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막음식을 이은 국밥에 담긴 대등의식 - <군포식당> 설렁탕을 맛보면서
솥에서 끓고 있는 설렁탕은 재고가 남지 않아 운영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경제적인 상품이다. 유일하게 손님을 개별적으로 배려해야 하는 것은 주문 뒤에 토렴을 한다는 것, 이외는 모두 언제나 준비되어 있어 손님이 갑자기 밀어닥쳐도, 한동안 전혀 오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밥을 뜨거운 국물에 헹궈 뜨겁게 하고 말아주는 토렴 또한 국밥집에 따라 다르다. 전주 <현대옥>은 토렴을 하지만, 하지 않는 집이 더 많다. 이문설농탕은 토렴을 하지 않는다. 토렴을 하지 않으면 조리 절차가 한 단계 생략되어 더 간단해진다. 메뉴의 이런 경제성 때문에 전통식당에서는 국밥이 가장 애용되었다.
전통 식당인 주막의 메뉴가 대부분 이런 국밥류인데, 오랜 식당 노포의 메뉴 또한 국밥류가 많은 것이 바로 주막의 전통을 이었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면 1950년 이전의 오랜 맛집 중 1/2이상이 국밥집이다. 가장 오래되었다는 1904년 이문설농탕도 설렁탕집이고, 1910년 나주 하얀집과 1920년 안성 안일옥도 각각 곰탕과 설렁탕집이다.
노포 국밥집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주막처럼 시장통이나 교통의 요지이다. 항상 사람이 붐비는 곳이어서 손님을 많이 모을 수 있고, 손님은 빨리 먹고 일어서야 한다. 물론 이들이 항상 빨리 먹은 것은 아니다.
여관을 겸한 주막에서 나그네가 늦게까지 술을 하거나, 장꾼이 밥시간을 비껴 벗과 느긋하게 술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다. 그때는 국밥에 수육을 더해 안주로 했다. 수육은 따로 조리할 필요가 없이, 끓고 있는 국솥에 함께 넣고 삶기만 하면 되었다.
고기는 수육으로 국물은 국밥으로 먹을 수 있으므로, 국물 한 방울 버리지 않는 경제적인 조리가 가능하였다. 수육을 찾는 손님이 없으면 국에 넣어 건더기로 쓸 수 있으므로 고기 또한 한 점도 버릴 필요가 없었다. 말하자면 재고 걱정이 전혀 없는 메뉴인 셈이다. 수육과 국밥은 전통적으로 가장 용이하고 보편적인 메뉴였다.
고기를 장시간 끓여야 하는 국밥은 집에서 하기는 쉽지 않았다. 농경사회에서 고기요리도 집에서는 쉽지 않아, 손님으로서는 외식이 갖는 별식의 의미가 충분하여 주막의 메뉴로서는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59년에 설립되었다는 군포식당 또한 그렇다. 국밥과 수육을 함께 하고, 역전시장 위치 등이 주막의 영업 상황과 그대로 일치한다. 가장 전통적인 영업방식이라는 거다.
아주 후대에 만들어진 식당들이 국밥을 메뉴로 많이 택하고, 이런 집들이 전국에 체인점을 이루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주곰탕집, 양평해장국 등은 체인점을 이루고 있다. 바로 주막 영업방식을 이었다고 하지는 않겠지만, 근원을 따져가면 주막과 닿는 것은 사실이다. 주막음식으로 사람들에게 국밥이 익숙해졌다는 점을 활용하고 있는 거 자체가 주막의 계승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메뉴는 대체로 국밥류, 기타 단품류, 직접 구이류, 그리고 한정식 등의 메뉴로 크게 4분되는 거 같다. 이중 국밥이 상술한 바와 같이 역사적으로는 가장 보편화되어 있는데, 이것은 식당 운영의 경제성 외에 우리 식문화와도 관련이 깊다.
프랑스에서는 먹을 만한 식당은 대부분 한 끼에 한 상 한 팀 손님이다. 식당이 차면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상당수의 식당이 예약제로 운영된다. 좋은 식당은 몇 달 전에 예약이 이미 끝나 있다. 여행객이 좋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 어려운 이유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이런 국밥집이라면 한 상에 10팀도 가능할 것이다. 이집도 줄서는 집이라 순번 대기자를 메모판에 적어놓고 있다. 줄을 서 있는 식당에서 한가하게 오래 먹을 수도 없지만, 국밥의 성격상 오래 먹을 필요도 없다. 후루룩 후루국 말아서 몇 번 흘려 넣으면 식사가 끝나기 때문이다.
밥은 국에 말아 한번에 먹고, 반찬은 최소화되어 있으므로 반찬을 따로 먹느라 시간을 쓸 필요도 없다. 빠른 사람은 5분 10분에도 먹을 수 있다. 식당 측으로서는 회전이 빨라서 좋고, 손님은 식사를 빨리 해서 좋으니, 누이좋고 매부좋고다.
