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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13.4 km
소요 시간 7h 20m 47s
이동 시간 6h 43m 8s
휴식 시간 37m 39s
평균 속도 2.0 km/h
최고점 1,433 m
총 획득고도 939 m
난이도 힘듦
설악산 바람꽃
양산박
매서운 겨울 땅 속에 숨어서도
여름을 꿈꾸었다 그 찬란한
햇볕이 쏱아지는 계절을
봄바람 일면 마음도 흔들린다
바람꽃 꽃대 위에
하얀 속살 같은 마음이
한여름 뜨거운 햇빛이 녹아
설악산 대청봉 산자락에 쏱아져
바람꽃 하얀 꽃잎을 적신다
프로로그
겨우내 쌓였던 눈이 녹고 땅이 풀리는 싯점을 삼짓날(3월 3일)이라고 하고 가을 서리가 내리고 성장을 멈추는 시기가 구양절(9월 9일)이라고 치면 풀나무는 이 6개월간 삶의 원운동을 끝내야 한다. 물론 삼짓날 이전부터 태동하고 구양절 이후에도 생명을 유지하고 있겠지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식물 고유의 근원적인 활동은 이 6개월의 짧은 시기에 다 이루어진다.
홍천휴게소에서 만난 바이크족.
그런 것을 감안할 때 지금은 태양이 가장 가까이 와 있는 시기이면서 6개월의 반을 보내고 반이 남아 있는 때라서 어쩌면 식물계의 성수기라고 보면 맞을 것이다. 꽃과 풀들은 매년 이렇게 피고 지는 일을 반복하지만 그 시기가 무척 짧다. 그렇기 때문에 식물은 그 짧은 시기에 모든걸 마쳐야 하며 그 시기를 놓치면 결국 번식의 고리가 끊어지고 만다.
우리는 주변에 꽃이 피어 있으면 예쁘게 감상하고 아름답다고 표현하며 꽃이 지고 나면 내년에 필 것을 기다린다. 모든 것이 인간 즉 관찰자의 입장에서 하는 말들인데 그래서 꽃은 아름다워야 하고 특이해야 한다. 그리고 꽃은 또 다른 꽃과 달라야 한다.
전에 산행을 정기적으로 다니지 않을 땐 계절의 순환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했다. 벚꽃이 언제 피었다가 지는지, 진달래꽃, 철쭉이 필 때가 되었나 하고 궁금해 할 즈음이면 벌써 그 꽃들은 져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이름 모를 다른 꽃이 피어 있는 걸 봐야 했다. 산행을 하면서 꽃이 필 때까지 상당히 긴 시간 동안 풀이 땅을 뜷고 올라와 꽃대를 올리고 봉오리를 맺고 힘들게 그 봉오리를 터뜨린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꽃이 지고 나서야 비로소 새끼를 낳은 짐승처럼 또 햇볕을 쪼여 열매를 익히고 자신의 몸에서 멀리 떨어뜨려야 자신의 할 일을 마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고 나서야 풀은 자신의 몸을 땅에 눞히고 또 다른 생명을 틔우기 위한 거름이 된다.
봄이 오면 작년에 피었던 그 꽃이 피고, 새가 울면 전에 찾아 왔던 그 새가 찾아온 것으로 생각하면서 감상적인 시를 읊지만 꽃은 작년의 그 꽃이 아니오, 새도 전에 왔던 그 새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간과하며 살아간다. 산천이 의구한 것이 아니고 그 산천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이 그리고 시인의 마음이 그렇게 보는 것이다. 우리가 결코 의구하지 않은 자연의 변화를 조금이라도 제대로 보려면 생각보다 훨씬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설악산은 우리나라 일반적인 산보다 겨울이 길고 여름이 짧다. 그러다 보니 그 속에서 자라는 풀들은 다른데보다 더욱 강렬하게 꽃을 피우고는 서둘러 져버린다. 그런 와중에도 좀 더 효율적으로 종족보존을 꾀하기 위해 하나의 줄기에서 여러대의 꽃을 차례 차례 피우기도 한다. 바람꽃도 그런 꽃 중 하나이다. 봄에 설악산에 눈이 녹자 마자 척박한 땅위에 싹을 틔우고 찬바람이 불기전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익히기 위해 한시도 쉬지 않고 마치 달리기하듯 자라나야 한다. 작년 8월 초에 갔을 때는 바람꽃이 거의 끝물이었다. 올해는 꽃 성수기때 그 꽃을 볼 심산으로 7월 7일에 가려고 미리한테 부탁해서 버스표를 예매하였다. 그런데 블로그 등을 뒤져보니 7월 2~3째주는 돼야 제대로 핀 꽃을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여 취소 했다가 다시 다른 글을 보니 7월 초에도 이미 꽃이 많이 피어 있는 걸 보고 다시 예약을 했더니 방금 취소한 차시간에는 표가 없고 그 다음 1시간 후인 7시 30분차가 있다.
