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탈출
:이라 쓰고 함정이라 읽는다
".....야. 김남준. 일어나 봐. 야..!"
".....으응? 왜.."
"얼른 일어나 보라고..! 여기 좀 이상한 거 같아. 빨리 일어나 봐, 빨리..!"
"이상하긴 뭐가 이상하다고 그래. 왜 자는 사람을 막무가내로 깨우고 난리,"
"뒤돌지 말고..!! 뒤에서 누가 우리 쳐다보고 있는 것 같단 말이야.."
".....뭐?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어 보인 김남준이 나와 두 눈을 마주했다. 그리곤 언제나 그랬듯이, 너 내가 겁 없이 좀비 영화 몰아볼 때부터 알아봤어. 그러게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보라고 했잖아. 왜 말을 안 듣냐. 하는 김남준의 잔소리가 뒤를 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뜩 웅크린 몸을 풀지 않은 내가 여전히 울상을 지어 보이고 있자, 그제서야 쫑알쫑알 잔소리를 하던 김남준이 입을 다물고서 내 표정을 살피기 시작했다. 축 내려앉은 눈꼬리에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듯한 눈물이 흥건히 고여있는 두 눈가. 그런 내 표정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채기 시작한 김남준은, 얼굴에 가득하던 웃음기를 점차 굳혀내었다. 이어 나를 바라보던 그 시선을 돌려 조금씩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고, 곧 우리가 발을 들이고 있는 이곳이 익숙지 않은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벽과 벽을 이어 축 늘어진 하얀 거미줄들, 잔뜩 녹이 슨 채 손잡이가 두 동강 나 있는 망치, 탁자에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 있는 액자, 수신을 잡을 수 없다는 표시가 떠 있는 오래된 라디오까지. 언뜻 살펴보아도 금방 아무도 살 것 같지 않은 폐가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는 이곳은, 정말이지 분위기가 음침하고, 험악했다. 더욱이 남준과 여주가 앉아 있는 이 카펫은 핏자국이 얼룩덜룩 묻혀 있어 겁을 먹지 않으려 해도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고, 흐릿하게 맡아지는 썩은 물 냄새와 비릿한 피 냄새가, 남준이와 여주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 듯했다. 그에 그제서야 왜 여주가 자신을 다급히 깨웠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한 남준이었고, 자연스레 여주에게로 마지막 시선을 굳히며 김여주의 손목을 아프지 않게 끌어당겼다.
"....너 이리 와 앉아봐."
"......"
"다친 곳은, 없어?"
"어.."
"너 손목에 시계 있지. 지금 몇 시야?"
"11시 40분.. 내가 깨어났을 땐 11시 30분이었어. 무서워서 큰소리도 못 내겠는데 넌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이고.. 내가 얼마나 놀랬는지 알아..?"
"미안. 시계는 확실한 거 맞지?"
"응. 확실해."
"....여긴 처음 보는 곳인데. 여기가 어디지? 잠들기 전까지 우리 뭐하고 있었어?"
오늘 너희 대학교 축제하는 날이라서 내가 놀러 왔잖아. 그래서 너가 나한테 밥 사주고.. 자리 잡고 술 좀 먹다가.. 너네 친구들 좀 만나고.. 그 뒤로 기억이 없는데.. 술김에 아무 곳에 들어와서 잠들었던 것 같아. 너 나보다 더 늦게 취했었잖아. 더 기억나는 거 없어? 생각해봐. 진짜 없어? 내 목소리가 무거운 기운만이 맴도는 이 좁은 방안을 가득 울렸다. 그런 내 물음에 고개를 갸우뚱 기울여 보인 김남준은 없는 것 같은데.. 하며 흐릿한 기억을 되짚어 보았고, 그럴수록 나의 한숨은 점점 깊어져만 갔다. 여기 진짜 이상해. 밤이라 어두운 것도 무섭고, 창문이 하나 밖에 없는데 창도 다 깨져 있어. 공기도 바깥이랑 다르게 춥고, 눅눅하고.. 진짜 귀신 나올 것 같아서 무서워... 나가는 방법 좀 찾아봐 남준아. 진짜 나 무서워서 죽을 것 같아. 진심으로.
