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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주대장이 던지는 섬뜩한 경고>
미국과 탈레반간의 평화협정이 체결된 이후 바이든 행정부는 올해 9월11일을 목표로 미군철수를 진행중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상밖으로 아프간 정부군이 무너지면서 탈레반이 카불로 진격해 오자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정권을 탈레반에게 넘겨주고 황급히 국외로 탈출했습니다.
가니 대통령의 명분은 "더 이상의 피해와 희생을 방지하고 아프간의 평화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것입니다.
알려진 바로는 가니 대통령은 카불을 떠나면서 군지휘관들을 불러 교전금지 명령을 내린 후 가족, 측근들과 함께 아프간을 떠났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접하고 저는 순간적인 섬뜩함을 느꼈습니다. 그 남다른 이유를 지금부터 소개하겠습니다.
남북군사합의가 체결된 이후 저는 현역 후배장성들에게 늘 이러한 조언을 했었 습니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남북군사합의는 정치적인 효과를 보겠지만 군사적으로는 큰 재앙적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잘 대비해야한다.
북한 후방지역은 미군들이 전략자산으로 잘 들여다보겠지만 우리 전방군단과 사단의 정찰감시수단이 군사합의로 사용을 못하게되면 당장 휴전선 일대 고지군 후방의 북한군 활동을 못보게 된다.
1.21사태를 되돌아봐라. 휴전선과 서울은 불과 40km, 훈련된 특수전요원들은 반나절 또는 후반야 4~5 시간이면 서울로 들어올 수 있다.
지금 우리 군이 대통령의 평화정책을 지원한다며 GP도 폭파시키고 철조망 걷어내고 지뢰도 제거하고 있는데, 68년 1.21사태 때는 31명이 청와대 습격하러 들어왔지만, 만약 수만명의 특수전부대가 고지 후사면에 집결해 있다가 심야에 기습적으로 휴전선을 돌파하여 수도권으로 들어온다면 막을 준비가 되어 있느냐... 이에 대비해야 한다" 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말미에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는데 사실은 그말을 하면서도 꼭 해야 되나 하고 주저 했던 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군통수권자이지만 그 분을 다 믿지는 마라. 실제 위와 같은 일이 벌어지면 문대통령은 피해와 희생을 최소화한다는 명분으로 교전을 금지시키고 북한과 정치적협상을 하려할것이다. 거기에도 대비해야한다" 라고 말입니다.
"교전금지명령, 희생최소화, 안싸우는게 평화다" 라는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의 소식을 들은 순간 제가 전율을 느낀 이유를 짐작하시겠지요.
이제는 이런말까지 덧붙여야겠습니다.
"만약 북한 특수전부대가 서울로 들어와 방송국과 주요기관을 무력으로 점령하여 혼란이 발행하면 문대통령은 성남 공군기지에서 전용기타고 먼저 탈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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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국민은 제나라 역사를 공유한다. 해석이나 평가에선 작은 차이들이 있기는 해도 사실의 기록이 어긋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한국은 사실에서 거의 모두 갈려있다. 지구상 유일한 ‘괴이(怪異)한 나라’다. 김구의 ‘기록’과 ’이미지‘는 그런 사례의 본보기다.
김구에 대한 기억은 김구를 거의 신격화한 사람과 반역(反逆)과 살인으로 추억하는 사람으로 갈려있다. 이런 인식의 차이는 사상이나 종교의 차이 탓이 아니다. 모두 김구의 발자취를 한국인의 눈으로 보는데도 극으로 갈린다. 이건 사실의 기록에 오류(誤謬)가 있다는 증거다.
김구의 기록은 사실과 다른 것들이 대부분이다. 단적인 사례로 오늘의 사람들이 김구와 마주치는 소위 기념의 집, 경교장도 그 하나다. 포털에서 경교장을 검색하면 『최창학이 친일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경교장을 김구에 바쳤다』고 기록해 놓고 있다. 2020년대의 한국인에게는 이게 정설이 되어 있다. 대체 누가 이런 거짓말을 만들어 기록에 올렸을까?
