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막제(兒莫啼)
[요약] (兒: 아이 아. 莫: 없을 막. 啼: 울 제)
아가야 울지 말라는 말로, 조선말엽 자장가.
[내용]이하 아시아경제신문 [옛공부의 즐거움] 조선시대의 자장가의 글.
조선시대라고 자장가가 없었겠는가. 자장자장 워리 자장, 앞집 개도 잘도 자고, 뒷집 개도 잘도 자고, 우리 강생이(강아지)도 잘도 잔다. 할머니가 그 할머니의 품 안에서 잠들며 들었을 것 같은 노래가 무의식에 구전되어, 아마도 내 어린 시절까지 맴돌았던 것 같다. 추사 김정희와 거의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이양연(李亮淵; 1771~1853)은 한시로 된 자장가를 남겼다.
안아 줄게 아가야 울지 말아라
살구꽃이 울타리에 옆에 피고 있다
꽃 지고 살구가 곱게 익으면
너랑 나랑 둘이서 같이 따먹자
抱兒兒莫啼(포아아막제)
杏花開籬側(행화개리측)
花落應結子(화락응결자)
吾與爾共食(오여이공식)
'허시 리틀 베이비(Hush Little Baby)'란 서양 자장가를 들으니 엄마나 아빠가 아이에게 무엇인가를 계속 사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었다. 물론 사주는 것이 아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것이긴 하지만 시장경제가 뿌리내린 고장에선 아이의 잠조차도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이양연은 살구꽃 이야기를 한다. 아이가 울음을 그쳐야 하는 이유가 살구꽃이 피고 있기 때문이란다. 왜냐면 저 살구꽃이 피었다가 떨어질 무렵이면 살구가 돋아나 익을 것이고 그걸 너랑 나랑 함께 먹을 수 있으니 울음을 멈추고 잠에 들라는 얘기다. 군것질이 궁했던 시절의 참 소박하고 궁한 약속이지만 아이를 안은 옛 노인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아 짠하다.
이양연이란 분은 서산대사의 시로 잘못 알려진 '야설(野雪)'의 진짜 작자이다. 김구 선생이 자주 읊었다는 그 시이다.
눈을 뚫고 들판 길 걸어갈 때
모름지기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말아라
오늘 아침 내가 밟고 간 자취가
따라오는 뒷사람의 길이 되리니
穿雪野中去(천설야중거)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今朝我行跡(금조아행적)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이양연은 호조참판과 동지의금부사를 지낸 인물로 시에 능했다고 나와 있으나, 어떤 분인지 알기는 어렵다. 다만 그의 시가 몇 수 남아있는데, 그 아취가 높다고 한다. 그의 시들을 음미해보고 싶어진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asiae.co.kr
自挽(자만) 스스로 輓詞를 짓다 李亮淵(이양연)
一生愁中過(일생수중과하야); 평생을 근심 속에 사느라
明月看不足(명월간부족이라); 밝은 달도 제대로 보지 못했네.
萬年將相對(만년장상대이러니); 이제부터 만년 토록 마주 볼 테니
此行未爲惡(차행미위악이라); 이 길도 나쁜 것만은 아니려니.
출처;http://blog.daum.net/kimkyoc/1459
야몽(夜夢= 客夢) / 이양연(李亮淵)
출처; http://blog.daum.net/sn7777/710
半月[반월] /朝鮮, 李亮淵[이량연]
玉鏡磨來掛碧空 [옥경마래 괘벽공]
옥거울 갈아서 푸른 하늘에 걸어두니
明光正合照粧紅 [명광정합 조장홍]...
밝은 빛 참으로 화장하기에 마침맞네
宓妃織女爭相取 [복비직녀 쟁상취]
복비와 직녀가 서로 갖겠다고 다투더니
半在雲間半水中 [반재운간 반수중]
반은 구름속에 남기고 반은 물속에 있네
註: 掛[괘]= 걸다
照粧紅[조장홍]= 화장하는 얼굴을 비추다
宓妃[복비]= 전설상의 복희씨의 딸, 낙수에 빶어 죽어 물귀신이 되었다.
說: 반달이 반쪽은 하늘에 반쪽은 물에 비춰 물속에 있다 읊었다.
전설상의 宓妃와 織女를 끌어 드려 달을 반쪽 두 개로 만들어 나누어
갖게한다. 한 쪽은 구름속을 떠가고 다른 반쪽은 물속에 있다.
마치 동요같이 아름답고 밝은 시다.[14/8/3/]
[출처] 半月[반월] /朝鮮, 李亮淵[이량연]|작성자 youngdae35
田家苦(전가고).李亮淵(이양연).
耕田賣田糴(경전매전적) 갈던 밭을 팔아 곡식을 사니
來歲耕何地(내세경하지) 내년에는 어디에 농사지을까.
願生伶俐兒(원생령리아) 바라건대 영리한 아이를 얻어
學書作官吏(학서작관리) 글 가르쳐 벼슬아치 되었으면.
[출처] 田家苦(전가고).李亮淵(이양연).本貫:全州(전주).字:晋叔(진숙).號:臨淵|작성자 ayjg02145
이양연(李亮淵; 1771 ~ 1853)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진숙(晋叔)이며, 호는 임연(臨淵)이다. 1830년(순조 30) 음보(蔭補)로 선공감(繕工監)에 제수되고, 1834년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838년(헌종 4) 충청도도사(忠淸道都事)를 거쳐, 1842년 공조참의가 되었고, 1850년(철종 1) 동지중추부사, 이듬해 호조참판·동지돈녕부사 겸부총관에 제수되었다.
문장에 뛰어났고 성리학에 정통하였으며, 역대의 전장(典章)·문물(文物)·성력(星曆)·술수(術數)·전제(田制)·군정(軍政) 등에 널리 통하였다. 늙어서도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문장이 전아간고(典雅簡古)하여 후학들이 다투어 암송하였다. 시에도 뛰어나 사대부로서 농민들의 참상을 아파하는 민요시를 많이 지었는데, 그 중《야설(野雪)》이란 시는 백범(白凡) 김구(金九)가 애송(愛誦)하였다고 한다.
저서에《침두서(枕頭書)》《석담작해(石潭酌海)》《가례비요(嘉禮備要)》《상제집홀(喪祭輯笏)》등이 있고, 민요시《촌부(村婦)》《전가(田歌)》《해계고(蟹鷄苦)》등을 남겼다. 묘는 경기도 이천군 마장면(麻長面)에 있으며, 묘갈명은 영의정 정원용(鄭元容), 묘지명은 영의정 이유원(李裕元)이 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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