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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임재를 즐기는 사람들
마태 5장 10-12절
지금 북한에서는
예수를 믿는다는 한가지 이유 때문에
철저하게 인권을 유린당하면서
혹독한 핍박을 받고 있는 성도들의 수가
우리가 통상적으로 추측하고 있는 것 보다는
훨씬 많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수 만명,
어떤 사람은 '최소로 만명은 있다."
고 합니다.
북한에서 예수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고통을 당한
어느 형제의 간증문을 읽은 일이 있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보위부에 끌려가서
여러 달 동안 독방에서 온갖 고초를 당하며
고문을 당하며 고통을 받았다." 고 합니다.
놀란 것은 그 곳에 가서 보니
거기에 끌려온 사람들의 80%가
다 예수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와서 고생을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는 80먹은 노파도 끼어 있었고,
그들 중에 상당수는
너무 고문을 당하고 또 매를 많이 맞아가지고,
더 이상 정상적으로 걸을 수 없을만큼
장애자가 된 사람들도 한, 두명이 아니고,
전기 고문을 받아서
정신이 돌아버린 사람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독방에 갇혀서 너무 배가 고파서
"하나님! 좀 주세요" 했더니
쥐가 몇 마리 튀어나오길래
그 가운데 두 마리를 잡아서
껍질을 벗기고 날것을 먹으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것이라도 주시니 고맙습니다."하며
기도했다는 글을 제가 보았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당하는 핍박에
직접 동참할 수는 없지만
그들을 위한 기도만은 우리가 해야합니다.
다니엘이 예루살렘 성을 바라볼 수 있는 방향에
창문을 열어놓고 하루 세번씩 기도하듯이,
우리 모두가 기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루살렘 성도들이 핍박을 발았을 때
그들은 밤중에 다락방에 모여서
이렇게 소리 높여 기도했습니다.
사도행전 4장 29-30절을 보면
그 내용을 읽을 수 있습니다.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고 그들은 소리 높여 기도했습니다.
핍박을 물리쳐달라고 기도하기 전에,
그들은 핍박 중에서도
복음을 더 담대하게 전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했고,
핍박 당하는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가 나타나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가 끝나자마자
성령이 그 자리에 임하셔서
모인 곳을 진동하시고,
모든 성도들로 하여급
성령 충만하게 하셔서
복음을 더 담대하게 전하게 하는 것를
우리가 봅니다.
그 결과 예루살템이
십자가 앞에 굴복했습니다.
온 유다와 사마리아가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도 북한 동포를 위하여 기도하면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북한에 있는
모든 어두움의 장막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나라, 자유와 평화의 나라가
임할줄 믿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이것은 꼭 과거 동사 같습니다마는
원래 원문대로 하면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뭐하라구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의를 위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10절]의 말씀이 보충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나를 인하여",
예수님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의를 위하여 박해 받는다.'는 말은
'예수님 때문에 박해 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박해라고 하는 말이
광장히 뭐 대단한 말로 들리지 않습니까?
꼭 감옥에 끌려가서 고생을 해야 되고,
순교를 해야만이
박해를 받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10절, 11절]에서
보충적인 설명과 적용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것이 박해 받는 것입니까?
예수님 때문에 욕 먹는 것!
예수님 때문에 모욕 당하는 것!
예수님 때문에 어떤면에 서는
중상 모락을 당하고,
손해를 보는 것도
박해 받는 것이라고
주님이 설명합니다.
이 박해는 가정에서도 일어날 수 있고,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사회에서도 일어날 수 있고,
직장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또 북녘땅에 있는 백성들처럼
정치가 잘못되서, 사상이 잘못되서도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디서나 이런 핍박은 일어날수 있습니다.
이럴때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지고
이 박해를 감수해야 되는냐?
어떤 자세입니까?
불평입니까?
탄식입니까? 원망입니까?
아니요!
기뼈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으로
박해를 받으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약속한
엄청난 은혜가 있습니다.
’천국이 그들의 것이요'
또 하나!
하늘에서 뭐가 커요?