최창학은 광부 출신이다. 금광을 발견해 부자(富者)가 되었다. 친일, 반일, 그 어느 것도 흔적이 없다. 친일도 안 했고 친일할 이유도 없었던 인물이다. 전쟁 말기 일반 가정에서도 총탄 만들라며 놋그릇을 바쳐야 했듯이 부자는 더 많은 돈을 내야 했다. 그것뿐이다.
그래 백보를 양보해 친일했다 치고 죄값이라 치자. 그렇더라도 왜 김구한테 바치나? 독립될 새 나라에 바쳐야지 김구가 무슨 자격, 무슨 권리로 친일의 ’죄값‘을 받나?
임정 사람들이 귀국하던 때 ‘임정환영위원회’가 미군정에 사무실을 교섭했더니 “임시정부는 없다. 모두 개인 자격으로 들어오는 데 동의하고 각서도 썼다”고 했다.
그래도 임정인데 집도 절도 없으니, 해서 임시 거처를 물색했다. 후보지가 최창학의 ’죽첨장(竹添莊)‘이다. 사무실과 주거, 겸용이 가능한 집이었다. 송진우가 교섭했다.
“임정이 공인되면 미군정이 사무실을 줄 것이고 아니면 해산하거나 사무실을 얻고 국무위원들은 각자 집을 마련할 것이니, 3개월, 길어도 반년을 넘기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최창학네 식구들은 사랑채로 나 앉고 본채인 양옥을 임정에 빌려주었다.
1945년 11월 입국한 임정은 모두 경교장에 들었다. 12월 말 정치가 반탁과 찬탁으로 갈리면서 임정이 쪼개지고 이듬해 5월 ’미·소공위‘가 열리면서 임정은 수명을 다했다. 임정 사람들도 정치노선 따라 뿔뿔이 흩어졌다. 김구도 임정 주석이 아니라 ’비상국민회‘ 등 정치단체 대표로 활동했다. 임정이 사실상 해산됐으니 사무실은 주인에게 돌려주고 김구도 제집을 마련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죽첨장을 경교장으로 바꿨다. 주인의 양해도 구하지 아니한 옥호 변경은 강점(强占) 통고였을까?
죽첨장은 최창학이 후대에도 물려주기 위해 돈과 정성을 바쳐 건축한 ’최씨 저택‘이다. 조선 사람이 최초로 지은 양옥이기도 하다. 임정에 빌려줄 때도 죽첨장을 몽땅 내놓은 것이 아니라 주인은 사랑채로 옮겨 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준 것이 아니라 잠시 빌려준 것이다. 김구라고 그걸 모르겠는가.
최창학이 집을 비워달라는 뜻을 간접으로 전했지만 들은 체도 안 했다고 한다. 최창학은 친구들에게 “세 받는 것도 아닌데…”라고 투덜대며 어찌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했다고 한다.
그런 저택을 ’김구 기념관‘이라니….
(김구는 안두희경호실장에 의해, 자유대한민국 건국을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며 암살)
집 얘기에선 기억해야 할 얘기가 생각난다.
이승만은 미국서 들어와 조선호텔에 묶었다. 미국이 들어와 도와달라고 했기 때문에 호텔비도 미군정이 부담했다. 그랬지만 미군 신세만 질 수 없다. 돈암장을 얻어 나갔다. 그런데 몇 달 지나 주인이 집 비우기를 원하자 미군정이 미군 대령이 살던, ’마포장’을 주선해 주어 이사했다. 그런데 일본식 집이어서 온돌도 없는 데다 낡아 외풍이 심했다. 낮에도 외투를 입고 있어야 했고 저녁이면 이불 두 채로 몸을 감싸야 잠을 잘 수 있었다. 이래서 유지들 40명이 돈을 모아 이화장을 사서 기증했다.
