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지옥
천국을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의미에서 같을지 몰라도 적용대상이 다르다. 마태복음에서만 나타나는 천국(하늘나라)은 헬라어로『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으로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가 된다. 물론 하나님 나라는 포괄적인 의미의 개념이다. 천국은 성도가 육체가 살아있을 때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는 것이다. 마태복음 3장 2절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라고 말하는데,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한 것을 믿는 자이며, 그의 심령 속에 성전(지성소)이 세워져, 그리스도가 그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올 때, 천국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적 부활을 믿지 않는 자, 성도의 심령 속으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여 들어온 것을 믿지 않는 자이며, 그에게는 천국이 임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지옥은 교회 사람들이 불타는 지옥을 생각하고 있으므로, 의미가 왜곡된다. 성경에서는 교회사람들이 생각하는 “불타는 지옥”의 의미가 타르타로, 하데스, 게헨나로 다양하게 표현된다.
첫째, 타르타로 대해서는 베드로후서 2장 4절에『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타르타로)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로 표현되었다. 지옥이라고 표현된 타르타로는 영이 육체 속에 갇힌 것을 의미한다. 모든 사람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므로 지옥에 있는 것이다. 현재적 지옥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천국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천국과 지옥은 장소적인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영적 상태를 나타낸다.
둘째, 하데스는 음부를 의미하는데, 음부는 둘째 사망을 나타낸다. 곧음부는 불을 상징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20장 14절에서『사망과 음부(하데스)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음부로 표현된 하데스는 갇히는 지옥의 개념이 아니라, 불을 받는 것이다. 즉 둘째 사망을 나타낸다. 둘째 사망이 곧 불뭇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첫째 사망은 영이 흙에 갇히는 것을 영적으로 첫째 사망으로 본다. 영적으로 죽은 자들(네크로스)이다. 그리고 둘째 사망은 성령의 불과 하나님의 말씀(못)으로 심판을 받는 것이다. 사망과 음부는 의인화된 표현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0장 9절에서『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고』
불은 두가지의 의미를 갖는다. 옛사람은 불세례로 죽고 성령세례로 새사람으로 태어나는 것과 그리고 성도에게 연단의 의미로 주는 불이 있다. 불세례는 지옥에서 천국으로 인도하는 구원의 의미가 있고, 불은 연단의 의미를 갖는다.
최초의 불세례는 창세기 19장 24절에서『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소돔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내며, 롯과 가족을 구하는 것이 목적이 된다. 베드로후서 2장 7절에서『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불세례는 심판과 구원을 나타낸다. 당하는 쪽은 심판이고, 피하는 쪽은 구원인 것이다. 소돔성에 있는 자들은 비진리에 있는 자들이고, 고통당하는 롯은 진리에 있는 자인데, 하나님이 불세례를 통해서 진리에 있는 자들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불세례는 옛사람(육적 혼이라는 옷)을 불로 태우고 새사람(그리스도의 옷)을 만드는 것이다.
육체가 살아있는 동안 둘째 사망(불세례:십자가의 죽음과 연합)을 통과한 자는 첫째 부활(새사람)에 참여한다. 요한계시록 20장 4-5절에서『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말씀은 비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는 함께 부활하여 천년왕국(천국)을 이루는 것이다. 천년왕국이라는 개념은 기간의 개념이 아니라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상징한다. 그래서 첫째 부활은 성도가 살아있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첫째 부활이 이루어지면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한다는 말이다. 왕 같은 제사장이 된다는 말이다.
요한계시록 20장 6절에서『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첫째 부활과 둘째 사망은 대조된다. 둘째 사망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것을 상징하므로 더 이상 둘째 사망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이다. 성도는 더 이상 영적으로 죽음이 없는 것이다. 이게 부활이다. 물론 육적으로 사망이 이루어지지만, 그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의 의미가 아닌 것이다.
요한복음 5장 25절에서『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죽은 자들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인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죄인임을 회개하여 돌이킬 때, 영적으로 살아난다는 말이다. 그래서 부활은 육의 부활이 아니라 영적(영의 몸)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골로새서 1장 13절엑서『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에베소서 2장 6절에서 『또 함께 일으키사(에게이로:부활, 과거형)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승천, 과거형)』심령 속에서 일어나는 천국을 의미한다. 구원은 사망의 나라(율법)에서 불세례를 받아 영생의 나라(성령세례)로 이동하는 것이다.
심판과 구원은 성도에게서 일어나는 현재적 사건이다. 성도에게 심판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물세례:죄에 대해서 죽고, 불세례:혼에 대해서 죽고, 둘째 사망), 성도에게 구원은 예수와 함께 부활하는 것이다. 이것을 믿지 않는 자는 언젠가 심판의 부활로 나아가 심판받을 것이다. 천국과 지옥은 지금 현재의 이야기가 된다. 지금 현재 영생을 소유하면, 천국이며, 그렇지 못하면 지옥이라는 말이다.