"상이 크다."
저는 이 맡씀을 가지고
설교 준비하면서
묵상하면서
'나는 설교할 자격없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평생 박해를 받아보았어야지요.
목사되어 지금까지 설교했지만
아무도 내 멱살 잡고 가서
"너, 이 설교 왜 했냐?" 고 모욕한 사람 없었고,
그렇잖아요?
지금까지 예수 믿고,
이것 저것 얻을 것만 잔뜩 누리고 살았지,
제가 박해 받은게 뭐 있습니까?
그러니 '나는 이 설교 할 자격없다.'
하는 생각을 하는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말씀을 설교해야 된다고 확신했습니다.
이 말씀을 설교함으로씨
제 자신이 받은 은혜가 있어요.
우리는 이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박해 당하고 있는
오늘 지구상에 많은 성도들에게 뒤지지않도록
신앙생활을 해야되겠다고 하는
각오가 필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도
언젠가는 박해를 당할찌도 모르지요.
그때를 위해서
우리는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박해 당할 때만
즐거워하고 기뻐할 것이 아니라,
박해 없는 사회에서 신앙생활하면서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모습을 좀더 밝게,
좀더 기쁘게, 간직하고
다시한번 신앙생활을 시작해야 된다는 각오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말씀을 조용히 들으면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꼭 알아야 활 것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박해는
정상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복음서를 읽게되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테, 마가, 누가, 요한복음]을 쭉 읽으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들을 한 마디, 한 마디,
우리가 살펴보면
'예수님은 광장히 솔직하시다."
하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나를 믿으면 너희들 핍박 받을 것이다."
하는 말 듣고
예수 믿을 사람 몇 사람이나 될 것 갈습니까?
"너희들이 생명 내놓고 죽을 각오하지 않으면
나를 따라올 수 없다.
너희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와야 된다.
이 길은 좁은 길이다. 이 길은 고난의 길이다."
하는 말 듣고
주님 따라갈 사람 있겠어요?
우리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아무도 그런 소리 듣고
예수 믿을 사람 없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대놓고 이야기합니다.
'나를 따르려거든 네 십자가를 져라.
나의 가는 길은 고난의 길이다.
자기 목숨을 아끼려고 하는 사람은
나를 따를 수 없느니라"
대놓고 주님께서는 "예수 믿으면 박해 당한다.“
는 것을 이야기하셨어요.
얼마나 솔직한지 모릅니다.
주님은 사람들의 눈치보면서
말씀하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물러같까 싶어서
겁이 나 가지고
하나님의 진리를
어떻게 적당하게 포장해 가지고
말씀하신 일이 없어요.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말씀하셨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있지요?
[요한복음 15장 19-20절] 말씀을 보면
그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 너희가 세상에 속하었으면
세상이 자기 것을 사랑할 터이나 /
다시 말하면 "너회가 세상에 속해 있으면
세상이 너회를 절대 박해 하지 않는다.‘
자신의 자녀 미워하는 부모가 없듯이,
세상이 너희를 사랑할 것이지마는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너희는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이므로
세상이 너회를 미워하느니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 하였으므로
너희도 반드시 박해 할 것이니라"
대놓고 주님 맡씀하셨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제자들은 주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한 평생 복음 전하다가
다 순교했어요.
예수 믿으면 이 세상에서
박해 당한다는 것을 다 알면서도
초대교회 성도들은 모두가
예수 믿고 주님 따라갔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가족을 잃었습니다.
직업을 잃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나중에는 박해 받아 산 속에서 유리하고,
사막에서 유리하다가 굶어 죽었습니다.
어떤 사랍은 끌려가서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결국은 형장에서
아무도 보지않는 외로운 그 자리에서
주님 이름 부르면서 순교했습니다.
알면서 다 따라갔어요.
가장 어려웠을 때가 언제냐
"로마 황제가 신이다.
예수 배반하고 로마 황제를 믿어라!
그렇게 하겠다면 너를 용서해 주마!"
이러한 유혹을 받을 때 였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어려웠겠어요?
