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태권도계 대부 이관영 사범. 오는 28일 오후 4시 파리 13구 샤틀리티 체육관에서는 이관영 사범의 프랑스 태권도 보급 35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태권도 행사가 열린다./`파리한위클리' 제공/민족뉴스부 기사참조/국제/체육/ 2004.11 .19 (서울=연합뉴스) 밖에서 뛴다] 프랑스 경찰청 수사관 이관영씨
"오늘 약속은 지킬 수 없겠습니다. 지금 막 출동명령을 받고 누굴 좀 잡으러 가야 하거든요." 프랑스 내무부 경찰청 본부형사국 범죄수사대 수사관 이관영(53)씨와의 첫 약속은 이렇게 무산됐다. 이튿날인 지난 21일 파리 근교 약속장소로 나가보니 굵직한 음성과는 달리 1m75쯤 되는 호리호리한 체격의 한국 사나이가 손을 내밀었다.
지지리도 복잡했던 어린 시절, 오로지 주먹 하나로 달래며 컸던 이관 영은영화 같은 일생을 살아 왔다. 해방 이듬해 서울 하원동에서 장남으 로 태어난 그는 교동초등학교를 다녔다. 의사였던 부친이 한국전쟁 중에 납북된 뒤 모친이 개가하는 바람에 외가쪽 친척들 손에서 컸다. 술집을 했던 이모와 살 때 해가 지면 이모의 '영업용' 방을 비워주기 위해 찾았 던 곳이 동네 태권도장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도장 창문 너머로 품세를 익히던 그는 양정중 1년때 진짜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공부도 잘해 영어웅변대회에서 상을 탄 기억도 있고 "지금도 불어보다 영어 실력이 낫다"고 말했다.
보성고교 졸업과 동시에 '빽'을 써서 군에 입대한 이관영은 백마부대 선발대의 태권도 교관단으로 베트남 땅을 밟았고, 이때부터 공인 9단의 태권도 실력이 그의 인생을 이끌어 나갔다.
베트남에서 모은 돈으로 대학 야간부를 '뒷문'으로 들어간 그는 2년 만에 중퇴, 당시 중정에서 모집하는 공작원으로 뽑힌다.
"대한민국 5단급이상 80여명이 다 모였습니다. 국사, 영어, 국어, 실 기(태권도, 호신술,격파) 시험에서 1등으로 선발됐죠.".
그는 1년간 마포의 중정 아지트에서 공작원 훈련을 받은 후 69년 9월 밀명을 받고 프랑스에 파견됐다고 말했다. 위장신분은 태권도 사범이었 지만 실제 임무는 따로 있었다. 이관영은 "북한 애들이 우리 엘리트들을 수시로 납치하고 괴롭히던 때라 우리 교민을 보호하는 것도 임무의 하나 였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70년 들어 그는 한국 정부와 완전히 손을 끊게 됐다. 그를 필요로 했던 모종의 계획들이 중도에 폐기됐다는 것이 다. 자의로 프랑스에 남은 그는 중국집 접시닦이, 프랑스인 태권도 제자 집에서 정원사 노릇, 비둘기들과 함께 산다고 해서 '비둘기 방'으로 불 리는 다락방살이, 때론 퐁 생미셀 다리 밑에서 포도주 한 병으로 신고식 하고 거지들과 어울려 잠자기, 가라데 사범들에게 도전해서 하나씩 꺾기 등등… 안해본 일 없는 세월을 보냈다.
그러다 나중에 그의 태권도 시범이 알려져 국위 선양의 공로로 국민 훈장 석류장을 받았고, 73년부터 서울에서 열린 세계 태권도선수권대회 에 프랑스대표팀을 이끌고 참가했다. 75년에는 홍콩 영화감독들에게 뽑 혀 '무도' 등 4작품에서 주연을 맡았고, 76년엔 '파라문'이라는 한국 무 술영화에 주연배우로 출연했다. 당시 "성룡, 왕유, 홍금보 등이 내게서 무술을 배웠다"고 자랑했다.