이승만은 빈손으로 왔지만, 김구는 돈이 많았다. 물론 당시는 몰랐고 뒤에 알게 되었지만…. 해방이 되자 중국 총통 장제스(蔣介石)가 김구에게 건국 비용에 보태라면서 중국 돈 1억 위안과 미화 20만 달러를 주었다. 서울에 들어오자 한민당은 모금된 후원금 900만 원도 주었다. 모두 임시정부에 준 것이지만 임정이 곧장 없어져 받은 김구가 김구의 돈으로 썼다.
스칼라피노가 한국에 관해 쓴 저서에서 “황금 줄이 달린 돈방석에 앉아서 자금을 물 쓰듯 했다”는 조선 공산당 다음으로 많은 돈을 김구가 지니고 황금 방석에 앉아 있었다. 경교장 같은 집 수십 채를 사고도 남고 남는 돈을 김구는 지니고 있었다. 그 돈을 어디에 썼는지 기록도 없고….
어쨌거나 주인 가족이 사랑채에서 불편하게 지내는데 김구 가족이 본채를 점령하고 눌러 앉아버리다니 이런 것이 진짜 강점(强占)이다. 경교장을 ‘김구 기념관’으로 하는 건 남의 집 강점을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이 기념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김구는 조선독립에는 지대한 공을 세웠지만,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寄與)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김구가 대한민국 독립을 방해한 치명적인 사례 하나만 되돌아보자.
대한민국을 수립하기 위해 유엔 감독하에 치른 1948년의 5·10 선거 때 김구는 선거 방해의 선봉에 섰다. 소련군, 조선공산당, 김구가 공동전선을 펴고 있었다. 당시의 선거 방해는 투표거부운동 같은 평화적인 것이 아니라 관청을 폭파하고 후보자, 경찰관, 선거종사자, 우파 요인을 죽이는 ‘테러‘였다. 소련이 지휘한 이런 선거 파괴, 우파 말살(抹殺) 전선에 김구도 있었다.
이승만은 선거 테러를 저지하기 위해 청년단체를 선거기간 경찰의 지휘하에 들어가게 했다. 경찰 고위층의 지휘가 아니다. 일선 서장, 지서와 파출소장과 순경의 지휘를 받았다.
당시 청년단은 학력이 가장 높았던 우파의 엘리트 집단으로 해방정국에서 정치의 주역이었다. 그런 청년들이 경찰 말단의 지휘를 받는 경찰보조를 수락한 것은 놀라운 결단, 이승만이 있고 청년의 절박한 애국심이 있었기에 이루어진 일이다.
이승만과 청년들은 1만여 경찰로는 선거 테러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승만의 청년단은 선거운동 마당이 아니라 공산당의 테러를 막는 전선에 있었다. 1만여 경찰 그리고 수십만 명, 청년단원이 밤을 잊고 총과 쇠망치 쇠스랑과 낫을 무기로 해 죽이고 죽임당하며 성취한 테러 저지다.
제주군은 공산당의 섬이었다, 제주 사투리가 육지 말과는 너무 달라 말이 통하지 않았기에 서북청년단도 발을 못 붙였다. 그래서 제주 섬은 4·3폭동이라는 공산당 테러가 투표 저지에 성공한 유일한 남한의 단 한 곳이 되었다. 제주군의 2개 선거구만이 폭동으로 투표가 차단당하는 데 그치고 다른 198개 선거구가 95% 투표율에 이르게 한 투표는 이래서 이뤄졌다. 유엔한위 위원들도 하나같이 경탄(驚歎)한 기적에 가까운 테러 저지였다.
그런데
문재인은
남로당 4ㆍ3폭동자들에게 유공자로 53억지급
그들을 막은
군ㆍ경찰에게는
폭도자로 칭하며
현 국방부장관
경찰청장에게
용서를 빌라했다
이렇게 세운 나라, 이런 열정, 이런 절박한 애국심이 대한민국을 지키고 가꾸어 수천 년의 가난에서 탈출하고 수백 년 뒤처진 후진의 땅, 한국을 반세기에 선진국 문턱에까지 밀어 올린 원동력이다.
