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군가에게는 간절할 하루를 두루마리 휴지 뜯듯이 보내고 있다.
아니. 허비하고 있다는 말이 더 적절한 것 같다. 두루마리 휴지와 나의 하루의 공통점은 사용 후 버려진다는 점이고, 굳이 차이점을 따진다면 휴지는 온전히 제 쓰임을 다 해 버려지지만 나의 하루는 미처 제 쓰임을 다 하지 못하고 버려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는 움직일 수도 말할 수도 심지어 생각할 수도 없는 휴지가 인간의 하루 보다 가치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 수 있다.
휴지에게 밀린 나의 하루는 군더더기 없는 국과 같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목표를 세우고 계획이라는 재료들을 나라는 국에 잘게 썰어 넣지만, 하루 이틀 삼일이 지나도 이루어지지 않는 재료들은 결국 흔적도 없이 녹아 없어진다. 이러니 제대로 된 하루를 보내려야 보낼 수가 없다. 의미 없이 흐른 시간들이 머리에 쌓여 무겁다는 생각이 들어서야 목표를 떠올리지만, 재료들이 모두 녹아 없어진 국을 바라보며 뒤늦은 후회와 함께 남은 건더기라도 건져 보려 연신 국을 휘젓거라 이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나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두루마리 휴지 보다 못한 하루를 보내지 않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였던 적이 있다. 현실적으로 나에게 유리할 것 같은 진로를 목표로 세우고, 감정에 쉽게 휘둘리기보다는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자 하였으며, 일상의 작은 것부터 실천하여 점차 넓혀가는 삶을 살고자 하였다. 실제로 며칠 동안은 휴지보다는 나은 하루들을 보낸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미묘한 변화 일지라도 나에겐 마치 넓고 고요한 수영장 물에 작은 돌멩이를 던져 물방울이 튄 정도의 변화라도 충분하였으니까.
하지만 사람은 자신이 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있듯이 나의 일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원래대로 돌아왔고, 다시 휴지 보다 못 한 신세가 되었다. 끊는 물은 쉽게 식어버린다는 말이 나에게서 나온 말 같다. 목표가 잘게 부서져 흔적조차 알아볼 수 없게 된 후 방바닥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는 내 머릿속과 눈앞에 안개가 잔뜩 낀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이럴 때면 내게 질문을 던진다. "네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뭐야?” 그럼 나는 새로운 목표를 세우는 것에 지쳐 매번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였고, 이 질문은 고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자연스레 잊혀졌다. 대학이라는 현실이 나에게 차가운 물을 들이붓어 억지로 정신을 차리게 하였고, 내신을 올리기 위한 각종 시험들과 수행평가에 묻혀 몇 달간은 바쁜 하루들을 보냈다. 가끔 피로에 찌든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나에게 질문한다. “너의 하루는 두루마리 휴지 보다 가치가 있었니?” 이때는 비교적 자신 있게 “응, 가치 있었어”라고 답한 날들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1학기를 마치고 2학기를 맞이한 무렵 나는 하루가 멀다시피 오늘의 계획들을 내일로 미루고, 한 달 전에 했어야 할 공부를 시험 일주일 전에 몰아서 하는 등 의미 없는 하루들을 바닥에 흩뿌리는 일이 많아졌다. 이에 맞게 성적 또한 바닥을 굴렀으며, 심각성을 인지했을 때에는 이미 2학년 생활의 막바지였다.
이미 내게서 떠난 하루들은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 나의 인생은 물레방아처럼 돌고 돈다. 어느 곳을 가든 볼 수 있는 두루마리 휴지들이 나를 비웃는 듯한 불쾌한 느낌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 물론 착각이겠지만 말이다. 나를 떠나가 버린 시간과 성적은 아무리 후회해도 돌아오지 않지만 이 같은 상황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나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을 마련할 순 있다.
나는 크게 나의 두 가지 문제점들을 알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접근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문제들을 쉽게 회피해 버리고 뒤로 미룬다는 것과 현재만을 생각하여 앞 날에 발생할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보다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인터넷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 있다. “당신에게 100억을 준다고 한다면 받을 것인가요?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100억을 받는 대신 내일 아침 눈을 뜨지 못한다고 하였을 때, 당신은 돈을 받을 것인가요?” 이 말은 나의 삶이 100억으로는 바꿀 수 없는 큰 가치를 지녔으며, 하루를 100억처럼 소중히 대하라는 뜻이다. 그동안의 나의 삶을 되돌아보면 나는 나의 하루를 소중히 하지 않고 낭비하듯 보내왔다. 그렇기에 나의 하루가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지를 깨닫고, 의미 없이 보낸 시간들에 대해 반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 현재에 치우쳐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자세를 버리고 목표와 계획들을 세부적으로 설정하여 이를 성실하게 실천함으로써 미래에 대해 책임감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
꽉 막힌 천장을 바라보는 것을 그만두고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씨가 마치 목표를 잃었던 나와 같은 모습으로 보인다. 이제 텅 빈 하늘을 나만의 구름으로 가득 채울 것이다.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말이 있듯이 휘청일 때도 있겠지만 그때마다 나의 문제점을 떠올리고 마음을 바로 세워 목표를 향해 다시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