이번 산행은 한계령에서 시작하여 귀떼기청봉을 넘어 대승령을 거쳐 장수대로 하산할 예정이다. 작년 말에 무박산행으로 이 코스를 거쳐 12선녀탕 계곡으로 하산한 적이 있는데 귀때기청봉에 이르렀을 때도 어둠이 걷히지 않아 제대로 된 풍광을 구경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아침에 올랐다가 해지기 전에 하산하게 될 터이니 멋진 조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산행기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영윤이 챙겨주는 청국장을 맛없는 표정으로 먹었다. 간이 하나도 안돼있는 청국장은 정말 맛이 없었다. 김치국물을 조금 넣고 다시 끓이니 좀 먹을만 하다. 영윤이 준비해준 찐감자와 샌드위치 그리고 토마토를 배낭에 챙겨 넣었다. 금요일 베드민턴 회원들 야유회(양평 김성호 씨 별장)에서 얻어 온 찹쌀떡 한 개와 찐 계란 두 개에다 이틀간 냉동실에서 얼린 물 2병을 챙기니 산에서 굶어 죽을 일은 없겠다. 오히려 배가 터져서 죽으면 몰라도.
산행계획이 변경되었다. 7시 30분 동서울에서 버스가 출발하기 전부터 난 의자에 몸을 묻고 밤에 못잔 잠을 청했다. 옆에 등산복차림의 중년 남자가 앉았으나 그냥 눈인사만 하고 눈을 감았다. 버스가 출발하고 얼마를 달렸는지 시간이 꽤 되었는데 멈추어 서 있는 느낌이 든다. 눈을 떠 보니 길이 꽉 막혀 있다. 이렇게 밀리다 풀리겠지 하는 심정으로 다시 눈을 감았다. 그렇게 밀리는 길을 조금 더 가는데 갑자기 꽝하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눈을 뜨니 다른 승객들도 무슨 일인가 싶어 머리를 위로 쭉 빼고 두리번 거린다. 출발한지 1시간 가량 되었는데 설악 나들목을 갓 지나 가평휴게소까지는 좀 먼 지점이다. 뒤에 오는 차가 내가 탄 버스를 받았나보다. 밀리는 터널 안에서 운전사는 버스에서 내려 부딪친 상황을 점검하고 “가해차량”운전사와 무슨 얘기를 하는지 한참이 지나도록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승객 한 분이 전문가인 듯 내려서 그 가해자와 피해자간 대화에 끼어 들어 중재를 한 듯 얼마 후 운전사가 차에 오르고 버스는 곧 출발하였다.
