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오줌 ˙ 방귀 ˙ 똥’의 어원
새로운 말은 어떻게 생기는가? 하나의 말은 그 말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어떤 존재의 정체성을 하나의 낱말에 담을 수 있는가? 그 핵심을 한마디로 나타낼 수 있는 말도 있겠지만 담지 못할 말도 분명 있을 수 있다. 그럼 어떻게 담아야 할까? 한약의 알약[환(丸)]을 만들 듯, 여러 말을 모아 액기스를 짜내어 하나의 덩어리로 버무려 만들 수 있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 ‘알쓸신잡’예능프로의 정체성이고, 그 줄임말이다. 마찬가지로 ‘유엔’은 ‘United Nations’ 곧 ‘국제연합’의 준말이고 그 정체성이다.
줄임말 곧 낱말의 줄임 법칙은 세계 공통의 원리이다. 줄임말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유행하는 줄임 방법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 현상은 세계 공통의 법칙이다. 낱말의 탄생이 줄임의 결과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한걸음 더 들어가면 시대와 지역의 줄임 법칙 그리고 문자 발명의 차이에 따라 세계의 언어가 서로 다르게 변한 이유로도 볼 수 있다. 덧붙여 하나의 낱말은 숨바꼭질의 원리에 따라 만들어진다. 즉, 술래를 찾으면서 또는 숨으면서 술래가 찾지 못하는 곳에 남들이 없는 곳에 숨는 원리이다. 다시 말해 기존에 있는 말을 피해 새로운 말이 창조되는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말은 눈사람을 부풀려 만들 듯, 어떤 새로운 존재에 대한 정체성의 의미를 부여하여 기존의 말들을 피해 다듬고 압축하며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또한 그 말의 어원이기도 하다.
‘오줌’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사전에서 설명하듯, 우리 몸 안의 방광에서 요도를 통해 몸 밖으로 나오는 액체이다. 사전의 설명이 그 낱말의 정체성이다. 그러면 오줌은, 보다 쉽게 말해, 몸을 옴츠려 누인 물이다. ‘(몸을) 오그리어(옴츠려) 조록(가는 물줄기 따위가 좁고 짧은 데를 빨리 흐르다가 그치는 소리 또는 그 모양)인 물’이다. 앞말만 추려서 줄이면 ‘오조물’이 되고, 더 줄이면 ‘오좀’이 된다. ‘오줌’의 먼젓말이 ‘오좀’인 이유이다. 후에 ‘조록’이 ‘주룩’에 밀려 ‘오줌’으로 다시 변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오줌’의 어원이다.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한자(漢字)가 그 증거이다. 한자는, 발이 발자국을 남기는 원리로 만들었듯이 우리말의 말자국이기 때문이다. 오줌의 한자는 뇨(尿)이다. 주검/시(尸)와 물/수(水)를 합성하고 글말(발음) ‘뇨’를 덧붙인 회의(會意)의 원리로 만든 글이다. 시(尸)의 갑골문은 사람/인(人)의 아래 다리부분을 한 번 더 쭈그린 형태이다. 즉, 사람이 쭈그린 모습으로, 몸을 사리고 움츠리는 뜻이다. 글말 ‘뇨’는 ‘누이다’의 준말 ‘뉘 > 뉴 > 뇨’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 ‘몸을 오그려(옴츠려)[시(尸)] 누인(조록인)[뇨] 물[수(水)]’의 얼개로 한말 ‘오좀’의 뜻 그대로 말자국처럼 나타냈음을 알 수 있다.
‘방귀’의 옛말은 ‘방긔’이다. 한자는 비(屁)이다. 비(比)는 둘 사이를 비기어(견주어 보아) 비교하는 뜻이다. 그러면 ‘몸을 움츠려[시(尸)] 남을 견주어 보아 달리 남의 눈치를 보며[비(比)] 비왙다(<옛> 뱉다)[비]’는 얼개이다. 비(屁)와 견주면, 방긔는‘ᄇᆞ리어(버리어) 어리어서(어떤 기운이나 현상이 나타나서)/앙구어서(묻어서)[방] 그느는(그느다/분간하여 누다) 이(것)[긔] 또는 그시(반치음)(<옛> 그시다, 기이다/숨기다)인 이[긔]’의 준말임을 알 수 있다. 방긔는 뀌는 것이다. 그래서 점차 ‘방긔 뀌다’가 음운동화 되어 ‘방귀 뀌다’로 되면서 ‘방귀’로 제 자리를 찾은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방’은 버리면서 어리는 또는 묻어나는 뜻이고, ‘긔’는 남의 눈치를 보면서 곧 분간해서 누이는 이의 뜻이거나 숨기는 이의 뜻이다. 한자와 우리말이 하나도 어긋나지 않는다. 방기(放氣)로 한자 표기했다고 결코 한자어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말은 한자를 알아야 비로소 우리말 어원도 정확히 알 수 있다. 어찌 한자를 그냥 중국에 헌납할 수 있겠는가?
똥/시(屎)는 시(尸)와 미(米)의 형성자이다. 시(尸)의 갑골문은 무릎을 움츠리며 쪼그리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곧 몸을 ᄉᆞ리는(사리는/서리는) 현상을 나타냈다. 그럼 본래는 ‘ᄉᆞ’글말이었으나 몸을 쭈그리며 ‘시근한, 시린’현상에 따라 ‘시’로 변했다고 볼 수 있다. 덧붙여 글말이 ‘시’로 변하면서 ‘시들은’의미에 따라 옴츠려들며 시들은 사람 곧 ‘주검’의 뜻으로 전주되었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똥은 몸을 쭈그려 앉아 누인/쌓인 것이다. 그리고 똥의 모양은 흔히 그림으로 나타낼 때 뱀이 똬리를 트는 것처럼 그리듯, 사리어진 형태이다. 그럼 ‘몸을 사리어(쭈그려)[시(尸)] (먹은) 음식을[미(米)] 시근덕거리며 사리어 누인[시]’것으로 나타냈다. 그럼 한말 ‘똥’은 ‘음식(곡식들)을 도마질하여(도막내어, 도리깨질하여)[도] 이기어(반죽하다, 잘게 썰어 짓찧어서 다지다, 빨래 따위를 이리저리 뒤치면서 두드리다)[ㅇ] 누인 것’의 준말임을 알 수 있다.
시(屎)가 ‘앓다, 끙끙거리며 앓다’는 뜻으로 전주되어 쓰이자, 소전시대에 다시 분(糞)을 새로 만들어 썼다. 즉, ‘몸이 뒤틀리고[시(尸)] 곡식의 껍질이 벗겨지듯[미(米)] 시근거리는[시]’ 현상에서 ‘끙끙거리며 앓는’뜻으로 전주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분(糞)은 ‘음식을[미(米)] 다르게[이(異)] 분질러서[분] 붇게(물에 젖어서 부피가 커지게)/부석부석/부숭부숭[부] 누이는[ㄴ]’얼개로 다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적으로 시(尸)는 본래 ‘ᄉᆞ’글말이었는데, ‘시’글말로 변하면서 똥/시(屎)가 똥을 누며 끙끙거리듯, 시근거리며 앓는 뜻으로 전주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한자는 억지로 뜻에 꿰맞추며, 흔히 말하듯 문리(文理)가 트여야, 알 수 있는 선비들의 어려운 문자가 아닌 누구나 상식적으로 쉽게 알 수 있는 글이다. 그리고 그 원리는 분명한 우리말의 자국을 나타내는 원리이다. 한자가 우리글일 수밖에 없는 확실한 증거이다.