말 한마디로
'나 예수 안 믿겠다' 하면 풀려나가고,
다 다시 정상적으로 생활이
회복이 되는데,
이 한마디 말을 못하는거예요.
'어떻게 예수님을 부인하나?
어떻게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느냐?'
이 한마디를 할 수가 없는거예요.
결국 그 한마디 말을 못해가지고,
사람들이 볼 때에는 가장 바보같은
인생의 종말을 고한 사람들이
초대교회 안에 수십만이 있었습니다.
사자굴에 던지움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힘을 받고,
화형을 당하고,
자식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고아가 되어가지고,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도 없는 ...
부모로서는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당하면서도
"예수 모른다."는 말 한 마디를 할 수가 없어서
주님이 가신 그 길을 따라간 성도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롭니다.
공산주의가 그 어두운 그림자를
지구 한 모통이에 덮을 때,
[시베리아]에, [소련]에, [동구권]에, [북한]에, [중공]에,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생명 걸고 싸우다가
형장에 이슬로 사라졌는지 모릅니다.
[시베리아 형무소]에 끌려가서
수십년 동안 고통하면서도
"예수 모른다. 나는 예수 안 믿겠다.'는
그 말 한마디 못해가지고,
한 생을 수용소에서 늙어버린 사람이
한, 두명이 아니구요.
저 [북한]에 보세요!
[아오지 탄광]같은 죽음의 탄광에 끌려가서,
그 곳에서 하루종일 석탄 캐다가
나중에는 피를 토하고,
한 생을 마친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지금도 "예수 모른다."는 말 한 마디 못해가지고,
북한에서는 너무나 어려운
한 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제 시대에 일본은
우리에게 간교한 유혹을 했습니다.
천황에게 절하라! 천황이 신이다.
주기철 목사님과 같은 분은 생명 걸고 싸웠습니다.
그가 구속 당하기 얼마 전에 한 유명한 설교
"못합니다!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다른 신에게 정절을 깨뜨리지 못합니다.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일본 신상 앞에 가서 절하지 못합니다.
나는 어렸을 때, 주님안에서 자랐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드리리이다! 이 목숨 하나만이라도
주님께 드리려이다." 하고는
감옥에 들어가서
그는 시체가 되어서 나왔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 박해는 정상이예요.
박해 받는다는 것은
곧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그저 좀 살겠다고 겁이 나 가지고
베드로 처럼
"예수 모른다.'고 부인해 버리면
그 상처가 얼마나 무서운지
평생을 그 상처에서 헤어나지 못한다고 합니다.
물론 나중에 회개하고
예수님 앞에 다시 돌아온 사람들이 많지요.
그러나 "아! 나는 한 때
예수님 모른다고 부인했는데,
나 살겠다고 예수님 버렸는데,
하는 그 자책감 때문에
헤어나지를 못한다고 그래요.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는
많은 박해가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2억에서 2억 5천만이 넘는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혹독한 박해를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회교권에서 예수 믿는 것 매문에
종교적인 핍박을 당해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냐?
저 [수단]에는
인구의 '오분의 일'이 크리스찬입니다.
그런데 그 인구 '오분의 사'에 해당하는 회교도들에게
박해를 받아
[누바]라고 있는 지방에 있는 사람들은
지난 십년 동안 청, 장년들만,
남자들만 '오십만 명'이 끌려가서 순교 당했어요.
북한에는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 때문에 순교를 당했는지
우리는 수치조차도 갖고 있지 않아요,
그들은 고문을 당했습니다.
노예처럼 인권유린을 당했습니다.
강간 당했습니다. 투옥 당했습니다.
가족들이 다 뿔뿔이 홀어져서
다 격리 당했습니다.
평생동안 중노동하다가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여러분! 분명히 알고 있어야 됩니다.
예수님 따라가는 길은 어떤 길이냐?
그저 내 소원 다 이루어서
평안하게 사는 것이 예수님 따라가는 길이냐?
성경보면 그렇지 않아요.
박해 받을 각오를 하고, 예수믿는 것이
주님 따라가는 길입니다.