눈꼬리를 축 늘어트린 채 울상을 지어 보이자, 알았으니까 울려고 하지 마. 나도 지금 미치겠거든? 하며 퉁명스레 답한 김남준이 자신의 앞머리를 신경질적으로 헝클였다. 나가는 문이 있을 거 아냐. 우리가 저 좁은 창문으로 들어오지 않은 이상. 하는 김남준의 중얼거림이 그 뒤를 이었다. 그에 응. 나도 확인해봤는데 열고 나갈 수 있는 문이 없어. 저 작은 문 말고는. 하고 답하자, 김남준의 시선이 곧바로 그 작은 문에게로 향했다.
"야, 보지 말라고...!"
"왜, 왜."
"아까 저 문에서 이상한 소리 났단 말이야.. 보지 마.. 나 진짜 무서워.."
"...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몰라... 그냥 피 뚝뚝 떨어지는 소리도 들렸고... 뾰족한 걸로 무언가를 파내는 이상한 소리도 들렸어.."
"........"
"그냥 보지 말고 있어봐. 나 진짜 무섭단 말이야.. 나 피 말리는 거 보고 싶으면 봐. 진짜 나 무서워서 죽을 것 같,"
"그럼 나 봐도 되냐? 너 피 말리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한,"
"시발아 진짜. 너 죽을래?? 이게 오냐오냐해줬더니. 나 진짜 무서워서 죽을 것 같다고... 개새끼보다 못한 놈이 진짜...!"
내 반응이 웃긴 건지,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장난기를 놓지 못한 김남준이 두 손으로 제 입을 막고서 끅끅 소리를 내며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에 미간을 잔뜩 좁혀 보인 내가 김남준의 팔뚝을 찰싹. 소리가 나게 내려치자, 그제서야 아아. 미안. 야. 미안. 이제 안 할게. 야, 너무 아파. 아! 진짜 아프다고..! 하며 사과를 해왔다. 그에 때리던 손짓을 멈추고서 김남준을 노려보자, 자신의 팔뚝을 살살 문지르며 울상을 지어 보인 김남준이 너 같이 힘쎈 애가 귀신이 왜 무서운지 이해를 못 하겠네. 원투펀치면 강냉이가 전부 날아갈텐, 까지 말하다 입을 다물었다. 김남준을 노려보던 내 두 눈동자와 김남준의 두 눈동자가 마주한 탓이었다.
한 번만 더 나불거리면 얄짤없다. 하는 내 경고가 뒤를 이었다. 그에 네, 마님. 존나게 고맙습니다. 하며 김남준이 장난스레 되받아 치기도 잠시, 툭. 하는 이상한 소리가 우리 둘의 귓가에 동시에 울려 퍼졌다. 그에 내 표정은 곧바로 굳어졌고, 김남준 역시 마찬가지였다. 소리의 근원지는 내가 깨어날 때부터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던 저 작은 문 안이었다. 살짝 벌어져 틈을 남긴 채 닫혀 있는 저 문과, 문틈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한 저 이상한 형체가 내 공포심을 더욱 자극했다. 때문에 내 얼굴빛은 점점 사색이 되어갔고, 김남준은 차분히 숨을 죽이며 이질스러운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그 뒤를 이어 또 한 번 툭.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더 크게 울리는 것이, 생각보다 우리와 가까운 곳에서 울리는 소리인 듯했다. 반사적으로 두 눈을 꼬옥 감은 채 두 손을 올려 얼굴을 가리자, 옆에 있던 김남준이 괜찮아. 괜찮아. 겁먹지 마. 나 옆에 있어. 괜찮아. 하며 날 토닥였다. 그런 김남준의 말에 더욱 감정이 북받쳐 오른 나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를 읊으며 울먹거렸고, 김남준은 여전히 날 토닥이며 자신의 앞에 놓인 저 작은 문의 문틈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러자 정말 누군가가 쳐다보기라도 한다는 듯이, 작고 흐릿하면서도 새빨간 불빛 두 개가 김남준의 두 눈을 응시했다. 그에 남준이는 시선을 떼어내지 않으며 메마른 침을 꿀꺽 삼켜내었고, 미간을 찌푸리며 저 불빛이 무엇에 의한 불빛인지 알아내려 힘썼다. 날카로우면서도 흐릿한 것이, 인위적인 기계의 불빛이 아닌 달빛에 비쳐 반사될 때 보이는 동물의 검은 두 눈동자인 듯했다. 동물이라니. 사람 하나 살지 않을 법한 이런 폐가에 동물이라니. 도저히 이해가 잘 가지 않는 그 불빛에 남준이 고개를 가까이 가져가 보려던 찰나,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자 옷소매로 눈물을 닦아낸 내가 살며시 두 눈을 떠보았고, 김남준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보고는 김남준의 시선을 따라 문틈 사이를 바라보다 빨간 두 불빛과 두 눈을 마주했다.