그는 영화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오기 하나로 76년말 '나이트클 럽'과 '계집질'로 상징되는 배우생활을 청산하고 프랑스로 돌아가 얼마 간 모았던 돈으로 파리 중심지에 식당을 차렸다.
그러던 어느날 이관영은 파리 6구 카르티에 라텡 지역의 뒷골목에서 이발소용 면도칼을 든 깡패 13명을 때려 눕히는 대활극을 펼치게 되고, 그를 체포하러 왔던 파리 경찰의 눈에 띄어 오히려 무술 사범으로 초청 을 받았다. 이 일이 결국 지금의 그를 만든 셈이다.
81년 프랑스 내무부에 특채된 그는 사격, 경호, 체포술 등을 가르쳤 다. 원한 것은 아니지만 프랑스 국적을 갖게 됐고, 아프리카를 돌면서 프랑스와 깊은 관계에 있는 나라들의 대통령 경호원들을 교육시키기도 했다. 94년 프랑스 경찰청 기술협력국 교관으로 일할 당시에 이관영은 한국 용인에 있는 경찰대학을 방문, 사격 등 여러 시범을 보인 적도 있 다.
그의 손에서 자란 프랑스인 태권도 제자는 6단까지 배출됐고, 그를 거쳐간 유단자가 8백명쯤 된다. 이관영은 은퇴후 자신이 운영하는 파리 의 태권도장을 경호원, 스턴트맨 등을 양성하는 특수교육기관으로 발전 시키고 싶어한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자신의 산 경험을 한국의 수사 형 사들에게 강의하고 보여주고 싶은 욕망도 있다.
(파리=
◆ 약력 - 46년 서울 하원동 출생 - 교동, 양정, 보성 초중고 졸 - 66년 주월 백마부대 태권도 교관단 - 68년 국민대학 2년 중퇴 - 72년 프랑스 최초 태권도 시범 - 73년 국민훈장 석류장 - 75,76년 홍콩과 국내 무술영화 다수 출연 - 81년 프랑스 경찰청 특채 - 91년 프랑스 경찰청 형사국 수사관 정식 임명.태권도대부’ 이관영사범 보급 35주년 맞아 성대한 기념식
일요일인 28일 오후 프랑스 파리 13구에 있는 샤를레티 실내체육관에서는 프랑스인 3000여명의 시선이 한국인 노신사 한사람에게 고정됐다. 주인공은 프랑스에서 한국 태권도 대부로 통하는 이관영 사범(58).
이 사범이 프랑스에 태권도를 보급한 지 35주년을 맞아 제자들이 마련한 이날 무술시범 행사에는 가랑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프랑스 전역과 이웃 벨기에 등에서 달려온 남녀노소 선수 1000여명과 관중 2000여명이 갈채와 환호를 보냈다.
이 사범은 1969년 프랑스에 건너와 갖은 어려움을 극복하며 프랑스에서만 제자 2만5000명을 길러냈다. 지금도 ‘이관영 한국무술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태권도와 합기도 등을 전수하고 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은, 동메달을 딴 프랑스 선수 2명도 제자들이다.
그는 또 프랑스 경찰에서 교관으로 일하고 4년 전에는 재불 한인회장도 지내는 등 여러 분야에서 한국을 알리는 데 공헌해왔다.
이날 이 사범이 소개될 때 관중들은 일제히 기립 박수를 보내며 극진한 예우를 표시했다. 한국과 프랑스의 국가가 울려 퍼졌고 파리시장의 감사패도 전달됐다.
이 사범은 “35년간 최선을 다했다. 정말 기쁜 날이다”라며 감격 어린 소회를 밝혔다. 주철기 프랑스 주재 대사는 “제자들이 또렷한 한국말로 ‘차렷, 경례, 시작’ 등의 구령을 외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다. 성공한 민간 외교의 훌륭한 사례다”라고 축하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