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산(白蓮山)~안산(鞍山)트레킹
최근에 자전거 라이딩중에 다친 어깨 때문에 요즘, 컨디션이 난조다. 그렇다고 손 놓고 앉아 쉬기에는
아직도 식지 않은 열정이 꿈틀거리니 오늘은 서울의 백련산~안산 트레킹에 참가하기로 하였다.
날씨는 우중충하여 4월 초순의 봄 날씨치고는 꽤나 바람이 차가웠다.
옅은 미세먼지가 뿌옇게 시야를 가렸다. 홍제역 2번 출구에서 대원들과 합류를 했다.
사실 20-60클럽에는 지난해 강원도 안흥 트레킹에 함께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대원들끼리 차를 나누며 반갑게 인사를 마친 일행은 홍제역 4번 출구를 빠져나와 곧장 백련산 자락으로
이동을 했다.
백련산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따라 약 10여 분간 오르막을 오르면 도심의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가
차츰 발아래로 낮아지고, 향기로운 솔 향이 코끝에 차오른다.
을씨년스럽긴 해도 이곳저곳에 산벗꽃이 수줍은 새악시모냥 함초롬한 자태를 선보인다.
이름 모를 나뭇가지에 맺힌 봉우리는 머지않아 탐스러운 꽃을 피워 낼 만반의 준비를 마친 듯 보였다.
백련산(白蓮山)은 높이가 215m로 말 그대로 동네 뒷산이다.
백련산은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 잇대어 있는데, 원래 이 산에 매 모양의 바위(응암·鷹岩)가 있어
응암동 이라는 동네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오늘의 트레킹은 은평구 끝자락부터 서대문구에 걸쳐
있는 백련산에서 홍제천 건너 안산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선택했다.
제대로 걷자면 넉넉히 4시간은 잡아야 할 정도라고 한다. “네 시간쯤이야…” 하는 생각을 했지만
아직도 불편한 어깨 때문에 신경이 쓰인다.
백련산은 필자의 고향인 영종도에도 있다. 어릴 적에 우거진 숲길을 헤치며 꾸역꾸역 넘나들던 그 산,
마당가에서 보면 제법 높게만 보이던 그 산이 백련산이었는데, 세월이 많이 흐른 후에 다시 찾아보니
그저 동네 뒷산이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리 높지 않은 산을 오르는데도 벌써 숨이 차오르니
어쩔 수 없는 세월의 그림자는 저물어가는 인생길에 반갑지 않은 동반자일 수밖에 없나보다.
봄내음도 맡고 꽃 냄새도 맡으며 오르다 보니 어느새 하늘이 열리고 가까이는 인왕산과 그리고
그 너머로 북한산 오봉이 눈에 들어온다.
확 트인 전망이 유리창에 입김을 불어 놓은 것처럼 희미하던 얼룩을 말끔히 지워버린다.
백련산 무명봉에서 바라본 북한산의 아기자기한 자태는 역사속의 인물 정도전이 왜 개경을 버리고
서울로 천도를 계획했는지 되새겨볼만 했다.
북한산을 등 뒤에 놓아두고 다시 길 위에서 휘적휘적 20여 분을 보내면 사방을 조망권에 둔 2층
팔각정자가 나온다. 그 2층에 올라서면 아까보다 훨씬 뒤로 물러선 북한산 능선이 같은 눈높이에서
하늘과 경계를 이루며 흐른다.
팔각정 밑에서 뒤늦게 합류한 대원이 배낭을 열자 아직도 따끈따끈한 계란과 자색양파즙이
쏟아져 나와 대원 모두에게 돌아갔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서 늘 변함없이 발견하는 것이
바로 넉넉한 마음이다.
이타 주의적이며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지만 산에 오를 때만큼은 그저 넉넉하고 큰마음으로 각자에게
작은 감동을 주곤 한다.
순하디 순한 백련산 능선 흙길은 소나무로 대표되는 침엽수와 다양한 수종의 활엽수가 영역을 고루
분할하며 자생하고 있었다. 그저 조용한 산길을 걷다보면 웬지모를 평화로움이 마음 가득히 울려온다.
팔각정을 뒤로 한 채 한참을 내려오다가 제비꽃 몽우리가 몽글몽글 솟아오르는 평평한 곳에서
두 번 째 간식타임을 가졌다. 아까보다 더 많은 간식이 쏟아져 나왔다.
과일은 물론 집에서 정성껏 만들어온 부침개를 비롯해서 장인(匠人)이 만들었다는 동동주가
입가심으로 한 모금씩 권해졌다. 어깨를 핑계로 배낭을 아예 가져가지도 못한 나는 내놓을게 없으니
그저 주는 대로 먹기 바빴다. 간식타임을 뒤로하고 다시 20분 정도를 더 걸으니 계단 내리막을
만나며 멈춘다.
계단을 따라 내려간 후 마을을 만나면 포장로를 따라 내부순환로가 하늘을 가린 홍제천이 보이고
건너편 산에는 화려한 꽃동산이 한 눈에 들어왔다. 저 곳이 바로 안산이다.
홍제천을 따라 왼쪽으로 약 5분여를 걸어가니 홍제천 폭포수가 시원하게 내리꽂힌다.
아마도 인공폭포가 아닐까? 다리를 건너자 정겨운 모습의 연자방앗간이 나타났다. 이곳에서부터
사람들의 숫자가 갑자기 늘어났다. 왜냐하면 바로 안산(鞍山) 벚꽃 공원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보물처럼 감춰진 높이 295.9미터의 안산이 예전엔 길마재로 불렸다.
‘길마’란 소나 말의 등에 얹는 안장을 가리키는 우리말이다. 말안장처럼 생겼다 해서 지어진
산 이름이다.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정상에 봉수대가 있을 정도로 서울 궁궐을 지키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안산은 메타세쿼이아가 빽빽한 안산삼림욕장을 비롯해서 휠체어나 유모차로도 쉽게 다닐 수 있는
숲길 등이 잘 조성돼 있다. 벚꽃광장에서 꽃향기에 취해 한 참을 머무르면서 사진을 찍다가
다시 발길을 재촉하였다.
하늘 높이 쭉쭉 솟아있는 자작나무와 메타세쿼이아·소나무 군락이 차례로 나타난다.
심호흡을 하니 맑은 산소가 가슴 가득하다. 산길은 순박하고 요란스럽지 않다.
약 4시간에 걸친 트레킹에 다소 지친 듯한 대원들은 정상 바로 밑에서 하산하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난 끝까지 정상을 향해서 걸음을 재촉했다. 드디어 정상에 도착하여 봉수대에서 바라본 서울의
전경은 그저 한 폭의 산수화 병풍이다. 가까이로는 인왕산과 그 너머의 북악산과 천마산·아차산까지
서울의 산세가 차례로 능선을 이룬다.
그 품에 안긴 서울 도심의 높고 낮은 건물들도 한 눈에 들어온다. 참으로 아늑하고 멋진 정경이다.
눈앞으로 다가오는 남산타워를 뒤로 하고 하산을 시작했다. 내려오는 길은 다소 피로감이 몰려왔으나
이렇게 멋진 산행을 했으니 더 이상 부러울 게 없었다. 봄향기가 물씬 풍기는 백련산과 안산 트레킹은
삶의 현장에서 오랫동안 아름다운 잔상(殘像)으로 남을 듯 하다, 대원들과 함께 운치가 있는
음식점에서 늦은 점심겸 뒷풀이 시간은 또다른 세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