曖昧한 말 ‘지청구’
起山 최 영종
*앞서 몇 마디: 이 글이 학계에 웃음거리가 될지 모른다. 사계의 대가나 학자도 아니기에 필자의 지론(持論)이 옳은지 그른지는 제쳐두고 만용(蠻勇)을 부려본다.
“글쎄, S형, ‘지청구’란 말이 무슨 말인지 아세요? 들은 적 있나요? 이유는 묻지 말고 ...”
“어린 내가 흙담집에서 살 때 아버지한테 들은 적은 있었지. 뭔가 잘못해서 아버지에게서 혼난 일이 있었지. 아마 이런 거가 아닐까?”
답으로 50점은 줄만했다.
얼마 전 받아 본 xx 문학지 연재소설을 읽다가 지청구란 단어가 보여서 문맥 전후를 보아 어림짐작은 하였으나 그래도 정확하게 알기 위하여 인터넷보다 가까운 내주변의 사전들을 보았다. 韓, 日, 漢 3국의 사전을 찾아보았다.
몇 개 여기 옮겨 본다. 일어(日語)는 컴퓨터 자판(字板) 탓으로 한글로 그대로 옮겨 보았다.
1)지청구: 이름씨로 ‘까닭 없이 꾸짖거나 탓하여 원망하는 -Blaming others without reason- 라고 씌어있다.(2002판 민중서관 새로 나온 국어대사전 2336쪽)”
사실 까닭 없이...라는 전제조건이 붙어 있어 꾸짖거나 탓하거나 하여 원망한다니.... 원인 없이 결과가 있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문(語文)을 전공하는 교수도 학자도 아니나 지청구라는 낱말이 애매하게 곤욕? 을 치르는 것 같았다.
지청구에 앞선 ‘애매(曖昧)라는 단어도 ’사물의 이치가 희미하고 분명 하지 못함’에도 용훼(容喙)할 여지는 있지만 다음으로 미루고...
2) Blame: ‘아무런 이유 없이 남을 원망하고 탓하는 것’(123쪽)과
Scold: 꾸짖다. 잔소리하다(1019쪽)
(1976판 동아출판사新콘사이스英英韓辭典)
3) 시까루(叱): 꾸짖다. 나무라다(1979판동아新크라운日韓辭典688쪽)
4) 지청구: 아무런 이유 없이 남을 원망하고 탓하는 것(1978판 신 콘 사이스 국어사전1528쪽)
5) 시까루(呵): 소리 내어 꾸짖다(1977판學園日韓辭典729쪽)
6) 시까루(叱 呵): 꾸짖다. 나무라다’(1966판徽文完璧日韓辭典501쪽)
7) 지청구: (譯이유)와께모 나꾸(없이) 히도오(사람을) 도가메(구 咎) 잘 못 따짐, 문책)우라무(원망) 고도(하는일)1990판 民衆에센스韓 日辭典2063쪽)
8) 시까루(叱, 呵)’꾸짖을 질‘(1975판語硏社新漢日韓辭典412쪽)
이밖에 다른 사전을 보면 달리 풀이 되었을지 모르나 이 지청구는 풀이하는 말들도 많았고 유의어(類義語)로는 우리가 흔히 듣는 꾸중, 구박, 허물, 결함을 잡아 탓한다는 ‘타박’이란 말에 한층 부드러운 말로 ‘나무람’이란 말도 있었다.
사실 이 지청구는 연재소설에 앞서 지난 연말 신문의 사설 속에서 보았다. 1,500자 가까운 사설이 지청구란 이 세 글자로 끝을 맺고 있었다. “안 그러면 일반시민은 물론 xx 지역민으로부터도 ‘개갈도 안 난다(변변치 못하다)는 지청구를 듣게 될 것이다.”고 끝맺고 있으니 여기 공산당이 아니면 xxx 따른다는 xx의원의 낡은 사고’ 라는 제목을 덧붙이면 이글 모두 읽지 않아도 짐작하고 남으리라. 잊혀졌던 우리 옛말을 일깨워 줘 여기 몇 줄 보태 보았다.
그 뒤 얼마 지나 아내가 “여보, 또 수도꼭지 안 잠갔군요. 보일러가 돌아가고 있네요. 날씨도 별로 춥지 않은데 더운 물 쪽으로 틀어 놓고 나왔군요. 돈이 새는데... 우리 서로 아끼면...”하고 부엌 쪽에서 나오는 아내의 잔소리, 지청구였다.
아차 실수했구나. 온수 쪽으로 틀고 면도 했는데 수도꼭지를 제대로 안 잠가 듣는 경고다. 읽던 책을 덮고 달려가 잠갔다. 하긴 며칠 전에도 더운 쪽으로 틀어 놓고 손 씻은 뒤 그대로 나와 들었던 지청구다.
“잘못 했소, 이젠 망령드나 보오. 제발 이제 그 지청구 듣기 싫어요. 그만 해요.” 하고 한마디를 쏘아 댔으니 잔소리 보다 차원 높은 말로 응답했음이 나 홀로 쾌재(快哉)를 불렀다.
허나. 조금은 지청구 이야기에서 외도를 한 것 같다.
위에서 살펴본 지청구의 3국의 사전이 뜻풀이한 것을 보면 화자(話者)나 청자(聽者) 사이에는 계층(階層)이 있다는 사실이 눈에 띤다.
“이유도 없이...라고 그때 아내가 내 실수를 힘 있게? 알리는 ‘멋 퉁이’ 등살에 지청구라는 말이 튀어나왔는지 모른다.
다시 말해 모두 자기 아닌 딴 사람의 행동에 대하여 행하는 능동적(能動的)인 자기 의사 표시가 격이 다른 사람에 대하여 하는 적극적(積極的)인 의사표시임이 분명하다. 의사표시의 동인(動因)은 제쳐두고 라도 말할 때는 자기의 행동이 아닌 다른 객체의 행동의 전제(前提)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기에 하는 말이다.
거듭 말하지만 지청구가 ‘까닭 없이 남을 꾸짖거나 탓하여 원망하는 짓(동작)’이라 했으니 정상(正常)의 사람이라면 아무런 이유 없이 남을 꾸짖고 원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원인 없이 지청구란 결과가 있을 수 있을까?
이래서 꾸지람, 꾸중, 타박, 나무람도 남에게 입으로 하는 화자(話者)인 자기의 행동이기에 국문학자나 사전 편집자들에게 묻고 싶다 .
그날 (내가)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았기에 보일러가 돌아간다고. 돈이 새어나간다고 (아내가) 잔소리를 해대는 것이 아닌가!
까닭 없이 한다는 팩트-fact-가 있어서는 안 되니... 하는 것이 필자의 독단(獨斷)인지 모른다. 정말 독단일까?
여기에 나무람이나 꾸지람이나 타박 그리고 구박 역시 같지만... 다시 묻는다. “지청구의 뜻풀이는 애매하여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 2017. 3. 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