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남+호남정맥4구간】 조약봉(주화산)에서 슬치재
☞ 언제 : 2017.2.18~19. 토요무박 일요산행
☞ 동행 : 봉 산악회
☞ 산행코스 : 주화산 - 모래재 - 곰치 -오두재- 만덕산 - 삼군봉(무지봉) -
신덕리재- 박이뫼산 - 슬치재
☞ 산행시간 : 8시간(아침식사45분)
☞ 산행거리 : 25.24 키로(모래재에서 조약봉분기점까지 1.3키로 어프로치 있음)
☞ 산행들머리 : 모래재휴게소에서 전주공원묘원통과해서 조약봉 오름
호남정맥1차는 만덕산만 가면 오늘 산행은 다 한거나 다름없다 생각했는데 역시 산은 그리 만만치 않았습니다.
높은산이든 낮은산이든, 거리가 짧든 길든 항상 겸손한 마음 그리고 배움의 자세로 임한다면 쉬 지치지 않고 끝까지 힘찬 발길짓을 할 수 있지 않을 까 생각해 봅니다.
이미 마음은 성급한 봄을 맞았는데 산정에서 부는 인정머리 없는 바람은 아직 겨울이 저 만치 있음을 실감케 합니다.
살아가면서 배우는 많은 것들 중에 오래도록 머무는것은 힘들고 고통스러움 속에서 얻었던 경험들입니다.
그 경험들을 바탕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또 내일을 꿈꾸는 듯 해요
우리는 어떠한 시련도 이길 준비가 이미 되어 있습니다.
힘냅시다.
그리고 오늘 하루 즐겁게 달려 봅시다 !!!
욜로!!
만덕산일출
호남정맥 조약봉에서 슬치재 산행지도
램블러 산행기록
모래재휴게소에서 호남정맥 출발 시산제를 치루고 단체인증
팽팽하게 당겨진 플랭카드에 봉산우들의 힘이 실렸습니다.
찍사빼고 전원인증합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봉 산악회 산우님들의 무사무탈 종주산행을 비나이다.
호남정맥뿐만아니라 낙남정맥,영산기맥 ,백두대간을 달리는 산우님들 모두의 안전산행을 기원 합니다.
조약봉접근루트
모래재휴게소 전주공원묘원의 걸린 빗장을 풀고 곧장 후문으로 달려가 임도길을 오르니 조약봉 오른는 들머리가 임도 좌측에 나타 납니다.
이제 조약봉을 올라 호남정맥 1차 산행을 시작 하려 합니다.
초반이라 임도길을걸으면서 조금이나마 워밍업이 된 듯 합니다.
보통 산행을 시작해서 바로 된비알을 오르게 되면 궁디 힘들어가는 소리가 뿡뿡 나는데...
오늘은 그소리가 안들리네요 ㅎㅎ
선수등장!!
사뿐사뿐 온전한꿈님, 지칠줄 모르는 거북이오님 1,2. 아무리 추워봐라 옷사입지 ㅋㅋㅋ 5399님
걸린 시그널에서 보듯 주화산 조약봉은 많은 산우님들이 다녀가는 곳이다.
이곳이 금남호남정맥,호남정맥,금남정맥의 분기점인 탓이기도 하다.
조약은 경사가 아주 심하여 새처럼 조약(鳥躍) 걸음으로 넘는다 하여 조약재라 하였다 한다.
옛 지도에는 족약치(足躍峙)라 표기한 곳도 있다.
주화산은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와 완주군 소양면 신원리의 경계에 있는 565m의 산으로서 원래는 이름이 없엇다는데 2000년 이후 산악인들이 주화산이라 이름지었다 한다.
주슬산,주화산,조약봉,삼수봉 등으로 불린다는데... 어찌 불리건 상관없다.
모래재휴게소에서 터널위로 오르면 바로 이곳으로 오를 수 있다
모래재 지나서 산죽구간을 일부 지나고 나면 526봉을 지나고 570봉에서 바로 오른쪽으로 휘어진다.
자칫 직진하는경우가 많으니 독도에 유의 하여야 한다
곰티재
곰티재는 과거부터 진안 지역과 전주 지역을 왕래하는 가장 중요한 길목이었다. 북쪽에 있는 적내재에 비해 완만한 반면 다소 거리가 멀었으므로 노약자나 짐이 많은 사람은 적내재 보다는 곰티재를 이용했다.
일제 강점기에 신작로 곰티재가 남쪽에 개설되며 주요 이동로로서의 역할을 넘겨주게 되었다.
곰티재는 임진왜란 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1592년 전라도 지역을 공략하기 위한 일본군의 대대적인 공격을 맞아 싸운 곳으로, 비록 패하였으나 일본군에게도 막대한 손실을 주었고 결국 전주 지역을 공략하지 못하고 퇴각하게 만든 웅치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웅치 전투가 발생한 장소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는데, 진안 문화원은 곰티재, 완주군은 신작로 곰티재를 주장하며 각각 ‘웅치 전적지’ 안내판을 세워 놓았다.