우리 이걸 꼭 기억해야 됩니다.
둘째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박해 당하는 성도에게
가장 최고의 상을 약속하시고
축복을 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에 나오지요?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천국!
그 다음에 또 하나!
"하늘에서 상이 큼이니라'
뭐 적달한 상이 아니예요.
엄청나게 큰 상을
하나님이 준비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여기서 천국이라고 하는 말은
예수 믿고 구원받고, 천국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고 저는 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팔복에서 하필 천국, 천국,
이야기 할 필요가 없어요.
왜냐하면 '예수 믿으면 다 들어가는 곳인데,
그것을 특별히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으로
따로 맡씀할 필요가 없다.'고
저는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이 뭐나?
우리의 마음에 임하는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주님이 다스리시는 세계가
내 마음에 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내 안에 임하시는 것을
직접 체험 하는데서 오는
신비스러운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게 천국이예요.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박해 받는다고 합시다.
그러면 박해를
자꾸 혹독하게 받기 시작하고
이제는 막다른 골목까지 가면요
오직 한 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나머지는 전부 버려야 합니다.
자! 보세요. 오직 한 분이 누구예요?
예수 그리스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
이것을 끝까지 붙들기 위해서는
모든것을 다 포기하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마치 바울이 타고가던 배가
조난을 당하자마자
살아남기 위해서
배 안에 있는것을 자꾸 내버렸잖아요.
나중에는 양식까지도
마지막으로 먹고 남아 있는 것을 다 버렸어요.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해서.
다 버리는거요.
나중에는 몸과 배만 남아요.
그렇게 되면 마음이 텅터 비어요.
빈 마음이 돼요.
그 빈 마음에
무엇이 임하는지 압니까?
천국이 임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예수 외에는 남아 있는게 없으면
그 자리가 바로 천국이예요.
하나님이 임하신 거룩한 천국이요.
여러분! 팔복의 제일 첫번째가 뭡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어떻게 첫번째 하나님이 약속한 행복하고,
마지막에 약속한 행복이 똑 같아요.
저는 맥이 통한다고 봅니다.
언제 우리 심령이 가장
가난한 자가 될 수 있습니까?
평안할 때 입니까?
환경이 좋을 때 입니까?
박해 당할 때입니다.
그럴 때 천국이 임하는거요.
그러므로 심령이 가난할 때,
하나님이 약속한 축복하고,
박해 받을때 하나님이 약속한 축복하고
같은거예요.
우리가 사랑하는 찬송 하나가 있지요.
“주 예수보다 더 귀한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수 업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이 찬송 부르는 사람의 심령은 천국이예요,
예수 외에는 없어요,
사실 우리가 평화로울 때에는요
우리 마음 비운다는것 쉽지 않아요.
그런데 박해 당하면요
타의든 자의든 간에 다 포기하게 되어 있어요.
그러다보니까 심령에 주님만이 남는거예요.
천국이예요.
천국이 임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체험되는 곳이예요.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는 것을
너무 강하게 체험하니까
거기에 뭐가 터진다구요?
기쁨이 터져요.
박해 당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이걸 약속하셨어요.
마크 발리 라고 하는 사람은
기독교 2천년사에 순교를 당한 사람들의
사적을 연구하는 학자입니다.
그 분이 많은 순교자들을 연구한 다음에
결론적으로 이런 말을 었습니다.
"순교자를 하나, 하나를 뜯어보고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보면
한가지 분명히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임재였다."
그리고 더 놀라운 말씀을 했어요.
"그 순교자들은 죽음의 순간까지
하나님의 임재를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순교의 순간까지
하나닙의 임재를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이해 됩니까?
"개롤린 록스라고 하는 사람은
[수단]에서 핍박당하고 있는 성도들을 위해서
지난 십년 동안 그 [수단]에
'17번'이나 방문을 한 사람인데,
그 사람이 이런 말을 했어요
"박해 받는 교회 현장에 가면
항상 겸손하지 않으면 안되는 현상을 봅니다.