너무 놀라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흐읍..! 하는 알 수 없는 소리밖에 내지르지 못한 나는 재빨리 문틈에게서 시선을 거두어들였고, 막무가내로 김남준의 품에 뛰어들며 김남준의 가슴팍에 내 얼굴을 묻어 보였다. 미칠 듯이 쿵쾅거리며 뛰고 있는 김남준의 심장소리가 내 귓가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겁먹은 티 한 번 내지 않고서 나를 껴안아준 김남준은 계속해서 괜찮아. 괜찮아. 를 반복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그 순간, 굵직한 경고음이 울리며 나와 김남준이 앉아있던 카펫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꺄악!! 하는 내 비명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울렸다. 그런 나를 더욱 꽈악 끌어안은 남준은 움찔거리다 찬찬히 내려가는 카펫 위로 중심을 잡으며 주위를 이리저리 훑었고, 카펫이 점차 내려가 아래층에 이르자, 카펫 위로 아슬아슬하게 올려져 있던 깨진 액자, 망치, 깨진 창문 조각이 한꺼번에 떨어지며 또 한 번 시끄런 소리를 냈다.
어안이 벙벙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으스스한 좁은 방안에 갇혀 있던 남준과 여주는 눈 깜짝할 새에 아래층에 이르렀고, 위층과는 상반되는 분위기를 가진 꽤 넓은 방에 또 한 번 갇히게 되었다. 남준은 여전히 여주를 꼭 끌어안은 채 주위를 살피다 천장을 올려다보았고, 역시나 남준의 시야엔 카펫 모양의 커다랗고 동그란 구멍이 뻥 뚫려있는 바닥. 아니, 천장이 가득 자리를 잡았다.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빨간 불빛 두 개를 바라보았고, 여주가 눈물을 흘리며 남준의 품에 안겼을 뿐인데, 가만히 있던 카펫이 내려가 아래층에 도착했다. 아니 애초에, 산속에 나 있을 법한 폐가의 아래층에 이런 상반되는 분위기를 가진 방이 존재할 리가 없었다. 게다가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런 카펫을 타고서 아래층으로 내려오다니. 남준은 자신의 시야에 자리 잡은 커다란 구멍이 뚫린 천장을 바라보면서도 어떠한 말도 이을 수 없었다. 꿈인 걸까? 아직까지도 술기운에 잠이 들어 있는 걸까?
아직도 놀란 가슴을 겨우겨우 진정시키며 여주를 끌어안고 있는 남준에게, 이 광경을 보지 못한 채 줄곧 남준의 품에 안겨 있다 두 눈을 떠 보인 여주는, 뒤늦게 주위를 살피며 여기가 어디야? 하고 남준에게 물었다. 그런 여주의 물음을 뒤로하고서 먼저 조심스레 카펫에서 여주를 떠민 남준은 여주의 발이 바닥을 딛고 나서야 자신도 카펫에서 내려오며 뭐? 못 들었어, 미안. 하며 답했고, 여주는 그런 남준과 낯선 공간을 번갈아 바라보며 다시 되물었다.