언어와 관련한 유럽인의 특징 중 하나는 다변이다. 이러한 다변이 수다쟁이 셰익스피어를 만들어냈고, 서사보다 묘사에 신경 쓰는 사변적인 소설들을 만들어냈다. 서사 위주의 우리 고전소설과는 많이 다르다. 식사에서는 시간형 상차림을 만들어냈고, 한없이 늘어지는 식사를 보편화했다. 유럽인들은 식당에서의 만남 목적이 식사인지, 대화인지 알기 어려울 정도로 이야기에 몰두한다. 밥을 먹기 위해 만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만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많이 하면 가난하게 산다는 속신이 있다. 또 물기가 많은 음식이 많고, 어휘에도 격음이 많아 음식이 쉽게 튀어나가므로, 식사 시간에는 이래저래 입을 다물어야 한다. 거기다 옛날 밥상은 1인용 소반에 차리므로 얘기할 상대를 찾으려면 따로 있는 사람을 찾아야 했다.
거기다 찬 가짓수도 그리 많지 않아, 차분히 반찬을 즐기게 되어 있지도 않다. 상차림은 한꺼번에 모든 찬을 올려놓는 공간형이므로, 다음 음식을 기다릴 시간도 필요하지 않다. 허균이나 심노숭같은 사람은 노골적으로 음식을 즐겼지만, 보통 사대부들에게는 음식은 적당히 절제를 해야 되는 대상이었다. 느긋한 식사보다 절제된 식사가 요구되었다.
유교의 절식 정신은 찬의 가짓수에도 반영되어 많은 반찬을 상에 올리지 못하게 하였다. 몽골인들이 내가 목욕을 하면 다른 사람 마실물이 없어 목욕을 줄이게 되었다는 것처럼, 식재료가 풍부하지 않은 곳에서는 나의 찬을 줄여 아랫것과 가족을 먹이고자 하였다. 이래저래 식사가 단순해질수 있는 이유가 많았다.
그런 가내 식문화는 상업용 국밥 메뉴에 쉽게 적응하게 하였다. 이것이 국밥이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고, 아직도 성행 하는 또 하나의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거기다 또 하나 보태면 우리는 상층과 하층 음식의 차이가 별로 크지 않다는 것이다. 상층 양반이 상을 먹고 물리면, 그 상에서 밥을 먹고 그러고도 남는 찬은 딴 살림을 하는 아랫것들이 싸가지고 가서 먹었다.
경기 지방에서는 그런 상을 대궁상이라고 하였다. 홍명희의 <임꺽정>에 잘 나와 있다. 이것은 먹는 시간에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요즘은 가족내 위치에 따른 식사시간 시차가 없는 것은 물론 식당이나 집에서 먹는 음식 자체에도 큰 차이가 없다. 부자와 빈자의 식당 음식 차이가 없는 것이 식당 영업의 커다란 힘이다.
오래 전에 가본 부여의 <온양식당>의 주인 할머니는 말했다. 어떤 회사의 직원들이 회장님을 모시고 와서 허름한 식당의 모습에 난감해하며 자리가 불편하다고 불평을 하더란다. 우리 식당은 이렇게 생겼으니 여기서 먹을 수밖에 없다고 하니, 상황 파악을 한 회장님은 군소리없이 드시고 가셨고, 오히려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와서 수더분하게 잘 드시고 가셨더란다.
보통 식당에서는 화려하지 않은 음식, 비싸지 않은 음식이 대부분이고, 상하귀천 없이 모두 똑같은 음식을 잘먹고 간다. 인간에 귀천이 없는 것처럼 먹는 데 귀천이 없다. 손님이 세분화되면 개별 식당의 손님층이 얇아져 영업이 탄력을 받기 어렵다. 우리의 많은 식당들이 잘 돌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야기를 하고 식당 분위기를 따지고, 요리사의 이름을 거는 식당에서 먹는 프랑스 요리는 대체로 고급한 요리이다. 이 프랑스 요리는 요즘 아랍인들의 케밥에 몰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아랍인들의 비중이 높아지는 남불쪽으로 가면 전통음식이라고 자랑하는 불란서식 매운탕 브이야베스마저 제대로 먹기 힘들다. 상층의 음식문화는 2010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었지만, 상층의 문화재로서만의 의미가 더 크게 되었다. 서민으로까지 하강하지 못하였다. 서민은 돈과 시간이 모두 없기 때문이다.
군포식당 밥집에는 부자나 빈자나, 노인이나 아이나, 남자나 여자나 구별없이 누구나 와서 똑같이 마뜩하게 먹고 간다. 돈이 없고 시간이 없는 사람도 누구나 편안하게 먹는다.
오래 그래왔고, 앞으로도 오래 길게 전통을 이어 갈 식당이다.
식당 분위기보다 누구나 편안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우리 식당문화를 프랑스의 미슐랭이 와서 평가한다는 것은 때로는 문화적 배경의 맥락을 자르는 것이 된다. 음식은 맛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사회문화적 배경이 주는 맛 또한 맛을 만드는 또 하나의 맛이기 때문이다.
국밥 한 그릇에 차등이 아닌 대등정신이, 선조들의 정신이 담겨 있다. 누구나가 상대적으로 의미 있어 대등하다는 대등정신이 국밥 한 그릇에서도 느껴진다. 참 맛있고, 편하고, 좋은 식당 음식이다.
군포 군포식당 : 2021.5.29.저녁
*군포 역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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