차는 여전히 밀리는데도 승객들은 잃어버린 한 시간을 염두에 두지도 않는 듯 다시 의자에 머리를 대고 잠을 잔다. 전에 읽었던 ‘한국인의 의식구조’라는 책에 실렸던 글이 생각난다. 우리 조상은 농경사회에 접어 들면서 정착생활을 해 왔는데 농사를 짓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소였다. 소는 논밭을 갈고 물건을 나르는 데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자원이었다. 그리고 늙어서 더 이상 쓸모없게 되면 또한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그러다 보니 농가에서 가장 귀중한 보물 취급을 받았다. 외양간에 소를 묶어 두어도 호랑이나 늑대에 물려가지 않을까 또 누가 훔쳐가지 않을까 걱정스런 마음에 농부는 잠자리에 누워서도 늘 신경은 외양간의 소에게 가 있었다. 밤 늦게 살펴보고 자고 또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밤새 잘 있었는지 살펴봐야 했다. 그리고 낮에는 일을 해야 하다 보니 늘 잠이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조금이라도 자투리 시간이 나면 엉덩이를 땅에 대고 앉아 수면을 취하던 습관이 남아 있어 지금 도시생활을 하는 우리들도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엉덩이만 의자에 붙이게 되면 잠을 자는 것이라는 설명인데 정말 그럴 듯 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버스가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조금 달리더니 갑자기 삑삑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승객들은 다시 고개를 쳐들고 운전석을 바라본다. 운전사는 차를 갓길에 세우고 잠시 살펴보러 나가더니 함흥차사다. 이번에는 차의 시동을 꺼놓은 상태라서 차안의 기온이 점차 올라간다. 아까 사고났을 때 살펴보러 나갔던 그 승객이 다시 내렸다가 올라온다. 이어서 운전사가 올라와 버스엔진의 피대줄( feeder, belt )이 끊어져서 냉각장치가 작동을 할 수 없어 차를 운행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본사에 연락을 했는데 주말이라 예비차량까지 다 나가고 없어서 대차가 서울에서 올 예정이라고 한다. 설명은 쉽게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마흔 네 명 승객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하는 듯 사람들의 표정이 각양각색이다. 운전사는 대체버스가 올 때까지 차안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에어컨도 안나오는 버스에서 한 시간 넘게 또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짜증이 밀려온다. 차에서 내려 보니 밖에도 햇볕이 내리쬐어 만만치 않다. 속초에 출장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여자분이 이럴 경우 회사에서 어떤 대책을 세울 것이며 보상은 어떻게 해주느냐고 운전사에게 전화해서 물어보라고 언성을 높인다. 운전사는 당황하면서도 조리있게 말하는 그 승객의 요구에 통화해보겠다고 하면서 다시 차에서 내린다. 결국 이 고속도로를 자나가는 같은 회사 차량에 급한 사람을 몇 명씩 빈 자리에 실어서 보내기로 했다. 나도 차에서 배낭을 꺼내 원통까지 간다는 버스에 다른 10여명의 승객과 함께 옮겨 탔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은 일행 2명과 함께 속초를 거쳐 주문진으로 가서 회를 먹고 돌아올 참이라고 한다. 내가 산에 가는 것을 알고는 자기도 설악산 등 강원도 일대 산을 많이 다녔다고 한다. 그 사람 말로는 버스가 인제 원통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고속도로를 타고 속초로 가는 것이라 한다. 난 내가 가입해 있는 밴드에 속초에 있는 산을 추천해달라고 공지를 올렸다. 울산바위 옆에 있는 신선봉이 좋다고 추천하는데 다만 속초터미널에서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 하는데 편도 2만원 정도 들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도 허탕치는 것보다는 돈이 좀 더 들더라도 멋진 산을 둘러보고 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버스가 동홍천에서 국도로 빠지고 얼마 안가서 후게소에 들린다. 기사에게 물어보니 인제 원통에 우리를 내려주고 갈 예정이란다. 이차는 원래 속초로 곧바로 가야 하는데 사고차량에서 옮겨탄 사람들을 위해 예정과 달리 인제 원통에 들린다는 것이다. 옆지기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원통까지 왔다.
원통에서 내리니 대머리가 훌렁 까진 노년의 터미널 직원이 다가와 인원을 확인한다. 그 새 인제에서 내린 사람 그리고 원통까지만 오는 사람을 제외하고 여섯명만 남았다. 여성 2명은 강릉 낙산사에 가는 길이라 하고 원래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등산객은 중청대피소에 예약이 되어 있어 오색에서 대청으로 오를 예정이라 한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원래 나처럼 한계령에서 내려 오색이나 장수대로 내려올 계획이었으나 차량 사고로 인해 계획을 변경해야 할 형편이었다. 나는 오면서 이미 장수대로 올라가서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비탐방코스인 안산에 올라가 보기로 계획을 세웠는데 그 사람에게 같이 갈거냐고 물으니 좀 망설인다. 오색에서 내려 흘림골 계곡탐방을 하면 좋을 것 같다고 한다. 원통에서 얼핏 바라보니 설악산 서북능선도 구름에 가려져 있더라며 장수대로 대승령을 올라도 조망이 없을 것 같다고 한다.