"여기가 어디냐고. 어떻게 갑자기 여기로 오게 된 거야? 어쩌다..?"
"...나도 확실히는 잘 모르는데, 우리가 카펫을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온 것 같아."
"뭐? 무슨 카펫?"
"이 피 묻은 카펫. 우리가 줄곧 앉아 있었던 곳."
남준의 말에 시선을 옮겨 카펫을 바라보자, 피가 잔뜩 묻어 있던, 줄곧 우리가 앉아 있었던 그 카펫이 나의 시야에 자리 잡았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하며 말하려던 내 입은 내 시야를 곧바로 채워오는 핑크빛 배경에 자연스레 다물어졌고, 나만큼이나 이곳에 적응하지 못한 남준이는 나를 따라 가만히 카펫을 응시하다 어! 하고 큰소리를 내지르며 깨진 유리조각 사이에서 피가 흥건히 묻어있는 사진 한 장을 꺼내들었다.
한 여자가 남자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서 꼬옥 안겨 있는 모습이었다. 그 괴상망측한 사진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남준이는 아까 전에도 이 사진 있었어? 같이 내려온 사진 같은데. 하고 물으며, 나에게로 시선을 옮겨 보였다. 그에 고개를 가로저은 나는 못 본 거 같은데. 하며 답해 보였고, 그런 내 대답에 그래? 하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김남준은, 다시 사진을 내려놓고서 발걸음을 옮기며 나와 같이 이 넓은 방안을 이리저리 훑어보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번 방은 조금 전 그 소름 끼치던 방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분홍빛 배경에 분홍빛 인형들, 분홍빛 음식과 분홍빛 가구들. 이 방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온통 분홍빛이었다. 그 덕분에 한결 마음을 놓고서 이리저리 방안 곳곳을 돌아다니자, 익숙한 알림음이 들려왔다. 내 손목시계에서 난 소리였다. 그에 고개를 숙여 시계를 바라보자, 시곗바늘이 벌써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벌써 12시네. 늦게 들어가면 엄마한테 욕 오지게 먹을 텐데. 빨리 집에 들어가야 용돈이라도 안 끊기는데. 설마 또 집 비밀번호 바꾸진 않겠지?
훤히 눈앞에 그려지는 미래의 내 모습에 무의식적으로 내 등을 쓸어내린 나는, 훅 밀려오는 두려움에 황급히 주워 먹던 마카롱들을 내려놓고서 집으로 갈 수 있는 문을 찾기 시작했다. 또 카펫으로 방을 빠져나갈까 싶어 카펫 밑도 샅샅이 뒤져봤지만, 역시나 이번 방에도 나갈 수 있는 문이라고는 문고리조차 구경할 수 없었다. 결국 열심히 문을 찾아 곳곳을 뒤지던 것도 잠시, 진이 빠져버린 내가 바닥에 철퍼덕 누워 찬찬히 숨을 고르자, 저 멀리서 김남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꽤나 다급히 나를 부르는 듯한 김남준의 목소리에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왜..! 하며 큰소리로 답하자, 김남준의 목소리 대신 정적이 내게로 돌아왔다. 아니 쟤는 왜 사람을 불러놓고 대답을 안 하냐고. 왜.
"아, 왜 부르냐고. 넌 꼭 사람을 불러 놓고 대답을 안 하더라."
"....이거 좀 보라고."
"왜. 뭔데."
"니가 좋아하는 거."
"내가 좋아하는 거?"
터덜터덜 김남준에게 다가가 그 옆에 있던 분홍빛 의자에 풀썩 주저앉자, 한껏 얼굴을 붉힌 김남준이 내게 무슨 사진을 건네며 내가 아닌 허공을 응시했다. 그에 아무 생각 없이 마카롱을 먹으며 건네받은 사진을 바라보자, 서로를 끌어안으며 진득이 입을 맞추고 있는 남녀의 모습이 내 시야에 자리 잡았다. 그에 쩝쩝 거리던 것을 멈추고서 이게 왜 내가 좋아하는 거냐. 하며 김남준을 톡 쏘아붙이자, 맞잖아. 너 야한 거 좋아하잖아. 하며 퉁명스레 답한 김남준이 더욱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돌렸다.