웅치전투
임진왜란 개전 20일 만에 조선의 수도 한양이 함락되고, 2개월이 지나자 전라도를 제외한 조선의 거의 전 지역이 왜군에게 점령당하였다. 한양을 점령한 왜군의 일부는 코바야카와 타카카게[小早千隆景]의 지휘 아래 호남을 공격하여 1592년 6월 23일에 금산성을 점령했고, 이를 거점으로 용담·진안을 거쳐 전주를 공격하고자 하였다. 진안을 점령한 왜군은 1592년 7월 8일 본격적으로 웅치(熊峙)를 공격하였으나, 전라도 관군과 의병의 격렬한 저항으로 전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웅치를 넘은 왜군은 안덕원(安德院)까지 진출하였으나, 동복 현감 황진(黃進)이 이를 격퇴하고 전주 부성과 전라도 방어에 성공했다.
전라북도에서는 1976년에 전주와 진안을 잇는 구 신작로 상의 곰티재 부근인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 일원을 웅치 전적지로 설정하여 전라북도 기념물 제25호로 지정하였으며, 1979년 12월에 곰티재 정상으로부터 약 200m 되는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 쪽에 웅치 전적비(熊峙戰蹟碑)를 세웠다.
선조들의 피나는전투현장을 지나 558.6봉을 오르면 곧 발아래 익산-포항간 고속도로위를 지나 좌측으로목장 부지가 나타나고 잠시 목장에서 설치한 철선을 따라 진행한다.
이제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는데 아직 만덕산은 그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 구나
곧 오두치를 지나 된비알을 오르니 날이 밝아온고 움직이는 대기로 바람이 세게 불어댄다.
원불교 만덕산 훈련원은 진안군 성수면 중길리에 있으며, 2014년 현재 위산 양태홍 원장과 승산 양제승 교령 등 총 8명이 봉직하고 있다. 훈련원은 일반인들과 교도들을 대상으로 주로 원불교 마음 공부를 하는 원불교의 훈련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2013년도에는 총 34회의 훈련을 통해 2,265명이 훈련원을 수료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원불교 [圓佛敎]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만덕산 전위봉에서의 일출
아침햇살을 등으로 받으며 암릉을 오르고있는 봉 산우님들
미세먼지와 햇빛이 어울려 따스한 풍경을 만들어 준다.
산정에서 보이는 이 풍경이 저아래 마을에서는 보이지 않을터
이자리에 서면 속세의 다툼도 지나가는 바람아래 조용히 사그라든다.
바람이 몰아치니 마음도 바빠진다.
이 곳에서만적산은 150여 미터 남짓 왕복하게된다.
모두들 배낭을 벗어두고 만덕산을 다녀온다.
이 곳이 만덕산에서보다 조망이더 좋아 보인다.
해발745미터라고는 하나 사방 둘러보아도 이보다 높은 산이 없어 보인다.
만덕산 해발763.3미터
만덕산은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중길리와 완주군 상관면 마치리와 완주군 소양면 월상리의 경계에 있는 높이 762m의 산이다. 경위도상으로는 북위 35° 47′, 동경 127° 16′이다. 만덕산은 만 가지 덕을 가진 부처와 같다하여 부처산이라고도 한다.
고구려 때 승려 보덕이 개창한 만덕사에서 유래하였다.
임진왜란 때 웅치 전투가 있었던 역사적인 전적지이며, 6·25 전쟁 때 빨치산의 출몰이 심했던 곰티재를 지킨 수문장과 같은 산이다.
옛날 진묵대사가 정상에서 수도 했는데 이곳 바위에서 세식구만 먹을 수 있는 쌀이 나왔다고하는데 욕심많은 자가 쌀을 더 많이 나오게 하려고 바위구멍에 꼬챙이로 쑤신 후부터는 더 이상 쌀이 나오지 않았다 한다.
천마대장님,대정지기님,질풍노도님
스뎅정상석인데.. 그래도 우리나라 정서에는 돌로된 정상석이 있었으면 한다.
다시 배낭을 회수하여 정맥길을 이어 간다.
진행길에 설치된 이정목에서는 오른쪽으로 정수사라라는 사찰 표시가 계속 이어진다.
아마도 유명한 사찰인가 보다
능선길에서는 정수사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위성으로 보면 되지.. 헐..안보이네?
만덕산정수사
사찰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수사(淨水寺)ㆍ정수암(淨水庵)이라는 이름은 곧 청정한 도량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만덕산(萬德山)에 자리한 정수사는 이러한 불교적 상징성 외에도 실제 만덕산의 청정한 물, 깨끗한 자연과 깊은 관련을 지니고 있다. 즉 정수사는 현재 전주시와 인근지역에서 식수원으로 사용하는 상관저수지 위에 자리하고 있는데, 신라 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절을 창건할 당시에는 중암(中庵)이라 했다가 후일 그 산수(山水)의 청정함으로 인해 지금의 절이름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정수산(완주)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가야할 정맥길 능선
앞에 보이는 뾰족한 관음봉도 정수리로 넘어야 한다.
그나마 쇠사슬이 설치되어있어 다행이다.
아니면 네발로 기어올라야 할터인데
의지의 카투만두님
멋지십니다.
