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가니까야 4. 쏘나단다의 경 후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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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가니까야⟫4.쏘나단다의 경 후기 /2018.4.10./이영순
4장 쏘나단다의 경도 1~3장과 마찬가지로 짧은 크기의 계행, 중간 크기의 계행, 긴 크기의 계행이 반복되고 있었다. 왜 이토록 계행이 많은 지에 대해 멘토 선생님의 질문이 있었다. 4장까지 읽으면서 나는 왜 계행이 경마다 반복되고, 많은 지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우선 계행이 반복되는 이유는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리고 계행이 많은 것은 세존이 일상에서 수행자들을 볼 때마다 새롭게 계행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멘토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다.
쏘나단다의 경에 대한 수업을 나누면서 내가 오독한 부분이 2군데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는 쏘나단다가 수행자 고따마를 만나러 갔을 때 쏘나단다가 사념을 일으키는 부분이다. 쏘나단다는 자기가 질문을 하거나 받았을 때 대답을 잘못하면 대중들의 경멸을 받게 될까봐를 두려워했다. 하여‘수행자 고따마가 나의 스승에 의해 전해진 세 가지 베다와 관련된 질문을 한다면 나는 틀림없이 질문에 대답함으로써 그 분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였다. 수행자 고따마는 쏘나단다의 마음을 알고 쏘나단다가 원하는 질문을 한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내가 진심으로 궁금하고 묻고 싶은 것을 묻지 못하고 대중들의 시선에 집착하여 자기가 잘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받기를 원하는 쏘나단다를 부정적으로 보았다. 그런데 이것이 세존이 대화법의 달인인 이유라는 멘토 선생님의 설명을 들었다. 쏘나단다는 베다의 달인이었다. 그렇다면 세존은 쏘나단다를 맞이하면서 상대방과 통할 수 있는 대화를 함으로써 상대방의 마음을 열었던 것이다. 상대방의 관심사를 알고 마음이 열려야 법문도 알려줄 수 있는 바인 것이다. 나는 쏘나단다의 사념에만 집착해서 읽다보니 쏘나단다의 관심사로 대화가 자연스럽게 흘러갔던 것임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또 하나는 ‘쏘나단다의 귀의’부분이다. 세존에게 귀의한다고 하고 음식 공양을 마친 쏘나단다, 대중들이 비난할 것을 두려워하여 합장하는 것을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한 것으로, 터번을 벗는 것과 양산을 벗는 것을 머리를 조아려 인사한 것으로 여겨달라고 한다. 나는 대중들을 의식해서 명성과 재산을 잃을 것을 두려워하는 쏘나단다는 부처님께 귀의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작은 제목이 ‘쏘나단다의 귀의’이고 ‘세존께서는 바라문 쏘나단다를 법문으로써 교시하고, 독려하고, 고무하고, 기쁘게 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을 떠나셨다.’로 경이 끝났으니 귀의하지 못했다는 말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다. 명성, 혈통, 부자, 베다에 능통, 빼어난 용모, 계행, 유창한 말, 많은 스승들의 스승, 나이, 빔비싸라와 뽁카라싸띠에게도 존경받고 숭배받는 쏘나단다가 외부에서 온 수행자 고따마를 찾아와 법문을 듣고 귀의를 하고 음식 공양을 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예의를 다해 인사를 한 것은 누가 봐도 훌륭한 일이다. 그런데도 누가 보는 것에 연연한 것이 귀의하지 못한 것이라고 여겼던 것은 왜일까? 다 갖춘 쏘나단다는 귀의하지 못할 것이라는 배배꼬인 마음이 나한테 있었나 보다. 내 마음대로 짐작해서 읽는 대신 문장이 말하는 것을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보려고 애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업중에는 p249 계행과 지혜는 상호유기적이라는 것, 억압 대신 통찰지로 멈출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멈춰지지 않는 것이 중독, 윤회는 내가 끊는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말해줄 수 있기 때문에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계행으로 지킬 것을 지키고 지혜(통찰지)로 멈출 것을 멈추는 것, 이것이 수행인 것 같다.
다음주 발제자 김효진 선생님. 지정토론자 박용순 선생님, 하민정 선생님, 이영순 선생님
간식은 이흥선 선생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