11시 50분 내가 장수대에서 내리자 흘림골 탐바예정이라던 그 사람도 따라 내렸다. 야생화와 경치 사진을 찍는다며 자기는 시간이 지체되니 신경쓰지 말고 앞서 가라고 한다. 값 비싸 보이는 카메라를 들고 여기 저기 사진을 찍는 모습이 상당히 전문성이 있어 보인다. 블로그를 하느냐고 물으니 자신은 그런건 안한다고 한다. 시간이 어찌 될 지 몰라 대승령에 올랐다가 다시 장수대로 원점회귀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한다. 내가 안산에 가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으니 자신은 코스를 잘 모른다면서도 같이 갈 생각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승령으로 오르는 코스는 가파른 구간에 나무계단을 설치해 놓았다. 건너편 삼형제봉 산마루가 구름에 가려졌다 나타났다 한다. 구름이 없는 아래쪽은 미세먼지가 없어 맑은 가을날 같다.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주어 오르막에 흘린 땀도 잠시 전망대에 서 있으면 말라 버린다. 대승폭포 전망대에 가까워가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아이 하나를 업고 어린 꼬마 둘을 데리고 내려오고 이어서 할머니 한 분이 또 내려온다. 신발도 등산화가 아닌 운동화이고 아이는 슬리퍼를 신었다. 어디서 넘어오는가 물으니 그냥 밑에서 대승폭포까지만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길이라 한다.
2013년 7월에 내가 산에 대해 잘 모를 때 영윤은 한창 등산에 취미를 붙이며 전국 산을 돌아 다녔다. 그 때 영윤이 속해 있던 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산수산악회 버스를 타고 이 대승령 - 12선녀탕 코스를 걸었던 적이 있다. 무척 가문 시기였는데 산악회 회원들은 쉬지 않고 이 가파른 산길을 걸어 오르는데 나도 질세라 열심히 올랐다. 대승폭포를 거쳐 대승령 꼭데기에 가서야 점심 겸 휴식을 가졌는데 난 그 때 이미 허리에 통증이 심하게 느껴졌다. 대승령에서 남교리까지의 계곡 코스가 그리 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허리통증이 다리에까지 내려와 마지막 구간을 절뚝거리면서 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후로 허리 통증이 심해졌고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어쩌면 이미 약해진 허리가 무리한 산행으로 인해 통증으로 표출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 때를 생각하면서 나무계단을 오르는데 대승폭포 전망대에 여러 사람이 서서 하얗게 쏱아지는 물줄기를 감상하고 있다. 비가 온 이후에나 이처럼 큰 폭포다운 물줄기를 볼 수 있지 평상시에는 아주 가늘게 쏱아진다. 오늘은 먼 데서 보는데도 폭포의 하얀 물줄기가 뚜렷하게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보는 폭포와는 그 느낌이 다르다. 조금 작은 것이라도 가까이에서 물방울이 느껴지는 그런 폭포가 좋다.
폭포전망대에서 빡빡한 시간 때문에 같이 올라온 사람과 어느 코스를 밟을 것인지 얘기하는데 이곳 주민이라는 부부가 자기들은 장수대에서 남교리까지 4시간이면 충분히 넘어간다고 한다. 우리들은 남자니까 아마 더 빨리 갈수도 있을거라고 하는데 시간을 보니 12시 30분이다.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남교리로 넘어가도 오색에서 7시 20분에 출발하는 막차를 충분히 탈 수 있겠다면서 같이 가기로 했다. 대승령 삼거리로 오르는 길은 계속해서 가파른 오르막이다. 램블러에서 안산으로 가는 코스를 검색해보니 대승령 가기 전에 왼쪽으로 꺽어진다. 그 쪽은 작은 계곡을 넘어가야 하는데 올라가면서 살펴봐도 왼쪽으로 갈라지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얼마 쯤 올라가자 길 왼편으로 출입금지 경고 팻말이 서 있고 그 뒤쪽으로 사람들이 지나 다닌 흔적이 뚜렷한 길이 보인다. 대승령 삼거리까지는 한참 더 가야 하는 지점이다. 우리는 서로 의기투합하여 왼쪽 금지된 길로 발을 내딛었다. 안개가 드리워진 숲길이 축축하게 젖어 있다. 길위에 불법탐방객들이 지나다닌 흔적이 더욱 뚜렷해지는 만큼 내면속에 숨어 불법을 저지르는데 대해 꿈틀거리던 양심이 차츰 누그러지고 그 자리에는 안산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가 자리잡는다. 전에 여러 블로그와 카페에서 보았던 안산의 멋진 풍광이 불법을 저지르는 나의 죄책감을 가라 앉혀 준다. 전에 공룡능선을 타기 전 신선대코스를 오르던 그 기분과 흡사하다. 더구나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둘이 가는 만큼 마음의 무게도 반으로 가벼워진다.
