는 자’란 뜻입니다.
‘살아있는’(ζῶντας)은 현재분사로서(living) 현재 살아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심판하려고’(κρίνειν)는 현재 부정사형 동사로서(to judge) 현재 심판하려고 하신다는 뜻이고, ‘하시는’(μέλλοντος)은 현재분사로서(being about) 하려고 하시는 자세를 가지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καὶ τὴν ἐπιφάνειαν αὐτοῦ καὶ τὴν βασιλείαν αὐτοῦ·
by the appearing of Him and the kingdom of Him
‘나타나실 것’(ἐπιφάνεια)은 지금 보이지 않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영광중에 나타나보이실 것(appearing, manifestation, glorious display)을 가리킵니다.
1. ‘하나님 앞과--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엄히 명하노니’란 2절에서 ‘말씀을 전파하라’는 명령이 하나님 앞과 예수님 앞에서 명령하는 지엄한 명령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바울이 이렇게 엄히 명하는 것은 자신이 죽음을 바로 앞두고 있기 때문에, 디모데가 명심하고 들어야 할 명령이기 때문이었습니다.
2.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가리키는데,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는 죽었다가 살아나서 주님 재림을 맞는 성도와 살아있으면서 재림을 맞는 성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3.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란 예수님의 재림과 그 후에 이루어질 그리스도 예수의 나라를 가리킵니다.
즉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모든 사람이 살아나서 심판을 받고, 예수님 믿는 성도는 영생 천국에 들어가고, 불신자는 영원한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심판하신 후에, 영원한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말씀은 초대교회 때부터 전해오는 신앙고백이었습니다.
2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preach the word; be ready in season and out of season; reprove, rebuke, exhort, with great patience and instruction.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κήρυξον τὸν λόγον,
preach the word
‘전파하라’(κήρυξον)는 부정과거 명령형(preach)으로서 단호하게 전파하라는 뜻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ἐπίστηθι εὐκαίρως ἀκαίρως,
be ready in season and out of season;
직역하면 ‘좋은 때나 아닌 때나 대기하고 있어라’는 뜻입니다.
‘항상 힘쓰라’(ἐπίστηθι)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be ready) 단호하게 대기하라는 뜻인데, 원형(ἐφίστημι)은 ‘준비하고 있다, 대기하고 있다’(stand by)는 뜻입니다.
‘때를 얻든지’(εὐκαίρως)는 문자적으로 ‘좋은’(εὐ) ‘때’(καίρως)를 가리킵니다.
즉 말씀을 전파하기 좋은 때를 가리킵니다.
‘못 얻든지’(ἀκαίρως)는 문자적으로 ‘아닌’(ἀ) ‘때’(καίρως)를 가리킵니다.
즉 말씀을 전파하기 좋은 때가 아닌 것을 가리킵니다.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ἔλεγξον, ἐπιτίμησον, παρακάλεσον,
reprove, rebuke, exhort,
‘경책하며’(ἔλεγξον)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reprove) 잘못과 죄를 단호하게 드러내는(expose) 것을 가리키고, 원형(ἐλέγχω)은 ‘죄를 드러내다, 꾸짖다, 훈계하다’(expose, show to be guilty, reprove, rebuke, discipline)는 뜻으로, 죄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경계하며’(ἐπιτίμησον)도 부정과거로서(rebuke) 죄와 잘못을 단호하게 경계하는 것을 가리키고, 원형(ἐπιτιμάω)은 ‘적절한 곳 위에’(ἐπί)라는 접두어와 ‘평가하다, 존경하다’(τιμάω)는 동사와 합성어로서 합당한 조치를 위해 ‘꾸짖다, 훈계하다, 경고하다’(rebuke, chide, admonish, warn)는 뜻으로, 벌하는 것을 가리킵니다(고후 2:6).
‘권하라’(παρακάλεσον)도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exhort) 간절한 마음으로 권하는 것을 가리키고, 위로하면서 권하는 것을 뜻합니다.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ἐν πάσῃ μακροθυμίᾳ καὶ διδαχῇ.
with all patience and instruction.
직역하면 ‘모든 인내와 가르침으로’란 뜻입니다.
1. ‘말씀을 전파하라’는 것은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일방적으로 선포하라는 것이고, 토론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왕의 명령은 일방적으로 선포하고 공포하는 것이지, 토론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처럼 복음 전도자와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일방적으로 선포하는 것이고, 성경 공부처럼 서로 토론하고, 질문하고 답하고,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2.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란 ‘좋은 때든지 아니든지’라는 뜻으로서, 유대인의 회당이니 오늘날 예배당이나 헬라 철학을 논하는 강단 같은 곳이 아니더라도, 어느 장소에서든지 어느 때든지 말씀을 전할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뜻입니다.