"와. 남준아. 누누이 말하지만 맞고 싶다는 말은 돌려서 안 해도 돼."
"........."
"그리고 내가 좋아한다는 건 인정. 남자 존잘이네. 누구랑 다르게."
"당연하지. 난 존잘보다도 더 잘생긴 놈이니까."
".....존나 패고 싶게 말한다 너."
"됐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그 사진, 이상하잖아 아무리 봐도. 제대로 좀 봐봐. 여전히 허공을 응시하며 내가 들고 있는 사진을 가로채 펄럭여 보인 김남준은, 다시 헛기침을 내뱉고선 나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그에 이상 행동을 보이는 김남준을 가만히 바라보다 다시 사진을 응시한 내가, 뭐가 이상한데? 하나도 안 이상하고 좋은데. 하며 답해 보였고, 그런 내 대답에 똥 멍청이 아니랄까 봐. 하며 중얼거린 김남준은 다시 나에 곁으로 다가와 사진이 핑크색이 아니잖아..! 다른 것들은 다 핑크빛인데 얘만! 하며 사진을 쿡쿡 찔러 보였다. 그제서야 어! 맞네! 하고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난 나는 그 사진을 응시하며 놀라워하다, 근데 그게 왜. 하며 김남준에게 되물어 보였고, 그런 나의 대답에 또 한 번 한숨을 내쉰 김남준은 다짜고짜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내게 두 팔을 벌려 보였다.
"뭐. 니 팔이 왜. 어쩌라고."
".....ㅇ,안겨보라고."
"......미쳤냐?"
"나는 뭐 하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아냐? 집에 가야 할 거 아냐. 집에!"
"뭔 개소리야. 내가 너한테 안기는 거랑 집에 가는 게 뭔 상관이야! 내가 너한테 안기면 뭐 없던 문이 뿅 나타나기라도 하냐??"
"아까 본 그 사진처럼 위층에서 네가 나한테 안기니까 여기로 왔잖아..! 위층에선 운 좋게 얻어걸린 거고, 여기서는 이 사진을 똑같이 따라 하면 문이든 뭐든 나오겠지."
"...아니,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하고 지껄이는 거 맞지?"
"나도 이해가 안 되는데 지금껏 이해되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이러는 거 아냐. 그리고, 아까 위층에서는 잘 안겨놓고 지금은 못 안긴다는 건 또 뭔데. 부끄럽냐?"
"아까는 무서워서 그런 거고...! 지금은 안길 이유가 없는데 왜 안기냐고!"
"이유가 왜 없어. 이 사진이 이유잖아 이유."
"............."
"너 이러다간 나랑 여기서 평생 먹고살아야 할 수도 있어. 집에 안 가고 싶냐? 집에 가고 싶으면 뭐라도 해봐야 할 거 아냐."
"..........."
"아, 빨리. 나도 지금 존나 민망하니까 빨리해. 빨리."
".....문 안 나타나면 죽을 줄 알아 너."
결국 패배자는 나였다. 귀마저 빨갛게 물들인 채 날 응시조차 못하고 있는 김남준은 여전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런 김남준에게 다가간 나는 털썩 김남준의 앞에 주저앉으며 최대한 사진 속 두 남녀와 비슷한 포즈를 취해 보였다. 김남준은 나의 허리에 손을, 나는 김남준의 어깨 위로 손을. 그리곤 입술을 맞추며 고개를 비틀..
"와, 나 못해 못해."
"........"