울창한 수풀림에 싸인 곳에 무덤이 자리하고 있다. 무덤가에서 올해 처음으로 노루오줌 꽃을 보았다. 벌써 지고 있는지 색이 하얗게 변해가는데 비를 맞아서 물기에 흠뻑 젖어 이삭을 깊이 숙이고 서 있다. 그 옆에는 이제 막 피어나고 있는 새며느리밥풀 꽃이 자라고 있다. 이제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무성하게 피어날 며느리밥풀꽃의 시대를 예고하는 것 같다. 무덤 마당에 이 꽃이 피어 있으니 꽃에 얽힌 전설이 연상된다.
옛날엔 누구나 굶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논에서 나는 쌀은 제삿상에나 맘놓고 올리지 평상시 먹는 밥은 주로 밭에서 나는 보리나 조 귀리 콩 등 잡곡으로 지었다. 산골 양반집으로 시집온 며느리는 신랑이 과거를 보러 집을 떠난 후 시어머니 시집살이에 힘겨워하면서도 신랑이 과거급제하여 돌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궂은 일을 시켜도 열심히 살았다. 어느날 조상님 제삿상에 올릴 밥을 짓는데 뜸이 들었는지 본다며 솥뚜껑을 열고 하얀 밥풀떼기를 손으로 집어 입에 넣었다. 주린 입에 쌀알이 들어가니 비록 한술 밥은 아니더라도 그 황홀한 기분은 가히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엄한 시어머니가 부엌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다짜고짜 소리지른다. 감히 조상님 제삿상에 올리기도 전에 자기입에 넣는 사악한 년이라며 며느리를 광에 가두었다. 이렇게 억울한 누명을 쓴 채 광에 갇히니 마음이 더욱 서글픈 나머지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 죽고 말았다. 이듬해 과거시험을 보러 갔던 아들이 돌아와 그 슬픈 사연을 전해 듣고 무덤을 찾아 가니 무덤가에 붉은 꽃이 피어 있는데 꽃잎속에 하얀 쌀알 두 개가 들어 있는 모양을 보고 억울하게 죽은 며느리의 한이 꽃으로 환생한 것이라 생각하며 더욱 애틋해 하였다 한다. 그 후로 이 꽃을 며느리의 한이 서린 꽃이라 하여 며느리밥풀꽃이라 불렀다.
좁은 산길 옆으로 노루오줌과 터리풀 그리고 참조팝나무꽃이 무성하게 피어 있다. 터리풀은 산 중턱부터 활짝 핀 것이 보이더니 위로 올라갈수록 아직 덜 핀 꽃봉오리가 다닥다닥 달려 있는 것이
무더기로 피어 있다. 산길은 완연한
꽃길이다. 박새는 꽃이 지고 꽃대가 죽는 건지 누렇게 색이 바랜 박새가 여기 저기 땅바닥에 누워 있다. 아주 드물게 아직 꽃이 남아 있는 박새
꽃대가 보인다. 여로는 아직 꽃이
피기 전이다. 꽃망울을 잔뜩 달고 있는 여로꽃 이삭이 물에 젖어 무거운지 고개를 숙이고 있다.
내 뒤를 따라오던 산동무는 어느 새 나를 앞지르더니 내가 꽃사진을 찍는 동안 저 멀리 달아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다. 아마 서울로 돌아가는 차시간에 압박을 받아 대승령을 거쳐 다시 장수대로 내려갈 모양이다. 산길을 따라 올라오니 마침내 능선길에 닿았고 여기서 길이 갈라진다. 오른쪽으로 가면 대승령 삼거리요 왼쪽길이 안산으로 향하는 길이다. 이제 혼자 남은 길에 난 과감하게 왼쪽길을 택했다.