‘항상 힘쓰라’(ἐπίστηθι)는 ‘준비하고 있으라, 대기하고 있으라’(be ready, stand by)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핍박의 때나, 감옥에서나 심지어 죽음 앞에서도 복음을 전할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공무원이 회의할 때나 학생들이 공부하는 강의 시간이나, 결혼식 도중이나 장례식 도중에 불쑥 나타나서 전도하는 것은 때에 맞지 않고 비난받을 일입니다.
물론 목사에게 결혼식 주례나 장례식 주례를 맡겼을 때는 복음 전하기 좋은 때입니다.
3. ‘경책하며’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인간의 죄를 드러내고 자신이 죄인임을 자각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경계하며’란 죄에 대한 형벌을 경계하고, 장래 심판에 대해서 경고하라(warn)는 것입니다.
‘권하라’는 것은 예수 믿으면 죄 용서를 받고, 영생 천국에 들어가고,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는 것을 말해서 위로하고 예수 믿도록 권하라는 것입니다.
4. ‘범사에 오래 참음’이란 문자적으로 ‘모든 인내’를 뜻하는데, 복음 전도와 설교를 할 때, 어떤 반대와 어려움이 있어도 모두 잘 참아내라는 것입니다.
복음 전도자와 설교자가 싸우면, 절대 안 됩니다.
‘가르침으로’란 전도자와 설교자가 싸우지 말고, 언제나 가르치고 교훈하는 자세로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어린아이 하나를 기르는데도, 얼마나 많은 것을 참고 여러 번 가르쳐주면서 길러냅니까.
이와 같이 목회자는 부모와 같은 심정으로 교인들을 잘 가르쳐야 합니다.
3절.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the time will come when they will not endure sound doctrine; but wanting to have their ears tickled, they will accumulate for themselves teachers in accordance to their own desires,
때가 이르리니
ἔσται γὰρ καιρὸς,
there will be for time,
직역하면 ‘왜냐하면 때가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이르리니’(ἔσται)는 미래형으로서(there will be) 때가 올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ὅτε τῆς ὑγιαινούσης διδασκαλίας οὐκ ἀνέξονται,
when the sound teaching not they will admit
‘받지 아니하며’에서 동사(ἀνέξονται)는 미래형으로서(they will admit) 장차 받지 않을 것을 가리키고, 원형(ἀνέχομαι)은 ‘붙들고 있다, 참다, 인정하다’(hold up, bear with, admit)는 뜻입니다.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ἀλλὰ κατὰ τὰς ἰδίας ἐπιθυμίας, ἑαυτοῖς ἐπισωρεύσουσιν διδασκάλους
but according to the own desires, to themselves they will heap up teachers
직역하면 ‘그러나 자신의 욕망들을 따라, 그들이 자기들에게 스승들을 쌓아놓을 것이다’는 뜻입니다.
‘쌓아놓을 것이다’(ἐπισωρεύσουσιν)는 미래형으로서(they will heap up) 장차 쌓아놓을 것을 가리키며, 원형(ἐπισωρεύω)은 ‘위에’(ἐπί)라는 접두어와 ‘쌓아두다’(σωρεύω)는 동사의 합성어입니다.
귀가 가려워서
κνηθόμενοι τὴν ἀκοήν,
having an itching the ear
‘가려워서’(κνηθόμενοι)는 현재분사로서(having an itching) (뭔가 새로운 것이 듣도 싶어서) 항상 귀가 가려운 것을 가리킵니다.
1.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 하며’란 장차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는 악한 때가 이르게 된다는 뜻입니다.
즉 구원의 복음과 성경 말씀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때가 온다는 말씀입니다.
2. 반면에 ‘귀가 가려워서 자기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둘 것이다’란 말씀은 귀를 즐겁게 해서 자기 욕구를 해소하고, 자기를 즐겁게 해줄 스승을 많이 찾을 것이란 말씀입니다.
요즘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연구하여 설교하는 훌륭한 목사보다는 만담으로 귀를 즐겁게 해주는 설교자나 부흥사를 좋아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잔인한 게임이나 허망한 무속 신화나 너무도 지나친 음란 영상이 인기를 끌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의 종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연구하여 전파해야 합니다.
4절.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will turn away their ears from the truth and will turn aside to myths.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καὶ ἀπὸ μὲν τῆς ἀληθείας τὴν ἀκοὴν, ἀποστρέψουσιν,
and from indeed the truth the hearing, they will turn away
직역하면 ‘그리고 진리를 듣는 데서 그들이 돌아설 것이다’는 뜻입니다.
‘돌이켜’(ἀποστρέψουσιν)는 미래형으로서(they will turn away) 장차 돌아서는 것을 가리킵니다.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ἐπὶ δὲ τοὺς μύθους ἐκτραπήσονται.
unto but the myths they will be turned aside
직역하면 ‘그러나 신화로 그들이 돌아서게 될 것이다’는 뜻입니다.