"야, 여기서 평생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 얼마나 좋아 핑크 침대에 핑크 옷, 핑크 음,"
그때였다. 김남준에게서 고개를 떼어내어 연신 못해못해를 외치던 날 끌어당긴 김남준이 그대로 나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춰 왔다. 그리곤 사진 속 그 남녀를 따라, 나의 뒤통수를 그 커다란 손으로 감싸며 고개를 비틀어 보였다. 김남준의 두꺼운 입술이 나의 입술 위를 부드럽게 덮어왔다. 그에 어찌할 바를 몰라 두 눈을 커다랗게 뜨며 김남준을 응시하자, 살며시 두 눈을 떠 보인 김남준이 눈 감지. 하며 나의 귓가에 속삭여 보였다. 그에 깜짝 놀란 내가 처음 듣는 김남준의 낮은 목소리에 두 눈을 질끈 감아 보이자, 김남준이 나의 손을 잡고서 자신의 목을 감싸 안게 만들며 입맞춤을 이어갔다.
그러자 조금 전과 같은 굵직한 경고음이 울리며 저 멀리 있던 거울이 와장창 소리를 내며 산산 조각이 났고, 그에 깜짝 놀란 내가 반사적으로 김남준과 맞물리게 두었던 내 입술을 떼어내었다. 김남준의 두 눈이 살며시 떠지며 내 두 눈동자를 응시했고, 정적이 가득했다. 여전히 김남준의 손은 나의 허리와 뒤통수를, 내 손은 김남준의 목을 끌어안고 있었다. 그에 분위기를 살피며 이도 저도 못하던 내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ㅇ,와! 문이 여,열렸다! ㅇ,이야 신나라! 하고 소리쳐 보였고, 그 정적 속에서 벗어나고자 황급히 새로운 문에게로 와다다 달려갔다.
뒤에서 피식. 하는 김남준의 웃음소리가 들리지만 상관없었다. 내가 쪽팔려서 뒤질 것 같으니까. 그리곤 와하하. 남준아 어서 오지 않겠니. 이제 집에 갈 시간이란다. 하며 하나도 신나지 않은 목소리로 남준이를 부르며 새로운 방문을 열자, 이번엔 새빨간 조명에 새빨간 침대, 새빨간 포장지들로 둘러싸인 콘돔 수백 개가 바닥을 가득 채우고 있는 방안이 내 시야 가득 들어찼다. 그에 문을 엶과 동시에 바로 닫아버리며 그대로 그 자리에 굳어 있자, 피식피식 웃으며 나의 곁으로 다가온 김남준이 왜. 뭔데. 열어봐 얼른. 하며 날 재촉하기 시작했다.
아니야. 이거 아닌 거 같아 남준아. 우리 좆 된 거 같아. 이건 진짜 아니다. 진짜. 와. 너무 한거 아냐? 1초 단위로 수백 개의 말들을 와다다다 쏟아내는 나를 보고서 뭐가 그리 웃긴 건지 푸스스 웃어 보인 김남준은 내가 열고 바로 닫아버린 그 방문을 활짝 열어 보이며 그 좆같은 빨간 조명을 마주했고, 동시에 김남준의 입가엔 이럴 줄 알았다는 듯한 여유로운 미소가 활짝 피었다. 그에 내 표정이 썩어들어가는 것은 당연지사였고. 왜 웃냐 미친놈아. 새빨간 침대 보고 왜 쪼개 시발. 웃겨? 웃기냐고. 진짜 좆 된 거 같아서 미치겠는데 뭐가 좋아서 웃냐 넌.
"왜 나쁘지 않은데."
".............."
"기대 한 것보단 좀 아쉽다. 그지?"
"........."
"들어가자."
"이제 집 가야지."
+곧 카페에서만 따로 새작 연재 할거예요 ㅎㅅㅎ
+반인반수물 장편으로 쓰고 싶은데 남준이만 동물 설정을 헤매고 있어요ㅜㅜ 일단 퓨마 생각중이긴 한데.. 더 어울리는 동물이 있을까요오? ㅇㅅㅇ?
|
첫댓글 블로그에서도 봤지만 남준이 진짜 다정킹이예요ㅠㅠㅠㅠ 너무 좋아ㅠㅠㅠ 그리고 남준이 퓨마 찰떡잉거 같아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9.09.11 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