나로하여금 한 없이 낮아지게
만드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핍박 당하는 그들이 누리는
엄청난 영적 자원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살아 움직이는 믿음이요,
기쁨이었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약이 없어서 병들어 가지고
약도 쓰지 못하고 죽어가면서도,
먹지 못해 가지고 뼈만 남아 있으면서도
그들의 가슴에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 기쁨 앞에 나는 한 없이
겸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바로 천국이
그들의 심령에 임하여 있는 것이지요.
성경에 가장 먼저 순교한 사람이
평신도 『스테반』 이었지 않습니까?
그가 돌맹이가 날라오는 현장에서
무엇을 보았습니까?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있음을 봤어요.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에게 있음을 봤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심령에 임한 천국을
환상으로 정확하게 보는 것입니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서신 것을 보노라"
자기 마음에 임한 천국을
환상으로 역력하게 보면서
그것때문에
황홀해서 견디지를 못하고
소리를 지른 것입니다.
하나님이 박해 당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상급이 있습니다.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그 상급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성경을 보면 박해 당하는 자를 위해서
특별히 두 가지를
하나님께서 상급으로 약속하신게 있습니다.
[계시록 2장]에 보면
너회 앞에 다가오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고난이 올때 너회는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무슨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을 너희에게 주리라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0장]에 보면
이 세상에서 복음 전하다가, 말씀 전하다가
목 베임을 당한 사람!
우상 앞에 절하지 않다가
박해 당해 희생당한 사람들이 그 자리에 있는데,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왕 노릇 할 것이라고 맡씀하셨어요.
생명의 면류관!
그리고 주님과 함께 천 년 동안 왕노릇하는 영광!
이것은 편안하게
우리처럼 예수 믿다가 천국오는 사람에게는
약속된 것 아닙니다.
이것은 특별히 박해 당하고,
주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약속한 축복입니다.
이런것들이 있기에 주님은
'너희들이 박해 당할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그랬습니다.
자! 그러면
결론적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비록 박해가 없는
세상을 살지라도
자세만은 똑바로 가져야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서는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된다고 하는
[로마서 8장 17절]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몇가지 꼭 마음에 담아둬야 할 일이 있습니다.
첫째는, 박해 당하는 자들의 고통을
같이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나눌 수 있느냐?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박해 받는 성도의 심정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비록 우리는 박해를 모르고 살지만
지금 "내가 예수때문에 박해 당하고 있다."하는
그런 심정가지고 신앙생활하자 그 말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하면
내 마음에 잡동사니가 쌓이지를 않아요.
내가 마음을 자꾸 주는 우상이
우리 마음에 조금이라도 자리를 잡을 수가 없어요.
박해 당하는 심정을 가지고 살면,
내 마음은 항상 천국이 임할 수 있습니다.
비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자세를 가지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
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럴 때에,
우리는 박해 당한 성도들과 함께
하늘에서 상급을 받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수 있습니다.
박해 당하는 심정을 가지고 신앙생활하자 그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임재를 날마다 체험하며,
천국을 마음에 소유한것 때문에
세상 사람이 모르는 기쁨을 보며주면서 살면,
우리의 모습은
작은 예수가 될 수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이 우리를 보고
'무언가 있다'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서
그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릴 수 있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박해 당하는 이들의 심령에 천국을 주옵시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가운데
말로 할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을 맛보게 하옵소서.
박해 당하는 자들을
주께서 눈여겨 보시고, 살피시고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이버지!
오늘 주신 말씀대로
박해 당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은혜를 주옵소서,
그 심령에 천국이 임하는 은혜를 주옵소서.
천국이 임하므로
하나님의 임재를 날마다 체험하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함으로 인하여
세상 사람이 알지 못하는 기쁨이
그들의 가슴에 목포처럼 쏟아지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주님이 주시는
그 놀라운 은혜 때문에
고난을 이기게 하옵시고,
육신적인 굶주림과 추위를 이기게 하옵시고,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모든 유혹을 뿌리칠 수 있도록
우리 주님께서 보호해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로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