대한민국 50년은 세계가 ’한강의 기적‘이라고 일컫는 위대한 성취다. 그런데 그들에 대한 후대의 기억은 미움이다. 기리기는커녕 기억하는 것도 거부하고 있다. 후대에 미움받고 배척당하는 사람들이 이끌어 간 나라가 위대한 성취를 만들어 내다니 말이 되는가? 이것은 후대의 기억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아닌가?
김구 신화는 거짓으로 꾸며진 것, ‘가짜’다. 누가 왜 이런 가짜를 만들어 낸 것인가. 한마디로 압축하면 “이승만을 지우기 위해 김구를 신화로 분칠했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선 안 될 나라“, 노무현, 문재인이 합창한 대한민국 종말의 노래다. 이 노래를 대한민국의 다수 국민은 노무현한테서 처음 들었다. 그렇지만 이것은 노무현의 노래가 아니다. 북쪽 김일성의 교시(敎示)다. 남조선 인민을 ‘대한민국 no‘로 세뇌하라고 김일성이 노동당에 명령한 이른바 ‘수령의 교시’다. 조선노동당 그리고 김일성에 충성을 서약한 대한민국의 소위 주사파라는 운동꾼이 김일성의 병정(兵丁)이 되어 ‘대한민국 no’라는 김일성 교시를 수행했고 지금도 수행하고 있다.
김구 신화로 출발한 이승만 지우기는 대한민국 no의 출발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다수가 이승만을 지우고 김구 신화에 침몰해 있는 것은 김일성의 대한민국 지우기 전쟁의 찬란한 승리라고 해야 할 판세다. 그렇지 않은가? 누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이승만 지우기는 제2 제3의 이승만 지우기로 전진했고 지금도 전진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부국강병(富國强兵)의 나라로 이끌었고 이끌고 있고 공산당에 철퇴를 가했고 가하고 가하려는 이승만의 후예들이 지워지고 혹은 민족의 주적으로 기록되고 적폐로 내몰리고 있다.
대한민국 역사 교과서는 대한민국 no로 채색되어 있다. 소설 드라마 연극 영화 노래 다큐멘터리 기타 등등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것들이 대한민국 no로 채색되어 있다.
김일성의 이런 ‘찬란한 승리’는 간첩, 남파 공작원, 그리고 통일혁명당으로 출발한 남조선 지하당이 만든 것인가? 아니다. 김영삼 김종필,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은 의도했건 안 했건 주사파의 공범이거나 하수인이다.
김일성 장학생들은 대한민국 각계각층에 진지(陣地) 구축 단계를 넘어 주류의 자리를 장악해 있다. 3권을 장악한 데 그치지 않는다. 우파 안에도 그들의 장기(長技)인 야체이카, 프락치, ‘그들에게만 쓸모있는 바보’인 동조자 얼치기 건달을 심고 늘리고 있다. 그런 부류가 국힘엔 유난히 많다. 유승민 이준석 등 오렌지족을 이런 부류 중의 하나로 분류한다면 ‘틀리다’고 할 것인가? 이런데도 방관자로 머물러 있는 나는 무엇인가? 오늘을 사는 한국 시민권자라면 이 질문에 대답하고 그 답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 이 땅에선 김일성이 김정일이 김정은이 주적으로 점 찍으면 그는 이승만처럼, 백선엽처럼, 민족의 주적으로 채색되고 살아 있는 자는 박근혜처럼, 이명박처럼, 적폐의 멍에를 쓰고 감옥에 유폐된다.
대한민국 주류가 된 남조선의 베트콩은, 베트남의 길 아프칸의 길을 뒤따르는 길로 대한민국을 끌어가고 있다. 아닌가? 이승만이 남겨준 한미동맹이 없었다면 이런 몰골로나마 대한민국이 살아 있기나 할까? 중국 시진핑의 아이들까지 가세해 있는 판인데….
아프간의 사태에서도 미군철수를 외치는 절체절명인 대한민국
쿠오바디스!
2021-08-19 <공감할 대목이 하나라도 있다면 널리전달부탁드립니다> - (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