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 리 (NELLY)/
제2회
강 기 영
그러나 개는 사람처럼 가만히 있어 주질 않을 것이다. 넬리의 부러진 다리는 골절 상태가 심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개는 원래 그렇게 하는지는 몰라도
깁스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관절이 빠진 다리는 바싹 꺾어서 움직이지 못하도록 몸통이 붙여 밴드로 칭칭 감았다.
그러니 일어서려면 부러진 다리 하나로 균형을 감당해야 하는데 그게 무리였다. 넬리
쪽에서 보면 갑자기 다리 하나가 잘려 나가고, 나머지도 제 멋대로 덜렁이는 상황일 것이다. 그런데도 넬리는 평소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밖에서 기척이 들거나 식구들의 움직임에 벌떡벌떡 일어서다가 나뒹굴었다.
답답한 노릇이다. 어쩌다 일어나는 데까지 성공을 하여도 갓 태어난 망아지가 이리저리
쏠리며 균형을 못 잡듯 후둘거렸다. 그러면 식구들은, 뼈가 바삭 부서지며
금방이라도 내려 앉을까 봐 기겁을 했다. 동물병원에서는 이런 상태의 개를 어떻게 치료할까? 어쩜, 진통제를 듬뿍 넣은 링거를 꽂아 일어서지 못하는 좁은 공간에 가두어 두지는 않을까.
그러자 개가 사람보다 치료하기 휠씬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개의
치료비가 그렇게 비싸야 하는 이유를 납득할 만도 했다.
연년생으로 대학생이 된 아들과 딸아이는 넬리의 병세와 고통이 우선이었지만 같은 개를 놓고도 나는 돈을 걱정했다.
만약 다시 뼈가 내려 앉는다면 아이들은 그게 넬리가 불구가 되는 소리이고, 그렇더라도
살아만 달라는 기도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그게 돈 나가는 소리로 들릴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대로 넬리를 신주단지 모시 듯 할 수 밖에 없다. 그게 아이들에게는 개에 대한
아버지의 순수한 애정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그런 나의 태도가 아이들에게는 치료비가 추가 부담되는 불행한 일이
일어난다 해도 이미 합의된 사항으로 간주되는 모양이었다. 한국처럼 가장의 권위가 서지도 않고,
부모에 대한 공경이 의미 있게 교육되지도 않는 캐나다에서 힘 없는 가장은 쓸쓸할 수밖에 없다. 이미 나는 그 쓸쓸함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나는 나이가 많아지거나 근무기간이 길어진다고
수입도 늘어나는 직장을 가진 게 아니었다. 그런 데도 세월 따라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지출은 늘어갔다.
거기에서 벌어지는 갭(GAP)은 어쩔 수 없이 가장의 권위와 상쇄될 수 밖에 없었다.
넬리의 사고는 캐나다의 가을 날씨 치고는 드물게 청명하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듯 하기 때문에 일어난
사고였다.
가을걷이와 겨울 준비가 안성맞춤인 일요일이었다. 며칠 추적이던 비도 말끔히 걷히고,
아직 춥지는 않고, 바람도 없고, 너구나 일요일이고……. 캐나다에서 이런 날을 맞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은 여름이 끝나는가 하면 가을도 없이 곧바로 겨울이 되는 게 캐나다의 날씨였다.
나는 벌써부터 미뤄 오던 뒤란의 창고 보수공사를 더 이상 미적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삽이며
갈퀴 등 잡동사니를 넣어 두던 오래된 가건물이 지난 겨울 폭설 때 반쯤 내려 앉았는데도 이 핑계 저 핑계로 게으름을 피웠다. 큰 맘 먹고 일찍부터 시작한 일이 뚝딱거리다 보니 그런대로 손 맛이 왔다.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아내까지 들락였다. 그러더니 장갑에 전정가위까지 들고 그럴싸한 품으로
이곳 저곳을 들쑤시고 다녔다. 정상대로라면 아내는 한 나절까지 침대에 있어야 했다. 아내는 어느 편인가 하면, 무슨 일이든 깔끔하게 정돈하여 야무지게 끝을 맺는 성격이 아니었다.
어쩌다 마음 먹고 옷장이나 신발을 정돈해도 이내 다시 헤집어야 했다. 당장 신을
슬리퍼나 늘 입는 옷가지까지도 구별 없이 몽땅 치워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내의 그런 습관을 ‘들쑤신다’로
격하시켜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 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집은 평범한 방갈로다. 그런데
뒤란은 큰 편으로 채소밭으로 일군 텃밭도 꽤 넓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채소는 풍성했지만 일손은 적잖게 가는
편이었다. 바로 그 텃밭이, 그리고 일손이, 권위가 빠져나가는 내 권위를 대신해 주는 공간이었다.
아내는 벌써 파를 뽑아 다듬지도 않은 채 한 무더기 지어 놓았고, 올해는 심지 않아 저절로
나왔는데도 손가락처럼 굵어진 아욱도 몇 대 꺾어서 밭고랑에 놓았다. 그 때쯤 딸아이기가 넬리를 앞세워 나왔다.
딸아이도 여느 때 같으면 침대에 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이미 아침에 용변을 끝낸
넬리지만 다시 나와도 신나기는 마찬가지다. 목줄을 풀어 놓자 사방으로 날뛰며 좋아했다. 넬리는 자라면서 점점 사나워져 집안이 아니고는 목줄을 풀어 놓는 곳이 뒤란 뿐이었다.
겉으로는 참 좋아 보였다. 흔히 말하는 이민 성공케이스 같았다. 반 이상이 월부이긴 하지만 정원이 딸린 집이 있고,
아내는 거기에서 텃밭을 가꾸고, 성장한 딸아이는 애견과 잔디 위에서 뛰어 놀고……. 화폭에 담는다면 참으로 평화스러워 보이는 한 장의 그림이 되겠다.
그러나 나는 작업에 열중하느라 다른 데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내가 언제 앞뜰로 나갔는지, 넬리가 그 뒤를 따랐는지,
넬리에게 목줄을 씌웠는지도 까맣게 몰랐다.
첫댓글 아버지의 권위 추락에 대한 설명이 감칠 맛이 나네요.
저는 아예 캐나다 올 때 권위 따위는 태평양에 던져 버리고 와서 그럭저럭 산답니다.
'아버지의 권위 추락'을 말씀하시니 예전, <이 풍진 세상>이라 제목을 붙였던 단편 하나가 떠오르네요.
주인공 이름이 '장세풍' 씨로 아버지께서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세상을 한 번 평정해 보라' 붙여준 이름인데 세상 평정은커녕, 빌빌거리다 나중에는 딸년이 키우는 강아지 밑으로까지 족보가 내려 가는 내용 같았는데, 이민을 떠나기 전 불태워버리던 더미 속으로 들어가 버렸었지요.
감사합니다.
/연년생으로 대학생이 된 아들과 딸아이는 넬리의 병세와 고통이 우선이었지만 같은 개를 놓고도 나는 돈을 걱정했다. 만약 다시 뼈가 내려 앉는다면 아이들은 그게 넬리가 불구가 되는 소리이고, 그렇더라도 살아만 달라는 기도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그게 돈 나가는 소리로 들릴 것이다. /
지극히 사실적인 묘사로군요. 소설의 배경이 지난 가을에 들렀던 강 선생님 댁 뒷뜰 모습하고 흡사하네요.
그래서 더 흥미있게 읽고 갑니다.
뒤란 배경은 그대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