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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운슬러 >
“감독 리들리 스콧, 원작 코맥 멕카시, 거기에 마이클 패스벤더, 하비에르 바르뎀, 브래드 핏, 페넬로페 크로즈, 카메론 디아즈가 함께 나오는 영화를 거부 할 수는 없다.”라는 허영심에서 촉발 된 영화보기는 별로 즐겁지 않았다.
<카운슬러>는 상당히 불편한 영화이다. 그 불편함은 첫째, 하드보일드라는 장르적 관습에 충실하지 못한 영화적 어법의 다름에서 온 것(재미 없다는 이야기다) 이거나 둘째, 이 정도의 조합이면 뭔가 분명 있는 건데 내가 알아내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 또는 조급함에서 온 것 일수도 이다.
코맥 멕카시의 소설 자체가 기승전결이 명확하거나 등장인물과 사건을 친절하게 소개하는 작법과는 거리가 먼 주변 정황에 대한 세밀한 묘사를 통하여 독자의 상상력을 추동 하는 보여주기에 충실하며 소설적 배경이 대부분 흙먼지만 날리는 멕시코 접경의 서부에서 일어나는 피 냄새가 가득한 묵시록적인 세계를 그리고 있는 관계로 영화의 소재로는 분명 매력이 있다. 그러나 원작자의 무미건조한 문체가 그리고 있는 냉혹한 세계의 확연하고 독특한 색감은 영화적 문법으로 옮겨질 경우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다.
약이 된 영화는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이다. <카운슬러>는 필자의 생각으로는 독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영화의 플롯은 굳이 요약하자면 단순하다. 마약카르텔들이 공생하고 있는 멕시코 접경의 남부텍사스에서 2천만 달러 어치의 마약이 사라지면서 벌어지는 속고 속이는 이야기다. 마약밀매업자(하비에르 바르뎀)와 카운슬러(마이클 패스벤더), 중계업자(브래드 핏) 그리고그들의 연인(페넬로페 크로즈, 카메론 디아즈)이 주요 등장인물이고 이들의 욕망이 특히 돈에 대한 집요한 탐욕이 결국 그들을 끔찍한 파국으로 치 닫게 한다.
익숙한 줄거리에 별다른 반전도 없고 사건의 동인 또는 실체가 명확하지 않으며(등장인물간의 인과관계가 잘 들어나지 않고 너무 생략이 많다) 주제 또한 단순한 편(멕카시의 팬들은 전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인데 이런 존재감 있는 배우들을 모셔서 뭐라 그럴까 각각의 캐릭터를 연기를 한 것이 아니라 심하게 표현하면 비중 있는 소품처럼 취급한 감독의 의도는 수긍하기가 어렵다. 필자가 보기에 원작들이 담고 있는 힘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에 있지 않고 표현방식의 생경함(불친절하고 읽어 내기가 쉽지 않지만 인물과 사건의 세밀한 묘사가 특유의 방식으로 결합되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과 그로 인한 혼란상을 그리고자 하는 세계에 투영하는 방식에 있다는 점이다.
불행하게도 감독은 원작의 서사구조와 표현방식이 담보하고 있는 독특한 아우라를 영화적 문법으로 완성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자 하는 형상과 주제가 유기적으로 결합하지 못하니 연기 잘 하는 배우들을 가지고 요령부득의 대사만 늘어 놓고 그것도 부족하여 내레이션까지 강요적이다. 자 이정도 했으면 니 들이 알아들어야지 왜 이해를 못하는 거야 하고 호통치는 것 같다.
원작이나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대단히 심오한 것도 아니고 철학적 분석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우리가 사는 곳이 개인의 끝 간데 없는 욕망만이 난무하고 그 사회의 구조 또한 냉혹하여 결국 인간은 구조의 희생물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교훈은 진부하기 까지 하다.
소감은 이렇다.
코맥 맥카시는 특이한 맛은 있으나 영양가가 부족한, 그러나 결코 잊혀지지는 않는 음식 비슷한데 리들리 스콧은 이게 얼마나 맛있는 음식인데 투정을 부린다고 화를 내는 짐짓 근엄한 일류 요리사 같다.
<프로메테우스>부터 이 형님한테 무슨 문제가 있나 하고 걱정(나는 정말 리들리 스콧을 좋아한다)되었는데 <카운슬러>는 형님한테 카운슬링이 필요 해진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극중 카메론 디아즈가 하비에르 바르뎀의 컨버터블 스포츠카의 앞 유리창에 올라가 노팬티로 브라질리안 왁싱을 한 음부를 일자로 다리를 벌린 후 유리에 밀착하여 상하로 비벼대는 엽기적 장면이 있다. 하비에르 바르뎀 왈 “이런 짓을 하는 여자와는 도저히 헤어질 수 없다” 필자는 죽었다 깨어나도 저런 인간들의 멘탈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영원히…
브레드 핏을 죽이는 소품의 아이디어는 탁월했다.
영화<셰임>에서 마이클 패스빈더의 나체을 보고 나는 쇼크를 받았다. 벌거 벗고 걸어 가는 뒷모습에서 자지가 엉덩이 사이로 시계추 처럼 건들거리는 데 최하 20센티는 되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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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20 이면 셀프 페라가 되겠네... 근데 브라질리안 왁싱은 뭐야?
거시기의 터래기를 깨끗하게 밀어 버리는 것입니다. 쌈바 페스티발에서 티팬티를 입고 춤을 추는 무희들로 부터
유래된걸로 알고 있습니다.
카메론 디아즈땜에 봐야게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