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군육교 북부간선도로를 통과하여 국군구리병원으로 간다.
▲국군구리병원 철조망 옆길로 진행
▲폐허가 된 초소의 모습: 예전 선답자의 후기 글을 보면 꼭 나오는 사진이다. 새로운 등로길이 없을 때 철계단을 이용하여 올라서면 만나는 곳, 이제는 둘레길이 만들어져 마루금도 편리하게 진행한다.
▲철망울타리 따라 초소봉으로 올라간다.
▲초소봉을 지나 계속 철조망을 따라 간다.
▲송림숲길 우측편으로 두고 진행
▲군부대철조망이 끝나고 일반 녹슨 철조망을 만나 따라간다. 좌측은 교문사거리 '구리시국민체육센터'
▲151.3m봉 둔덕 철망 따라간다.
▲일반녹슨철조망이 끝나는 지점에서 철조망과 헤어지고 우직진으로
간다.
▲묘지 위 교문사거리 갈림길인 131.7m봉으로 올라간다.
▲교문사거리갈림길 131.7m봉 멋진소나무 (애국지사 김충석묘지 위/이정목/벤치)
▲애국지사 김중석 선생 묘지 위 갈림길 우측으로 내려간다.
▲묘지에서 가야할 망우산을 바라본다.
▲구리 둘레길1코스(관릉탑) 방향으로 내려간다.
▲애국지사 김중석 선생 묘 안내판의 모습
▲마루금 좌측에 망우리고개로 올라가는 47번국도가 보인다.
▲정자 쉼터 주차장을 지나 육교로 간다.
▲망우리고개. 오작교 육교 위를 지나고 육교 아래에는 6번국도가 지난다.
▲망우리고개(忘憂里峙, 해발88m):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과 서울 중랑구 망우동의 경계를 하는 고개로 서울과 강원도를 잇는 경강 6번국도가 지나는 곳으로 서울시립 망우리 공동묘지가 자리를 잡고 있다. 우리 역사의 애환의 한 페이지를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태조 이성계가 검암산 밑 동구릉의 건원릉 터를 유택으로 정한 후 망우산 고개 위에서 쉬면서 신하들에게 “아아 이제야 근심을 잊게 되었구나(於斯 吾憂忘矣).”라고 하였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일설은 조선의 태조가 나이가 들자 나라의 미래에 대해서 무척 고민을 많이하게 되었다. 태조는 자신이 죽고 난 뒤에도 왕가가 번영하기 위해서는 묘지를 잘 골라야겠다고 생각하고 유명한 지관을 불러 명당을 찾으라고 명령했고 좋다는 곳은 자신이 직접 가보기도 하였다. 한번은 지관이 아차산의 기슭인 지금의 동구릉에 태조를 모시고 갔다. 태조는 기뻐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대궐로 돌아오다가 지금의 망우리 고개에서 쉬었는데 멀리 명당자리인 아차산의 기슭을 내려다보면서 오랫동안 근심을 잊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 고개를 “근심을 잊었다”는 뜻에서 망우리(忘憂里)라고 부르게 되었다. 망우리 고개는 역사의 숱한 애환을 담고 있다. 태조의 장례행렬이 지나갔고 조선의 마지막 임금인 순종이 승하하자 장지인 금곡까지 갈 때도 이 고개를 넘었다. 그리고 고종19년 (1882년) 6월 9일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민비가 이 고개를 넘어 장호원으로 피신했다. 봉록 미에 불만을 품은 구식 군인들이 민비를 시해하려고 창덕궁으로 몰려들었을 때 민비는 상궁 옷을 입고 상궁 가마에 올라 대궐을 빠져나와 동대문을 지나 이 고개를 넘어 난을 피했다. 광나루에 도착하였으나 아무도 가진 돈이 없자 민비가 끼고 있던 금반지를 빼주어서 배 삯 을 대신했다고 한다. 망우리에 공동묘지가 생긴 것은 1933년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인 1912년 일제는 '묘지, 화 장장, 매장 및 화장 취체 규칙'을 제정하여 미아리와 수철리(지금의 금호동) 그리고 신사리 (지금의 은평구 신사동)에 공동묘지를 만들었으나 이 세 곳으로 부족하자 1933년에 망우산 에 추가로 공동묘지를 조성하였다. 일제가 신설하는 공동묘지를 망우산에 조성하려는 의도 는 조선의 초대 임금이 묻힌 왕릉의 산줄기에 가장 하층민들이 이용하는 공동묘지를 조성함 으로써 조선 군왕의 권위를 떨어뜨리려는 음흉한 음모가 배경에 깔려 있었다. 일제의 이러한 흉계는 조선을 합병시키고 나서 풍수지리적으로 길지(吉地)에 해당하는 전국 의 산천(山川)에 신작로(新作路)를 내고 쇠말뚝을 박는 파렴치한 행위로 나타났으며 그 저의 는 금수강산에 가득한 조선의 힘찬 기운(氣運)을 쇠잔시키려 하였던 것이다.
▲망우역사문화공원: 서울시 중랑구 망우동에 위치한 종합장사시설이다.'공동묘지'라는 이름이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망우리공원으로 개칭된 후 다시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개칭한 한마디로 추모공원이다. 1933년 미아리 공동묘지가 매장 종료될 것에 대비해 경기도 양주 망우리 임야 700,000평을 경성부의 공동묘지로 결정했고, 1933년 5월 27일에 망우리 묘지가 개원했다. 1973년 3월 25일에 망우리 공동묘지에 28,500여기의 분묘가 가득차 더 이상 묘지 쓰는 것이 금지되었고, 1973년 5월에는 매장이 종료된 망우리 공동묘지의 전성기 때는 지금의 경기도 구리시 망우리고개(딸기원 주변)까지 무덤이 들어차 있었으나 지속적인 이장을 추진해 범위가 많이 축소되고 이장과 정비를 통해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되고 2013년에는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독립운동가들의 사망 후 장지로 쓰인 일이 많았으며, 한용운, 방정환, 이중섭 등 유명인들이 묻혀 있다. 특히 방정환의 경우, 현재 어린이날 관련 행사로 찾는 일이 많아졌다(주로 어린이날 당일, 방정환을 추모하기 위해 찾는다). 이런 독립유공자들의 묘소를 관리하는 봉사활동도 있으니 관심 있으면 참여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2020년 이후로는 기존 주차장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기념관을 준공하는 중이며 2022년 4월 1일에 개관했다. -편집한 글-
▲망우리공원 삼거리에서 우회도로가 있지만 바로 직진하여 공동묘지 지맥마루금으로 올라간다.
▲좁은 능선길 따라 올라간다.
▲좁은 능선길 따라 올라간다.
▲우측 구릉산에서 걸어 온 마루금을 뒤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