요한계시록 20장 15절에서『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καὶ εἴ τις οὐχ εὑρέθη ἐν τῇ βίβλῳ τῆς ζωῆς γεγραμμένος, ἐβλήθη εἰς τὴν λίμνην τοῦ πυρός. 여기에서 휴레데(εὑρέθη: 발견하다) 라는 말이 번역되지 않았다. 누구든지 생명책에서 이름을 발견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진다는 말이다. 생명책은 모든 사람의 심령 속에 있지만, 그 생명책을 펼쳐서 이름을 발견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면 지옥의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름은 깨닫는 자만 알게 된다는 말이다. 심령 속에서 죽었던 영이 부활하여 일어나면, 성전이 세워지고 그리스도께서 그 성전으로 들어오시게 된다. 그래서 그 이름은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이 된다.
그리고 연단하는 불이 있다. 불은 누가 만드는가? 불은 그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자기가 스스로 심판에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 불을 허락한 이유는 베드로전서 1장 7절에서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요한계시록 3장 18절에서『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불은 연단의 의미를 갖는다. 살아있는 동안 지옥불을 경험하게 하는 것은 연단을 위해서 하나님이 허락하는 것이다. 그 연단이 금을 만드는 것이다.
신도가 불의 의미를 깨닫고 비진리에서 벗어날 때 그것은 금이 된다. 마치 롯이 소돔성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지옥 같은 비진리에서 고통받는 신도가 그곳으로부터 나와 진리에 들어갈 때 천국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은 이전의 비진리(육적 자기)에서 나와 진리(영적 자기)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잘못되어가는 아들에게 아버지의 회초리는 불로 여겨지지만, 결국 좋은 인생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아버지를 무서운 분으로 여기는가 사랑으로 여기는가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의 마음에 달려있는 것이다. 결국 신도가 불을 구원의 길로 인식하면, 그것이 천국으로 인도하지만, 고통으로 인식하면 지옥불이 된다. 성도가 영적으로 지옥을 경험하고 연단받지만, 곧 진리로 나아갈 때 천국을 누리는 자가 된다. 그는 십사만사천이라는 이름의 성도가 되며, 천년왕국이며, 새하늘과 새땅이 되는 것이다. 천국과 지옥은 성도가 살아있을 때 경험하며, 죽을 때까지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는 자기 속에 있는 육적인 것과 싸워이겨야 하는 것이다.
셋째, 게헨나는 쓰레기를 불로 태우는 의미를 갖는다. 불은 연단의 의미도 갖지만, 연단되지 않는 불은 고통을 주는 불이 된다. 그런데, 게헨나를 지옥으로 번역하므로 의미가 혼란스럽다. 마가복음 9장 47절에서『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게헨나)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게헨나는 성소의 마당에서 희생제물을 잡고 그 동물의 사체를 성문 밖에서 태우는 것을 의미한다. 쓰레기 처리장인 것이다. 예레미야 7장 31-32절에서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벳 사당을 건축하고 그들의 자녀들을 불에 살랐나니 내가 명령하지 아니하였고 내 마음에 생각하지도 아니한 일이니라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날이 이르면 이 곳을 도벳이라 하거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말하지 아니하고 죽임의 골짜기라 말하리니 이는 도벳에 자리가 없을 만큼 매장했기 때문이니라』힌놈의 골짜기에서 게헨나가 나타났다. 힌놈의 골짜기는 예루살렘 밖 남동쪽의 쓰레기 장이었다. 동물의 사체를 태우는 것이다. 사체에서 구더기가 나온다.
마가복음 9장 48절에서는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그런데, 힌놈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몰렉에게 자녀를 태워 제사를 한 것이다. 이는 당시 성전의 타락을 의미한다. 오늘날을 비유하자면 교회 사람들이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날마다 하나님의 아들을 죽여서 피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타락한 교회 안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
이 지옥으로 번역된 게헨나와 타르타로와는 다른 개념이다. 타르타로는 갇혀있는 어둠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지만, 게헨나는 지옥이라기 보다 불로 태우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쓰레기를 불로 태운다는 의미는 불세례와도 다른 이야기다. 불세례는 구원과 심판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게헨나는 쓰레기를 태우는 의미가 있지만,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혀의 불로 다른 사람을 불로 태우거나,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도 불로 태우려는 것이다. 신도가 자기를 태울 때는 연단이 되지만, 타인을 불로 태울 때는 그야말로 지옥불이 된다. 그는 지옥불에 사는 것이다.
천국과 지옥은 모든 사람에게 현재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며, 육체가 죽어서도 연장되는 일이다. 현재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천국이 되며,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는 지옥이 된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가 회개하여 불세례(둘째 사망)를 받아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천국이 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불로 연단을 받아 더욱 정금과 같이 된다는 말이다.
불세례를 받은 자가 첫째부활에 참여한다. 그렇지 못한 자는 육체가 죽은 후에 둘째부활이 이루어져 불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첫째 부활은 그리스도로 옷입는 것을 의미한다.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