왼쪽으로 조금 나아가자 바위 낭떨어지 위로 조망이 탁 트이는 공간이 나타난다. 드디어 안산으로 가는 풍경이 보인다. 다만 안개가 짙게 끼어 한계령길 건너 남설악의 삼형제봉과 주걱봉의 수려한 산줄기는 보이지 않는다. 안개에 섞인 바람이 시원하고 햇볕은 따뜻하다. 이 큰 산속에 혼자 있다는 생각에 맘껏 여유를 부려본다. 가방에서 샌드위치를 꺼내 먹었다. 얼려온 물은 아직도 녹지 않아 시원하기 그지 없다. 식사를 하는 펑퍼짐한 자리 한 켠 바위틈에 노란 돌양지꽃이 피어 있고 그 꽃속에 개미 한 마리가 부지런히 꽃을 희롱하고 있다. 개미는 꿀을 따고 꽃은 꽃가루 잔치를 벌이는 중이다.
산길엔 수풀이 우거져 있으나 그 자취는 아주 선명해서 길을 잃을 일은 없어 보인다. 절벽이 끝나는 지점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고 그 앞에는 야생동물 및 식물자원 보호를 위해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산길은 그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밖으로 이어지는데 나무가 없는 트인 공간에 터리풀이 꽃밭을 이룬다.
그리고 내가 오늘 설악에서 보고 싶어 했던 그 꽃, 바람꽃이 무더기로 피어 있다. 작년 고등학교 친구들과 대청봉에 올랐다가 중청으로 하산하는 길목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바람꽃을 처음 보았고 그 감동이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겨우내 찬바람을 이겨내고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린 채 이른 봄부터 쉼없이 준비한 꽃의 향연을 펼치는 중이다. 삼지창처럼 세갈래로 갈라진 잎새가 줄기에서 퍼져나가고 그 줄기 끝에 여러 개의 꽃대가 올라와 하얀 꽃잎이 5장 고아하게 벌어진다. 20여개의 작은 수술이 노랗게 일어서서 한가운데 암술을 감싸고 있다. 청순하면서도 화려한 꽃잔치가 벌어진다.
산길을 따라 나무숲과 조망이 트인 바위길이 번갈아 나타난다. 박쥐나물도 꽃을 피우는 중이고 세잎종덩굴은 피어 있는 꽃 옆에 또 다른 열매가 익어가고 있다. 이 곳의 꽃들은 한꺼번에 피었다가 갑자기 사라지지 않고 어느 정도 기간의 차이를 두고 피어나는 습성을 배운 것 같다. 이것도 그들이 살아남기 위한 전락일 진저. 금마타리는 이미 꽃이 다 지고 열매가 익어 가는데도 아직 꽃봉오리를 닫지 못한채 매달려 있는 것도 있다. 바위채송화는 곧 꽃을 피울 것이고 풀솜대는 봄에 화려하게 피었던 꽃대위에 푸른 열매가 익어간다. 이 짧은 산행구간에서 설악산이 보여줄 수 있는 진면목을 다 보여주는 것 같다.
조망이 트이는 곳에서 잠시 머물면 건너편 산줄기가 안개에 가려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마치 마술쇼처럼 선명하게 보이던 산봉우리가 하얀 안개속에 점차 사라지고 다시 안개가 걷히면 등장한다. 발아래는 까마득한 낭떨어지 절벽이고 그 사이 사이 깍아지른 암봉이 뾰족뾰족 튀어나와 있다. 마치 여백이 있는 한폭의 멋진 동양화 같다.
안산 턱밑까지 다가 갔으나 조망이 안개에 가려 괜한 걸음이 될 듯 한데다 이제는 시간 안배를 하여 하산을 결정했다. 안산을 넘어 한계리로 내려가는 코스도 있는 듯 하나 비가 내려 수량이 풍부한 12선녀탕 계곡의 모습을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발길을 계곡쪽으로 돌렸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은 길이라서 나뭇가지가 길을 막고 발길에도 흔적이 군데군데 지워져 있다. 너덜 바위에 물기가 있는데다 이끼까지 끼어 있어 발걸음이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다. 더구나 2주전에 안경을 잃어버린 후 맨눈으로 다니는데 어두운 숲길에서는 잘 안보인다. 전에 맞췄던 썬글래스를 끼니 돗수가 맞지 않아 땅이 한 뼘 쯤 올라와 보인다. 다시 안경을 벗어 주머니에 넣고 발길을 조심하며 길을 따라 내려오니 계곡 물소리가 들리고 이어 정식 등산로가 나타난다. 계곡물은 크게 흘러간 듯 꽃황새냉이가 모두 물길방향으로 넘어져 있다.