무지봉(삼군봉)에 이르자 멀리 진안의 마이산이 조망이 된다.
제법 멀리 걸어 왔구나!!
사람의 발걸음이 무섭다는게 세삼 느껴진다.
짧은 보폭이지만 쉼없이 걸으면 어느새 지나온 길이 아득히 멀어져있다.
삼군봉은 임실군 관촌면,완주군 상관면,진안군 관촌면의 갈림봉이다.
배는 고파 디지겠는데 밥먹을만한 마땅한 자리가 없다.
한참을 더 내달리니 선두그룹이 식사를 하고 있어 대충 그 옆에 자리를 잡고 비닐쉘터를 펼쳤다.
각자 가지고 온 보따리 다 펼치니 한끼 아핌으로는 충분하다
든든하게 배를 체우고 나니 한결 기운이 난다.
아침 먹은 사진이 하나도 없다.
쳐묵..쳐묵..하느라 사진담을 새도 없었다 ㅎㅎ
된비알을 앞에두고 마재 표시가 눈에 들어온다.
마치라고도 하며 말을타고 지나다니던길목이라고 해서 마치라고 한다.
만덕산만 지나면 줄곧 내리막인줄 알았는데 하산길이라 해도 반드시 오르막은 나온다.
앞서가신 김여사님께서 알바를 하셨는지 마을 방향에서 올라 오신다.
벌목지에서지나온 능선길을 돌아 보았다.
오른쪽 맨 뒤가 만덕산이다.
내가 언제 저기에 있었나 싶다.
2월의 한 가운데지만 계절은 이미 봄으로 향해 달려가고 있다.
발아래 진흙이 자주 달라 붙어 묵직하지만 곧 피부에 따스한 감촉이 올 듯 하여 산행하기에도 좋고 꽃구경도 하기 좋은날이 올 것이다.
다만 그 기간이 길지않을뿐..
신전리재에는 녹슨 철망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다.
발아래 달라 붙는 흙은 떼느라 바바죽겠구나!!
우리의 전설 왕도사님께서 맥봉을 나와 주셨다.
우왕~~ 감사 합니데이
나는 점심때 가져온 물 전부를 라면하고어뎅끓이는데 투척 했다.
남은 거리도 얼마 안되고 해서 별 문제는 없었는데 그래도 하산 전에는 목이 말라오더라
그러던 차에 왕도사님께서 맥봉을 나오셨다.
얼마나 시원하게 마셨는지 모른다.
비주류이신 온전한꿈님도 왕도사님의 산우애에 감동하여 한잔 받아 마셨다.
온전한꿈님 이제부터는 주류 이십니다.
왕도사님 왈
뒤에 사람 줘야 하니까 한잔밖에 못줘!!
암요 그럼요..당근입니다.
깜솨 합니다.
특이한 이름의 박이뫼산
정맥길은 무인모텔을 통과해서 나오게 된다.
무인텔은 어케 이용하는 겐지?
함성님 아시면 좀 갈켜 주세요!!!
슬치재에 도착하여 산행을 마무리 합니다.
화장실이 있어서 걍 홀라당 벗고 씻었습니다.
그렇게 춥진 않더라구요
식당에서 정말 맛나게 잘 먹고 마셨습니다.
오늘 하루도 열정을 담아 달리시느라 수고들 하셨습니다.
똘똘 뭉쳐 나아가는 봉 산악회 호남정맥팀이 되었으면 합니다.
첫댓글 갈수록 산행기의 질이 나아지네요 역사와 함께 지명의 유래 참 인상 깊었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ㅎ 저야 빼끼면 되는걸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대장님
질풍노도님 산행기 보고 정맥길을 걷는다면 알바는 안할듯 싶네요 매번 감탄합니다
ㅎㅎㅎ.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좋은 글에 수담이 있으니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이 있을까 싶습니다~
독자들이 많이 생겨나 질풍노도님이 힘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ㅋ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야 삭대장님 덕에 좋은 산길 걷고있으니 조금이라도 보답을 해얍지요
제가 힘이 들면 안되는디요?
들꽃향기 시켜뿔 겁니다. ㅎㅎ
상세한 산행기에 아련한 추억이 떠 오르는군요.
호남정맥도 잡목이 만만치 않은데~~사자산, 일림산 구간 지날때 정면으로 맞았던 태풍(나크리로 기억)도 잊지
못할 추억 입니다. 부디 안산, 즐산, 행산하시길 바랍니다.
그러시군요
어려운 산길이 더 오랫동안 남는 듯 합니다.
잡목과 가시구간은 건너 뛰어버릴라구요 ㅎㅎ
산행기의 정석을 보여주십니다. 상세한 설명과 멋진 사진들 ..
봉산악회의 보배이십니다. 감사합니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들꽃향기님 들어오면 야생화하고 잔득 올리라 하겠습니다.ㅎㅎ
멋진 산행기 기다리던대로 입니다..
기억이 새록새록나네요..
거기에 역사적 기록까지..정말 알찬 산행기입니다..시진도 좋고...ㅎ.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거북이오님
산행기 검색해서 산우님들이 한사람이라도 더 봉산악회에 가입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