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나오는 식물들 중에서 사람들이 인상깊게 기억하는 것이 바로 쥐엄나무이다. 구약성서에 한번도 나오지 않고, 신약에 단 한 번 나오는데 (탕자의 비유, 눅 15:16) 누구나가 기억하고 보기를 원하는 나무중 하나이다. 아마도 탕자이야기에서 강한 인상을 갖게 되어서 그런 듯 하다. 성경에서 언급된 쥐엄나무(Ceratonia siliqua)는 한국의 쥐엄나무(주엽나무, Gleditsia japonica)와 다른 나무이다. 기독교가 중국에 전파될 때 처음 번역한 사람들이 콩꼬투리의 생김새가 주엽나무와 비슷하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우리나무는 주엽나무의 경기도 방언인 쥐엄나무로 번역했다.
성경에는 쥐엄나무(하루빔 나무) 열매가 극단적인 음식으로 나온다. 성경 속 쥐엄 열매는 아버지의 유산을 모두 탕진한 탕자가 목숨을 연명하려고 먹으려 한 돼지의 사료다. 또한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먹은 메뚜기와 석청 중 메뚜기(하...가브)는 쥐엄 열매(하루브)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①탕자가 배를 채우려고 했던 열매의 나무(눅15:16)
성경에서 쥐엄나무가 언급되는 것은 단 한번, 누가복음 15장 '잃었던 아들' 비유에서다.
돌아온 탕자의 비유라고 부르는 대목이다. 성경은 이 쥐엄나무 열매를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라고 표현했다. 아버지 유산을 미리 챙겨 타지로 떠난 작은 아들은 가진 돈을 다 탕진하고 곤궁에 허덕이기 시작했다. 그는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로라도 배를 채우고자 했지만 그에게 음식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돼지를 부정한 동물로 여긴 유대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주검을 만지지도 않는 관습(레위 11,7-8)이 있었다. 따라서 돼지를 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었고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라도 먹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의 상황이 얼마나 비참했는지를 설명한다. 옛날 적의 포위로 성 안의 사람들이 굶주릴 때 비상 식량으로 많이 먹었다고 한다.
재산을 탕진한 둘째아들이 집에 들어온 후의 가족들 반응을 보면,
1. 머리를 깍고 겸손하게 아버지 품에 안긴 탕자 (용서를 구하는 회개의 자세)
2. 부드럽게 어깨에 두손을 얹으며 용서를 하는 아버지(자비와 용서 그리고 은혜)
3. 큰아들 표정이 굳어진다(율법적 자세)
돌아온 자를 귀히 여기는 성경의 정신이 묻어난다. 탕자가 집에 돌아 올 수 있도록 생명을 연장시킨 것은 쥐엄열매이다.
②가난한 자의 식량, 쥐엄 열매 (마 3:4).
마가복음 1장 6절에 의하면 세례 요한은 약대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고 한다. 성경에서 메뚜기라고 이야기할 때 일반적으로 광야에서 뛰어노는 메뚜기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스라엘에는 메뚜기가 또 하나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쥐엄나무라는 것을 유대인들은 메뚜기나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메뚜기라는 히브리 단어가 하루브(harub)였는데 공교롭게도 이 쥐엄나무도 같은 하루브(harub)였기 때문에 쥐엄나무를 메뚜기 나무라고도 불렀던 것이다. 즉 세례 요한이 먹었던 메뚜기라는 것은 쥐엄나무 열매였다. 현실적으로도 쥐엄 열매는 말려서 보관할 수 있고 당분과 단백질이 많아 광야에서 은둔생활 할 때 적합한 양식이다. 요한의 은둔지로 알려진 장소가 그의 고향 에인 케렘(Ein Kerem)에서 그리 멀지 않아 집에서 가져왔거나 은둔지 주변에서 스스로 채취해 저장했을 수 있다. 세례 요한은 검소하고 절제된 삶을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메뚜기를 히브리어로 하가빔이라고 하고 쥐엄나무를 하루빔이라고 한다. 아마도 두루마리성서를 옮겨 적는 과정에서 잘못 기록하여 광야에서 흔한 쥐엄나무 열매가 메뚜기로 잘못 기록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논란이 있기도 하다. 세례자 요한이 활동한 유다 광야는 메뚜기가 거의 없다. 우기인 겨울에 잠시 파릇파릇 풀이 돋다가 건기가 되면 마른 땅이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6개월 정도 건기이므로 황량한 땅으로 변해 메뚜기가 살 수 없는 조건이 된다. 이를 뒷받침하는 이야기로 초기의 기독교인들은 쥐엄나무 열매를 "세례요한의 빵"이라 불렀으며, 지금도 뉴욕의 시장에서는 쥐엄 열매를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세례 요한은 왜 석청을 먹었을까?
세례 요한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던 광야에는 꽃이 없었다. 꽃이 없으면 벌도 없고, 벌이 없으면 꿀도 없다.
이스라엘에는 세 가지의 꿀이 있다. 종려나무 꿀과 벌꿀, 쥐엄나무 꿀 등이다. 유대인들에게는 페아(peah)법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가난한 자들과 고아와 과부를 위한 사회구제법 중의 하나였는데, 모든 곡식들을 거둘 때 밭 모퉁이를 베지 않고, 그리고 곡식을 거둠에 있어서 이삭을 줍지 않는 것이었다. 이것을 페아, 즉 ‘모퉁이법’이라고 했다. 즉 석청이란 돌 틈 사이에 끼어 있는 꿀을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벌꿀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종려나무 열매가 떨어져서 돌틈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이며, 가난한 자들이 주워 먹을 수 있도록 배려된 음식이었다.
세례 요한은 가난한 사람들이 먹던 쥐엄나무 열매와 그리고 돌 틈 사이에 끼어 있던 종려나무 열매를 먹었던 것이다. 그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면서 잘 먹고 잘 산 것이 아니라 정말 가난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을 맞추고 전파하던 하나님의 선지자였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등장하는 쥐엄나무는 ‘궁핍과 가난’을 상징한다. 왜냐하면 고대 이스라엘에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보릿고개라는 것이 있었다. 이렇게 가장 먹을 것이 없는 시기에 먹었던 열매가 바로 쥐엄나무 열매였다.




열매

수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