‘따르리라’(ἐκτραπήσονται)는 미래 수동태로서(they will be turned aside) 장차 신화로 돌아서게 될 것을 가리킵니다.
실제로 자유주의 신학자들(Bultman 등)은 창조나 동정녀 탄생이나 부활을 신화로 변질시키고 있습니다.
1. 때가 이르면(3절) 바른 교훈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3절), 진리의 말씀을 듣지 않고, 허탄한 이야기를 따를 것이란 말씀입니다.
여기서 ‘허탄한 이야기’란 영지주의자들의 과장된 신비적 이야기와 유대 율법주의자들의 과장된 족장들 신화를 가리킵니다.
즉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바울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디모데 목사보다 영지주의자들이나 유대 율법주의자들의 유혹을 받아서 진리에서 돌이켜서 허탄한 신비와 신화를 따를 것이란 말씀입니다.
2. ‘진리’란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과 부활 승천에 대한 복음 진리를 가리키며, 바울과 디모데로 전승되는 정통신앙을 가리킵니다.
‘허탄한 이야기’(μύθους)란 신화로서(myths)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신비와 유대 율법주의자들이 말하는 구약 조상들에 대한 허무맹랑한 신화들을 가리킵니다.
디모데전서 1장 4절에는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라’고 했고, 디모데전서 4장 7절에는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라’고 했습니다.
5절.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you, be sober in all things, endure hardship, do the work of an evangelist, fulfill your ministry.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σὺ δὲ νῆφε ἐν πᾶσιν,
you however be sober in all
‘너는’(σὺ:you)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신중하여’(νῆφε)는 현재 명령형으로서(be sober) 항상 정신 차리고 있으라는 뜻이고, 원형(νήφω)은 ‘술 취하지 않고 정신이 멀쩡하다’(be sober, abstain from wine)는 뜻입니다.
고난을 받으며
κακοπάθησον,
endure afflictions
‘고난을 받으며’(κακοπάθησον)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endure afflictions) 단호하게 고난을 감당하라는 뜻이고, 원형(κακοπαθέω)은 ‘악을 견디고, 고난을 견디다’(suffer evil, endure affliction)는 뜻입니다.
전도자의 일을 하며
ἔργον ποίησον εὐαγγελιστοῦ,
work do of evangelist
‘하며’(ποίησον)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do) 단호하고 철저하게 전도자의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네 직무를 다하라.
τὴν διακονίαν σου πληροφόρησον.
the ministry of you fully carry out
‘다하라’(πληροφόρησον)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fully carry out) 철저히 다하라는 뜻이고, 원형(πληροφορέω)은 ‘완전히’(πλήρης)란 접두어와 ‘운반하다’(φέρω)는 동사의 합성어입니다.
1. ‘모든 일에 신중하라’는 것이 이전 개역성경에는 ‘근신하라’로 번역되어 있었고, 공동번역이나 새번역에는 ‘정신을 차리고 있어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2. ‘고난을 받으라’는 사람을 상대하면서 당하는 고난을 잘 참고 견디라는 말씀입니다.
3. ‘전도자의 일을 하라’는 것은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잘하라는 것입니다.
4. ‘직무를 다하라’에서 ‘직무’란 전도와 목회 사역과 기도와 심방 등 봉사의 직무를 다하라는 것입니다.
‘다하라’는 것은 시간적으로도 끝까지 수행하라(carry out to the end)는 뜻입니다.
6절.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I am already being poured out as a drink offering, and the time of my departure has come.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Ἐγὼ γὰρ ἤδη σπένδομαι,
I for already I am being poured out
직역하면 ‘왜냐하면 나는 이미 (전제와 같이) 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전제와 같이) 부어지고’(σπένδομαι)는 현재형으로서(I am being poured out) 현재 부어지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내가’(Ἐγὼ: I)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καὶ ὁ καιρὸς τῆς ἀναλύσεώς μου ἐφέστηκεν.
and the time of the departure of me has come
‘가까웠도다’(ἐφέστηκεν)는 완료형으로서(has come) 이미 온 것을 가리킵니다.
1. ‘전제와 같이 부어지고’(σπένδομαι:I am being poured out)란 단순히 ‘부어지고’란 동사인에, 이 동사는 한글의 번역처럼(전제와 같이:as a drink offering) 희생 제사를 드릴 때 마지막으로 술을 제물 위에 부어드린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이 편지를 쓰면서 자신의 순교가 임박했음을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2. 그래서 바울은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왔도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평생 몸 바쳐 희생적인 삶을 살아왔는데, 이제 마지막에 전제와 같이(민 15:1-10) 자신의 피를 희생 제물로 부어드릴 것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바울은 이 편지를 쓴 67년 가을을 지나고, 68년 4월경에 로마에서 순교를 당했습니다.
