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정동의 저녁노을 / 문병란(1935-2015)
光州 화정동
국군 통합병원 부근의
저녁노을은 유난히 붉다.
못다 살고 죽은 사람의
아름다운 뒷모습인 양
활활 타오르다
이내 서녘 하늘 속으로
총총히 숨어버리는
저녁 종소리!
당신의 그리운 뒷모습이 보이는데,
누구의 이름이라도 소리 내어 부르고 싶은
절절한 손길이 되어 나부끼다가
내 가슴 복판에 불을 지르고
그 어느 절정에서 피를 함빡 쏟는다.
아 하나가 되고 싶은 어떤
간절한 가슴과 가슴이 만나
뜨겁게 뜨겁게 타오르다 숨진다.
시인을 일컬어 “화염병 대신 시詩를 던진 저항시인”(뉴욕타임즈, 1987년 8월 18일자)이라 하였다. 김준태는 “문병란 선생은 지금까지 한국의 많은 시인들이 버리지 못하는 시의 귀족주의, 시의 묘한 폐쇄주의적 고고함, 시의 모더니즘적 커피 맛을 단연코 배격하는, 청마 유치환 선생의 대륙적 골격에다가 다형 김현승 선생의 청교도적 고백정신을 함유한, 무당처럼 노래하는 문병란”이라 하였다.
시인 본인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내 시의 대부분이 모두 향토적이며, 특히 전라도적 이미지나 가락에 의존하는 것은 민중의 한의 원천이 바로 이 고장에 있기” 때문이라 하고 있듯이 “화정동/국군 통합병원”은 1980년 민주항쟁의 중심에 있던 사적지다. 「화정동 저녁노을」은 1980년에 쓴 시로써 당시 상황에 비춰보면 매우 격앙되고 고조된 어조의 장시일 것 같은데 4연에 불과한 단시 중 하나이다.
시의 발화 기점인 “화정동/국군 통합병원”은 1951년 12월 제77국군병원으로 창설돼 1971년 국군광주통합병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5‧18 때는 다친 군인과 민간인들을 치료했고, 1984년 국군광주병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2007년 함평으로 이전하며 방치되다 2014년 국가폭력트라우마치유센터와 공원으로 조성된 곳이다.
“국군 통합병원”의 보일러실 굴뚝은 아직도 높이 서 있다. 굴뚝은 알고 있을 것이다. 화장터로 개조해 얼마간의 시신을 태우다 감당하지 못하고 매장으로 처리한 사실을 말이다. 시인은 “유난히 붉은”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총총히 숨어버리는/저녁 종소리”를 듣고, “피를 함빡 쏟는” 절정과 “숨지”는 과정이 차례로 의식화되고 있으며, 결의에 찬 굳은 의지가 각인된다.
해가 불려가는 “서녘 하늘 속으로” “활활” 혹은 “뜨겁게” “타오르는” 것은 “하나가 되고 싶은” “가슴과 가슴”이다. 앞서 김준태가 “무당처럼 노래하는 문병란”이라 했듯이 시인은 “화정동/국군 통합병원”에서 “못다 살고 죽은” 이들의 “뒷모습”으로 인해 “가슴 복판에 불을 지르고/그 어느 절정에서 피를 함빡 쏟는” 영매가 되고 있다. 어느 순간 해가 뚝 떨어지듯, 저녁 종소리에 묻혀 사라지듯, 숨지는 것들로 “가슴을 만나”게 하는 한의 절정은 붉게 타다 죽는 오월의 광주와 산자의 땅 화정동 하늘 아래 이렇듯 선명하게 새겨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