이제 남교리로 가는 등산로를 만났으니 길은 편안하다. 길가에 큰뱀무꽃이 노랗게 피어 있고 계곡 한가운데 노루오줌꽃이 핑크빛으로 꼿꼿하게 서 있다.
이제는 시간이 압박해온다. 오후 5시가 임박하여 2시간 안에 남교리에 도착하려면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길따라 흐르는 계곡물 소리는 점점 커지고 이따금 만나는 폭포는 굉음을 내며 물을 쏱아낸다. 산객은 이미 다 내려가고 나 혼자 남았다. 작년 9월에 지나갔던 길이라 대충 알만한 길이다. 다만, 시간 여유가 없어 잠깐 잠깐 풍광을 감상하고 사진에 담고 떠나가야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산길을 만난지 한 시간 만인 오후 6시에 일명 복숭아탕에 도착했다. 폭포 안쪽으로 움푹 패인 바위의 모양이 여자의 음부를 닮았다고 하여 음폭이라 불렀으나 공공연하게 부르기에 적절치 않은 관계로 복숭아탕이라 부른다. 또는 그 바위굴에서 용이 나왔다 하여 용탕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어쨌든 수만년동안 산으로부터 흘러 내리는 물이 흙을 쓸어 내리고 바위를 깍아 이런 모양의 폭포를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연이 생겨났을까 생각해본다. 지금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탐방로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고 있으나 예전에는 자유롭게 물에 접근하여 더운 여름 몸을 식힐 수도 있었을 테니 그 감동은 또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보통 이런 상황을 그림으로 표현하여 하늘의 선녀가 목욕하러 내려온다고 묘사하는데 이 폭포도 선녀탕이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 이 폭포 뿐만 아니라 계곡을 따라 이어진 크고 작은 소(沼)의 숫자가 12개라 하여 12선녀탕이라고 통칭하여 부르고 있다.
이제 주위가 어둑 어둑하여 마음은 급한데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이 눈길을 붙잡는다. 폭포수를 바라보고 있으면 떨어져 바위에 부딪치는 물이 보라를 일으켜 바람에 날려 안개비처럼 흩날린다. 계곡길은 나무데크로 잘 만들어져 있어 걷기에 편안하다. 돌을 박아 놓은 구간도 널찍하여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걸어도 불편하지 않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폭포수 소리를 귀에 넣고 눈에 담고 또 사진으로 찍으며 가다보니 시간이 지체된다.
남교리에 도착하면 곧바로 타고갈 버스도 없을 테고 무작정 지나가는 차에 손들고 태워달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어쩌면 유일한 교통수단이 콜택시를 부르는 것일 텐데 계곡에서는 핸드폰에 신호가 안잡힌다. 전화도 터지지 않는다. 남교리까지 1.2 km 쯤 남았을 때 비로소 전화기 신호가 잡힌다. 오후 7시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전화를 하니 남교리까지 8분 안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방법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얼른 와 달라고 하고는 부지런히 걸었다. 남교리 설악산 탐방 센터 입구에 도착했는데 택시는 아직 안 와 있었다. 주변을 돌면서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자니 전화가 온다. 다리를 건너오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그러고는 7시 15분쯤 곧바로 택시가 다리를 건너와서 나를 태운다.
동서울터미널로 간다고 하니 자기가 알기로는 7시 30분차가 막차인데 전화를 해보라고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정말로 7시 30분이 막차라 한다. 택시 운전사는 그 얘기를 듣더니 정말 총알처럼 차를 몰아 댄다. 다행히 차가 도로에 많지 않아 몇대는 추월하여 지나치고 신호등에 걸리면 좀 서 있다가 달렸는데도 10분 만에 원통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18,000 원 요금이 나왔으나 버스를 탈 수 있도록 호흡을 맞춰준 고마움에 20,000 원을 드렸다. 그리고 여유있게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이런 저런 우여곡절 끝에 당일 치기로 설악산을 다녀온 기분이 뿌듯하다. 더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었던 안산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고, 평소에 말라 있는 대승폭포 물줄기와 12선녀탕 계곡의 시원하고 벅찬 폭포를 볼 수 있어 더없이 좋았다. 잘못했으면 그 먼 곳을 헛걸음칠뻔 했으나 다른 어떤 날보다도 알찬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바람꽃과 터리풀의 아름다운 자태가 눈속에 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