7절.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 have fought the good fight, I have finished the course, I have kept the faith;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τὸν καλὸν ἀγῶνα ἠγώνισμαι,
the good fight I have fought
‘싸우고’(ἠγώνισμαι)는 완료형으로서(I have fought) 지금까지 싸워왔고, 이제 다 싸운 것을 가리킵니다.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τὸν δρόμον τετέλεκα,
the race I have finished
‘마치고’(τετέλεκα)도 완료형으로서(I have finished) 이제 다 마친 상태를 가리킵니다.
믿음을 지켰으니
τὴν πίστιν τετήρηκα·
the faith I have kept
‘지켰으니’(τετήρηκα)도 완료형으로서(I have kept) 지금까지 지켜왔으나 이제 다 지킨 상태를 가리킵니다.
1. 본 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일생을 로마의 운동 경기에 비유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로마의 운동경기는 상대를 쳐서 쓰러뜨리는 경기이지만, 바울의 경기는 남을 살리고 구원하는 선한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2. ‘나의 달려갈 길’이란 달리기경기(race)에서 선(규칙)을 어기지 않고 선을 지켜서 달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바울은 복음 전도의 삶을 ‘주 예수께 받은 사명’(행 20:24)이라고 했는데, 이 복음 전도의 사명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지 않고, 인간적인 수단 방법을 쓰지 않고, 지금까지 달려왔다는 것입니다.
3. ‘믿음을 지켰다’는 것은 흔히 전도자와 목회자가 다른 사람을 돌보는 일에 몰두한 나머지 막상 자신이 기도하고, 성경 연구하는 개인의 믿음 생활을 못 하는 경우가 있는데, 바울 사도는 엄청난 복음 전도와 말씀을 전하는 사역을 하면서도,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성령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전하는 개인적인 믿음을 지켰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새번역: 나는 내 몸을 쳐서 굴복시킵니다. 그것은 내가, 남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서 도리어 나 스스로는 버림을 받는, 가련한 신세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8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n the future there is laid up for me the crown of righteousness, which the Lord, the righteous Judge, will award to me on that day; and not only to me, but also to all who have loved His appearing.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λοιπὸν ἀπόκειταί μοι ὁ τῆς δικαιοσύνης στέφανος,
From now on is laid up for me the of the righteousness crown
‘예비되었으므로’(ἀπόκειταί)는 현재 수동태로서(is laid up) 현재 예비되어 있는 상태를 가리키고, 원형(ἀπόκειμαι)은 ‘앞에’(ἀπό)라는 접두어와 ‘놓여있다’(κεῖμαι)는 동사의 합성어로서, ‘앞에 놓여있다, 보장되어 있다’(is laid before, be laid up in store, am reserved for)는 뜻입니다.
‘이제 후로는’(λοιπὸν)은 원래 ‘남은 것은’이란 뜻이지만, 실제로는 ‘마지막으로, 이제 후로는, 이제부터는’(finally, from now on, henceforth)란 의미로 쓰입니다.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ὃν ἀποδώσει μοι ὁ κύριος ἐν ἐκείνῃ τῇ ἡμέρᾳ, ὁ δίκαιος κριτής
which will award to me the Lord in that the day, the righteous judge
‘주실 것이며’(ἀποδώσει)는 미래형으로서(will award) 앞으로 주실 것이란 뜻입니다.
내게만 아니라
οὐ μόνον δὲ ἐμοὶ
not only however to me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ἀλλὰ καὶ πᾶσι τοῖς ἠγαπηκόσι τὴν ἐπιφάνειαν αὐτοῦ.
but also all those having loved the appearing of Him
‘사모하는’(ἠγαπηκόσι)은 완료분사로서(having loved) 과거부터 계속 사모해온 것을 가리킵니다.
1.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으므로’란 예수님의 피로 의롭게 된 성도들이 장차 얻을 ‘영생’을 가리킵니다.
디모데전서 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야고보서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요한계시록 2: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2. ‘의로우신 재판장’이란 재림하셔서 인류를 심판하신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딤후 4:1)
‘그날’이란 ‘주님이 나타나실 날’ 즉 ‘주의 재림의 날을 가리킵니다.
재림하셔서 심판하실 예수님께서 의의 면류관을 바울에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시는 재림의 날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 의의 면류관을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의 재림을 사모하는 자‘란 과거부터 지금까지 주의 재림을 맞이하기 위해서 기름 준비하고(마 25:1-10), 주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전하고 가르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마태복음 24:45-46.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불신자들과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파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이 재림하실 때, 의의 면류관을 얻고, 주님의 칭찬과 영생 복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